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황금어장 군선교를 인원 동원에 취해선 안 돼

 

설호진 목사는 목원대 신학대학과 동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감리교 목회자다. 대학 시절 "온누리찬양단"에서 활동했으며, 이 후 선교훈련원과 복음학교 등에서 수련했다. 가족으로는 아내 김수희 사모와 설이레 설로이 설루하 세 딸을 두고 있다.
설호진 목사는 목원대 신학대학과 동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감리교 목회자다. 대학 시절 "온누리찬양단"에서 활동했으며, 이 후 선교훈련원과 복음학교 등에서 수련했다. 가족으로는 아내 김수희 사모와 설이레 설로이 설루하 세 딸을 두고 있다.

몇 년 전 목사님들과 함께 군 선교를 위해 부대에 방문했을 때 가장 연로하신 선배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까지도 내게는 의문이며 동의가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군대는 많은 장병들에게 세례를 줄 수 있는 선교의 황금어장이다. 지금까지 나는 많은 장병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선배 목사님께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신지, 또 어떤 의도로 얘기하신 지, 결코 모르는 게 아니다. 세상에서는 먹고 사는 것 때문에 교회에 관심이 없거나 싫어했던 젊은이들이 힘든 군 생활로 인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며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당연히 기쁜 소식이다. 또한 줄어드는 교세와 불신자 전도가 안 되는 시대에 그래도 군대는 복음의 접촉점이 많다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군 선교가 황금어장이다.

하지만, 군 선교의 모든 모습을 긍정적이며 희망적으로만 보기는 굉장히 힘들다. 특히 진중세례에 대해서는 성경으로 깊게 점검해볼 필요성이 있겠다. 왜냐하면 잘못 오해한 신앙은 단순한 지식적인 차원의 오류가 아니라 영혼 구원의 문제이므로 쉽게 접근해서는 많은 영혼들을 영원 불못으로 인도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33:6)’

훈련소 실로암 떼창 영상을 보며 군선교의 열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훈련소 실로암 떼창 영상을 보며 군선교의 열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신앙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그러므로 천국과 구원, 부흥과 선교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의 유무이다. 회개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절대로 일하시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에 대해 가볍게 '믿음이 있다. 치고, 구원받았다 치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없는 문제이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4:17)'

훈련소나 군교회에서 받는 진중세례는 동기일 뿐 결과는 아니야
훈련소나 군교회에서 받는 진중세례는 동기일 뿐 결과는 아니야

 

성경은 늘 영혼, 영적 원리를 알려준다. 그래서 육적인 세상일들도 배후에는 늘 영의 일들이 먼저 있고 난 후,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얘기하기 전에 단순히 눈에 보이는 감각에만 의존하여 믿음과 구원, 부흥을 쉽게 얘기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완전하신 감동인 성경으로 상고하며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 하나님 안에서 항상 분별해야만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4:18)’

 

대부분 군 선교에 대해 장병들의 반응이나 인원수로 부흥을 평가한다. 세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많으면 부흥이고 없으면 저주라는 무비판적며 무지성적인 신앙은 도움은 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세속적인 속물, 즉 우상과도 같이 오해하며 변질시킨다. 그렇다고 좋은 현상 모두가 다 거짓이며 예수님을 믿으면 모두 다 가난해야만 하며 생고생을 해야만 하고 바보처럼 무조건 참으며 손해보라는게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부흥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0:16)’

 

성경은 부흥을 세상과 대조하여 말한다. 그래서 세상은 부흥을 대박 정도로 얘기하지만 성경은 쪽박일 때도 있다. 이유는 예수님의 삶,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삶이 우리들에게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부흥의 초점은 보여지는 현상을 비록 쪽박일지라도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십자가를 결코 마다하지 않고 기쁨과 감사로 성령님과 동행하게 되며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요 구원이고 부흥과 선교다. 그런데 성경을 믿음으로 보지를 않고 세속적인 가치로 부흥을 현상이나 수의 논리에만 집착하니 심각한 오류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7:59)’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내 옛 자아가 죽는 것이며 이것은 베드로를 통해 삼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로 증거되었다. 이 말씀을 대부분은 성과적인 측면으로 부흥을 곧 성장으로만 오해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고용주로서 계속해서 채찍질을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한 삼천 명은 실제 삼천 명의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시공간의 주관자로서 하나님께는 한 사람들이 다수고, 다수가 곧 한 사람들으로서 삼천 명의 회개 역사는 각 개개인의 한 영혼들의 부흥의 역사이다.

그리고 또 다른 부흥의 역사는 말씀을 들었지만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오히려 죽였던 스데반의 일이다. 둘 다 동일한 성령 하나님의 부흥이지 어느 누구도 베드로만 성령의 역사고, 스데반은 마귀의 저주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원과 부흥, 선교에 대해 육적인 현상으로만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결코 안 되며 사건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뜻을 발견해야만 한다.

 

또 한번은 내가 담당했던 소속 찬양단 주관으로 군 선교를 가게 된 적이 있었는데, 현장에서 장병들이 즐거워하며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것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지만, 하나님이 용서해주시는 기쁨이 아닌 인간적인 분위기에 취한 모습이었기에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고 이후로는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회개의 찬양을 불렀다.

그러므로 군 선교와 세례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마치 국뽕과도 같이 반성과 보완이 없는 자화자찬은 지양하며 십자가 복음을 통해 군인들을 치유하여 온전한 군 생활과 전역 이후의 삶을 선물해줘야만 한다. , 한 번을 예배하며 한 명을 세례 주는 한이 있더라도 선교와 세례에 대해 결코 값싼 복음으로 만든 일은 더이상 멈춰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그래야 앞으로도 군 선교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세상도 진짜 복음을 기대하며 원할 것이라고 본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7:6)’

 

이번 글이 조금이나마 군 선교와 진중 세례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하여 정말 우리나라 군 선교가 황금어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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