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장 분배로 꽃을 달아주는 것은 권위적이며 비시대적

총회나 노회를 보면 아주 독특한 순서가 있다. 생뚱맞은 모습이지만 관례대로 행해지고 있는 의식이다. 바로 ‘휘장분배’라는 순서다. 이것은 교단마다 약간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어떤 곳은 개회를 선포한 후에 ‘휘장분배’라는 순서가 있고, 또 다른 곳은 새 임원이 선정되면 휘장분배라는 순서를 갖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휘장분배인데 휘장은 없고, 꽃만 있다. 휘장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여러 폭의 천이나 가죽을 이어 만든 장막’이다. 또 하나는 ‘국가나 단체 등을 상징하는 징표’다. 이렇게 본다면 이 말에 합당한 모습은 없다. 그런데도 휘장분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장인 장영학 목사는 '휘장'이라는 용어는 1916년 제5회 총회(평양장로회신학교)시 서문밖교회 여전도회가 제작하여 기증 배부하여 총회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총회에 참석한 총대와 비총대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표시였다. 지금은 총회나 노회가 목사와 장로들의 모임이지만, 한국교회 초기에는 동네잔치와 같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총회나 노회 장소에 모였고, 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때 총대와 비총대를 구별함이 필요하였고, 그때 사용되었던 것이 바로 휘장이다.

이러한 '휘장'의 기원은 1915년 황해노회에서 ‘회표’, 1920년 경남노회는 ‘부표’로 사용했다. ‘휘장분배’라는 이름은 1934년 경북노회(32회), 평양노회(26회)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장로교 총회에서도 휘장을 사용했다. 이 휘장은 평양노회 여전도회 회원들이 제작하여서 주일학교 학생들이 각 총대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렇게 볼 때 휘장은 총대를 표시하는 명찰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 존재하였던 휘장의 역사와 의미는 분명하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 휘장의 의미가 변질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정확하지 않지만, 총대 표시로 나눠준 명찰이 어느 순간 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회의의 순서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휘장분배로 꽃을 달아주는 것은 역사성과 사실성이 없다.

모든 회원이 회의에 입장할 때 명찰을 받는다. 명찰을 받으므로 휘장분배는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회의가 진행된 후에 또다시 휘장분배라는 시간을 갖는다. 그것도 여성도들이 임원들의 가슴에다 꽃을 달아주는 것이다. 새로운 임원을 축하한다는 의미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명찰을 받았는데 가슴에 꽃을 다는 것은 휘장이라고 할 수 없다. 회의 순서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순서다.

최근에 한국교회 일부 노회에서 휘장분배 폐지를 논의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휘장분배를 순서에서 삭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역사성이 없다. 뿌리도 없는 것을 고집하는 것처럼 볼썽사나운 것은 없다. 역사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교회가 역사적 근거도 없는 순서를 갖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둘째, 의미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휘장이 아닌 것을 휘장이라고 말하니 얼마나 우스운가? 교회는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 휘장분배를 폐지하는 것이 합당하다.
셋째, 시대적 시각에 합당하지 않다. 대부분 꽃을 여성도들이 임원들에게 달아준다. 노회 임원들에게 젊은 여성도들이 한복을 입고 달아주는 것은 시대에 합당하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불필요하고 의미가 없는 것을 없애는 것이 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작은 것이라도 역사성과 의미성 그리고 시대성을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총회와 노회에서 휘장분배를 없애는 것이 합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임원을 축하하는 순서가 있어야 한다면 ‘감사 꽃 증정’을 하면 어떨까 제안한다. 이때 전임 임원들이 후임 임원들에게 앞으로 회의를 잘 이끌어 달라는 의미로 달아주거나, 시찰이나, 노회 소속의 대표들이 새로 뽑힌 임원들에게 꽃을 달아준다면 본래의 의미를 잘 담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선배들의 전통도 이어받고, 역사성도 이어가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신동식 목사(빛과소금 교회, 문화와설교연구원)
신동식 목사(빛과소금 교회, 문화와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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