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천국이나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마 대다수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 싶은데요.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A. 그래요. 많은 사람이 막연히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양심대로 살면 된다.”
“악한 일을 안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한 일을 더 많이 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해 주실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안 주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죽어도 천국 간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인간 편의주의적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법은 하나님이 세운 법에 의하여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
세상에서도 내가 만든 법이 나라의 법보다 우선되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만든 법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늘 내 편의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생각들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자기 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불공평하게 어느 누구의 편만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조그만 죄라도 지으면 그 죄의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아주 공평하고 누구를 봐준다는 것이 없습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착한 일을 했으니 그것으로 다른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은 교활한 인간의 생각입니다.
Q. 그러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인간을 보다 잘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는 말이겠네요.
A.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형벌을 받는 것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므로 어릴 때부터 우리는 많은 죄를 짓습니다. 아기가 얼마나 자기만 위해 달라고 보채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누구도 죄를 비껴갈 수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다 같습니다. 언제나 죄를 지을 수 있는 여건만 되면 죄를 짓게 됩니다. 만일 지금은 죄를 안 짓고 있다 해도 언제 어느 때 나도 모르게 죄에 휩싸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죄책감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죄를 다른 착한 일을 함으로 보상받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진실하게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그것이 무너지면 자포자기 상태로 죄악을 먹고사는 형편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선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은 죄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적당히 넘어갈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은 죄에 대해 결과와 책임을 분명히 물으십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죄에서 제외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한 법은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23)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피를 흘려야 하고 죄의 값으로 죽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심판의 이유는
선을 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죄를 지었기 때문에
Q.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에 다 죽어야 하고 멸망 받아야 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A. 그럴 수도 있지요. 너무 무서운 하나님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런 인간을 왜 만드셨는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또한 그렇게 해서 끝이 난다면, 하나님은 아주 잔인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의 행함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청산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누구든지 예수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고 인정하면 그 순간 우리의 죄는 용서받게 되며 십자가에서의 죽음의 효력이 드디어 나에게 발생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일 외에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런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은 착하게 살면 얻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어야 얻게 됩니다. 천국은 선한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서 2장 8절~9절)."
이것이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점입니다. 다른 종교는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강조합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고 오직 예수님이 이루신 그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이 완벽하고 안전하죠. 내가 이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구원받는 것은 마음이지 나의 행동차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천국은 선한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간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그것은 쉽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80% 이상이 마음으로 용납이 안 되어서 예수님을 믿지 않거든요. 아주 간단한 문제인데도 그것이 안 됩니다. 이렇게 보면 구원은 아주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마음이 강퍅해져 있고 교만한 사람에게는 더욱 힘들지요.
Q. 천국 안 가도 큰 문제가 없지 않나요? 죽은 이후의 문제인데... 정말 천국이 있다고 보장을 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누가 천국을 갔다 온 후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A. 만일 만나는 사람에게 “천국과 지옥 중 어느 것을 원하십니까?” 하고 물으면 그 누구도 지옥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종종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합니다.
“나는 천국에 관심이 없다.”
“그런 것은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죽으면 그만인걸.”
“천국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지금이 문제이지.”
“천국이 좋으면 당신이나 가고 나에게 강요하지 마라.”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아주 무책임한 말입니다. 정말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솔직하게 물어보면 아무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모르거나 천국이 눈에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좋지 못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이치에 합당한 말을 해도 그것을 거부하고 무가치하게 보려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사람의 심리가 무조건 반대하고픈 생각으로만 똘똘 뭉쳐 있기 때문에 말을 쉽게 하거나 함부로 합니다.
가끔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나 좀 죽게 내버려 둬요. 내가 죽든지 말든지 당신이 무슨 상관이에요? 죽으면 그만인데…….”
“나 지옥 갈 거예요. 그러니 제발 귀찮게 하지 말아요.”
사람이 너무 화가 나면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쉽게 내뱉습니다만 누가 이런 말을 사실로 믿겠습니까?
Q. 그렇죠. 말은 그렇지만 사실 지옥에 가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있겠어요? 제 생각에도 없다고 봅니다. 그것이 의도적으로 거부하고자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의외로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생각하면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A. 맞아요.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시작이 있으면 분명히 죽는 끝도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선하고 착하게 살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자기 것을 손해보면서 남을 도와주며 사는 것이 아주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이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데 그런 것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렇게 할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다.” 이는 천국이 없다면 아무렇게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기분에 끌려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즐길 것 다 즐기고 악한 일을 행하며 살다 간 수많은 악한 사람이 더 현명한 생애를 산 것이 됩니다. 이 세상이 끝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많은 사람은 지금도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말로는 하나님과 천국을 부정하면서도 실제로는 양심대로 살려고 애쓰고 가능한 한 이웃을 도와주고 착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내세가 없는데, 천국과 지옥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평생 동안 악한 일만 한 사람이 죽을 때는 착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장기를 기증하고 사형장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비록 천국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모든 사람이 내세를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도 아무렇게나 살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죄를 짓기로 작정하고 죄를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는 가장 좋은 증거가 됩니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말고 진실하고 새롭게 생을 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며 그 이후에는 분명히 우리가 살아온 것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것을 그냥 두고 넘어갈 리가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합니까? 선하게 살다가 애매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그대로 묻혀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공평한 세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렇게나 기분 내키는 대로 인생을 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한 뜻과 목적이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라 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곧 죽은 이후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이 있다는 사람과 없다는 사람의 삶은 이 세상에서도 완전히 다릅니다. 천국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 의미 있고 진실되게 살려고 하고 천국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그냥 그럭저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동물처럼 먹고 마시는 일에만 매달려 살아가게 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장 27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