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나이 들어 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노인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짙다. 누구나 노인이 되지만, 노인이라고 모두 똑 같은 노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언 16:31)고 말씀하신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는 말은 늙음은 그 자체가 ‘영광의 면류관’이 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면류관은 아무나 얻는 것이 아니고 공의로운 길에서 얻는다. 

요즘 노인을 사회의 문제로만 여기는데 나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노인들은 말한다. “너도 늙어봐라!” 이 말은 노인이 되면 너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고, 젊은 사람들을 향한 비아냥거리는 말일 수 있다. ‘곱게 늙어야한다’는 말을 생각하며 살자. 

노인이라고 다 같은 노인(老人)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소한 일에도 성질을 부리며, 모든 일에 성화를 내는 신경질적인 삶을 사는 노인(怒人)이 있다. 눈치 없고 둔한 어리석은 노인(魯人)이 있다. 일에 빠져 평생 일을 놓지 못하며 사는 노인(勞人)도 있다. 거기에 지칠 정도로 일에 집착하며, 온갖 것에 간섭을 하는 노인(憦人)이 있다. 평생 무엇엔가 매여 종노릇만하다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노인(奴人)이 있다. 나이 들어 배낭매고 문화 유적지며 자연의 경관을 즐기면서 여행하고 사는 노인(路人)이 있다. 그러나 새벽이슬을 머금고 마지막 까지 베풀며 사는 노인(露人)도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어떤 노인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우리가 추구해야할 노인은 ‘이슬을 머금은 노인(露人)’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경은 ‘청년들을 새벽이슬 같다’고 한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편 110:3). 

새벽이슬 같은 노인(露人)은 늙어도 거룩한 옷을 입고 산다. 새벽이슬 같은 노인은 나이가 들어도 즐거이 헌신을 한다. 새벽이슬 같은 노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주님께 가까이 나아간다. 

어떤 노인으로 살아 갈 것인지 선택의 몫은 내 자신에게 달려있다. 믿음의 족장들은 모두 새벽이슬과 같은 노인(露人)으로 살았다. 그들은 복의 근원으로 살았다. 그들은 후손들에게 축복해 주었다.  그들은 자자손손 천대 까지 ‘새벽이슬 같은 후손’으로 살아가도록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임동헌 목사(광주 첨단교회, 광주신학교 이사장)
임동헌 목사(광주 첨단교회, 광주신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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