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목사 찬송가강해]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177장

  • 입력 2021.09.2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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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 2:4)

부흥회 때 즐겨 부르는 성령강림찬송으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1:4-5)을 기다리며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뜨겁게 기도하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과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님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는 오순절 성령의 대 역사로 인해 예루살렘에 초대교회가 세워졌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담대하게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성령이여 강림하사의 찬양은 행 2:1-4절에 있는 말씀을 배경으로 미국 뉴우저지 주 메드포드(Medford)에서 출생하여 뉴우저지 오션그로브 연합집회 회장을 지낸 엘우드 스톡스’(E.H.Stocks,1815-1895)목사님이 1879년에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찬송 곡은 남북전쟁 당시 군악대를 지휘했고, 전쟁 후에는 육군사관학교 음악교수로 25년간이나 근무한 죤 리치몬드 스웨니’(J.R.Sweney:1837-1899)1879년 만들었습니다. 작곡 당시 스웨니스톡스목사님의 캠프 집회에서 찬송 인도자로 있었는데 성령 충만을 그토록 갈망하는 스톡스목사님의 찬송 시를 들으며 자신도 동일한 감화 감동에 빠졌는데 이때 갑자기 마음속에 노트를 꺼내어 멜로디를 받아 적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즉시 악상을 받아 적은 것이 오늘의 성령이여 강림하사의 곡이 되었다고 합니다.

 

1절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예수여 비오니 나의기도 들으사/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1, 성령 강림하사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하소서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님이 누구신가? 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은 희랍어로 퓨뉴마또는 하기오스라고 말하는데 이 원어의 뜻은 , 바람이라는 뜻으로 성령은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 존재를 알 수가 있듯이 바람은 부드러운 솔바람일 때도 있지만, 집과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리는 태풍을 몰고 오기도 하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성령을 비둘기와 같은 고요한 성령으로(1:10), 불길같이 뜨겁고 강한 성령으로(2:2)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순한 양처럼 진정시킬 때가 있는가 하면 노도와 같이 우리의 삶을 몰아쳐 가기도 하고 불타게도 합니다. 이와 같은 부딪힘을 우리는 인격이라는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렇듯 인격이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임하게 되면 우리는 갈 5:22-23절에 있는 것처럼 성령으로 인해 사랑과 허락과 화병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애통하며 회개하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작시자인 '스톡스목사는 1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성령 충만함을 받기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사람들 앞에 감히 나서지도 못하고 오히려 이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도다.”며 증언하는 여인들 앞에 나는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던 자였습니다.(18:17) 그러나 베드로가 닭의 울음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나서는 베드로의 모습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고기 잡던 모든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하고자 다시 사역자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여러 이적과 표적을 행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14절부터 42절을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하면서 너희가 회개(悔改)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2:38)선포할 때 그들이 마음에 찔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며 성령을 선물로(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성령) 받았는데 그 수가 무려 3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38절을 통해 우리가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을 받기 위해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회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강림의 은혜를 사모하며 성령 충만함의 은총 속에 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주님이 내 죄를 대신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과 이 같은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영접함은 물론 구원함을 받은 믿음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기다릴 때 우리에게도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성령님이 우리 속에 행하시는 크고도 놀라운 영적 비밀입니다.

여러분들이 성령강림의 은혜와 역사를 받아 누리시기를 원한다면 먼저 내 속에 있는 내 죄와 싸우는 회개의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의 은혜 속에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 속에 평화가 있고 자유 함이 있으며 자신감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2절 성령이여 강림하사 크신 권능 줍소서/ 원하옵고 원하오니 충만하게 합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2, 바라고 원하오니 성령 강림하사 크신 권능 줍소서.

많은 성도가 성령 충만함을 받은 증거가 무엇이냐? 고 물어 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성령 충만함의 증거가 무엇이라? 고 생각하십니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해 고린도전서 127절부터 11절에 그 해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12:6-8,4:11-12)

성령의 은사는 이외에도 성경에 27가지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고도 멋지게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이 성령의 능력을 병을 낫게 하고,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으로만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을 단편적으로만 보는 잘못된 것으로 큰 오류와 위험에 빠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 충만함의 참 능력은 사도행전 431절의 말씀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에 기록되어 있듯이 어디서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하는 능력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영이 식거나, 말씀을 증거 하는 모습이 없을 때 그런 사람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상태이거나 성령의 능력이 약화 된 상태입니다.

더불어 성령의 최고봉이 거룩과 성결함의 일치를 이루어 가는 내적 성숙의 단계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은사에 취한 채, 외적 성장에 만족한 채, 성령의 최고봉인 거룩과 성결함의 정상을 향한 믿음을 중도에 포기한 채 성령의 산등성에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최고봉에 올라야 합니다.

 

한 가지 더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성령의 클라이맥스는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산의 정상을 정복한 것으로 등산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출발지까지 무사히 돌아와야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착지의 최종 모습은 사랑의 열매”(5:22-23)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최고봉을 정복했다고 그 거룩함과 성결함으로 또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열매로 모든 것을 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다시금 품어 주셔서 능력의 사도로 만들어 주셨듯이 우리는 사랑이라는 열매를 통해 수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상처받고 아파하며 쓰러져 있는 수많은 영혼을 주님의 품 안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가르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5:13-16) 말씀하셨습니다. 이 귀한 복음을 성령의 참 권능을 우리는 사랑의 빛으로 증거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절 힘이 없고 연약하나 엎드려서 비오니/ 성령강림 하옵소서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3, 엎드려서 비오니 힘없고 연약한 나에게 성령강림 하옵소서.

언제가 저는 모 여자 대학의 여자 교수님으로부터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연과학계통의 교수님으로 일류대학을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남편 또한 인류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 맞벌이로 살다 보니 많은 돈을 저축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좋은 집과 자가용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없는 것이 하나도 없는 풍요로운 가정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이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교양까지 몸에 배어있었습니다. 이 세상 편견으로 볼 때 가장 복 받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런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이 안 계셔도 불편한 것이 없고, 믿음을 안 가져도 별로 불편한 것이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남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신앙생활에 대한 열심히 식어가고 안일하고 나태한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일도 피곤하거나 바쁘면 빠지기가 일상이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구속하심과 죄 사하심에 대한 은혜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마치 코로나 19’ 이후 비대면 예배가 일상화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과 예배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습니다. 외아들이 중학교에 다니면서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다. 그 병은 현대 의학으로는 전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부부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의 병을 고치려고 미국과 일본에도 가서 대 여섯 번 진단과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인간의 의술로는 절망적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 같은 사실에 대하여 처음에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이런 죽음의 질병으로 몰아넣을 수가 있는가? 너무도 가혹하신 하나님!”이라며 하나님을 몹시 원망하며 반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욥처럼 점점 그 마음의 연단을 통해서 조용히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신유를 한다는 분들이 자기 집에 날마다 찾아왔습니다. 족히 200명가량의 사람이 자기 집을 다녀갔다고 합니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문제를 당한 후 무당과 점쟁이를 찾듯이 신유의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성도 헛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 많은 권사님이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권사님은 제가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할 수 있지만 제 손을 믿을까 봐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고 가겠습니다. 아무도 믿지 마십시오, 말씀 충만이 성령 충만이고,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하고는 돌아가서 대신 열심히 기도하겠다.” 말씀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빈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말씀을 읽어보라.”는 가르침이 생각이 나서 그때부터 성경을 펴서 읽기 시작했는데 얼마를 읽지 못해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많이 설교를 듣고 읽었던 말씀이었지만 그때만은 달랐다고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고백한 이후 말씀의 능력은 성령님을 통하여 내 안에 강하게 부딪혀 왔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조용한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쁨과 평강과 소망의 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 아이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고 우리 부부와 가족은 전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진실하게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여 교수님의 간증을 통하여 또 본문의 가사를 통하여 어떤 도전을 받습니까?

치유의 은사, 성령충만의 은혜는 자신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자 찾아오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27절과 10절에 육체에 생긴 가시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게 되자 육체의 가시를 없게 해달라고 주님께 세 번씩이나 간구할 때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머물게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력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 곧 강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 정케하고 위로하사 복을 받게 합소서/ 충만하게 하시오니 무한 감사합니다/ 예수여 비오니 나의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4, 정케하고 위로하사 복을 받게 하시니 무한 감사합니다.

과거 기독교신문의 광고란에 부흥강사의 사진과 함께 자신의 프로필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보면 100% 방언이 임함이라든가, 병 고치는 기적과 성령의 뜨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등의 선전 광고를 보고 저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각양은사와 선물은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거늘 자신들이 성령을 공급하는 특허청 사람처럼 100% 방언 임함, 병 고침 등의 말을 공공연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자신들만이 참 구원이 있고 축복을 받는다.’는 이단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불의한 자들을 향하여 마 7:15-23절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 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영에게 미혹되지 않고 올바로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고전 12: 29-13:3절까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저는 4절의 가사를 마감하면서 성령 충만한 자의 참다운 모습은 자기의 은사를 자랑하며 나타내기보다는 은밀한 가운데 주의 뜻을 좇아 자원하여 사랑을 전하는 자가 참 제자가 되어 천국의 잔치 자리에 참여하는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4:8-9)

우리 모두 힘써 성령의 능력을, 성령의 강림을 사모하되 자신의 유익과 자랑을 위해서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욱더 힘써 구하며 나타나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 관주

1

감화시키는 성령 *10:45,15:19,고후 6:6,딤후 3:16

애통하며 회개함 *32:5,57:15,5:4,2:38

성령 충만 *1:67,4:31,7:55,15:13,5:18

 

2/큰 권능 주심 *10:1,1:8,고전 6:14,4:13

3/연약함을 도우심 *41:10,8:17,8:26,12:12-13

 

4/정케하고 위로하심 *4:4,9:31,11:9,18,고후 1:4,3:14

무한 감사 *1:16,2:7,살전 5:18,살후 1:3

 

<후 렴>

주께 간구함 *7:7,11:9,6:18,4:6

기도 들으시는 주 *21:22,11:13,10:4,31,요일 5: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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