【김영수 목사 찬송가 강해】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 (408장)

  • 입력 2024.08.02 11:01
  • 수정 2024.08.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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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

선두(船頭)에 서서 사공들(신자들)로 하여금 더 깊은 은혜 속으로 노를 저어가라고 독려하시는 주님의 음성과 자태가 연상되는 은혜와 사랑주제 찬송입니다. 1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다와 비교하여 자연스럽게 신자들로 하여금 그곳으로 나아가도록 요청하고 있다. 2,3절은 세상의 환란과 물질의 염려, 현실의 안주 등으로 인해 얕은 물가에서만 노니는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모습을 질책하고 있다. 4절은 '가거라', ‘가라는 명령조를 반복 사용하여 은혜의 바다로 출항(出航)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알버트 벤자민 심프슨(A.R.Simpson;1843-1919)
알버트 벤자민 심프슨(A.R.Simpson;1843-1919)

작사자는 캐나다 출생으로 1865년 캐나다 토론토의 낙스 대학을 나온 장로교 목사님으로 1874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평생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을 찾아 헌신적인 삶을 살며, 국제선교협회(The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CMA를 설립한 알버트 벤자민 심프슨

(A.R.Simpson;1843-1919)1891년에 작시하였다. 심프슨 목사는 장로교 목사였으나 교파가 복음의 광범위한 전파에 방해됨을 인식하고 범 초교파적으로 활동했는데 주 사역은 캠프(CMA)를 통한 전도 훈련과 성경공부였습니다. 여기서 훈련받은 전도 요원들은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계층, 병들고 가난한 자들, 형무소, 병원들을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하였는데 모두가 열심히 하였다.

룻셀 켈소 카터(R.K.Carter;1849~1926)
룻셀 켈소 카터(R.K.Carter;1849~1926)

찬송 곡 LAUNCH OUT는 배를 물에 띄운다는 뜻이며, 작곡자는 미국 메릴랜드 주 벌티모어에서 태어나 펜실베니아주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그 학교 화학과 자연과학 토목공학과 고등수학 교수가 되었고 후에 목사가 되었다가 의사가 된 다재다능한 음악인 룻셀 켈소 카터

(R.K.Carter;1849~1926)1891년 작곡하였다.

 

 

1절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가운데 가 보라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1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저 큰 바다보다 깊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언덕에만 머무르려 하느냐 너 믿음의 닻줄을 끌러 신앙의 깊은 바다로 나가보라고 권고하고 있다.

갈릴리 바다에서 나면서부터 고기 잡는 어부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보았지만, 그날따라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그물을 던졌는데도 불구하고 고기를 잡지 못하자 오늘은 고기가 활동을 하지 않는가 보다! 또는 오늘 운이 없는가? 생각하고 그물을 접어 육지에 배를 대고 내일을 위해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누가복음 54절에 있는 것처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웬 낯선 사람이 대낮에 이치에도 맞지 않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는가? 하며 정신 나간 양반이네!...” 하며 예수님의 말을 무시하고 돌아설 수도 있었건만 베드로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고 누가복음 55절에 기록된 내용처럼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는 수고를 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물을 던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순종하여 깊은 곳으로 나아가 그물을 던질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누가복음 56절과 7절에 있는 대로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할 정도로 두 배 가득히 고기가 잡히는 기적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듯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편안하고 부족한 것이 없이 하란 땅에서 잘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12:1-2)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부족사회에서 부모와 친족을 떠나 낯선 땅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결단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답게 하란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가나안 땅으로 순종하여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믿음의 조상, 축복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찬송가 1절의 가사와 본문 누가복음 54절을 통해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라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적 교훈을 듣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은데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깊은데(deep water)’는 우리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을 가리킵니다. ‘깊은데는 우리의 경험이나, 우리의 지식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서 우리가 볼 수도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직 믿음의 눈을 가진 자만이 신뢰와 용기를 갖고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신앙, 생동감 있는 신앙, 역사와 이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의 신앙인들이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성과 경험과 고정관념을 초월하여 주님이 인도하시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순종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깊은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결단력과 위험이 동반되지만 순종하여 믿음으로 나간 자들은 생명력 있는 은혜와 기쁨의 영적 생활을 누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투자하여 주님께 헌신해보십시오! 부름의 역사에 순종하여 주께 나가십시오! 자신의 발을 붙들고 있는 자존감, 사회적, 인간적 갈등을 다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도 각각의 현장에서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해설의 집대성" New21세기 찬송가 해설, 김영수 목사, 홀리북클럽 (상권, 하권)
"찬송가 해설의 집대성" New21세기 찬송가 해설, 김영수 목사, 홀리북클럽 (상권, 하권)

 

2절 왜 너 인생은 언제나 거기서 저 큰 바다 물결보고

그 밑 모르는 깊은 바다 속을 한 번 헤아려 안 보나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2절은 왜 너 인생은 눈에 보이는 얕은 물가(세상)에서 고통하며 방황하고 있는가? 저 깊은 바다는 큰 요동함이 없듯이 내면(주님)의 깊은 바다(은혜)속에 들어가 주님의 사랑을 느껴보아라고 권고하고 있다.

1절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신앙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첨벙대는 것은 깊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나 아직도 타인의 의지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어린이 같은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얕은 물과 깊은 물의 차이점은 얕은 물에서는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뛰놀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깊은 물은 자신의 힘보다는 물살의 힘이 더 세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들이라면 자신의 힘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깊은 곳을 통하여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해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순종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젊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0:17)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0:18)하시면서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10: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이 청년은 당당하게 선한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10:20)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때 부자 청년에게 다시 말씀하기를 그러냐? 잘하였도다! 그러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10:21)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재물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10:22).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얘들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 쉬우니라.”(10:25)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결코 물질과 자기 의지와 노력만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하게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959절에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할 때 그 사람의 대답이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하고 주를 좇게 하옵소서!” 주저하며 핑계할 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9:60)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62절에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하시면서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지고 살려는 자들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비유가 얕은 물가에서 첨벙거리는 어린아이의 신앙을 버리고 그 밑 모르는 바다와 같은 넓고 깊은 장성한 신앙,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믿음 생활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다른 부대조건을 제시하며 그분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먼저 해야 할 다른 변명을 찾느라고 분주해 있지는 않습니까?

제자들이 그물과 배를 버리고 주를 따라간 것과 같이 나의 모든 방법과 계획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인도하심과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해보십시오. 내가 생각지 못한 놀라운 응답과 축복이 나타날 것입니다.

 

3절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마음 약하여 못 가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3, 많은 사람이 저 큰 바다에 가려다가 작은 파도에 겁먹고 얕은 물가에서만 움직이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신앙의 깊은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그만 시련과 환란과 핍박에도 쉽게 넘어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 주님의 보호하심과 사랑하심을 믿고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배 띄워 주님께서 예비해놓으신 많은 축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태복음 1422-33절에 보면 예수님은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고 제자들은 먼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태운 배가 육지를 떠나 상당히 멀리까지 갔는데 새벽 4시쯤 되었을 때 갑자기 파도가 휘몰아치므로 제자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이 광경을 보고 무서워하여 유령이다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즉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성질 급한 베드로는 너무 기쁜 나머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고 청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하시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다가갔습니다. 이 순간 베드로는 얼마나 기쁘고 신이 났을까요? 그런데 얼마를 가지 못해 그만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고 겁을 집어먹게 되었고 그 순간 푯대 되신 예수님을 놓치므로 베드로는 물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다시금 큰 소리로 예수님! 나를 구원해주세요!”하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며 꾸중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이 되어 나올 때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을까요? 그런데 며칠 못 가서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의 말발굽 소리로 진퇴양난에 빠져 있을 때 저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끌어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14:11-12)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 손을 들어 지팡이로 홍해를 내리칠 때 그 험한 바닷물이 갈라져 무사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넜지만 쫓아오던 애굽 군사들은 홍해 바다의 물귀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원래 예수님의 신임을 받던 머리가 명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계산적이고 타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마리아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귀한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으려고 할 때 가룟 유다는 왜 귀한 것을 허비하느냐고 하면서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다녀 보아도 물질적으로 어떤 소망이 없음을 판단하고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버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을 위하여 내 생명도 아낌없이 바치고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 가지고 가오리다.(찬송가 323)고 찬송을 하지만 순간 어려움이 다가오고 환란이 다가오고 핍박이 다가오면 내가 언제 그랬냐? 는 식으로 주저앉고 세상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결단의 신앙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안일 무사주의는 신앙의 성장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요사이 아이들이 키는 자랐지만, 운동 부족으로 인해 전보다 체력이 떨어진 것처럼 성도들이 귀만 커지고 입만 살았지 누구 한 사람 자기 생명을 내 던져 교회를 살리고 복음을 전하고 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어떡하면 싶게 편하게 예수 믿을까? 하여 큰 교회를 찾아 떠나는 성도들의 추세가 아닙니까? 그것도 아니면 가나안 성도로 나 홀로 신앙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기독교 문화가 이루어지려면 고통과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주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성도가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은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나의 신앙을 어떻게 하나님께 증명 해 보이시겠습니까? 나의 사랑하는 부모, 처자식, 물질, 명예, 생명까지도 버릴 각오를 하고 주를 쫓고 있습니까?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각오하고 모험적으로 따라나서면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는 행복한 삶과 기적의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굶주림과 헐벗음을 각오하고 주님의 길을 따라나서면 오히려 배불리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고 살려 주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요한 웨슬레(J. Wesley)"하나님 외에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백 명만 있다면 이 영국을 다 뒤집어 놓고 세계를 뒤집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4절 자 곧 가거라 이제 곧 가거라 저 큰 은혜 바다 향해

자 곧 네 노를 저어 깊은 데로 가라 망망한 바다로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4, 자 이제 저 큰 은혜의 바다 향해, 망망한 바다 향해 네 노를 저어 깊은 데로 가라

4절의 핵심은 믿음으로 신앙의 배를 띄웠으면 주저하지 말고 더 깊고 더 넓은 곳으로 항해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참된 하나님의 영적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도전입니다. 끝없는 도전과 훈련, 넘어짐 많이 성숙한 은혜의 사람, 영성의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422-33절에 태풍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려 하셨던 교훈은 눈동자같이 지켜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7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후에 베드로를 물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14:33)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지만, 아직도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 바른 신앙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 경제적 메시아로 이해하며 존경하며 따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 속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권력과 명예와 부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같은 모습은 성직자 평신도를 구분하지 않고 한국교회에 흐르는 전반적인 모습입니다. 한국교회가 세속화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합리주의, 이성주의, 기복주의, 성공주의, 맘모니즘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얕은 물가에서 첨벙거리는 어린이들의 영적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어린이와 같은 영적 수준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완전히 지배하고 다스리는 영의 사람들로 바뀌어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의 지식, 경험, 생각, 판단을 다 내려놓고 예수의 영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을 안 내려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의 풍랑, 고난의 파도를 보내십니다. 그때 우리는 영적 잠에서 깨어나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내어주시는 사랑의 손, 구원의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저 반갑고 기쁜 나머지, 자신의 혈기와 순수함만을 가지고 바다로 뛰어내렸지만, 그의 믿음은 아직 일차적인 믿음에 그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죽음의 순간, 위기의 순간에 다가와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손을 통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16:16)는 참된 믿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깊은 곳에 나아가 영적 그물을 던질 수 있도록 종종 하나님은 커다란 시련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은 단순히 우리가 주님을 선지자나 선생 정도로 알고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지적이고 의지적이며, 혼적인 신앙을 넘어서서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전능하신 구세주로 내 삶 속에 구체적으로 도우시며 역사하시는 주님으로 체험되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믿음의 노를 저어 영성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후에도 많은 실패와 아픔을 경험하지만 끝내는 성령 충만을 통하여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한 번의 설교에 삼천 명씩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를 일으키며 그 마지막은 아름다운 순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성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관주

1

하나님의 넓고 큰 은혜 *3:24,5:15,고후 9:8,3:8-9,2:11-14

깊은 곳으로 가라 *107:24,5:4,21:6,16:24

2

큰 바다 물결을 겁냄 *2:3,8:24-25,4:37-38,8:23-24

3

파도보고 두려워함 *88:7,14:29-31,21:25,27:20

4

망망한 은혜의 바다 *104:25,51:10,14:29-33,27:20-26

<후 렴>

주 예수 은혜의 바다 *14:29-33,5:15,고후 8:9,1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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