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쁘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 반계리를 방문했다. 은행나무 구경은 노란 단풍이 드는 늦가을이 제격이지만, 은행나무의 봄 마중은 어떻게 하는지 살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무를 제대로 알려면 사계절을 경험해 보라고 하지 않던가?
계절에 맞지 않은 탓인지 방문자가 없어 적막하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은행나무를 우리 가족이 독차지한 기분이다. 조용하게 찬찬히 살펴볼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많던 잎사귀가 단 한 개도 붙어 있지 않다.
사람으로 치면 화려한 옷을 모두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서 있는 듯하다. 울창한 나뭇잎으로 가려진 여름과 가을엔 나무의 참모습을 볼 수 없다. 반면 겨울과 봄엔 나무의 모습을 속속히 볼 수 있다. 사람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엔 겉모습만 화려하면 된다. 그러나 심판 날 하나님 앞에 설 때 나목처럼 적신(赤身)으로 서게 된다. 화려한 옷으로 가려졌던 내면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위대한 촬영가는 여름이나 가을보다 겨울과 봄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예술인은 아니어도 겨울에 찍는 사진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겨울엔 나무의 생김새를 그대로 담을 수 있어서 좋다. 봄에 찍는 사진 역시 독특함이 있다.
봄이라서 도톰한 움이 볼록 솟아 있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손 높이까지 내려와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새싹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음은 봄에만 가능하다. 신앙인이라면 죽은 나무처럼 보이던 곳에서 움이 돋는 것을 보며 죽은 자의 부활까지 떠올릴 수 있다.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로 꼽히는 반계리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이다. 나무는 높이 34.5m(아파트11층), 둘레 16m이며 나뭇가지를 펼친 품은 사방으로 30m에 이를 만큼 넓다. 수백 년 지나오며 바람과 더위와 추위 가뭄을 견디어냈다. 인생도 그와 같다. 풍파도 겪고 메마른 시기도 있으나 꿋꿋하게 서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된다. 나무도 하나님이 돌보시듯, 우리의 삶도 그분의 손에 달려 있다.
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오래된 나무는 신목(神木) 대접을 받는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더욱 그럴만하다. 그런데 반계리 사람들은 참 지혜롭다. 이 나무 아래서 무당들의 굿이나 신접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주의사항을 기록해 두었다. 아무리 오래된 나무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에 불과하다. 하나님만이 참된 경배의 대상이며, 그 앞에서 천하가 잠잠할 따름이다.
공학섭 목사는 순천 대대교회에서 사역할 때, 순천만 생태에 관련해서 초기부터 활동했다. 순천만 대대교회에서 은퇴한 후 경기 용인에서 거주하며 중부 지역에서 환경과 일상에 대한 따뜻한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