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목사]서투른 목수가 연장만 탓한다

  • 입력 2025.02.18 23:00
  • 수정 2025.02.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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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불구화(self-handicapping)
스티븐 호킹 박사_루게릭병

'서투른 목수가 연장만 탓한다.' 일이 서투른 사람은 자신의 솜씨 부족을 돌아보지 않고 핑계를 찾기 마련이다.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변명거리를 찾고, 서투른 목수일수록 연장을 탓하며, 게으른 사람은 일을 하지 않을 구실만 찾는다. 결국, 무능한 사람일수록 핑계가 많다. 이는 일이 잘못되었을 때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회피하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어떤 일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될 때, 미리 변명을 준비하여 자존심을 보호하는 심리적 현상을 '자기불구화(self-handicapping)'라고 한다. 변명이나 핑계는 일시적인 위안을 줄 수 있으나, 습관적으로 사용하면 결국 스스로를 무능하게 만든다. 스스로 핸디캡을 설정하는 순간, 점차 무능해질 수밖에 없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속에도 이러한 심리적 기제가 담겨 있다. 미리 실패를 예상하고 도망갈 구실을 마련하는 언어 습관은 인생을 스스로 옭아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자신을 심리적 감옥에 가두는 셈이다. 인생은 핑계나 변명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인 눈속임은 가능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삶에 커다란 마이너스만 끼칠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인생에 좀 더 당당해져야 한다. 미리 포기할 것을 염두에 두지 말라.

하나님께 부름받은 성경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변명이나 핑계를 대지 않고, 인간적인 손익을 따지지 않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즉시 결단했다.

이사야서 6장은 웃시아왕이 죽던 때 일어난 이사야의 소명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웃시야 왕은 이사야에게 정치적 후원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의 죽음은 곧 이사야가 정치적으로 의지할 버팀목을 잃었다는 의미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던 이사야는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자 자신의 죄악이 드러났다. 그는 "나는 망하게 되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탄식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숯불을 가져와 이사야의 입에 대시며 "네 악이 사하여졌으며, 네 죄가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라고 물으셨을 때, 이사야는 즉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이사야 6:8)라고 응답했다. 이사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에 빠져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4:19)고 하셨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따랐다"(마태복음 4:20). 아브라함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 장사하며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하셨을 때, 그는 목적지도 모른 채 즉시 순종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떠나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에 모든 것을 뒤로하고 말씀 따라 믿음으로 길을 떠났다.

신앙의 길을 가면서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비전을 성취할 수 없다. 거룩한 길을 걷기로 결단했다면, 미련을 붙잡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핑계를 만들지 말고, 인생의 목표를 향해 타협이나 적당주의, 변명, 불신앙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을 단호히 거부할 용기가 필요하다. 작은 틈이 주어지는 순간 우리는 주저하게 되고, 나약해지며, 결국 과거로 돌아가고 만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면서도, 지칠줄 모르는 불굴의 의지도 동시에 담고 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어디에 삶의 의지를 두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이 정반대로 나타난다.

환경을 탓하지 말라. 환경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다. 산이 왜 높고 가파르냐고 불평하지 말라. 산은 높아야 제맛이다. 꿈이 없는 인생은 살맛이 없다. 꿈은 도전하라고 있는것이다. 거룩한 것과 천한 것이 있다. 거룩한 것을 바라봐야 삶이 숭고해진다. 생각에 기름부음이 있는 것이 축복이다. 나이 살이 조금 먹다보면 저절로 느껴지는 평범한 진리이다.

스티븐 호킹(1942.1.8-2018.3.14).  케임브리지대학교 대학원 물리학 박사. 1988년 울프상 물리학 부분,  케임브리지대학교 루카스좌 석좌교수, 수학과 중력물리학 교수.
스티븐 호킹(1942.1.8-2018.3.14).  케임브리지대학교 대학원 물리학 박사. 1988년 울프상 물리학 부분,  케임브리지대학교 루카스좌 석좌교수, 수학과 중력물리학 교수.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아인슈타인 이래 최고의 물리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건강하게 성장했으며, 옥스퍼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반 때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정선수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노를 저을 수 없게 되었고, 이후 마비 증상이 심화되어 걷거나 글을 쓰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결국 기관지 절제 수술로 인해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의사들은 그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한부 인생이라는 현실 속에서 삶의 가치를 더욱 깊이 깨달았다. 호킹 박사는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기보다는 삶에 대한 애정과 물리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전신 마비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지속했다.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는 전자 장치를 통해 컴퓨터와 소통하며, 끝까지 우주의 신비를 탐구했다.

호킹 박사는 장애를 극복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불태웠다. 반면, 건강한 육체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도 스스로를 불구화하며 핑계를 대고 포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한가? 신앙이란 불가능을 뛰어넘어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신앙의 길에는 불가능, 포기, 불신앙, 염려, 절망이 들어설 틈이 없다. 삶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미리 포기를 결정하지 말라. 인생에 핑계를 대지 말라. 구실을 찾는 순간 순간이 쌓이면 스스로를 불구의 감옥에 영원히 가두게 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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