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얼씨구’라는 말이 있다. 얼씨구는 흥에 겨워 떠들며 장단을 맞출 때 내는 말이다. 한편 ‘얼씨구 꼴좋다’는 표현과 같이 상대방의 하는 행동이나 말이 아니꼬워서 조롱할 때 ‘얼씨구’라고 쓰기도 한다. 얼씨구라는 말이 긍정적으로 쓰이거나 부정적으로 쓰이거나 모두 우리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영어의 ‘whoopee, yippee, hurrah, hurray’ 등과 같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 한국식당에 갔을 때 벽에 붙어 있는 이런 글을 보았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이것을 콩글리쉬로 번역까지 해서 나란히 붙여놓았었다. ‘Play play young play. old man no play.’ 
이 노래의 시작은 중세 때 독일 대학생들이 라틴어로 된 가사를 이렇게 노래하는데서 시작되었다. 제목은 ‘Gaudeamus Igitur(청춘을 즐기세)’,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Gaudeamus igitur Juvenes dum sumus. Post jucumdum juventutem. Post molestam senctutem. Nos habebit humus’ 
영어와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Let us rejoice, therefore while we are young. After a pleasant youth. After trouble some old age. The earth will have us. 우리가 젊을 때 기뻐하자. 즐거운 젊음 후에, 노년에 문제가 생긴 후에, 지구가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우리민족은 일에 대해 찌들어 살았던 때가 있었기에 ‘신선놀음’을 동경했다. 양반들이 여름날에도 하얀 모시적삼에 한들한들 부채질하면서 하인 한 둘을 데리고 높은 정자에 앉아서 담뱃대 길게 물고 바둑을 두는 그런 모습 말이다. 
미국의 어느 공동묘지에 가 보았다. 그런데 그 공동묘지에는 한국 사람들은 묻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곳 공동묘지는 모두 좁은 땅(약 1평방미터)에 깊이 파고 시신을 세워서 입관(入棺)으로 묻었다.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은 이유는 ‘평생 서서 일만하다가 죽어서 편이 눕고 싶은데 죽어서도 서 있으니 안 간다.’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로 덕을 보며 ‘얼씨구나’하는 사람들이 있다. 온라인 예배를 핑계대고 ‘얼씨구’.... 그런 사람 말이다. 
얼씨구는 하나님이 주신 보너스가 아니다. 우리 모두 얼씨구 심리를 버리고 신실하게 살자. 

임동헌 목사(광주 첨단교회, 광주신학교 이사장)
임동헌 목사(광주 첨단교회, 광주신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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