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차 세계대전의 종말이 19세기와 20세기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었다. 20세기와 21세기의 기준점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이미 21세기는 3개월 전에 이 땅에 시작되었다. 다시는 20세기로 돌아갈 수 없다. 역사는 항상 앞으로 전진한다. 코로나 대 유행이 또 다시 찾아올 것은 분명하다.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코로나가 2차 팬데믹으로 갈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본다. 인간은 새로운 질서에 순응하며 그 질서에 적합한 생존 환경을 만들어갈 것이다.
"개척자 정신"- "출발선이 같아졌다"
미래는 두려움보다는 개척자 정신을 가지고 임할 때, 인생에 놀라운 혁명이 찾아온다. 코로나로 쇠퇴하는 나라가 있을 것이고 흥하는 나라가 있을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기업은 코로나로 인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 기업도 있고, 도산하는 기업도 생기고 있다.
위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한다. 출발점이 같기 때문이다. 호황일 때는 부의 세습의 벽을 뛰어넘기 버겁다. 그러나 위기의 계절에는 인생에 명암이 바뀔 수 있다. 출발선이 같다는 것은 축복이다.
성경에 보면 희년제도가 있다. 희년 제도는 삶의 우여곡절로 인해 뒤틀린 출발제도를 다시 원위치 시키는 제도이다. 50년째 모든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로 돌려주는 것이다. 희년제도를 오늘날 언어로 말하면 토지공개념 제도인 것이다. 토지공개념 제도는 뒤틀린 구조를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원위치 시키는 하나님이 특별히 고안한 제도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출발선이 같아졌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인생에 몇 번 없는 기회이다.출발이 다르다는 것으로 인해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코로나로 인해 모두 힘들어졌다. 출발선이 같아졌다고 생각하라.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미래의 문을 닫아 놓고 현실만 걱정하면, 미래를 위한 창조적인 개척을 하기 어렵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하는 생각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세상의 혁명은 피를 통해서 찾아왔다. 그러나 생명되신 주님은 조용히 찾아오셔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새롭게 살도록 능력을 주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복음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로 물들어 있던 우리들의 영혼에 예수의 말씀과 정신으로 채워갈 때 세상을 이길 힘을 소유하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생베는 새 옷에 기워야 하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한다. 주님은 생베이고 새 포도주이다. 인생에 조용한 혁명이 찾아오기 위해서는 생베와 새 포도주가 되신 주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주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헌옷을 버리고 낡은 가죽부대를 버리고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헌옷과 낡은 가죽부대로 주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옛 습관, 옛 제도 옛 생활은 헌옷이고, 낡은 가죽부대이다. 예수의 정신과 가치를 믿는 일은 새 옷을 입는 일이다.
주님의 마음은 언제나 우리의 인생속에 새 포도주로 채워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낡은 가죽 부대에 머물고 있는 나의 마음이 항상 문제이다.
인생이 안 풀리는 문제는 너가 아니라 나이다. 문제는 옆 사람도 아니고 자녀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다. 문제는 교회도 아니다. 문제는 직장도 아니다. 문제는 나이다. 내가 낡은 가죽부대를 버릴 용기가 있는가? 내가 큰 생각을 품기로 마음먹었는가? 내가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살기로 작정했는가? 원대한 비전을 가로막고 앞을 가로막는 낡고 부정적인 가죽부대를 버릴 용기가 있는가? 문제는 나이다. 내가 변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비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음의 본질 -예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새로운 가치 체계에 이미 들어왔다. 앞으로 상당한 시간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일상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공간의 이동을 하지 못해도 자유를 느낄 수 있다. 바로 주님을 깊이 만나며 교제하면 내면에 변화와 안정과 평안함과 도전을 주신다. 인생의 역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누구나 뒤돌아보면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 있었고, 그 시간들을 돌파했던 이유들이 있다. 내 인생 가운데 낡은 가죽부대를 버리기 위한 결단의 시간이 있었다. 친구들이었다. 꿈을 주는 친구들이 아니라, 매일 먹고 마시고 노는 현세적인 친구들이었다. 좋은 친구들이지만 하나님 나라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친구들이었다. 더구나 비전을 나누는 그런 모임들은 아니었다. 나의 인생을 새롭게 써가기에는 결단의 시간이 필요했다. 친구들과 상당한 시간 거리를 두지 않고는 내 인생이 바뀌지 않을 것을 알았다. 늘 함께 했던 가장 친한 친구와의 교제를 4년간 단절했다.
그리고 주님을 더 깊이 담기 위해 4년이란 시간을 온전히 받쳤다. 오직 학교, 도서관, 교회, 집으로 오고 가는 단순한 삶의 반복이었다. 이 시간은 낡은 가죽부대를 버리고, 새 가죽 부대를 준비하는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일상의 삶을 빼앗겨 버렸다. 인생의 혁명을 원한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자신을 가꾸는 시간이 필요하다. 옛 생활을 그대로 두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면 내 모든 생활이 새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영적리더, 7년 흉년을 풍년으로 이끌어가야할 책임"
사거리에 건물을 짓고 간판 달고 문 열어 놓고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몰려오던 황금기는 지나갔다. 애굽의 7년 풍년이 지나가고 7년 흉년이 다가온 것처럼 교회는 환란의 시기가 다가왔다. 환란의 시기에 복음의 본질을 다시 강하게 붙들어야 한다. 지도자들은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지역사회를 파고 들어가야 한다. 낡은 가죽부대와 같은 생각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교회는 허물어지고 짓밟혀 버린다.
어느 시대나 위기는 있다. 위기는 극복하면 된다. 지도자는 위기를 뚫고 교회를 푸른 초장으로 이끌어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기업인들이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듯이 영적지도자들은 조용하지만 아주 강력한 하나님의 나라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