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지베헤 엘로힘 루아흐 니쉬바라 레브 니쉬바르)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처서(處暑)를 맞이하면서 더위가 한풀 꺾인 듯한 날씨지만 수증기의 열기는 너무 뜨거워서 하늘은 간간이 비를 쏟아내서 더위를 식이지만 여전히 한반도는 용광로이다. 코로나 이후 경기 침체와 정쟁(政爭), 델타 바이러스로 다시 전염병이 창궐하는 상황이다. 이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해야 할 것이다. 이 묵시문학적 종말의 상황에서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의 불화살이 우리를 향하여 있기 때문이다. 종말론적 심판은 나를 향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우리는 죄의 회개와 사함을 간구해야 한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하세테르 파네이카 메하타아이 웨콜 아오노타이 메헤”(시51:9). 이 시편은 표제어에 언급하는바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지은 시이다. 다윗의 시편 가운데 아름다운 시로서, 죄의 회개, 상한 심령의 제사를 강조하는 다윗 시이다. 이 시에 표제어가 없다하여도 은혜로운 고백적 시는 감동을 주고도 남는다. 십계명의 죄와 인간의 모든 율법 조항인 613개의 계율을 어기는 죄과로 인한 심판과 징벌을 반성하면서 다윗은 하나님께 드리는 회개 기도로 여겨지며 시편 독자들이 많이 읽히고 고백하는 시이다.
다윗의 고백록으로 한 나라의 왕의 죄 시편이지만 인간 다윗, 일반 대명사로서 모든 인간이 짓는 죄에 대한 고백을 볼 수 있다. 이 시는 즐겨 노래하는 다윗 시편 중에 하나이다. “(다윗의 영장에 맞춘 노래, 밧세바를 범한 후에 나단 선지자가 온 후에) 하나님이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하네니 엘로힘 케하세데카)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시51:1-2). 또 이 참회의 시편은 탄식 시편의 한 종류로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사하심을 간절하게 빌고 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시51:9). 시편 24편, 시 118, 132, 5:7, 63:2-4, 26:6이하 등과 같이 이스라엘 예배에서 불리는 노래로서 성전 예배에서 불리는 시편이다. 이 노래에서 번제와 하나님의 제단에서 감사의 노래로서 불려지며, 이 시편에서 감사 시편으로서 이 싯구에는 죄의 고백과 순수하고 흠없는 우슬초의 정결과 거룩한 성수의 뿌림을 볼 수 있게 한다. 이는 순수한 제의, 정결 예식에서 제사장이 부르는 신탁의 노래와 간구의 기도를 보게 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레브 타호르 베라 리 엘로힘 웨루아흐 나콘 헤데쉬 베퀴르비)”(시51:10).
또한 시편 51: 9절의 정결례는 죄인이 의식 속에서 순수하고 깨끗한 정결례를 통해 제단에 걸어가는 예식(시28: 6)이 표현되며, 또 정결례와 구속된 제사, 우슬초의 청결 등이 요구된다. 제사장은 축복과 저주의 신탁을 발하면서 제의자의 축복을 간구한다. 탄식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와 성전에서 구원을 간구하고 탄식과 부르짖음이 구원과 찬양으로 이어지는 제의적 표현을 가져온다. 이 시편은 다윗의 탄식시로 분류되지만 국가적 탄식시로서 회중이 죄를 지은 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고백하는 죄가 어떤 죄일지라고 여호와가 우측에서 계심을 인정한다(시52:6). 그렇게 함으로써 죄인을 영예롭게 하고 그 자신을 작고 비참한 존재임을 고백하며 겸손하게 죄의 간청을 한다. 그리고 주께 나가는 참회의 탄식 시편임을 보여준다. 죄의 고백과 겸손, 간청하는 기도의 동기는 이 시편의 특징임을 보여준다(시편 79:8, 9, 시79:8 등)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헨 에메트 하파쩨타 바투호트 우베사툼 호트마 토디에니)”(시51:6).
십계명의 죄는 시내산 돌판의 두 개가 서로 상응하며 짝을 이루는 구조를 보인다. 1-6계명, 2-7계명, 3-8계명, 4-9계명, 5-10계명이 각각 서로 짝을 이뤄 하나님의 계명을 보여준다. 이 계명은 613조항의 요약과 축약을 보여준다, 하나님 계명과 인간 계명의 가장 중요한 계명을 보여준다. 다윗은 살인죄와 간음죄를 지고 여기서 나단에게 맞닥뜨리는 장면을 표제어로 제시하며 죄의 회개를 노래하는 탄식시이며 참회시이다. 오직 하나님 신앙과 살인(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금지 명령이 짝을 이루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귀한 남녀 부부의 가정을 지키라는 언약이 짝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간음죄는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이며 이는 중한 죄임을 보여준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51:3). 죄의 현존과 하나님 앞에서 대속제, 속죄제사로 죄사함을 노래하고 있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헤티바 비르쪼네타 에트 찌온 티베네 호모트 예루샬람)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웨카릴 아즈 야아루 알 미즈바하카 파림)”(시51:18-19), 죄의 현실과 죄의 벌, 속죄와 속죄 제사에 중한 대속 제물로 귀한 수소로 제물을 삼고 하나님의 전, 성전과 제단에 나가는 다윗(인간)을 보게 된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레카 레바드카 하타티 웨하라 베에이네카 아시티 레마안 티제다크 베다베레카 티즈케 베샤페테카)”(시51:4). 이 죄의 현실은 바로 왕의 절대 권력자라도 하나님 앞에서 절대 단독자로서, 죄인으로서 서야 함을 보여주는 놀라운 시이며, 하나님의 법의 엄정함과 의로우심을 보여준다(시편51:3-6). 하여 주의성령과 구원의 즐거움을 얻어, 주의 도를 가르칠 수 있음을 알려준다(시51:11-13).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하쉬바 리 세숀 이스에카)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웨루아흐 네디바 티세메케니)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51:12). 시편 51편은 표제어의 간음죄의 중함을 대속 받는 사함을 비는 탄식과 참회의 노래로서 공동체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시51:18). 다윗의 이 대표적인 탄식 시편 51편은 인생의 고난 가운데 자주 부르면 우리 일상에서 정결한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의 기도가 통함을 알게 하는 성시(聖詩)이다. 이러한 노래를 부르면 살아간 선교사가 있다.
벙커 선교사(D. A. Bunker, 1853-1932, 房巨(방거))는 아펜젤러의 순교 이후에 배재학당에 3대 교장으로 취임한다.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졸업반이던 벙커는 최초의 근대 학문의 교육 기관인 육영공원에 길모어와 헐버트 등 세 명이 초대 받아 간다. 양반자제 들의 학업 태만과 재정 지원으로 문을 닫자 벙커는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 학당으로 옮겨 갔다. 달젤 벙커는 종래의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 방법대신 토론 위주의 공개적인 방법을 도입하여 물리학과 화학 수학 정치학 등 새로운 교과목도 채택한다. 벙커는 1890년 6월 한국 성교서회 창립 위원으로 활동하며 8년 고관자제와 현직 고급 관리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1892년 3월 구한국 정부로부터 교육의 공로를 인정받아 통정대부 호조참의(정3품)라는 벼슬을 받는다.
벙커는 한국에 들어온 이듬해 민비의 주치의였던 의료 선교사 애니 엘러스와 결혼한다. 당시의 배재 학생들은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의 강연을 통해서 서구의 정치 사상과 민족의식에 눈뜰 수 있었다. 그런데 독립협회가 강제로 해산당하고 중심 인물 둘이 수감되는 사건이 있어났다. 그 때에 벙커가 아끼던 제자 이승만도 함께 한성 감옥에 투옥되었다. 벙커의 감옥 전도로 이승만, 신흥우 등에게 전도하고 미래의 한꾸을 짊어지고 갈 인재를 양성하는 기초를 닦게 된다. 언더우드, 제임스 게일 등의 선교사들도 협력하고 옥중도서실을 설치하게 된다. 이를 통해 많은 지식인들이, 1902-1904년에 옥중에서 개종하는 결과를 가진다.
벙커는 이때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힘을 모아서 한성 감옥 수감자들을 돌보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였고, 결국 그 요구가 받아들여져서 선교사들이 수시로 감옥을 방문하여 이들을 위로하고 전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이상재, 이승만, 이원긍, 안국선 등 여러 명의 양반들이 기독교를 수용하게 된다. 세례받은 자, 12명도 기독교인으로 집단 개종하는 놀라운 역사를 가진다. 유성준은 이들 옥중 개종자들의 옥중 신앙 집회를 소개한다. “이해 (1903년) 12월 말에 피수(被囚)된 여러 동지들이 모여 서로 말하기를 우리 오늘날 이와같이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을 얻음을 모두 리근택씨의 덕이라, 출옥한 후에는 그를 심방하고 치사함이 옳다 하고 원수 갚을 생각이 이같이 변한 것을 일동이 감사하는 뜻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는 다양한 활동을 하며 동대문 교회 목회와 한국인 목회자(노병선, 이경직, 김우권 등)들을 돕고 신흥우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 배재학당을 맡기기도 한다. 벙커는 서울과 인천 지역을 총괄하며 선교 사업을 추진한다.
동료 선교사 밴버스커크 증언에 따르면 그는 배재 학당을 신흥우에게 맡기고 13개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였고, 이곳에 여섯명의 목회자가 사역을 하게 하였다. 이처럼 벙커는 1912년 배재학당장을 사임한 후, 이후 교육 사업을 활발히 하면서 기독 신보를 창간하여 목회와 사회 선교를 하였다. 또 그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1896년 독립문 정초식이 거행될 때, 그는 윤치오가 지은 국가를 스코틀랜드 민요 로렐라이 곡에 맞게 학생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여 한국 최초의 애국가를 만들게 하였다. 그러다가 1932년 79세 일기로 미국에서 별세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의 유골이나마 한국 땅에 묻어 달라’ 유언하여 그의 아내 애니 앨리스에 의해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부인 애니 앨러스 선교사는 1886년 내한하여 1887년 벙커 선교사와 결혼한다. 그 해 정동여학당(현 정신여중고)을 설립하여 2년 동안 초대 교장을 역임한다. 남편 벙커가 배재학당으로 옮김에 따라 함께 미국 감리회로 소속을 옮겼으며 한국 YWCA창설에 기여한다. 그녀는 남편이 묻힌 후에 6년 후에 같이 양화진에 묻힌다. 묘비엔 “날이 새이고 흑암이 물러날 때까지”란 의미심장한 말이 적힌, 독립의 소원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교는 놀랍게 이뤄졌다. 이처럼 놀라운 행적을 행하였고 서로 선교사들의 협력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를 이어가며 하나님 나라가 조선 땅에 이뤄지게 하였다. 실로 놀라운 주의 선교를 이룬 것이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