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협곡에서 부르짖는 목회

이명재목사, 실로암교회담임, 서울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

▪︎ 주님이 25년 동안 앞서 오셨습니다. 
맨 몸뚱아리로 겨울을 난 나무가지에서 새 눈이 트는 계절, 지하에서 사랑의 둥지 같은 실로암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3월 5일 주일이면 25번째 생일을 맞습니다.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지나온 시간 그저 앞서 가시는 예수님 따라보려 걸어왔던 길이었습니다. 

▪︎겸손과 눈물
예수님을 따라보려 애쓰는 것도 곧 한계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요. 그래도 유한한 사람이 가장 예수님을 잘 따랐던 분이 바울이잖아요. 그래서 바울을 많이 공부했습니다. 바울의 목회와 선교의 길에서 만나는 핵심 가치는 '겸손과 눈물'이었습니다. 눈물은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겸손과 눈물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가장 숭고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십자가의 핵심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으려, 조심 조심 걸어왔던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닐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지켜내는 일은 참 소중한 것 같습니다. 상하고 아픈 곳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이 피게 하는 것이 목회란 생각이 듭니다. 그 아름다움을 피워내려면 겸손과 눈물은 보이지 않게 흘러 마음을 적셔야 합니다. 계속 겸손과 눈물이 고여있는 목회가 되기 위해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완주
어느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회가 어떠셨어요?
그러면 그렇게 답했습니다. 제 목회는 깊은 협곡에서 부르짖는 목회였습니다. 그 협곡에서 부족하고 못난 종이 하나님의 품을 배웠습니다. 마음이 한치씩 넓혀지려면 찢겨야 합니다. 찢기는 고통이 없이는 결코 주님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얼마나 많은 달빛을 친구삼아

험로를 걸었을까요? 얼마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 목회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완주는 바울이나 그리스도인 모두가 품어야 하는 꿈이라 생각합니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완주하고 곧 뵙게 될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며 영광 송을 올려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신앙의 길, 중도포기 하고픈 유혹의 촉수들이 사방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의 시각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러니 꿋꿋하게 걸어야 합니다. 저도 더 완주라는 이정표가 마음에 새겨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끝까지 완주하셨습니다. 가장 고통의 길인데...십자가 이정표를 놓치지 않으면 완주를 향해 걷는 길, 의미가 더해질 것입니다. 완주의 목회를 위해 주님의 도우심을 더 구해봅니다. 

▪︎비전
누군가 묻습니다. 목사님! 비전이 뭐예요? 그러면 저는 한사람입니다!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제겐 한사람이 소중합니다. 목회는 한사람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이 됩니다.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며 그 한사람이 주님 사랑에 맞닿도록 이어주는 것이 목회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미얀마입니까?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단지 미얀마 사람들에게 주님이 매력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지금껏 싫증이 않나는 것 보면, 사명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감동은 토요모임에서 형제자매들의 발을 씻겨 줄 때 였습니다. 그 시간 제 손이 주님 손이 되었고, 제 사랑은 주님 사랑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비전은 영글어 갔던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소박한 찐 사랑 나눔이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비전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 말씀하셨어요. 사랑이 빠진 완성은 모래위에 지은 집이 될 것입니다. 그저 교회에서 사랑이 우렁차게 울리는 것, 그것이 비전입니다.

교회를 지켜주시는 한국 성도님들의 아름다운 동역, 동역으로 펼쳐지는 하나님의 나라, 선교의 시너지, 미얀마의 미래가 자라는 공동체, 섬김의 모델이 많은 곳, 이곳에서 저는 마음의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25년 동안 앞서 오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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