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배움이 부족한... “초록은 동색이다”는 격언을 들을 때에 의미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뜻이고, “가재는 게편”이라는 뜻으로 들리는데, 왜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단한 실수 때문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초록색”이라는 어휘 때문입니다. 초록색이 있을까요? 우리 어휘에 “초록색”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색깔인 “초록”이 동색이 될까요? 초록은 “초색(草色)과 녹색(綠色)”의 두 어휘의 합성어입니다. 두 어휘를 한 개념인 녹색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녹색(파란색과 노란색의 혼합인 색)을 초록색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록은 동색이다”라는 어휘의 기본 의미를 빠르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임춘임 작가는 “초록은 동색이 아니다”(장성투데이, “초록은 동색이다?”) 취지로 짧은 에세이를 기고하기도 했네요. 풀색이 모두 초록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풀색을 포괄적으로 녹색으로 보고 있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 예리하게 분리시킨 것입니다. 똑같은 아침에서 똑같지 않은 아침을 발견하는 것을 제언했습니다.

초록, 풀색과 녹색은 포괄적으로는 동색이지만, 몇 예외에서는 풀색과 녹색은 일치하지 않으며, 모든 풀색은 동일한 녹색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초록은 동색이다”라고 일반화시켰습니다.

초록동색(草綠同色)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어휘입니다. 유사하게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도 합니다. 유사한 어휘가 더 있습니다. 그러한 어휘가 많은 이유는 인간 군상의 기본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패턴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매우 복잡하지만 또 매우 단순합니다.

오늘 저의 미숙은 “초록은 동색이다”는 뜻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구글 검색을 통해서 파악된 것을 공유합니다. "백선엽이 박정희를 살린 이유가 초록은 동색이다"라는 글을 보면서 한 번 더 생각한 것을 정리합니다.

간도특설대가 활동한 만주 지역에서 토벌한 독립군은 공산권과 결탁된 세력으로 보입니다. 광복군 내부에 공산주의를 거부하는 세력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때에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두 방향으로 꿈 꾼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와 소련은 독립군에거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고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독립군들은 일본과 반대되는 소련군대에, 팔로군에, 미군에 편재되어 항일운동을 계속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1920년 봉오동 전투 이후, 1921년 러시아 자유시 참변으로 무장독립군은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독립군 내부에서도 사상이 일치되지 않아 분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상과 독립에서 사상이 먼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 참변이 없었더라면, 러시아, 소련이 지지해주었더라면(역사에 가정은 성립되지 않지만) 무장독립군은 소련을 거점으로 활동했을 것입니다. 소련파들은 소련군에 편재되었고, 상하이파들이 내려와서 상하이 임시정부로 내려와 광복군을 편재한 것(1940년)으로 보입니다.

“초록은 동색이다”. 초록은 동색이지만,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동색이라고 말하는 것은 분류학으로 그러한 것이며, 그렇게 분류하는 것이 다름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유익할 것입니다. 그 때 색깔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 ×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6.25 때 대처하지 못한 우리 민족은 한 가족에서 국군 혹은 인민군으로 징집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합니다. 우리사회는 ○, ×를 선택해야 하는데, △, □....가 들어와 있어, ○, ×를 잘 알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대표적인 오역이라는 “우물쭈물하다가는 내 이럴 줄 알았다”가 통한 이유일 것입니다. 무덤 앞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결정을 해야 의미 있는 인생일 것입니다. “초록은 동색입니다” 풀색이면서 황금색이라고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풀색이면 풀색이라고 외칩시다. 그러면 녹색으로 분류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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