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마트를 운영하는 집사님의 요청으로 태국 친구와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태국 친구의 보조로 운전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몇몇 일이 있다.
먼저 우리나라 농업과 공업 분야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인구 정책이 느슨한 이유가 값싼 노동력을 유인할 방편이 있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국 등 외국에 이민해서 바닥에서 시작해서 그 사회의 중산층, 상류층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도 우리나라에서 중산층, 상류층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임금 정책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영업자는 일본처럼 지역에 따라 차등 최저임금정책을 제언했고, 외국인에 대해서도 차등 임금정책을 제언했다. 경제라는 것은 피를 말리는 결정이다. 가격이 싼 농산품을 위해서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희생이 없으면 사회가 유지하기 불가능하다. 그 희생을 어떻게 보상하며 유지시킬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농업과 공업, 3D 영역에 종사하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은 국가 경쟁력에서 문제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산해야 할 식량 자원도 그렇다. 우리나라가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보이지 않은 분야를 외국인들이 들어와 책임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다문화가 되는 것을 피하고 싶지는 않지만,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은 이상으로 되지 않는다.
나의 사수(射手) 태국 친구는 한국말을 거의하지 못한다. 그런데 운전하는 중에 봄에 들과 길가에 핀 벚꽃을 “사꾸라”라고 외쳤다. 사꾸라...는 우리 개념에서는 부정적인 개념이다. 태국사람에게 사꾸라는 매우 아름다운 꽃 이라고 하는 것으로 느꼈다. 태국 사람이 일본 사람에게 악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봄을 덮는 벚꽃 속에서 우리는 반일 감정을 높이고 있다. 태국 친구는 그 벚꽃 속에서 사꾸라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사꾸라는 싫고, 벚꽃은 아름답다. 태국 친구는 벚꽃은 모르지만 사꾸라는 아름답다. 사꾸라를 싫어하는 내 옆에서 사꾸라, 사꾸라... 좋다고 말을 건넨다. 나도 응... 사꾸라 좋다~~ 라고 답변을 해 주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가로수는 사꾸라 길이 되었다. 일본보다 더 사꾸라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들 정도이다. 우리는 그 사꾸라 속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반일 감정을 드러낸다.
태국 친구가 내가 어떤 제품에 대해서 “이 물건을 비싸다”.. 라고 하니... 바로 “한국 사람은 이상하다”고 한다. “왜 물건을 비싸다고 말하는가?” 정말 이상하다고 말했다. 비싸다고 생각되면 조용히 사지 않으면 되지, 왜 비싸다고 말하는가?라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나의 습관이고, 우리의 습관인 것 같다. 뭐든 물건을 들으면 비싸네... 비싸네... 하면서 자연스럽게 흥정을 하는 것이 우리 시장의 풍경이다. 그러한 말이 태국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정말 이상하게 보인 것이다. 태국 사람은 거래할 때에 우리처럼 가격 흥정이 없는 것 같았다. 장사가 가격을 말하면 그 가격을 주고, 덤을 주면 받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장사가 제시한 가격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흥정을 한다. 흥정에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태국 사람의 눈에 한국 사람의 그러한 행동이 이해되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시장에서 흥정을 기본으로 생각했는데, 태국에서는 흥정보다 그냥 거래를 이루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장사를 믿지 못하는 것이 기본 의식에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비싸다..하는 소리를 태국 사람이 들었을 때에, 저 사람이 나를 믿지 못하는가?하는 것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너무나 생소하게 보일 수 있는 장면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국제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적인 생각은 전혀 국제적이지 않다. 국제적 생각은 없다.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토론하고 융합할 수 있는 것이 지구촌 시대에 필요하다. 우리 것만 주장해도 안 되고, 우리 것을 잃어도 안 된다. 새로운 시대는 적응하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