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한인교회>는 세 지역교회인 <취리히 중앙교회>, <바젤 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로 이루어진 <교회공동체>입니다.

 스위스는 인구 850만의 작은 나라이기도 합니다만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 역시 많지 않아 <한인교회>들 역시 소규모입니다. 현재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대략 2천명에서 3천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위스>가 <4개 언어권>으로 나뉘어져 있어 같은 한인들이래도 다른 언어권에 속한 한인들과는 그다지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습니다.                   주중에 길에서 보게 되는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들이고,  같은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래도 <주일예배> 때 <교회>에서 보게 되는 외에는  일년 내내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 가정이 거주하고 있는 <슈바르첸부르그(Schwarzenburg)>는 스위스의 연방수도 <베른(Bern)>의 중심부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로 주민의 수가 6천명 가량인 <지방자치행정구역>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의 동양 사람은 우리 가정과 스위스인과 국제결혼을 한 싱가포르에서 온 여자분이 다였는데, 최근 새로 이주해온 몇몇 중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이처럼 이곳에 정착해 사는 한인들이 많지 않다 보니,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예기치 않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인터넷>으로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 급히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는 소지품을 도둑맞았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갑작스럽게  중병에 걸리게 되어서입니다.    
나는 이들을 위한 <봉사>도 <목회의 일부>로 간주했기에, 그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고자 매번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신네 집은 <호텔>입니다'라고 이웃집 사람들이 말할 정도로 많은 한인 여행자들이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갔습니다.  
물론 우리 집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척박한 환경에서 선교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들도 종종 있습니다.                                                                   큰 사고나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람을 살려 보내기도 하고, 도저히 본인들이 감당 할 수 없는 치료비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한 청년이 전화로 급히 도움을 요청하는데, 기차로 오는 도중에 현금과 은행카드가 든 소지품을 도둑맞았는데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고 물었더니, 현금으로 좀 빌려주세요!'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액수가 내가 감당하기에는 적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여행을 마치기까지 꼭 필요한 금액이라고 했습니다.
,내 <은행통장>에는 그만한 돈이 들어있지 않습니다'고 했더니 , 그러면 <크레디트카드>로 해주시면 되지 않습니까?'고 말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기차로  그가 기다리고 있는 <베른 역>으로 가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말한 대로 역 구내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그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꺼내주면서 ,나는 가난한 목사이니 꼭 갚으셔야 합니다!' 하고는 나의 <은행 계좌>를  적은 메모지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물론 그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연락처 등에 관해서는 전혀 묻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나의 이같은 태도가 그 청년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청년과 헤어진 후 혹시나 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e-bangking으로 그 청년에게 알려준 나의 은행계좌를 열어보았습니다.   그 청년에게 빌려준 돈이 나에게는 꽤 큰 돈이었고, 다소 마음에 불안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청년과 헤어진 지 채 한 시간도 못되었는데도 한국에 있는 그의 부모는 어느새 나의 은행계좌에 그 청년이 빌려간 돈을 입금시켜줬습니다.

나의 매 주간의 <목회일정>은  매 주일 <주일예배>가 있고,  그리고 주 중에는 <성경공부>와 <돌봄>과   <상담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돌봄>과 <상담>의 시간이 딱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취리히 중앙교회>는 <주일 오전>에 <주일예배>가 있고,  <수요일 저녁>에 <성경공부 모임>이 있으며, <토요일 새벽>에 교인들끼리 하는 <새벽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바젤 한인교회>는 <주일 오후>에 <주일예배>가 있고, <목요일 오후>에 <성경공부 모임>이 있습니다. 
<인터라켄 쉼터교회>는 <여행자들을 위한 교회>로 <주일 저녁>에 <주일예배>가 있습니다.                             
나는 이 세 교회의 <주일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주일 하루 동안 9시간 반을 차로 이동해야 합니다.

 

1. <돌봄 사역>

나의 <목회일정>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 하는 사역입니다.

<돌봄>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1) <질병>이나 <실업>으로 인해 생활이 <곤궁해진 가정>들을 돌보아야 하는 사역입니다. 

제일 어렵고 힘든 사역인데 그들의 생활이 다시금 안정될 때 까지는 어떻게든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교회재정>이 좀 여유가 있을 때에는 교회재정으로 충당하기도 합니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적절한 해결책이 마련될 때까지 얼마 안 되는 <목사사례비>로 얼마간씩 나누어 써야 합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부지불식간에라도 도움을 받는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의도치 않게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이는 곧 <교회공동체>에는 <시험거리>가 되고, 그들에게는 <원망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이 장기화 되면 <쏘치알(Sozialdienst)>이라고 하는 거주 행정구역의 <사회복지과>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이 일은 통상 본인이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목사인 내가 나서서 수속을 밟아줍니다만 그렇다고 선선히 ,아, 그런가요?' 하고서 쉽게 도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도움을 받게 되기까지는 꽤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당사자가 얼마나 절박하고 간절한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일부러 마음고생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사회복지 담당자>에게 납득이 되고 수용이 되면, <사회복지 담당자>는  당사자의 경제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돌봐줍니다. 지금까지는 이 같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교인들이 대부분 독일어에 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역과 상황설명을 위해 매번 함께 해야 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교인가정의 예를 듭니다.
                                                                                    
이 가정의 남편 분은 직장이 좋아 참 유복한 생활을 했습니다만, 남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함께 가족 모두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졌습니다. 부부싸움이 빈번해졌고, 부인이 죽겠다고 집을 뛰쳐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학교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딸아이는 툭하면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해 학교에서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역시 또래 아이들과 독일어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해 툭하면 주먹질로 분풀이를 하는 바람에 유치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부인이 다시 임신까지 하게 되어, 이 가정은 이래저래 <사회복지 담당자>의 <특별관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매주 하루는 오로지 그 가정만을 위해 시간을 내야 했는데, 자택방문, 학교 교사면담, 남편 병원진료, 부인 병원진료, 사회복지과 면담시간을 미리 예약해놓고 새벽에 집을 나서 모든 면담일정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항상 늦은 밤이 되곤 했습니다.     이렇게 이 가정의 문제가 다 해결되기 까지는 꼬박4년 세월이 걸렸습니다.
 
(2) <질병>으로 인해 오랫동안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교인>들을 돌봐야 하는 사역입니다.

통상 일주일에 한번씩 그들을 위해 심방을 가는데, 아픈 교인들이 많을 때에는 꼬박 사흘이 걸립니다. 특별히 아내가 많이 수고해야 합니다. 갈 때마다 꽃을 준비해야 하고, 특별히 입맛을 잃은 환자를 위해서 부드러운 음식을 정성 들여 준비해가기 때문입니다.
통원치료를 받는 교인들 가운데 독일어에 능하지 못한 교인들을 위해서는 매번 통역을 위해 동행해야 하는데, 한 교인 분은 여러 심각한 고질병들을 지니고 있어 통상 일주일에 두 번, 많을 때는 세 번까지 병원에 함께 가서 통역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자녀들이 이분을 모셔갈 때까지 이 일은 25년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3) <유학생>들을 돌보아야 하는 사역입니다.

갓 유학 온 학생들은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거처할 방을 구하는 것인데, 전 교인들이 적절한 숙소를 마련해주기 위해 많이 애를 써줍니다.  그리고 독일어에 능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서는 스위스에 오기 전부터 여러 서류들을 미리 구비해서 입학수속을 밟아주는 일도 대행해야 합니다. 또 입학을 한 후에도 한동안은 음식에서부터 당장 필요한 생활용품이  마련되기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줘야 합니다.
그리고 학업이 계획대로 진척이 되지 않아 힘들어 할 때에도 용기를 잃지 않도록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일도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고, 학교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중도 포기해야 하는 학생을 위해서는 담당 지도교수를 만나 다시 한번 기회를 주도록 설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바젤 한인교회>, <취리히 중앙교회>를 거쳐간 학생들이 지금 현재 한국에서, 중국에서, 스페인에서 그리고 스위스와 독일에서 그들이 유학생활 때 가졌던 꿈을 마음껏 실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잠시 한국에 들렸을 때에는 <바젤대학>에서 <음악공부>를 한 학생들 20여명이 우리 부부를 위해서 함께 시간을 내줬는데, 그들 대부분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 딸이 한국에서 <결혼식>을 할 때, <간소한 결혼식>을 계획했기 때문에 <웨딩마치>를 연주해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 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들은 아예 <전문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팀을 준비했으며, <전문 성악가>들로 구성된 <합창단>까지 준비해와 우리를  크게 감격시켰습니다.
또 <취리히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간 한 학생은 <대학강의>와 병행해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데, 종종 헌금까지 보내주고 있습니다.

 

2. <상담사역>

<상담>에도 <세 종류>가 있습니다.

(1) 교인들 개개인의 <문제해결>을 위한 <상담>이 있습니다.

제일 많은 상담이 <부부간의 갈등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목회자>가 단도직입적으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결국은 본인들이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함께 <기도>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습니다.
 
지금까지의 <전화상담> 가운데 가장 빈번했던 상담이 <부부싸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쪽편의 말만 듣고는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래라 저래라 하기 보다는 전화상담을 하시는 분의 분이 풀리고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하고 싶은 말 다 하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서없이 말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스스로 마음을 다독입니다.

 

(2) 교인은 아니나 <도움>을 받기 위해 <상담요청>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주로 <가정불화>나 <이혼>에 관한 것들이고, 종종 <일자리>나 <체류문제>로 <상담요청>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3) 연로하신 <은퇴자>들 가운데 <외로움> 때문에 <전화상담>을 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단 전화가 오면 실컷 말하게 하고서 중간중간 맞장구를 쳐주면 그리도 좋아합니다.  통상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두 시간까지 들어줘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말 다 한 후에는 ,오늘도 내 말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게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디도서 2:15-3:2)"

<아멘! >

필자_김정효목사
필자_김정효목사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