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 입력 2020.11.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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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84) 계시(Revelation)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요한계시록은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기록한 계시의 말씀이다. 그의 나이 90세였다. 18개월이나 유배를 당했다. 요한이 거처한 동굴에는 기도한 뒤 일어설 때 짚었던 흠이 파져 있다고 한다. 밧모섬은 고대의 중범죄자들의 유배지였다. 현 터키 셀죽인 에베소에서 돛단배를 타고 갈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의 설립자 되시고 그분 자신이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선언과 함께 시작된다. 계시의 사슬은 하나님에게서부터 예수님에게로 이동한다. 하나님의 천사로 이동한다. 요한에게로 이동한다. 교회에게로 이동한다. 마지막 독자들에게 이동한다.

요한계시록의 첫 번째 단어가 ‘계시’다. 문자적으로는 ‘베일을 벗김’ 또는 ‘덮개를 벗김’이라는 말이다. 요한의 시대에 이 단어는 단순히 감추어진 무엇으로부터 덮고 있는 것을 벗겨낸다,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연극이 시작될 때 무대를 열기 위해 커튼을 치우듯 말이다. 기본적 의미는 ‘이전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명사형 18회, 동사형 26회 나타난다. 기본적 의미는 ‘이전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종교적이고 종말론적인 의미가 강하다. 하나님의 계획은 일반적으로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전제다. 하나님이 드러내서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일반적으로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전제다. 하나님이 드러내서야 한다. 책의 제목이다. 신적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려 준다. 요한계시록의 본질과 목적을 가리킨다.

계시에 해당하는 ἀποκάλυψις(아포칼립시스)는 이 곳에만 나온다. 아포칼립시스는 이 책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위대한 진리들을 ‘드러내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계시는 이상 세계에 속한 존재에 의해 인간 수신자에게 전해진다. 초월적인 존재를 계시한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는 점에서 시간적이다. 다른 초자연적인 세계를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공간적이다. 계시의 때는 언제인가. 예수님은 최후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라 말씀한다. 그 사람이 아들이 파루시아의 때 나타나실 것이다. 현재도 계시의 때다. 아버지께서 ‘감추었던 것’을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 아들은 자신의 소원대로 아버지를 나타내신다.

1. 묵시문학과 계시

요한은 자신의 작품을 ‘묵시’로 칭해지는 묵시문학에 속하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작품의 성격을 ‘예언’ 또는 ‘예언의 책’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계시는 하늘이 비밀들이나, 세상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수반될 사건들에 대한 실제적이거나 단정적인 계시들을 내포하고 있는 책이다.

묵시들은 세상이 신비롭다고 한다. 의미 있는 계시들이 천사적 중재자들을 통한다. 위 세상의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부터 보내진다고 추론한다. 유대 묵시 문학은 구약 정경이 완성된 후 몇 세기 동안 번성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예언의 부재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고난 속에서 목적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미래에 소망을 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계시는 문학적인 장르를 지칭하는 기술적인 용어는 아니었다. 그러나 후기에 계시적 본문들에 붙여진 칭호에 포함되었다. 이제는 특별한 형식의 글을 가리킨다. 묵시 문학은 문학 장르다. 로마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서너 개의 유대 묵시들이 1세기와 2세기에 이미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니엘서다. 묵시 문학은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같은 구약의 책들에 나타나는 특징들을 물려받아 확대했다. 선지자가 하늘 회의에 참여하는 것을 극대화한다. 상징적 표현을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 현재의 불의를 되돌리기 위한 말세에 있을 하나님의 개입을 약속하는 환상들이 포함된다.

묵시 문학은 예언이 강화된 형태다. 묵시 문학은 너무 긴박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악에 노예가 되어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사 인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더 이상 회개할 수 없는 것 같은 상황에 말했다. 묵시는 내러티브 형식으로 된 문학 장르를 말한다. 구약의 예언은 일반적으로 구두로 선포되었다. 이차적으로 글로 보존되었다. 묵시 문학은 처음부터 문학적인 글로 창작되었다. 유대 묵시 및 후대의 그리스도교 묵시라는 맥락에서 볼 때 ‘아포칼립시스’는 ‘하나님의 뜻의 극적인 드러냄’이라고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 구약의 예언은 남은 자들을 위로했다. 믿음 없는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이방인들의 수확을 예기한다. 묵시 문학은 이항 대립을 적용한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소수와 진노에 처해지도록 예정되어 있는 다수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논어’를 펼치면 처음 만나는 구절이다. 오랜 세월 한·중·일의 많은 유학자가 논어의 핵심은 바로 이 첫 구절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요한계시록은 첫 세 글자로 시작한다. 핵심 구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전통적인 명칭인 ‘요한계시록’은 본문에 원래 없었다. 필사 될 때 첨가되었다. 원래의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이 책의 제목과 주제다. 고대 저자들은 제목을 두루마리 표지에 썼다. 2세기 중반에 일부 필사자들은 사본 안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요한의 경우에 해당한다. 요한의 계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요한은 단지 그 계시를 보고 보고하는 자다. 예수님도 그 계시의 창시자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두 가지 속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격 속격 혹 목적격 속격이다. 전자는 from이다. 후자는 about이다. 전자는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다’, 계시는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이 계시를 주셨다. 주제가 아니라 저자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해 전달된 책이다. 그리스도 자신의 책이 아니다. 후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다’이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메시지의 근원이다. 예수님이 이 책의 중심인물이 된다. 세 번째로 ‘of’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두 해석이 다 허용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계시록에서 열쇠가 되는 인물이다. 신약성경에서 계시는 통상적으로 목적의 소유격을 취한다. 예수 그리스도만 계시자다. 요한은 경험의 동반자가 아니다. 그리스도만이 운명의 두루마리를 연다. 그 책의 내용을 드러내기에 합당한 분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에게로, 천사에게로, 요한에게로, 독자들에게로 다섯 단계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로서 명료성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졌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역사의 극장에서 휘장을 들어올리신 분이다. 인류를 구속하기 위함이다. 모든 잘못을 바로잡으시기 위해 막후에서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지 보여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책의 기원과 내용을 좌우한다. 모든 언명은 그 언명을 가능케 하는 전제가 있다.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으면 그 언명이 담고 있는 주장도 성립하지 않는다. 전제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은연중 저자와 자신이 같은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전달과 기원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그리스도와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주어졌다. 요한은 다른 이들에게 알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다. ‘예언의 말씀’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계시의 원천이다. 천사는 하늘의 중개자다. 요한은 선지자며 서기관이다. 각 교회는 수신자다. ‘이 예언의 말씀’을 공예배 시간에 전체 회중에게 크게 읽어 줄 것이다.

신천지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이뤄질 때 계시를 받고 말하는 것이 실상계시이며 실상계시를 받은 사람이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신천지가 시작되면서 천년왕국이 정말 시작되었다면 마귀가 날 뛸 수 없다. 두문불출하던 그가 신천지에 코로나19가 창궐하자 신천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긴급 문자를 보냈다.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의 짓”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면 방역 당국 역학조사원이 마귀부터 잡아서 행적 조사를 벌여야 한다. 교주는 세 가지 신통력을 보여 주어야만 카리스마가 살아난다. 예언 능력, 신유 능력, 설교 능력이다. 그의 천년왕국이나 계시 날짜에 대한 예언과 설교는 모두 거짓말이다. 그가 자칭 구원자요 이긴 자라면 마귀를 이기고, 코로나19를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것은 그가 바로 사기꾼이요 거짓의 아비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어진 것이다. 예수님의 종들에게 보여진 것이다. 이만희가 아니다. 천사의 중개로 요한에게 지시된다. 요한은 본 것이다. 이만희는 이 시대의 ‘계시 받은 오직 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운다. 그런데 이만희는 자신이 계시 받은 때가 제각각이다. ‘천지창조’에는 자신이 1977년 가을에, 자신이 계시를 받아 완전하게 풀었다는 ‘계시록 완전해설’은 1980년 봄에, ‘주제별 요약’이라는 책에서는 1984년에 받았다고 했다. 만일 77년에 계시를 받고 첫 장막으로 갔다면, 첫 장막에 들어가기 전, 즉 80~84년 거듭나기 전에 계시받은 것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계시록의 주제가 아니라 저자다. 나아가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전체에 걸쳐 계시하는 분이다. 요한은 독자가 성육신하여 인간의 육체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록에 나오는 환상을 전하는 당사자라는 점을 처음부터 이해하기를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정식 호칭은 프롤로그에서만 세 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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