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앙생활 중에 여러 가지 기도 중에 금식기도가 있습니다. 모든 기도가 중요하고 귀합니다만 오늘 본문엔 금식기도가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위대한 역사를 나타낸 사람들의 공통점이 금식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은 타민족들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그들은 소수의 민족이지만 뛰어난 지적인 능력으로 노벨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탁월한 예술가들을 배출했습니다. 이러한 유대민족이 타민족과 제일 다른 점은 경건생활에 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경건생활의 3대 지주는 기도하는 생활, 금식하는 생활, 구제하는 생활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고, 금식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구제는 재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영혼, 몸, 재물을 드려서 하나님께 헌신하기 때문에 그 백성, 그 민족에게 특별한 은총과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일주일에 두 번씩, 수요일과 금요일 낮 동안에 금식을 했습니다.
영국의 부흥사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축복들을 얻게 하는 방편으로써 금식을 지시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금식은 마음을 찢으며 애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금식이라는 것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이 금식은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먹지 않는 것이 금식이며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경건을 위해서 스스로 일정기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금식입니다.
음식이 없어서 먹지 않는 것은 금식이 아니라 굶주림입니다. 또 경건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하는 것은 금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미워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으니"(요엘2:12)
오늘 성경 본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란 뭘까요?
첫째, 금식은 우리를 어둠에서부터 해방시켜 줍니다.
참된 금식은 참 회개로 이어져야 하며 참 회개는 모든 사람을 불의와 불법의 사슬로부터 풀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종교적인 행위인 금식은 지나칠 정도로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힘 있는 자들의 착취와 억압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었고 또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사58장6절,7절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흑암의 결박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는 “억울하게 묶인 이를 풀어주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억울하게 얽어매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멍에의 줄을 끊어 주어야만 합니다.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고,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고 금식하며 절약한 음식을 이웃에 나누어 주라는 말입니다.
어둠에서 해방시키는 금식
본문에는,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는 것, 모든 멍에를 꺾는 것 이렇게 네 가지로 나오는 데 이것은 다 같은 말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어둠의 영에게 매여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마귀와 귀신에 매여 있습니다. 점집을 찾고 굿을 하며 우상과 미신을 섬기고 사주팔자 관상으로 삶의 미래를 살려고 합니다. 어두움의 영에 매여서 마귀와 귀신이 해를 줄까봐, 복을 주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겁이 나서 이사도 제 마음대로 못가고 결혼도 제 마음대로 못합니다. 어두움의 영에게 꼭 날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믿게 하고 교회 나오게 전도하는 것이 바로 어두움의 영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중에서 가장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하여 예수 믿게 하면 의인 아흔 아홉 명을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보다 더 기뻐하신 다는 말씀하십니다. 육신적인 질병, 정신적인 질병, 우울증, 대인기피증, 공포와 두려움, 불안증, 이로 인한 불면증 등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병과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렘29장1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사실 질병을 가장 미워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영적으로,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에 들린 자를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질병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다고 거짓말하면서 우리에게 그 사실을 믿게 하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씁니다. 질병의 고통 속에 있는 자들로 하여금 마귀의 이 속임수를 믿게 해서 하나님을 점점 더 멀리 하고 결국 가서는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질병과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의 치유와 회복을 정성껏 도와주어야 합니다.
둘째, 금식은 어려운 자들을 돕는 것입니다.
본문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참된 금식이란 참 회개로 말미암는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금식이란 이 험한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그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을 막12장30-31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과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라는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마을에 구두장이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구두장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은 예수님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꿈속에 나타나 내일 너희 집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어찌나 기뻤던지 온갖 정성을 들여 음식을 가득 차려놓고 기다렸으나 어찌된 셈인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수님은 그 날 저녁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거지가 한 번 오고, 또 한 번은 청소부 할아버지가 오고, 저녁때는 사과 장수 아주머니가 왔을 뿐이었습니다. 이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그만, 거지와 청소부 할아버지와 사과 장수 아주머니에게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주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너무나 불쌍하게 보였고 실제로 추위 때문에 또 배고픔 때문에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 밤 예수님께서 꿈속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이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왜 오시지 않으셨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나는 오늘 너희 집에 세 번이나 갔었는데 세 번 다 대접을 잘 받았다. 참으로 너는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알겠다. 네 이웃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 나오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때 의인으로 판결을 받은 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칭찬을 받은 의인들은 오히려 놀라서 언제 이런 일을 당한 주님을 도와 드린 적이 있느냐고 반문을 합니다. 이에 심판주 되신 임금님은 "분명히 말하건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심판의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어두움에 매여 있는 자들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즉 베푸는 것입니다.
현대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회가 이미 되고 있습니다. 교회도 크리스천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세상의 세파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파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금식은 자기 약함의 표시입니다, 금식하면 몸이 약해지고 혈기가 죽고 겸손해지고 마음대로 활동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은 자기 포기 자기 죽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힘으로 자랑하고 뽐내고 드러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자신이 약하다고 고백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그래서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자기를 낮추어 어려운 자를 돕는 금식을 하십시요. 하나님이 좋아하는 금식입니다.
셋째, 금식은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만 보여야 합니다.(마6:18)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유대인들의 금식에 나타난 종교적인 위선의 탈을 벗겨버리셨습니다.
마6장에는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의무 사항인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이 아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금식할 때 머리도 흐트러뜨리고 슬픈 기색을 띠면서 그렇게 초췌한 모습을 일부러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마6: 16,17)
예수님께서는 금식할 때에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고 하는 외식하는 자들의 행위가 아니라 그와는 반대되는 은밀한 행위를 칭찬하셨습니다. 사실 금식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그 옛날 선지자 이사야나 베드로처럼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그는 이 세상의 고통의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게 될 것이며 또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역사의 현장으로 담대하게 뛰어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금식은 그 어떤 외적인 조건에 따라서 좌우되지 않습니다. 또 세상에서의 어떤 상급에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올바른 금식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금식 그 자체,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이야말로 그 어떤 상급보다 귀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금식은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고집하지 않습니다. 내 유익만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나를 온전히 맡김으로써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세상을 살면서 풀기 어려운 문제나 지기 힘든 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금식
그렇다면 이제 금식하고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그 옛날 사무엘이 그랬던 것처럼,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그랬던 것처럼 금식하고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그 옛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던 것처럼 금식하고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그 자비로운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8절과 9절에 ‘그러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네 빛이 새벽같이 비취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는 자를 하나님이 높이신다는 말씀입니다. 높아지고 성공하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십시오. 또한 질병도 급속하게 치유가 됩니다. 그 사람의 육신적인 질병이든, 정신적인 질병이든,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있든지, 삶의 고통과 어려움이 있든지 간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하면 그 사람에게는 치유되고 회복은 역사가 아주 빠르게 나타납니다.
또한 하나님이 응답의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는 사람의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기쁘게 속히 응답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하여 이런 복을 받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