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생활이란 무엇일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장애물인 골리앗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골리앗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신앙적으로 해석할것인가의 문제이다.
여건도 환경도 어렵고, 삶이 참으로 재미도 없고, 때로는 구차하고 막막하고, 모든 것이 막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처럼 맞서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등장한다. 두 사람의 신체적 차이, 나이 차이, 경험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싸움의 대상이 안된다. 비교의 대상도 안된다. 그런데 싸움에서 다윗이 이겼다. 다윗이 승리했던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앞세웠다. 하나님을 앞세우면 반드시 이깁니다.
다윗이 의지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다윗은 하나님을 전면에 내세웠다. 다른 군인들은 벌벌 떨고 있었다. 형들은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다윗은 전쟁 무대에 나서자마자 그가 꺼낸 카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
사울왕을 만났을 때도 한결같은 태도를 보였다. 다윗은 사울왕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또박 또박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삼상17:37).
골리앗은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전혀 겁먹지도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오히려 골리앗을 당차게 꾸짖는다.
“다윗이 불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이 영적 전투에서 골리앗은 우상의 이름으로 나왔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왔다. 전쟁에서 아무도 하나님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앞세웠다. 이 싸움은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느냐? 거인에 초점을 맞추느냐의 싸움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들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가리킨다. 매스컴은 날마다 한 목소리로 거인에 관해서 떠들어댄다. 코로나 정국에 모든 것이 올 스톱 되었다. 코로나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코로나가 교회 예배도, 일상의 삶도 삼켜버렸다. 코로나 한마디면 모든 것이 다 정리가 된다.
금년에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나름대로 전략을 세웠다. 먼저, 미니멀 라이프를 했다. 교회의 불필요한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정리 정돈을 했다. 위기가 찾아오면 먼저 내부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이다. 수많은 물건에 치여 살다보면 행복을 잃어버린다. 비울수록 공간이 생기면서 마음에 여유가 회복된다.
두 번째, 방송장비 준비를 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현장예배가 불가능하게 됨으로 인해 많은 예산을 들여 방송 시설비에 투자했다.
정부가 코로나로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중지 시켰다고 해서 교회는 아무것도 안하고 손 놓고 정부의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모든 것을 중지하고 정부만 쳐다보고 살아야겠는가? 교회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교회 공동체는 본질적인 사역을 해야 한다. 이것이 더 성경적이다.
특히 코로나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앞에서도 교회는 교회 본연의 사역을 이어가야 한다. 무기는 필수적인 것이다. 무기없이 전쟁을 할 수 없다. 무기라는 도구를 갖추는데 시설비는 당연히 들어간다. 투자없이 꽁자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많은 것을 얻으려는 심보가 우리안에 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도 교회의 숙제이다.
교회가 어떤 결정을 할 때, 무조건 현실이 어떤 대 하면서 말한다면 사실은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한다. 상황에 관한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
영적리더는 환경만 상황만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환경이 어떤대만 말하면 거의 앞으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매년 더 심각한 거인이 등장할 것이다. 현실이 어떤대만 말한다면 거기서는 믿음의 결과물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다윗과 같은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앞세웠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맞서는 것이다. 불가능한 현실과 맞장 뜨는 것이다. 오늘날 다윗과 같이 말하는 사람이 그립다.
다윗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앞세우고 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불레셋 군대의 시체로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을 알게 하겠고”(46절)
다윗은 골리앗앞에서 오늘 여호와께서 내 손에 너를 붙인다. 그리고 온 땅에 하나님이 계신줄을 알게 하겠다고 선포하고 있다.
다윗이 위대한 선언을 한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리라”(47절).
삶의 다양한 문제는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모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모든 문제의 해결은 주님이 하신다.
다윗은 골리앗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을 9번 언급했다. 그러나 골리앗에 대한 언급은 2번뿐이다.
맥스 루케이도 [믿음연습]에서 현실에 놓여 있는 문제보다 하나님을 4배쯤 더 생각하는가?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1)스스로 저지른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4배쯤 더 생각하는가?
(2)불평거리보다 감사해야 할 은총 목록이 4배 정도 더 긴가?
(3)두려움 덩어리보다 소망 보따리가 네 4배 이상 더 큰가?
(4)이것 저것 필요하다고 아뢰는 이야기 보다, 주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고백이 4배쯤 길게 이어지는가?
이것이 아니라면 다윗을 본받으라고 한다. 사람들은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거인에게 초점을 맞추면 실족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거인이 자빠진다."
하나님이 사울왕을 버린 이유가 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음으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3).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버렸다. 믿음이란 사람 대신에 말씀을 쫒아가는 것이다. 말씀을 버리고 사람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도 능력도 은혜도, 성령의 체험도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나 말씀을 믿음으로 믿고 선포하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주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전쟁은 다 여호와의 전쟁이다. 주님을 앞세우면 군대장관이신 주님이 도우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