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따라 걷는 인생길 순례길_유근희목사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13:1-3)


 

●말씀 묵상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13:1~9)


 

왜 인간에게 고통이 닥치는 걸까? 왜 온갖 재난과 참사가 세상에 일어나는 걸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종교적이고, 신학적이며, 철학적으로, 더 나아가서는 과학적으로 접근해 왔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난제이다. 그 누가 속 시원하게 간단명료한 해답을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각기 나름대로 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해답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오늘 우리가 묵상하려는 누가복음 13:1-9 말씀이 그중 하나로서 예수님께 그 해답을 요청하게 된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1)

이 사건의 배경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성경 어디에도, 다른 어떤 기록에도 이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로마 속국인 유대의 총독 빌라도가 매우 잔혹한 통치를 하였으며, 제정 로마에 항거하는 유대인들, 특히 과격한 갈릴리 혁명당원(6:15, 공동)들은 무력항쟁으로 조국 독립투쟁을 벌이곤 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아마도 유대인의 대명절인 유월절을 앞에 두고 거사를 준비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온 혁명당원 몇이 성전에 들어가 희생제물을 바치려는 순간 총독 빌라도의 특전대가 급습하여 그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피를 희생제물에 뿌렸던 것 같다. 이방인들이 들어가서는 안되는 성전 제단에 침입하여 살해한 이 참사는 불경죄까지 더해서 유대인들, 특히 같은 갈릴리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예수님을 비롯해서 그를 따라 예루살렘 순례길에 있는 제자들과 그곳에 모인 무리의 대부분이 갈릴리 출신이 아니었던가!

어떤 동기와 목적으로 그 참사를 예수께 말씀드렸는지 누가는 밝히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같은 갈릴리 출신으로 공분을 나누고자 했을 수도 있고, 또한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가고 있는 예수께 무엇이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경고 함과 동시에 의분을 격동시켜 차제에 메시아 위력을 발휘하여 로마를 무찌르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속셈을 꿰뚫어 보신 예수께서는 달리 말씀하신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2-3)

그들은 이 참사를 그(희생자)들의 죗값을 치른 것, 곧 하나님의 심판으로 믿고 예수의 인준을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들도 흔히 가지는 인과응보 사상이다. 욥의 세 친구의 신앙이며(4:7), 구약성경 신명기적 신학이기도 하다. 율법에 순종하고 선을 행하면 여호와께 축복받아 현세에서 번영하고, 거역하면 저주와 천벌이 내린다는 신앙, 곧 번영 신앙의 표출이다. 이런 신앙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남들이 참사를 당하면 죗값이고, 내가 당하면 사고전화위복이 될거로 생각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9:1-3, 공동).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즉시 그 소경을 고쳐주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9:6-7, 공동).

누구 탓이고, 누구 죄 때문인가? 그야 물론 나 아닌 다른 사람들, “저 죄인들때문이지! 예수님께서 다른 하나의 예를 말씀하신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4-5)

이 사고 역시 다른 어떤 문헌에도 언급이 없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벌어진 참사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예루살렘 순례길에 있는 예수님의 교훈으로 기록한 누가의 특수 목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역시 죗값을 치르게된다는 인과응보 사상을 반박하시는 예수님의 교훈이다.

예루살렘 성은 지대가 높아 식수조달이 원활치 못했다. 그래서 성 밖 근거리에 있는 실로암큰 연못에서 물을 끌어다가 식수난을 해결하였다. 구름다리식으로 수로를 가설했기 때문에 자주 보수공사를 해야 했다. 어느 날 로마 총독 빌라도가 유대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대대적인 수로 공사를 벌렸는데, 그 공사 비용을 예루살렘 성전 금고에서 지불하도록 해서, 이때도 유대인들의 공분을 샀다.

그 수로를 파수하기 위해 높은 망대를 세웠는데, 빌라도에게 앙심을 품은 유대인 인부들이 부실 공사를 하였고, 그 망대가 갑자기 무너지는 바람에 현장의 인부들 18명이 치어 죽는 대형 사고가 생긴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 사고를 예로 들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때 거기서 압사한 18명도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믿고 있는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런게 아니다라고 교훈하신 것이다. 물론 죄인들에게 심판이 내려질 수 있지만, 죄인을 낱낱이 죽이기로 들면 이 세상에 남아날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인즉, 그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것은, 왜 이런 참사와 재난, 고통이 닥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저 인간들이 그런 참사를 당해 마땅한 어떤 짓을 했는가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 깔린 생각은, ‘그들이 죄를 지은 까닭에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신 것이다.’ 대형 참사나 재난, 또는 역병이 번질 때마다, 인과응보와 하나님의 심판론을 들먹인다.

가령, 얼마 전 세월호 침몰을 놓고, 한국의 대형교회의 유명 목사 중에 하나님이 배를 엎으신 것이라 설교한 분들이 있고, 최근 코로나COVID-19온역이 교회를 핍박한 중국 공산당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재앙이라고, 또한,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도양의 (대지진과)쓰나미는 무슬림 국가 인도네시아를 하나님이 친 것이라는 등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저 인간들을 정죄하고 단죄하였다.

미국에서도 Robertson, Piper등 주로 보수진영의 유명 목사들이 (Haiti의 대지진은 선조들의 죗값을 치룬 것으로), 9/11 테러, 카트리나 폭풍우 등 재난이 닥칠 때마다 동성애자, 낙태 수술 등을 인정하는 미국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라 선언했다.

오늘의 본문에서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죽임을 당한 그 사람들의 죄가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있는줄 아느냐.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를 두 번 반복하신다. 앞에서는 그들의 죗값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시고, 뒤 문장에서는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 말씀을 애매모호하게 해석하고 여전히 인과응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회개하지 아니하면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데 있는 것 같다. 여기 예수께서 강조하신 회개무엇을 회개하라는 걸까? 막연하게 죄를 회개하라고 하면, 세상천지에 죄짓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아이구, 죽지 않으려면 회개해야겠다!’라는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막연하고 일반적인 회개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이고 특정한 잘못을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회개란 원어 메타노이아뉘우친다’ ‘돌아선다’ ‘바꾼다’ ‘변화한다등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여기 예수께서 강조하신 회개란 타인을 단죄하고 정죄하는 독선self-righteousness, 하나님 행세하는 위선과 외식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저 인간들은 죽을 짓을 했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사고방식의 자칭 의인 의식(독선)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예수께서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라고 하셨지, “다 이와같이 죽으리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망한다죽는다는 거의 같은 뜻이지만, 망한다는 육신적 죽임보다 상징적이고 영적인 망함하나님과의 관계성 상실’, 하나님에게 내침 당함을 뜻한다. 이런 비극을 적절히 표현한 예수님의 경고가 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7:22-23, 표준).

불법을 행하는 자,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 노릇’, 하나님 행세한 것이 아닐까? 예수님께서 이 교훈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비유를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어 놓고,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해서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해서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찍어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 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6-9, 표준)

이 비유를 전통적으로는 우화법을 적용하여,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과원 지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무화과나무가 회개하고 열매를 맺어야만 찍어버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그럴법한 해석이다. 그러나, 앞에서의(1-5) 담론과는 어울리지 않는 해석이다.

예수님의 거의 모든 비유가 그렇듯 이 비유 역시 신비적이다. 직설적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비유 사용의 의도를 밝히셨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8:9-10, 13:10-13).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넌지시 엿보이는 예수님의 비유는 단 한 가지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영적해석이라며,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우화적 해석만을 고집할 일도 아니다. 시대와 문화적 여건의 변천에 따라 비유의 해석(방법)도 변화되어야 한다. 앞에서(1-5) 누구에게 무엇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너희도 이와같이 망하리라고 예수님께서 경고하셨는지를 유념하자.

하나님 행세하는 독선, 위선, 외식을 회개하라고 하셨는데, 여기서는 무화과나무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걸까? 아니다. 과원지기가 마음 바꿀 것(회개)누구에게요청하는지를 주목하라.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포도원 주인에게 회개(변화)를 촉구하지 않는가!

그들, 예수께 질문한 자들, “저 인간들이 자기들의 죗값을 치른 거지요?”라고 예수께 다그치듯 질문한 그들이 바로 포도원 주인이다. 각종 비극의 피해자들을 탓하며 비판하고 찍어버리라고 외치는 그 포도원 주인을 보라. 그 나무가 찍혀 마땅한이유인 즉, 그들에게서는 무열매, 죄악, 미련, 게으름, 인종, 피부색, 성적지향, 빈곤, 이민자, 소수자, 중독자, 실수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땅만 버리는나무다. 이런 이유로 찍어버리라라는 저주와 심판을 내리는 포도원 주인은 (자비로우신)하나님이 아니라 (남의 허물만 보는) 우리들, 바로 나와 너인 것이다.

우리의 기준에 맞지 않는 나무는 찍어버리려고 거침없이 도끼를 휘두르는 우리들의 오만과 독선을 생각하라. 열매 없는 나무는 재고의 가치도 없다. 희망이 없다. 이미 죽은 나무일 뿐이다. 이런 독선이야말로 주님의 이름으로하나님 행세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러한 독선을 회개치 아니하면 너희도 이와같이 망하리라.”

그러나 과원지기는 믿음의 눈으로 그 나무를 본다. 희망을 본다.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독선으로 찌든 포도원 주인 행세하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도록 권한다. 아집과 편견으로 흐려진 안목을 닦아내기를 요청한다. 참사의 피해자들을 탓하지 말고, 도리어 그곳으로가서, 그들을 섬기라고 권한다. 그리고는 과원지기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토양을 두루 파서 바꾸고, 더럽고 악취 나는 분뇨 거름을 손수 듬뿍 뿌린다.

이 과원지기야 말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이 아닐까? 이 과원지기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 그 어떤 비극이 닥쳐도 좌절하거나 원망하거나 탓하지도 말고, 과원지기를 따라 힘차게 걸어가자. 그런데, 이 비유의 끝맺음이 아리송하다. 그 포도원 주인이 끝까지 고집하여 그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렸는지’, 아니면 마음을 바꾸어(회개) 과원지기의 권고를 따랐는지, 또는 그 무화과나무가 다음 해에는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 happy ending을 이루었는지

그 결론은 오늘 우리 각자가 내려야 할 몫이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1. 인과응보사상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

2. 예수님의 비유 이해에 있어 우화적allegory해석방법을 사용할 때 범하기 쉬운 과오는 무엇일까?

3. 매 없는 무화과나무비유의 끝맺음(결론)을 어떻게 내리겠는가?

 

●기도

 

내가 잘못하면 실수지만, 남의 잘못은 큰 과오요 로 정죄하는 독선과 (약자들에게) 하나님 행세하려는 오만함을 범하고 있지 않는지 자성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하자.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