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역사적 사건은 흔히 숫자로 표현한다. 즉, 9•11, 6•8, 4•19, 5•16, 3•1, 2•28…등등이 많다. 숫자만 대면 역사적 의미와 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오늘은 8•15와 5•18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재미있는 것은 8•15를 거꾸로 하면 5•18이다.

광복절 75주년, 정부수립 72주년을 맞는다. 8•15광복은 상해임시정부의 역할이나 독립운동가들의 수고 때문에 된 것이 아니고, 2차대전 말기, 미군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해서 미국의 승리로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 선물이다. 나는 광복절 아침에 나온 미국의 일간지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신문을 보면 한국의 광복을 다룬 것은 한 줄도 없고, 미국의 승리를 자축한 기사들과 기업들의 전승 축하기사와 광고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예기치 못하게 나라를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결국 일본은 한국에 항복한 것은 아니었고, 미국과 연합국에 항복한 것이었다. 물론 그동안 3•1운동이나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은 컸었지만, 그러나 일제 말기에 거의 모든 한국사람은 황국신민이 되었고, 교회들도 일본의 신사참배를 수행하고 말았다.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신사불참배 운동의 지도자들 50여 명만이 옥중 순교하거나 출옥 성도가 되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35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을 간곡히 원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해방과 자유는 어느 날 예기치 못한 날 갑자기 온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일본의 항복 문서를 보면 연합군 사령관과 2차대전에 참전한 국가의 대표들 서명이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아무 발언도 없고, 항복 문서에는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런데도 2차대전에 미국이 승리함으로 우리는 꿈에 그리던 광복과 해방을 맞은 것을 그저 감사할 뿐이다.

군정 3년 후 1948년 8•15일에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 그날 미국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일면의 톱 뉴스는「대한민국(Tai Han Min Kuk, Republic of Korea)이 시작되었고, 이는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President Dr. Syngman Rhee)으로 나라가 세워졌다」고 대서특필했다. 특히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임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이름은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오늘날 <남한>, <남쪽>, <한국>은 대한민국의 국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발포 되던 날, 이승만 의장은 당시 이윤영 의원을 앞으로 나오게 하고 대표기도를 하게 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이다. 세계 어떤 나라도 기도로 시작한 나라는 없다. 이승만은 미국 유학할 때 워싱턴에 있는 <워싱턴 언약도 교회(정통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고, 그때 튜니스 헴린(Tuenis. S. Hamlin)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당시 죠시 워싱턴 대학교 이사이자, 하버드 대학교의 이사장으로 이승만의 학문과 신앙을 지도했다. 그래서 이승만은 후일 프린스턴 대학교로 온다. 그는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기 전 일 년간 신학을 공부했다.

그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의 분위기는 철저한 켈빈주의 신학과 신앙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프린스턴 신학교 교장 워필드(B.B. Warfield)는 1898년 화란의 위대한 켈빈주의 신학자요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를 초청했고, 스톤렉쳐(Stone Lecture)에서 <켈빈주의 강의>를 하게 했다. 흔히 워필드 박사는 미국의 아브라함 카이퍼라고 말했다. 이승만은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카이퍼와 워필드 박사의 켈빈주의 사상의 분위기를 충분히 익혔을 것이고, 그의 꿈은 조국이 광복되어 나라를 세우게 되면 <기독교 입국>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이 1948년 8월 15일 나라를 세우면서 기도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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