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과 소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소인은 칼을 빨리 빼는 사람이다. 조금만 두려워도 칼을 빼고 경계를 한다. 대인은 웬만하면 칼을 빼지 않는다. 꼭 빼야할 때, 마지막에 칼을 뺀다. 그래서 ‘칼이 칼집에 있을 때 가장 위력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소인이고, 자신의 내적 가치를 마지막 까지 보관해 두는 사람이 대인이다. 그래서 소인은 아무데나 끼어든다. 그러나 대인은 자신이 꼭 끼어들어야할 때를 기다린다. 소인은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 막는다. 그러나 대인은 묵묵히 듣고, 또 듣다가 마지막에 한 마디를 거든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보다 침묵하는 사람이 훨씬 무서운 법이다.   

소인은 자신의 생각만 주장하지만, 대인은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한자의 듣는다는 뜻의 ‘청(聽)’자를 분석하면 세 가지의 뜻이 담겨져 있다. 먼저는 耳와 王의 합성이 된 왕의 귀를 의미한다. 이것은 ‘왕의 귀로 듣는다’는 뜻으로 리더 일수록 항상 귀가 열려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open ear’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十과 目이 합성된 것은 ‘열 개의 눈으로 보면서 들어야한다’는 뜻이다. 눈과 눈이 마주치며, 비언어적인 말을 들을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一과 心은 ‘말하는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들어야함’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들어주는 것이 아닌, 청각과 시각을 통해 동일한 마음으로 듣는 것을 의미한다. 

잠언에서 이렇게 말씀하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잠언 20:5). 명철한 사람은 타인의 마음속에 깊이 숨겨진 것이라도 잘 살피고 경청하여 알아내는 지략이 있다. 그러나 소인은 타인의 겉만 보고 쉽게 판단한다. 

주님은 우리들의 숨소리까지 듣고 계시며, 한 숨의 색깔까지 구별하신다.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신다. 내 체질을 알고 계시며, 미래에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까지 헤아리고 준비하신다. 우리는 그런 주님을 믿고 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 이웃의 형편을 알아주고 힘이 되어주자. 이것이 곧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대인으로 살아갈 길이 아니겠는가?   

임동헌 목사(첨단 교회)
임동헌 목사(첨단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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