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장, 사도 바울이 선교 활동 방향을 아시아에서 마케도니아로 바꾸면서 세계 역사도 바뀌었다.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발언한 바울에 관련한 명언이 많이 있었고 출처를 찾지 못했다. 아마도 Civilization on Trial, Oxford Univ Press, 1948에 “Christianity and Civilization”에 있는 것으로 잠정 정리하고 내용을 전개한다. 복음은 바울이 아닌 다른 전도자를 통해서 로마까지 확산되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이 마게도니아 지역으로 전환하는 것을 역사의 모멘텀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고린도에서 보냈을 것으로 추측)까지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메이천 박사는 바울과 사도와 전도자들이 사역할 당시 포용적이고 적극적으로 포교활동을 하는 동방밀교, 유대교 등과 배타적인 복음으로 경쟁했다고 밝혔다. 기독교는 로마 황제까지 적극적으로 박해했다. 그런데 300년이 지난 후에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를 관용했고(Edict of Milan, 313년),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로 세웠다(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그리고 세계 시간(일주일 생활구조)과 법 구조(법치주의)를 확립했다.

1. [행 16:1-5] 바울 사역에 디모데 합류. 바울과 실라는 1차 사역 지역을 순회하였다. 더베에서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에, 디모데가 사역팀에 들어왔다(1절).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이었지만, 유대 어머니(유니게)와 외조모(로이스)의 믿음을 잘 이어받았다(1절, 딤후 1:5).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았다(2절).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시행했다(3절). 할례를 적극적으로 거부했던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었는데, 사역에 필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 거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푼 것이다. 예루살렘과 더욱 든든한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고 교회가 굳건하며 숫자가 날마다 증가했다(5절). 바울은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처럼 행동한다고 사역 방법을 제시했다(고전 9:19-22).

바울은 각 교회를 순회하면서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주어(they delivered the decisions handed down by the apostles and elders in Jerusalem) 지키게 했다(4절). 규례에 의해서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졌고, 숫자는 증가했다(5절).

2. [행 16:6-10] 주께서 바울에게 주신 환상. 바울은 아시아에서 계속 사역하려고 했는데,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했다(6절). 바울은 갈라디아의 중심 도시인 브루기아(Phrygia)에서 비두니아(Bithynia)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무시아(Mysia)까지 힘써 진력했다(7절). 누가는 ‘성령’(6절)과 ‘예수의 영’(7절)을 교차로 사용한다. 성령께서 사역하지만 예수를 증거하는 사역이기 때문에 “예수의 영”도 사용한다. 바울은 그럼에도 무시아에서 드로아(Troas)로 내려갔다. 그런 바울에게 주께서 결국 밤에 환상을 보여주셨다. 밤에 본 환상은 꿈으로 보았다기보다, 기도하는 중에 본 환상으로 이해한다. 그 환상은 마게도냐 사람들이 도움의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9절). 환상을 본 바울은 즉시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10절).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10절). 바울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난관이 훈련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른 방향인 것을 알았고, 그 방향이 마게도니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주저할 수 없었다. 바울은 빠르게 마게도니아로 가기 위해서 육로가 아닌 해상 수단을 이용해서 이동한다. 바울은 로마 도로를 따라서 복음을 전도하려고 했지만, 주 예수의 영의 명령을 긴급하게 여겼기 때문에 육상도로가 아닌 해상수단을 이동해서 마게도니아 지역으로 직행한 것이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강력한 도시를 형성하지 않은 시절이다. 그러나 보스포로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로마의 도로(Via Egnatia, 860 Km, 로마에서 비잔티움까지)는 있었다. 드로아(Troas)가 마게도냐로 가는 항구도시였다. 드로아는 트로이(Trojan)가 항구 도시 기능이 상실되자 알렉산더가 16 Km 남쪽에 건설한 도시였다. 주전 3세기 마게도냐 사람 알렉산더는 에게문명과 이집트, 메소포다미아 문명 그리고 겐지즈 문명까지 융합하는 헬레니즘을 만들었고, 주후 1세기 유대 사람 바울은 유일신앙(예수신앙) 기독교를 전파했다. 알렉산더는 수 많은 도시와 유적을 이루었고, 바울은 오직 복음 전도에 힘썼지만, 세계 역사를 결정하는 일은 사도 바울이 이루었다.

3. [행 16:11-40] 마게도냐 첫 성 빌립보 사역. 바울은 누가와 함께 드로아에서 배로 사모드라게(Samothrace)로 직행했고, 이튿날 네압볼리(Neapolis, 현재 그리스 까발라Kavalla)에 도착했다(11절, 185Km). 사모드라게는 드로아에서 네압볼리 사이에 있는 섬이다. 네압볼리에서 드로아로 돌아갈 때에는 5일이 걸렸다(행20:6).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이틀 걸렸다(11절).

네압볼리에서 마게도냐 첫 성(城)인 빌립보로 들어갔다. ‘네압볼리’는 ‘빌립보’에서 16Km 떨어져 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인 로마의 도시였다. 바울은 빌립보에 도착해서 수일을 체류하며 살폈다(12절). 바울은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아 강가로 나갔다(13절). 빌립보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선교 전략은 먼저 회당에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회당이 없어 사역 매뉴얼을 적용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안식일에 기도하는 무리를 찾아 강가로 갔다. 강가에는 자주 옷감 장사,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를 찾았고, 복음을 전도해서 기독교로 개종했다(14절). 누가는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랐다고 제시했다(14절). 루디아와 그 집 사람 모두가 세례를 받았다(15절). 루디아는 바울을 강권하여 집에 머물게 했다. 루디아는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나를 주 믿는 자로 알면”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바울이 거절할 수 없었다(15절). 바울은 루디아의 집을 근거로 빌립보 사역을 전개했다.

빌립보에서 기도하는 곳으로 가는 길에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다. 루디아의 집과 기도하는 곳이 별도로 있는 것은 한 특징이다. 그 가는 길에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을 괴롭게 했다(17절). 그녀는 주인에게 포로가 되어 경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16절). 그녀가 바울과 일행을 괴롭혔다. 바울은 심히 괴로웠고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나오도록 명령했다(18절). 빌립보에서 나타난 축귀 현상은 특이하다. 그것은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에게 간청한 것이 아니고, 그 여종의 구원에 대해서 전혀 묘사가 없는 것이다. 바울이 귀신을 쫓아낸 이유는 사역을 방해했기 때문이고, 귀신을 쫓아내어서 소동죄로 고발당하게 되었다.

귀신이 떠난 여종은 더 이상 주인에게 경제적 유익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의 주인은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에게 소란죄, 로마 풍속 저해자로 규정하며 고발했다(20-21절). 주인의 사주를 받은 무리들이 합세해서 유대인이 사회를 소란케한다고 바울을 고발하였고, 빌립보의 관리는 심문도 없이 매를 쳤다(22절). 빌립보가 상당한 편파적이고 차별적인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의 군인들이 사는 도시이기 때문에 명예가 드 높았지만, 그 명예는 목이 곧은 명예였을 뿐이다. 바울은 자기 권리(로마의 시민권)을 주장하지 않고 매를 맞으며 옥에 투옥되었다(23절). 관원은 투옥시키고 간수를 지명하여 지키게 했다. 바울은 상황에 따라서 자기 권리를 포기하기도 하며 주장하기도 했다.

빌립보 관청에서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가두고 발에 차꼬에 튼튼하게 채웠다(24절). 개역에서는 ‘착고(着錮)’라고 했는데 ‘차꼬’로 개정했다. 표준어 규정 2장 4절 17항에서 착고는 차꼬의 잘못된 표현으로 규정했다. 이전에는 착고와 차꼬, 두 단어를 썼지만 ‘차꼬’로 통일한 것으로 보인다. 사족(蛇足), ‘차꼬’는 전라도 방언에 있는데 ‘자꾸’라는 의미이다.

옥 안에서 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찬송했고, 간수들은 그 소리를 들었다(25절). 그런데 간수가 잠든 중에 큰 지진이 일어나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 간수는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자결하려고 했는데, 바울이 큰소리로 제지하며 막았다. 옥문이 다 열렸지만(26절), 죄수들이 전혀 도망하지 않았다(27절). 간수는 열린 문만 보고서 탈주했다고 착각했다. 큰 지진에 놀라지 않은 사람은 바울과 실라 그리고 잠든 사람뿐이다. 잠들었다가 깬 간수는 지진이 아니라 아무도 도망가지 않은 옥 상황을 보며 더욱 더 두려움으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29절). 그리고 구원 받을 도리(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를 요구했다(30절).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증거했다(31절).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모두에게 전하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32-33절). 간수는 “주 예수를 믿으라”를 듣고서, 집에 가서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싸매주고, 음식을 차려 주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라는 문장에는 예와 아니오(Yes and No)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왜(Why)라는 합리적인 질문이 있다. “아니오와 왜”는 같은 성향의 질문이다.

날이 밝자 상관들이 바울을 놓으라고 명령했다. 바울은 자기가 로마 시민인데 무단으로 투옥한 것에 대해서 항의했다. 그래서 관리는 놀라서 성 떠나기를 간청했다. 바울과 실라는 루디아의 집에서 형제들을 만나 위로하고 빌립보를 떠났다(40절). 사도 바울은 빠르게 복음을 전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고린도 지역에서부터는 체류 기간이 점점 길어진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 에베소에서 3년을 머물면서 사역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사전(事前) 지식이 있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될 수 있지만, 이방인들은 예비지식(豫備知識)이 없기 때문에 보다 긴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에베소에서는 본격적으로 회당이 아닌 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복음 사역을 수행했다.

4.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계획을 세움에 주의 뜻으로 인도하니 감사하나이다. 주의 길을 가겠다고 주의 십자가를 졌나이다. 그럼에도 내 등에 나의 인생이 있음에 염려와 근심이 많습니다. 주의 십자가를 질 때는 근심과 걱정이 없나이다. 주의 길을 가는 나그네로 주의 복음을 증진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의 백성들의 마음을 열어주시사 종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말을 따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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