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은 무능한 제정 러시아  집권층과, 당시 권력에 빌붙어 기생한 종교지도자들의 안일이 공산주의자들의 먹잇감이 되어, 레닌의 주도아래  일어난 프롤레따리아 혁명을 말한다. 혁명 후 러시아는 혁명을 지지하는 적군(赤軍)과 이에 반대하는 백군(白軍)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공산주의 이론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라, 하층민을 앞세우고 일어난,이 혁명이 전파되는 것을, 요즘의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워한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은, 백군을 지원하며 러시아에 파병까지 하였다. 

일본도 이런 러시아의 혼란을 틈타, 1920년 연해주를 침입하였다. 그리고 연해주의 공산혁명 세력을 공격하면서 아울러 한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때 한때 대외 강대국에 의해 진퇴양난에 있던 러시아 공산혁명 세력은, 한인들이 자기들을 도우면, 자기들도 나중에 한인들의 독립투쟁을 도우겠다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많은 한인들이 공산혁명 세력을 도왔다. 그런데 러시아 공산혁명 세력이, 1922년 백군을 진압하여 공산혁명이 성공하자, 공산당은 이때부터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한인들을 집단농장에 강제수용 하였다.

1937년에는 한인들이 일본의 스파이가 될 우려가 있다는 구실로 18만~20만에 달하는 연해주에 거주한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강제 이주에 앞서서, 이에대한 반발을 없애기 위하여, 한인 지도급 인사 2,500여명을 반역죄로 처단하였다. 그리고 열차에 짐짝처럼 꾸역꾸역 실린 한인들은, 중앙아시아로 이주하는 동안에,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전염병으로, 수많은 한인들이 죽어갔다. 어떤 자료에는 이때 죽은 한인들이 무려 2만여명이라고 한다.

중앙아시아에 도착하여서도 러시아 공산당은, 한인들을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 황무지에 내 팽개쳤다. 한인들은 여기서 죽지 않기 위해 땅굴을 파고 들어가 잠을 자고, 황무지를 개간하며 삶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까? 우리가 잘 아는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어, 그곳 극장의 수위로 말년을 보내다가 별세하셨다고 한다.

1922년이면 부패한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공산혁명을 완수한지 불과 2년 밖에 안 된 때이다. 그러하다면 아직은 피압박 민중을 해방시킨다는 혁명의 정신이 응당 살아 있을 때이었음에도, 어쩌면 이렇게 매몰차게 한인에 대한 약속을 마치 헌신짝 버리듯 내동댕이 칠수 있을까? 아니 그것도 모자라, 공산혁명당시 그 약속을 믿고, 사력을 다해 도운 한인들을 집단농장에 가두고, 종국에는 중앙 아시아 불모지에 내팽개칠 수 있을까? 공산주의자들의 이중성은, 이미 공산주의 혁명 당시부터 시작되었다.

연해주 한인들은, 조국에서 받은 것 아무 것도 없었어도,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이국 만리에서 온 몸을 던져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공산당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였지만, 그 끈질긴 한민족의 저력으로 스스로 자립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동포들이, 소련연방에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소수 민족으로 박해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지난날의 그 박해를 떠올리며, 연해주로 돌아 오고 있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이런 우리동포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은 러시아의 유대인들을 한명이라도 더 이스라엘로 데려오기 위하여 국가적 역량을 다 하고 있다는데, 과연 우리는 우리한인들을 위하여 얼마큼 힘을 쏟고 있는가? 조국이여!

지난날 우리 한인들이 이역만리에서 쏟았던 그 피눈물을 다시 쏟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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