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박창희 목사(김명엽 권사의 육남매 중 장남)

김명엽이 예수를 믿으며 교회에 나가면서 가정의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렀습니다. 집안 식구는 어머니 때문에 다 우울한데 정작 어머니는 활력 넘치게 생활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해남반석교회 1994년 3월 17일 장로은퇴식 사진. 박상묵 장로와 김명엽 권사
해남반석교회 1994년 3월 17일 장로은퇴식 사진. 박상묵 장로와 김명엽 권사

예수 믿기 전에는 세상 근심을 모두 지고 살았던 분인데, 날마다 찬송가를 부르며 세상 근심이 하나도 없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집안 형편은 변하지 않았는데 어머님의 얼굴은 밝아졌고 입술에는 감사가 넘쳤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오는 기쁨이요 감사요 기도였습니다(살전 5:16-20).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어머니로 말미암아 집안 분위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어느날 아침 밥상을 받았는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김명엽) 예 말이요, 하나님께서 당신 보고 회개하라고 하시네요. 회개 안하믄 당신 얼마 못살 거라고 하시네요

아버지(박상묵) 이놈의 여편네가 죽을려고 환장을 했나!!

아버지께서 화를 내시면 아무 말도 못하시고 떨던 어머니께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랑게요.

어머니는 너무나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짜증과 위협에도 어머니는 늘 밥상머리에서 회개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 시간이 6개월 쯤 흐른 어느 날 성탄절 아침이었습니다. 그 때 박창희 목사의 나이는 10살 정도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가족을 깨웠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은 “오늘부터 우리 식구들은 모두 다 함께 교회 간다”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아버지의 말씀은 곧 법이고 명령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로 식모살이를 간 큰 누님을 제외하고 우리 어머님이 앞장을 서시고 두 분의 누나, 박창희, 한 명의 동생은 모두 손잡고 교회에 가야 했습니다. 막내는 너무 어려서 둘째 누님이 등에 업고, 아버님은 까만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제일 뒤편에 서서 줄줄이 밭둑길을 걸어 교회에 온 가족이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박창희 목사는 그 때 참석한 성탄절 교회의 모습이 매우 생소했다 했지만, 이전에 보지 못하던 많은 것들이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그 당시 성탄절 교회에는 먹을 것도 풍성했습니다.

그 날부터 아버님은 술과 담배 그리고 동네 사랑방까지 모두 끊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 읽을 때는 반 무릎을 꿇고 곡조를 넣어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3km정도 되는 거리의 교회(혜암교회)까지 새벽기도회를 쉬지 않고 다니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살아서 운동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버님은 무학이셨는데 성경을 통해서 놀라운 진리를 깨달으며 믿음이 성장하였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만유를 통치하시며 섭리하심을 성경을 통해서 정확하게 믿으며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깨달으셨습니다.

아버님의 인생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성경을 통해서 전환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으시며 성경을 읽던 아버님은 전혀 다른 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의심 없이 하나님 말씀으로 믿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새벽 기도회를 다녀와서 자고 있는 자녀들은 모두 깨워서 가정에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는 박 목사는 좀 더 자고 싶은 형제자매들을 깨워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께서 많이 읽어준 성경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당시 아버님께서 가장 많이 읽어준 성경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28장)의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강조하시면서 말하셨는데,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셨습니다.

아버님의 신앙 열심은 어머님보다 더한 것 같았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단 하나의 의심의 흔적이라곤 없이 있는 그대로 믿으셨습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이성적인 판단을 삽입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믿음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셨습니다. 말씀을 읽으시면서 순종이 요구되면 즉시 순종하셨습니다. 이해가 되어도 순종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하셨습니다. 이익이 있어도 순종하고 이익이 없어도 순종하셨습니다. 그 순종은 교회 사역자인 전도사님의 말씀에도 순종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박창희 목사의 집을 엿장수네 집이라 불렀습니다. 땅 한 평 없는 집이 너무너무 가난하니까 집에서 엿을 만들어 팔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고 사실 창피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은 그 마을에서 예수를 믿는 가정이었습니다. 지금 그 가정은 축복받은 가정입니다.

어머니는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이행하셨습니다. 농사을 지으시면서 수확한 호박, 가지, 고추, 고구마 등은 장남인 박창희에게 전도사님 댁에 갖다 드리게 했습니다. 장남을 시킨 이유는 첫 아들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성경 말씀에 의한 것이었고, 목사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님은 초태생, 첫아들은 내 아들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것이라고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박창희가 어릴 때 조금만 잘못하면 “목사 될 분이 그러시면 안되죠”였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도 자주 듣다 보니 박 목사는 ‘목사가 될 사람’이라 생각하고 다른 일 해볼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신학을 공부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믿음을 통해 나를 부르셨다는 소명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십일조에 대해서도 성경에 입각해서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엿을 팔아 모아진 푼돈에서도 꼬박꼬박 십일조를 하였습니다. 몇 년이 흘렀을까, 그래도 조금 모아진 돈이 있어 이것으로 평생 갖고 싶었던 내 땅을 가질 기회가 되었습니다. 밭을 살까, 논을 살까 고민하던 중 전도사님에게 물으니 자녀들을 교육하는데 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자녀 가르칠 생각이 하나도 없으셨을 뿐 아니라 가르칠 능력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전도사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자녀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빚을 내서 자녀들을 학교를 보내셨습니다. 당시에 시골에서 농사를 하는 게 당연했고 부자 자녀들이나 중학교 진학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때였지만, 엿장수 집 자녀들이 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문선례 집사의 막내 아들은 박창희 목사보다 1살 많은 형으로, 박 목사를 교회에서 어울리도록 돕고 같이 놀아준 멘토 같은 존재였습니다. 광주 풍암동의 초원교회 박융희 목사입니다.

지금 박창희 목사는 광주신원교회 담임 목사로 27년을 시무 중이고, 박 목사의 손 아래 동생 박기옥 집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퍼모나의 인랜드교회 집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뉴욕 주립대학에서 청치 외교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대학에서 부교수를 하다가 버지니아 주립대 교수를 거쳐 지금은 켈리포니아 라번 대학의 종신교수로 재직하면서, 경영대학의 부학장입니다. 미국에는 약 3,500개의 대학이 있는데 라번 대학은 대학 순위 132위로 유수한 대학입니다.

막내 동생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중령으로 예편을 해서 현재는 해군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박 목사의 아들은 육군 소령이고 며느리도 육군 소령입니다. 딸은 고등학교 영어 선생으로 신원 교회 반주자고 사위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광주에서 법조인으로 (변호사) 일하고 있으면서 신원교회 안수집사입니다.

예수를 믿고 당시 서울도 안 가보신 아버님은 자녀들에게 세계 모든 민족을 품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순종하고 자녀들을 위해 낙타무릎이 되도록 기도를 하셨습니다.

박 목사님의 아버님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많이 하셨기 때문에, 늙으셨을 때에도 방에 앉으시면 항상 무릎을 꿇고 앉으셨다고 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아버지는 꿈도 없고 소망이 없었기 때문에, 술주정에 힘없는 어머니를 폭행하는 다반사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희망이 없던 어머님은 자살을 기도하셨고, 그 어머님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변화되셨고, 그 두렵던 남편을 향해서 회개를 요구하셨습니다. 그 연약한 아내의 당당한 주장을 듣던 아버님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소망이 없던 가정에서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믿음의 확실함과 말씀에 순종하면서 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교육을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생활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얻은 것 이지만 축복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부모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정신 차리고 예수 믿기를 ‘순수하게’ 말씀대로 믿으니 집안은 전혀 다른 분위기와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심었더니 믿음이 자라나 인생을 바뀌었습니다. 믿음이 환경을 변화시켰고 생활의 실재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있는 그대로 믿는, 원색적인 믿음에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박창희 목사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가정을 상상한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술회합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박창희 목사(광주 신원교회)
박창희 목사(광주 신원교회)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