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은 마게도냐 지역에서 고린도를 마지막으로 사역하고 겐그리아를 거쳐서 해상 수단을 통해서 안디옥으로 귀환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로 갈 것을 계획했을 것이다.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썼다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는 데 아직 어떻게 갈지는 알지 못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의 반대 방향인 아시아로 진행했다. 에베소에는 아볼라는 사역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1. [행 18:1-17] 고린도 전도 활동: 바울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을(17장) 거쳐 고린도에 들어갔다.

고린도는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약 87 ㎞에 위치한, 항구이지만 바다가 없는 항로였다. 1881-1893년까지 약 12년에 걸쳐 프랑스에 의해 완공되었다. 운하 건설 전에도 크지 않은 배는 땅위로 올려 올꼬스 네온(배를 견인하는 마차)을 이용해서 옮겨 저편으로 이동시켰다(육상 운하). 고린도는 알렉산더와 만난 견유학파(犬儒學派) 디오게네스가 거주하였던 철학도시였다.

고린도에는 아굴라와 아내 브리스길라(브리스가)가 글라우디오(4대 황제, AD 41-54까지 13년간 통치)의 유대인 로마 추방령(AD 49년)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아굴라 부부와 바울은 마지막까지 든든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며 동역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3절). 바울의 사역을 자비량 사역(tent maker)라고 한다. 그런데 고린도에 오기 전까지는 바울은 tent maker를 하지 않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바울이 tent maker를 수행한 것은 더 이상 회당 전도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드릴 수 있다. 바울은 그것을 확신하고 고린도 사역을 마친 뒤에 돌아가면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밀었다(18절). 자기 사역에서 확신을 가진 뒤에 결단했다.

바울은 고린도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강론했는데 비용을 받지 않아서 오해를 샀다(4절, 고전 9장). 바울이 수고를 받지 않은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자구책이었고, 회당 전도를 종식 즉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구도를 종식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계시가 충족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주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 이스라엘에 대한 인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했다(4절). 그런데 유대인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대적했다(5-6절). 바울은 옷을 털면서 이방인에게로 복음이 옮겨졌음을 선언했다(6절). 바울은 회당에서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옮겨서 모임을 유지했다(7절). 유스도의 집은 회당 옆에 있었다.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가정이 주를 믿었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의 전도로 믿고 세례를 받았다(8절). 주께서 밤에 환상으로 바울에게 나타나 격려했다(9-10절).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사역했다(11절).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이 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여 소송을 했다(12절). 유대인들은 자기 율법으로 소송했고, 갈리오는 유대인의 율법을 로마 법정으로 소송하는 것을 각하시켰다(14절). 이것은 본디오 빌라도와 비교할 수 있는 판결이다. 본디오 빌라도가 취임할 무렵에 유대인들이 소동했고, 당황한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법을 로마의 정치법으로 판결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다. 아가야 총독 갈리오처럼 행동해야 바른 판결이었다(16절). 그럼에도 갈리오는 회당장 소스데네를 유대인들이 법정 앞에서 폭행한 것에 대해서는 방조했다(17절). 당사자의 종교 문제에 제국이 관여하지 않음을 통치 수단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정자가 취하는 태도로는 적당하지 않다.

2. [행 18:18-23] 겐그레아에서 에베소로 이동. 바울은 고린도에서 동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항구 도시인 겐그레아로 이동해서 해상 경로를 통해서 에베소로 가려고 했다. 겐그레아는 유명한 사역자 뵈뵈가 있던 지역이다(롬 16:1). 뵈뵈는 로마서를 로마에 전달한 전달자로 전해지기 때문에, 바울이 고린도 사역을 하면서 겐그레아 지역에도 교회를 세웠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여행했고, 그들 앞에서 머리를 밀고 서원했다(18절). 머리를 깍는 행위를 나실인 서약으로 보는데, 머리를 깎음은 죽음과 전혀 다른 생명을 의미한다. 우리는 겐그레아에서 바울이 머리를 깍은 행위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를 두지 않겠다는 선언적 행동으로 보고 있다. 바울은 먼저 회당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에서 오랫동안 사역했고, 복음이 확실하게 전해진 로마에서 사역하기를 원했다.

에베소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변론했다(19절). 그런데 바울은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20절). 에베소를 떠나 해상 교통으로(21절) 가이사라에 상륙하여 교회의 안부(예루살렘)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갔다(22절).

그리고 얼마 있다가 갈리디아와 브루기아 지역 심방하며 제자들을 굳건하게 했다(23절).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은 매우 간략하게 기록되었고, 19장과 20장에서 에베소 사역과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계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안디옥에서 얼마 있다가(쉼),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순례했다(23절). 사도 바울은 자기가 세운 교회의 제자들을 굳건하게 했고, 자기가 세우지 않은 로마 교회도 복음을 전해서 굳건하게 하려고 했다. 24-28절은 아볼로에 대한 개략이다.

3. [행 18:24-28]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간 아볼로. 에베소에는 아볼로가 사역하고 있었다. 아볼로는 바울이 떠난 고린도로 사역지를 옮겼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했던 유대인이고,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24절). 알렉산드리아는 바나바와 마가를 떠올릴 수 있다. 아볼로는 너무 빠르게 성장했고, 아마도 성급하게 에베소 지역으로 사역 활동으로 온 곳으로 평가해도 되겠다. 아볼로는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쳤지만 요한의 세례만 아는 수준이었다(25절). 아볼로의 수준(요한의 세례만 아는 수준)은 아볼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시대에 상존(常存)한다. 아볼로는 고린도에 가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교제하면서 복음의 진수에 들어, 하나님의 도를 정확하게 이해했다(26절). 아볼로에게 있는 성경 지식은 요한의 세례를 아는 지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었고, 유대인을 이겼다(28절). 아볼로는 미숙했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면서 체계적인 사역자로 세워졌다. 사역자를 복음에 합당한 사역자로 세우는 것은 사역자 스스로 해야 하지만, 부족할 때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으로 보완된다.

4. 전능하신 하나님, 주의 복음을 대함에서도 복음을 담대히 전하지 못할 준비 기간이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위로와 도움을 주옵소서. 생명을 다해 주의 복음을 전하겠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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