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 11:1-18] 이방인 고넬료 회심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함.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과 교제한 사실이 예루살렘 교회에 알려져 소동이 일어났다. 할례자들이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음에 대한 맹비난이었다(1-3절). 어쩔 수 없이 베드로 사도는 상황을 교회에 해명해야 했다(4절).

사도는 고넬료에게 가게 된 경위(5-12절), 고넬료의 상태(12절), 베드로의 복음 선포와 성령 임함(세례)을 가시적으로 확인한 이상 세례를 주지 않을 명분이 없었음(13-17절)을 보고했다.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가족의 개종에 대해서 반복해서 진술하고 있는데, 이방인이 할례자의 교회에 편입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에게 가는 것은 환상이었고,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 준수(음식법)와 관련된 것이었다(5-10절).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베드로는 성령에 이끌리어, 고넬료에게 갈 때도 2 명이 아닌 6명의 형제들을 동반해서 방문했다(12절). 그리고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말씀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는데, 120문도가 받은 동일한 성령이었다(15절). 베드로 사도는 세례 요한이 증언한 것,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고백했다(16절). 베드로 사도는 예수께서 성령세례를 베푼 고넬료에게 물세례를 베풀지 않을 수 없었다(17절). 베드로 사도의 보고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에게 생명 얻는 회개를 주었다고 고백하면서, 잠잠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18절).

사도 베드로는 그 후에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과 식사 중에 예루살렘 사람을 보고 자리를 떠난 상황에서 사도 바울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때 안디옥 사역자인 바나바도 자리를 떠나 버렸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융화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누가 능히 막을 수 있겠는가?

2. [행 11:19-30] 예루살렘 교회,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 파송함. 고넬료와 그의 가족과 지인들은 가이샤라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방인이다. 그 당시 스데반의 일로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에서 유대인에게만 전했다(19절).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서 헬라인에게 주 예수를 전파했다(20절). 안디옥에서 많은 이방인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21절).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했다(22절). 안디옥 사람들은 자생적으로 발생했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바나바를 기쁘게 용인했다. 안디옥 교회는 복음의 근원인 예루살렘 교회와 연합하는 것을 기뻐한 것이다. 교회는 형제와 연합을 힘쓰며, 복음의 근거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나바의 사역으로 교회는 큰 무리를 이루었다(22-24절). 바나바는 사울을 다소에서 청빙해서 안디옥에서 동역했다(25절). 다소에 돌아간 사울이 바나바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13년의 기간이었다. 사도행전에서 시간을 진행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사울이 사역에 참여한 일 년 뒤 안디옥 교회는 더 큰 무리를 이루었다. 안디옥에서 제자들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았다(26절). 그리스도인은 조롱하는 이름이었지만, 세상에서 조롱받음이 제자들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다.

바나바와 사울의 사역으로 숫자가 증가하는 것을 전형적 교회 현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 첫 교회로 특별한 섭리와 돌봄으로 이해해야 한다. 4세기 안디옥 교회의 많은 주교들이 이단으로 판정되었다. 대표적인 사람은 네스토리우스이다. 교회는 한 기간의 단편적 상황을 전형적 예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탁월한 사역자,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보아야 하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대비는 좋은 자세가 아니다. 나는 바울처럼 탁월할 수 없기도 한 이유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함에서 만큼에서는 바울처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 세대를 충실하게 감당함으로 우리 역할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나보다 더 좋은 사역자가 교회를 사역함으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교회를 꿈꿔본다.

안디옥 교회에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들이 참여했고, 그 중에 아가보 선지자가 있었는데 예루살렘 환난을 예언했다(27-28절). 안디옥 교회는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을 순종해서 준비했다. 안디옥 교회도 쉬운 환경은 아니었지만, 형제를 위해서 절제하는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힘을 다해 부조를 보냈다(29-30절). 부조를 보내는 일은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예루살렘의 장로에게 보냈다(30절).

대한민국 교회도 자기의 근원을 보아야 한다. 장로파는 존 칼빈과 존 낙스, 스코틀랜드 장로파이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6년)이다. 잉글랜드 수도인 런던에서 만든 신앙고백서를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은 표준문서로 삼았고, 장로파들은 교리로 삼고 있다. 스코틀랜드 장로파들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신봉하겠지만, 신학은 현대신학을 따르고 있다. 우리는 자유주의, 현대신학은 16세기 종교개혁신학에서 이탈했다고 평가한다. 워필드는 칼빈 신학의 정통파로 윌리엄 커닝햄, 챨스 핫지,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를 제시했다.

이방인은 유대인이 버린 유대인 예수를 주와 구주로 섬긴다. 만약 대한민국 교회가 그리스도 신앙을 포기한다면, 더 약한 지역에서 기쁘게 취하며 영적 깃발을 높일 것이다. 세계에서 나중된 우리의 교회가 더 명확하게 진리의 깃발을 올려 복음의 전진 기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한 선교지까지 형제 교회를 이루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선교지에서는 장성한 교회가 되어 선교지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교회가 형제들의 도움이 아닌 우리 스스로 세워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유럽, 미국에서 복음을 전도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로 장로교회의 지역이 국가를 넘지 않은 것을 상식으로 한다. 장로교회는 지역교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교회를 구성해서 관리하며, 선교회가 장성하면 그 국가에서 독노회를 구성하고 이웃의 여러 형제 교단과 협력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두 국가에 한 총회가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세기 예루살렘과 안디옥은 유대인과 헬라인 두 문화권이었지만, 로마 제국이란 한 지역에 있었다. 국경을 넘어 총회를 구성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 성공회(영국 국교회), 이슬람 등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몇 교단은 해외에 소속 노회를 갖고 있는데 좋은 모습은 아니다.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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