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목사]모태신앙은 축복이다

  • 입력 2025.02.17 08:51
  • 수정 2025.02.1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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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나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 3:1-2).

청년 A군의 고민을 들었다. 그의 고민은 어쩌면 이 시대 많은 기독 청년들이 겪는 고민과 비슷하다. 일터나 취미생활에는 열정이 있지만, 신앙생활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다른 것은 자신이 선택했지만, 신앙은 부모님이 믿었기에 교회를 다닌 것이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자녀들이 흔히 겪는 고민일 것이다. 나는 청년에게 물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것이 저주인가, 축복인가?” 청년은 잠시 생각하더니, “축복이지, 저주는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믿지 않는 가정이나 타 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기독교 신앙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반면,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그러한 고민 없이 은혜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기에 축복이다. 태어나 보니 부모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부모를 따라 교회생활을 하며 무난히 성장했다면, 그것은 분명 복이다. 결코 저주가 아니다.

한국과 북한을 비교해보라.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만약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인생이 얼마나 가련하고 불행하겠는가? 국적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부모가 한국에 살았기에 대한민국 국적을 자동적으로 받았고,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북한에 태어났다면 기본적인 인권조차 제약을 받는다. 이동의 자유, 미래에 대한 꿈, 종교의 자유, 투표권 등 기본권이 완전히 박탈된다. 그러나 한국에 태어난 덕분에 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신앙의 자유와 은혜를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당연한 복을 복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결국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한다.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할례는 유대인이라는 외적인 표시이다. 유대인의 이점은" 범사에 많으나, 가장 큰 유익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롬 3:2)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해 회개의 기회를 얻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알았으며, 죄를 깨닫게 되었다. 율법은 축복과 저주의 길을 알려주었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다.

나는 청년에게 말했다. “목사로서 사랑하기에 권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할 수 없다. 오직 기도할 뿐이다.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신앙생활을 자연스럽게 해왔다면 그것이 은혜이고 복이다.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많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신앙생활이 내 인생을 쪼이고,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느껴져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불행한 것이다.

고민에도 두 가지가 있다. 긍정적인 믿음의 고민과 부정적인 불신앙의 고민이다. 부정적인 불신앙의 고민은 인생에 마이너스를 가져온다. 반면, 긍정적인 믿음의 고민은 인생에 엄청난 플러스를 가져온다. 출발점은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간격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결말은 기쁨과 허무, 영혼의 생사 여부,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된다.

문화는 옷과 같다. 좋은 옷을 입고 사는 것은 축복이다. 기독교 문화는 인생에 플러스를 가져오지,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마음속 촛불을 꺼뜨린다. 그러나 긍정적인 믿음의 고민은 영혼에 촛불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를 받는 인생과 오직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차원이 다르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왜 이런 고민에 빠졌을까? 우선적으로, 가정에 기독교 문화가 제대로 스며들지 못한 결과이다. 인격적이고 신앙적인 대화가 부족했을 것이고, 둘째로, 경건생활의 실패가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 하루 24시간 중 하나님과 관련된 시간을 얼마나 기쁨으로 드리고 있는가? 시편 기자는 말씀을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했다. 매일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는가? 내면을 진지하게 보여드리는 기도를 드리는가? 일터나 취미 생활을 할 때의 기쁨과 열정만큼 예배에 임하는가? 이러한 태도가 삶의 질과 마음의 상태를 결정한다.

하루를 살면서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결국 어둠에 지배받게 된다. 하나님 없이도 일터에서 잘살 수 있다. 하나님 없이도 큰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하나님 없이 결정하고, 하나님 없이 결혼하며, 하나님 없이 자녀를 양육하며 한 평생을 산다면, 결국 보석 같은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위로, 부요, 능력, 은혜, 평안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걸맞은 비전이 있는가? 근시안적인 작은 꿈만 꾸는 것은 방향을 잃은 배와 같다. 방향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결국 소중한 것을 잊게 된다.

우리가 누리는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은혜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은혜는 값싼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것이다. 생명과 맞바꾼 결과로 주어진 것이 은혜이다. 그 은혜를 누리고 살면서도 그것을 잊고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복음을 미리 알았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아무런 고민 없이 성장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축복이다. 축복을 잃어버린 후에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다면, 너무 늦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좋은 것, 거룩한 것, 아름다운 것은 지키지 않으면 순식간에 빼앗긴다. 내 인생이라는 밭에 엉겅퀴와 가시가 자라지 않도록 가꾸는 것이 복이다.

모태신앙의 귀함을 자랑하라. 그리고 감사하라.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라. 그것이 진정한 축복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열두광주리대표, 본헤럴드대표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열두광주리대표, 본헤럴드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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