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스토리는 손해의 기록이다.

1)지도자 한 사람의 가치_엘라솔루 시장_북한김일성

(1)튀르키예와 시리아에 지진으로 인해 엄청난 인명피해와 초토화된 건물들을 TV를 통해 보았니. 이런 고통의 와중에 튀르키예 남부의 소도시가 언론에 집중 조명 받았다. 하타이주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인구 42천명의 소도시 에르진에서는 단 한명의 사상자도 없고 단 한 채의 건물도 무너지지 않았다. 이유는 도시 내 불법 건축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엘마솔루 시장은 불법건축을 허용하지 않았다. 1999년 만7천명이 숨진 대지진 이후 내진 규제를 강화하였다. 오직 한 사람 엘마솔루 시장으로 인해 도시는 죽음의 골짜기를 피해갔다. 그러나 다른 도시들은 참혹한 도시로 바뀌었다. 정말 이곳이 도시였던가 생각이 될 정도로 모든 것이 다 부서졌다. 사방에서 죽음의 소리와 고통의 소리만이 울릴 뿐이다.

한 사람이 도시를 살리기도 하고, 나라를 살리기도 하고, 교회를 살리기도 하고, 가정을 살리기도 한다.

(2)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참혹한 인권사각지대이다. 생각과 언론 표현 자유, 국민의 기본권인 투표의 자유, 이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소유권의 자유, 등 모든 것이 박탈된 중세봉건노예사회이다. 북한을 국가로 보지 않고 사이비종교집단으로 분류한다. 북한은 21세기 한 복판에 모든 인간의 기본을 다 빼앗기고 암흑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주에서 남북을 촬영하면 대조적인 것이 있다. 북한은 어둠이고, 남한은 온통 밝은 빛으로 덮여 있다. 전후 70년 만에 이런 끔찍한 차이가 일어났다. 그것은 지도자 한 사람 때문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가치가 소중하다.

 

2)아담과 예수그리스도 비교

512절 이하 말씀을 보면, 한 사람 아담과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를 비교하고 있다. 한 사람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1)아담이 준 선물_죄로 인한 사망

한사람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12). 율법이 없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 율법이 주어지면서 죄가 세상에 들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율법 전에 죄를 짓지 않고 죽은 사람들은 죽지 않았어야 하는데 죽었다. 아담시대부터 모세시대까지 죽음의 지배를 받았다. 아담과 같은 범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죽음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13). 왜 그런가? 아담 한 사람의 죄의 부패성이 흐르기 때문이다.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으므로 인해서 죽음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다음 말씀을 읽어보라.

15“....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

16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17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노릇하였은즉...”

18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19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20이는 죄가 사망안에서 왕노릇한 것같이...”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고 죄로 인해 죽음이 왔다는 것이다.

 

2)둘째 아담 예수그리스도가 준 선물_영생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죽음을 인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둘째 아담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을 주셨다. 이 은혜의 선물은 무엇인가? 범죄한 한 사람 아담을 통해서 심판이 내려져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예수그리스도 한 사람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의롭다는 선물을 주셨다(16). 의롭다는 것은 깨끗하다는 것이다. 범죄자이지면 무죄를 선언 받은 것이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의 죄로 인해서 유죄판결을 받고 지옥으로 가야될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생명을 던져 우리를 구원하였기에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무죄판결을 선물로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요 선물이다.

17“.....한 분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한 사람 아담을 통해서 사망이 왕노릇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이 왕노릇합니다.

18“....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되리라” 한 사람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되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되었다. 이것이 한 사람의 가치이다.

20이는 죄가 사망안에서 왕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한 사람 아담은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죄인 되었고,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가 순종함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 한사람 아담을 통해 죄가 왕 노릇하고,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의가 왕 노릇하여 영생을 얻었다. 아멘.

한 사람의 가치가 이렇게 소중하다. 죽음과 어둠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생명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3)생명의 불을 옮기는 한 사람이 되라

(1)섬김의 불을 옮기는 한 사람이 되라

①우리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누구인가? 생명의 불씨를 만들어내는 분들이다. 생명의 불을 피워내는 인재가 필요하다. 예수님을 통해 생명의 불씨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생동안 믿음으로 봉사하라. 봉사는 섬기는 것이다. 나를 벗어나는 훈련이다. 나를 벗어나서 공동체를 섬길 때 내가 더 아름답게 빛난다. 누군가에게 존경받고 싶은가? 섬기는 삶을 지향하라. 그러면 존경의 대상이 된다.

②타자 공헌이란 말이 있다. ‘인생 상반기까지는 한 우물을 파라. 그리하면 그 분야에서는 뭔가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그 이룬 성공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라다시 말하자면 인생 후반기는 봉사정신으로 살라는 뜻이다. 머리가 희끗희끗 해 지는 데도 자랑할 것이 돈 밖에 없는 사람은 결코 잘 살았다고 말 할 수 없다. 삶의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스토리는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을 위해서, 또는 사명을 위해서 손해 본 흔적이 있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인생 스토리는 손해의 기록이다.

세상은 받는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행 20:35에서 주는 것이 복있다고 한다. 여기에 비결이 있다.

③한 어린아이의 도시락이 장년만 5천명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를 남겼다.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이다. 자신의 것을 드렸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절대로 자기 것을 남에게 주지 않는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자신의 점심 도시락을 아낌없이 내려놓았다. 여기서부터 기적의 불씨가 시작되었다. 기적의 불씨는 섬김에서 시작됐다.

④코로나 팬데믹을 보내면서 우리 교회가 아주 많은 사역들을 해왔는데,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역이 있다. 주일 아침 김밥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성도들에게 제공하고, 교회에 오시지 못한 분들에게 가져가실 수 있도록 섬겼다. 김밥 한 줄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본다. 교회에서 먹는 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식탁공동체는 예수님께서 만드신 제도이다. 김 밥 한 줄은 사랑의 표현이었고, 살아있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전해주는 통로가 되었다. 교회는 섬김의 불씨를 통해 하나 된다. 이것이 천국이다.

⑤초대교회 예배는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만찬과 밥상공동체를 예배에 포함시켰다. 밥상공동체는 예수님이 만드신 제도이다.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예배이기 때문에 밥은 예배를 드리는 과정이다. 교회가 코로나 이후 더욱 밥상 공동체를 잘 베푸는 것은 교회를 하나로 모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외로움, 고립감, 관계 단절에 지쳐 있다. 이분들에게 예배를 통해서 마음의 문을 열고, 밥상공동체를 통해 서로 하나 되게 할 때 코로나 이후를 극복할 수 있다.

 

(2)기도와 전도와 선교의 불을 옮기는 한 사람이 되라

①예수님의 세계선교전략은 12명의 제자들이였다. 직업을 보면 어부가 가장 많다. 변두리 인생들이다. 학벌도 어학도 평균치에 아주 떨어진다. 제자가 될 그런 스펙이 아니다. 그런데 주님은 12명을 부르시고 36개월 동안 천국복음을 몸으로 가르쳤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승천하신 후에 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의 불을 경험하고 사명자로 강건하게 세워졌다. 그리고 갈릴리 출신의 볼품없던 인물들이 유대사회를 뒤집어 놓았다, 그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고 유대를 넘고 사마리아를 넘고 땅 끝으로 그 불이 퍼져갔다.

②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나자 성도들이 흩어졌다.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순교했다. 그 여파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다. 오히려 박해를 통해서 복음이 예루살렘을 뛰어넘고 유대를 뛰어넘고 사마리아를 뛰어넘고 열방으로 가는 계기가 되었다.(8:6).

③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교회는 어떻게 길을 찾아가야 하는가? 교회마다 삶의 자리는 다르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있다.  교회가 축소지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기도하면서 전도와 선교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전도와 선교가 살아나면 기쁨이 회복된다. 기도의 불, 전도의 불을 옮기는 한사람이 필요하다. 존 웨슬레 한 사람을 통해서 감리교가 탄생했다. 이성봉 한 사람을 통해서 전국에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사들이 세워졌다. 문준경 전도사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문준경 전도사로부터 전도의 불이 옮겨지면서 전라도 신안 일대의 교회가 세워졌다. 민족을 살리는 위인들이 태어났다. 부모가 기도하고 전도하면 자녀에게도 전도의 불이 임한다.

④한사람의 믿음, 헌신, 눈물, 기도, 전도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을 통해 30, 60, 100배 열매로 이어진다.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라. 세상이 어둡다고 세상을 탓하지 말라. 당신이 세상을 비추는 한 사람이 되라. 영적인 세계는 불의 세계다.

주의 나라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면 불을 옮기는 사람이 있고, 불을 꺼뜨리는 사람이 있다불을 옮기는 사람이 되라. 기도의 불, 전도와 선교의 불을 타오르게 하는 한 사람이 되라. 존 낙스 한 사람의 기도는 600만 대군보다 더 강하다고 했다.

지금보다 5년 후가 더 좋은 교회, 더 좋은 가정, 더 좋은 일터, 더 탁월한 인재가 되고 싶다면 오직 하나 주님께 기도와 전도의 시간을 받치라. 그러면 지금보다 5년 후 더 좋은 교회와 인재가 된다. 세상을 탓하지 말고 세상의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라.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가. 내가 불이 되면 주변을 태운다.

 

(3)소망의 불을 옮기는 한 사람이 되라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희망은 절망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다. 소망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생각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다. 성삼위 하나님은 소망을 불붙듯이 주기를 원하신다.

민수기 14장 가데스바네아에서 모세는 12명의 정탐군을 가나안 땅에 보냈다. 10명의 정탐군들은 그 땅을 보고 와서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올라가서 능히 그 땅을 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하다. 그들은 거인들이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고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 외쳤다. 한 순간에 소망을 잃어버리고 공동체가 절망에 빠졌다. 그 결과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은 40년을 광야에 돌다가 죽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소망의 불씨를 붙였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14:7-9).

소망의 불을 옮겨라. 소망은 불이다. 내가 소망을 말하면 옆 사람에게 소망이 전달된다. 예수님이 한 번도 부정적, 절망적인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공동체에 절망을 옮기는 사람이 있고 소망을 옮기는 사람이 있다.

결론이다. 한사람 아담을 통해서 죄가 찾아왔고, 죽음이 찾아왔고, 어둠이 찾아왔고, 사망이 찾아왔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사람 아담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이 찾아왔고, 구원이 찾아왔고, 천국이 찾아왔고, 소망이 찾아왔다.

우리는 어둠과 빛, 죽음과 사망, 천국과 지옥, 절망과 희망, 중에 무엇을 만들어내는 길을 걸어 갈것인가? 우리가 항상 고민해야할 지점이다. 성경의 역사나. 인류의 역사를 보라. 민족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일터를 살리는 한 사람을 통해서 기적을 이루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담임,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담임,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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