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기도 - 크랜취(감독) -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는 캄캄한 길에 아주 작은 불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천국바라기 - C.S. 루이스 -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면 이 땅의 것도 얻을 수 있지만, 이 땅을 소망하며 살아가면 그 어느 쪽도 얻을 수 없습니다.
물질 만능의 세상만을 바라보고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나라를 보지 못하면 돈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물질계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이지 않는 세계를 믿음으로 보지 못함으로 물질이 그 사람을 지배해버리고, 물질 이외의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땅을 뒤덮고 있는 불행한 삶의 실체입니다.
우리가 추구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義)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그의 나라를 위한 삶을 최우선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필요한 것 또한 공급하실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위한 제안
감사를 생활화하기 위해서 감사 제목이나 감사 생활을 서로 이야기하는 ‘감사 나눔 모임’ 구축이 효과적이다. 감사 나눔 모임의 유익함은 4가지가 있다.
첫째, 타인을 향한 감사는 일상생활을 통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서 공동체 속에서 상호 이해를 촉진하고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다른 사람의 감사 생활을 통해 감사의 필요성이나 대상과 시기와 방법 등을 배우는 감사 교육의 훈련 효과가 있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이 퇴색해질 때 이를 재 활성화 (revitalizing)하는 효과가 있다.
넷째, 감사에 게을러졌을 때 서로 자극을 주면서 감사 생활을 지속적으로 하는 데 효과가 있다.
감사 모임은 별도로 만들 수도 있으나 교회에서 소그룹이 모일 때(온라인 모임 포함) 서로 지난 생활을 나누면서 감사 제목을 나눌 수도 있다. 또한 소그룹 활동자층에서 비 활동자층보다 훨씬 감사 성향이 높은 것을 보면, 소그룹 모임에서 감사를 나누는 것이 매우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다시 희망광장에 서서 - 송길원의 요즘 생각 -
강영우 희망광장에서 나는 시편 131편을 읊조린다.
하나님, 나는 대장이 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으뜸이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고 거창하고 허황 된 꿈을 꾸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발을 땅에 디디고 마음을 고요히 다잡으며 살았습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만족하듯 내 영혼 만족합니다.
이스라엘아, 하나님을 기다려라. 희망을 품고 기다려라.
희망을 가져라! 언제나 희망을 품어라! (시편 131장 1-3절)
다시 생각하는 감사가 주는 평안
위대한 찬송 작가인 <패니 제인 크로스비>는 182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생후 6주가 되었을 때 눈병을 앓았습니다. 그때 마침 마을의 의사가 다른 지역에 가고 없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딸의 눈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치료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정식 의학 교육을 받지 않았던 그는 잘못된 시술로 그녀의 각막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습니다. 결국 그녀는 평생 앞을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녀가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지만, 그녀의 곁에는 믿음의 가족이 있었습니다. 특히 외할머니는 그녀의 눈이 되어 주어 그녀가 믿음의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녀는 시력을 잃었지만,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글로써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쓴 찬송 시만 약 9천 편에 달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도 그녀가 작사한 찬송이 여러 곡 수록되어 있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나의 영원하신 기업> 등의 주옥같은 찬송들입니다.
누군가 그녀에게 “선생님, 선생님이 처한 상황이 절망할 수밖에 없고, 원망과 불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어떻게 이처럼 감사의 삶을 사실 수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감사의 조건들은 아주 많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무조건 베푸신 사랑으로 구원받고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안함이 임합니다. 주님의 기쁨이 넘쳐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불평을 먼저 쏟아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마음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라도 웃으며 극복합니다.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분들이 지닌 신비스러운 능력의 비밀을 발견했는데 바로 ‘감사’였습니다.
기적인가 주님인가? - 존 맥아더 -
많은 사람이 병 고침을 받고 싶거나 기적의 은혜를 받고 싶어 예수님을 따랐지만, 진정한 회개나 자기 부인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빈 들에서 오병이어(五餠二魚)로 남자들만도 5천 명이 먹고도 남는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배고픈 군중들은 흥분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군중의 관심은 예수님이 아닌 이적(異蹟)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기적을 보았지만, 기적을 베푸신 분을 놓친 것입니다. 제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환호 속에서 흥분하며 세속적인 욕망 속에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 죽음 직전에도 누가 오른편에 설 것인가로 다투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를 향한 구원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이 아닌 나의 삶에 일어나는 이적에 더 관심을 쏟고 있는지 돌아보며 나의 자랑은 오직 주의 십자가임을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두려움 없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뿐이라-<찬송가 415장 3절>
[고천일목사_새길교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