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 인도자를 따라 수산에둣에 맞춘 노래,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페라쩨타누 아나프타 테쇼베브 라누)”(시60:1).
한 동창이 미국의 공무원이 셧다운되었다고 월급을 못 받아서 은퇴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미국 경제가 힘들어지니 자연히 관세 전쟁을 선포하고 경제전쟁에 돌입하다보니 자연 세상은 살기에 힘들어지는 것 같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 간절히 찾게 된다.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셀라)(나타타 리레에이카 네스 레히트노세스 미프네 코쉐트 셀라)”(시60:3-4). 시편 60편은 우리가 인간의 도움을 바라는 것이 헛됨을 이야기한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하바 라누 에즈라트 미짜르 웨샤웨 테슈아트 아담)”(시60:11). 다윗은 하나님의 힘에 의지하여 이웃 나라의 동맹을 파하고 그 대적의 위험에서 구원받아 승리한다. 이웃 에돔은 유다가 멸망하기를 소원하며 그 패망을 즐긴다.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할로 아타 엘로힘 자나흐타누 웨로 테쩨 엘로힘 베찌브오테이누)”(시60:9-10).
처음에 다윗은 전쟁의 패배 소식에 실망하고 어려워했지만(시60:1-3),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반전의 역사를 가지며 하나님께 찬양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이심이로다(베로힘 나아세 하일 웨후 야부스 짜레누)”(시60:12). 시편 60편은 군사적 용어로 시편 59편과 함께 쓰여진다. 이 시편은 국가 탄식 시편으로서 불만과 불평의 논조로 시편을 구성한다. 1-3절은 하나님의 거절로 전쟁에 패배하고, 4-5절은 승리의 기도를 드리며, 6-8절은 하나님의 도우심의 전쟁으로 인해 국가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포가 있고, 9-12절은 승리와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 확신을 위한 기도가 계속된다. 시편 108:7-13절에는 시편 60:6-12절의 노래가 다시 나타난다.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리길르아드 웨리 메나쉐 웨에프라임 마오즈 로쉬 예후다 메호크키)”(시60:6-7). 하나님의 전쟁으로 하나님이 나가셔서 싸우실 때는 이웃 국가가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의 경계지역이며 므낫세 지파가 차지하였던 땅이다. 구원의 투구와 통치의 규가 이스라엘의 영역에서 이루어짐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대적자인 에돔과 모압, 블레셋이 무너지게 되고 이스라엘이 승리함으로써 가난 극복과 가정으로 돌아오는 귀환과 노예의 신발이 벗겨지는 역사가 이뤄짐을 노래하고 있다(시60:8).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에돔 아쉬리크 나알리 알라이 페레쉐트 히트로아이)”(시60:8).
결국 시편 60편은 후반부(9-12절)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의 영광을 보여줌으로 요새화된 도시가 다윗의 점령지를 넘어서 하나님이 함께 나아감으로 승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확신의 기도(10절)와 더불어 하나님이 나가지 않으면 승리에서 후퇴하고 철수하게 된다는 고백으로 겸손한 기도를 하게 된다. 이 기도는 패배와 승리 사이에 신앙의 확신이 중요함을 보여주며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아간다는 것, 그 용기있는 태도와 행위는 우리의 손으로는 불가능함을 말하며 하나님이 대적을 칠 때 만이 구원이 있음을 말한다(11절). 마침내 다윗은 마지막 노래의 끝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이심이로다”(시60:12). 이처럼 다윗의 인생에서처럼 반전에 승리를 가진 선교사가 있다.
케이트 쿠퍼(Sallie Kate Cooper, 거포계)는 1908년 한국에 와서 주로 원산과 속초 강원도 지역에서 50년간 여성 신앙 교육과 선교에 헌신하였다. 그녀는 보혜여자관을 개설하고 성경학원을 세워서 여성 교육에 전념하며 한국 여성의 리더십을 깨웠다. 그녀는 속초에서 이영학을 전도하여 교인을 삼은 후, 교인들의 연보를 통해 교회를 세웠다. 그녀는 초가 8칸을 매입하여 속초 지역의 첫 교회, 모교회를 창립하게 된다. 거포계 선교사는 양양군 도천면 속초리 1구(현 속초시 동명동)에 24평의 예배당을 신축하고 교인 40명이 예배를 드린다. 초대 교인은 신태대, 박순종, 최재오, 김복득, 허성실 외 독립 애국단원 장성만과 그의 처 반주가 김수향 등을 전도한다. 그녀는 유년 주일학교를 조직하여 한글과 성경을 가르치다가 같은 해 4월 기독 청년회를 조직하여 최태호, 김상철, 김유복, 박상달, 강용운 유사의 집에서 주일학교 반사 교육을 한다. 당시 물치 교회 유증서 담임목사가 속초 교회를 맡게 된다.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를 빼앗기고 어려움을 당했지만 8.15 해방으로 다시 예배당을 인수하여 60여 명의 교인이 감격적으로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6.25 동란에도 교회가 문을 닫게 되는데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고 교회의 문이 열리게 된다. 그때에 장병일 씨가 교회를 열게 된다. 이러한 교회의 성장과 재건은 거포계의 선교사의 선교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이뤄지고 선교를 가능하게 했다. 그녀는 22세의 젊은 나이로 부산 항에 도착하여 원산에 가서 초기에 캐롤과 노올스가 설립한 루씨 여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으나 점차 성경 교육에 주력하게 된다. 그녀는 몸이 약해서 주로 동해 해안 도로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쿠퍼는 강원도 고성, 양양, 속초를 도보로 순회하며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산골을 오르내리며 교회를 돌보다 폐렴에 걸려 고생하기도 하고 춘천의 여선교대회에 참석 중 콜레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다. 순회 전도로 인해 강릉 주문진 교회와 양양 현남 교회가 설립되었다.
쿠퍼 선교사에 대한 글이 주앙(김복은)의 책, ‘바람을 타고’에서 소개된다. 쿠퍼 선교사는 50년간 한복을 입고 선교를 하였기에 은퇴하여 귀국하여서 양복 옷 입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주앙의 어머니는 처음 쿠퍼 선교사의 전도를 받는다. “양코쟁이 처녀를 멀리서 보게 되었다. ‘예이슈 믿으세요, 예이슈 믿으세요’. 금발의 이국 처녀는 이상한 발음으로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고 다였다. 엄마는 호기심이 불붙듯이 일어났다. 도대체 예수가 뭐기에 저 외국 여자는 겁도 없이 저러고 다니는 걸까? 멀찌감치 떨어져 몰래 숨어보다가 그녀가 가는 듯하면 선교사의 파란 눈은 사라졌다. ... 두 사람은 숨바꼭질 한 셈이었다.” 주앙의 어머니는 소프라노 찬양을 잘했고 선교사는 그녀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어서 원산에 있는 류씨 학당(여고)에 입학하여 당신의 수제자가 된다. 집안에서는 야소교 귀신 들린 여자에게 꼬드김을 당했다고 집안에 갇혀서 금족령이 내렸고 머리를 싹둑싹둑 잘리게 되었다. 이처럼 복음의 씨앗은 주앙의 어머니에게 뿌려졌고, 그녀는 결혼을 통해 30, 60, 100배의 결실맺었고, 집안에 12명의 목회자가 배출되는 명문 가문이 되게 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거포계 선교사의 이러한 복음 전도는 동해안 지역, 해뜨는 지역과 나라에서 조용히 영적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