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죽지 않으면 평생동안 마음에 자리잡고 괴롭힌다

 

김영규목사, 청광교회담임, 서울신대상담대학원
김영규목사, 청광교회담임, 서울신대상담대학원

요즘 인터넷은 학폭미투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학교 폭력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얘기되어 왔지만 그동안은 구설수에만 오르는 정도였지 요즘처럼 심각한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사람마다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또는 “철 모를 때”라는 이유로 어느 정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학교 폭력의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나는 학교 폭력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나도 학교 폭력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학교 폭력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중학교 시절 학폭: 영문없이 빰을 맞다"

나는 중학교 시절을 생각하기 싫고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나는 강원도 벽지의 작은 분교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바로 중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고 1년 경과 된 후에 우리 가족은 면 소재지로 이사를 가면서 며칠 후 내면 중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을 하고보니 아는 친구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소심한 성격에 다른 아이들에게 선뜻 다가가지도 못하고 책상에 앉아서 물끄러미 창밖을 보고 있는데 김ㅇㅇ라는 동창이 내 명찰을 보고 이름을 불렀다. 그는 덩치도 크고 요즘 말로 짱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체 그에게 다가갔는데 느닷없이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큰 소리로 너털 웃음을 웃자 다른 아이들도 함께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힘없이 내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맴돌았지만 그에게 저항할 힘이 없었다.

 

"암흑같은 중학교 시절"

그렇게 나의 중학교 시절은 시작 되었다. 10분간 휴식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뛰어놀았지만 나는 창밖을 바라보거나 책상에 엎드려 생각하는 것이 휴식시간의 전부였다. 하루 하루가 빨리 수업이 끝나서 집에 가는 것 만 기다려졌다. 사실 집에 가면 산에가서 나무를 해와야 해서 그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학교 있는 것보다 마음이 편했다. 아이들은 이녀석 저녀석 번갈아가며 내 별명을 짓기도 하고 놀려댔다. 처음에는 저항 했는데 내가 저항할수록 더 많이 놀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이 어떻게 놀리든 그냥 받아들였다. 내가 저항하지 않자 심심했는지 수시로 별명을 바꿔가며 놀렸다. 마당에 서 있다가도 동창 아이들이 지나가면 집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 중의 한 녀석은 교회에도 다녔는데 그는 교회에서까지 나를 괴롭혔다.

 

"감동이 없는 동창들의 소식"

학교를 그만 두는 것은 부모님을 거역하는거라서 그것도 못하고 그냥 3년을 어떻게 다녔는지 모른다. 3년을 다녔지만 친구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조경진이라는 친구는 3학년 때 짝궁이었는데 나와 성격이 비슷하고 소심해서 그런지 그 친구는 한번도 나를 놀리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졸업하고 경진이는 원주로 이사를 갔는데 나는 한 동안 경진이와 편지도 주고 받았다. 그리고 고향 동네인 문암에 가서 아버지의 명을 따라 농사일을 했다. 그곳에는 동창이 한 명도 없었기에 마음이 편했다. 어느새 내 기억 속에는 중학교 시절이 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아마도 생각하기 싫어서였을 거다. 가끔씩 동창들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지만 나에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내가 군대 갔다와서 서울에서 공부하면서 가끔 집에 내려갔는데 한 번은 홍천에서 내면까지 약 두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가고 있었는데 입학 첫날 내 뺨을 때렸던 김종우가 운전하고 있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쯤에 중퇴를 한 이후 그 때 처음 보았는데 그는 나를 알아보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한 눈에 그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중학교 때의 상처가 떠올라 아는체 하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하고 그냥 내렸다.

 

"친구들아!의 부름이 낯설다"

세월이 많이 흘러 중년이 되었을 때 중학교 동창들의 소식이 궁금해졌는데 마침 밴드가 만들어져 있었다. 가입해서 들어갔지만 글을 올리거나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는 항상 술 먹은 얘기가 전부였다. 탈퇴하고 말았는데 밴드에서 연락처를 알게 된 동창이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나를 초대했다. 카톡방 역시 술먹은 얘기 뿐이었다. 카톡방을 빠져 나왔더니 다시 초대해서 그 이후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다. 카톡 방에는 가끔 동창 가족들이 죽거나 동창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올라오지만 그런 소식을 들어도 아무런 감정도 없다. 카톡을 통해 알게된 몇몇 동창들이 딸 결혼식에 축의금도 보내고 참석도 하는 바람에 그들에게 축의금 보내는 것이 전부이다. 그들은 카톡방에서 말끝마다 “친구들아”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나는 지금도 친구라는 느낌이 1도 없다.

"폭력은 막아야 한다"

상처는 죽지 않으면 평생동안 마음에 자리잡고 괴롭힌다. 아무리 철없는 어린 나이라도 학교 폭력은 막아야 한다. 철 없는 나이에 다른 사람을 괴롭혔으면 철 들었을 때에라도 처절하게 후회하며 뉘우쳐야 한다. 상처받은 사람이 평생 힘들어 하듯이 상처준 사람도 평생 아파하며 살아야 공평한거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학폭 미투는 당연한 것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합리화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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