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에 로마 카톨릭교회의 부패한 모습을 외치며 성경으로 돌아가는 교회를 외치며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금의 개신교회가 개혁정신을 잃어버리고 다시 로마 카톨릭교회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유럽의 모든 교회들이 한결 같이 위기를 맞이하며 이제는 교회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있다.
왜 종교개혁의 본산지 서구교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을까? 그 원인은 사람마다 다양하고 복잡하다. 어디서 문제가 되어 이렇게 되었는가? 그 본질을 모르기에 해법 또한 명료하게 찾지 못하고 있다. 유럽교회를 무너지게 하고 미국교회와 이제는 한국 교회까지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는 거대한 영적흐름의 본질은 무엇이며 이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교회 외부의 환경 탓일까? 아니면 교회 내부의 문제일까? 모두 영향이 있겠지만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해법은 교회 내부에 있다. 바이러스를 이기는 길은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면역력을 키우는 길이다. 백신을 맞아 외부의 바이러스를 이기는 몸으로 강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개혁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유럽교회와 지금 한국교회를 무너지게 하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헬레니즘이다. 예수의 복음을 받은 초대교회가 얼마가지 못하고 무너진 원인은 당시 세계를 지배한 인본주의 헬레니즘으로 초기 기독교를 셋팅한데서 비롯되었다. 구약부터 내려온 예수언약의 매뉴얼을 따르기 보다는 이방의 헬레니즘 문화를 교회 옷으로 입혀서 기독교를 세운 주역들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초대교부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교회를 왜곡하게 만든 주역은 로마가 기독교 공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방 방식과 외적인 건물교회로 교회이미지가 바뀌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1500년 동안 지속됨으로 그것이 교회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결정적인 요인은 그때 만들어진 초기 교회의 옷이 성경적 방식이 아닌 인본주의 헬레니즘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그것을 수술 하지 못하고 500년을 지내 오면서 유럽교회는 힘을 잃었고 그 방식을 그대로 이어온 한국교회도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헬레니즘화된 교회는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는 교묘함이 있다. 서서히 무너지는 방식은 보통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가만히 들어온 포도원의 작은 여우와 같다. 오랫동안 교회가 함께 하다 보니 이제는 헬레니즘 방식이 친구처럼 되어 그 문제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정당화한 중심세력이 신학이며 신학교다. 신학교는 거의 헬레니즘화 되어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모두가 위기라고 외치지만 정작 해결의 방법에서는 무기력하다. 왜 그럴까?
이미 헬레니즘으로 옷을 입은 익숙한 상태를 벗어 버리는 것은 거의 힘들다. 신학교, 교수, 교회, 목회자, 평신도 등 모두 헬레니즘으로 오랫동안 옷을 입은 상태이기에 이것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일은 사람의 힙으로는 힘들다. 여전히 죄악 된 자아가 그것을 즐기고 있고 그 안에서 해왔던 헬레니즘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오랫동안 입었던 익숙한 헬레니즘 옷을 벗어 던질 힘이 없다. 새 부대가 필요한데 여전히 옛 부대를 고집하고 있다. 곧 있으면 부대가 터질 상황인데도 바꿀 의지가 없다
아니 바꾸고 싶어도 그것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방법이 생각이 안난다. 그래서 문제를 알지만 여전히 그 방식을 따르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지금의 교회구조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의 예배와 설교와 성경공부와 교육의 방식이 문제가 있는지 안다. 문제는 그것이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대로 간다. 왜 그럴까?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드릴 자세가 부족해서다.
이렇게 보면 지금은 방법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모두가 예수와 복음을 외친다. 문제는 그것을 전달하고 삶으로 풀어내는 방법이 비성경적이고 비인격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하나씩 헬레니즘화 된 방법을 성경적인 방법으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교회개혁과 신앙개혁은 이것을 하나씩 실천하고 행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물론 여기서 행함은 자기 포기와 죽음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기득권과 지식과 경험과 인기를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힘들기에 지금 위기가 있는 것이다. 먼저 지도자부터 이것을 안식하고 말씀으로 돌아서는 회개가 일어나야 한다.
제 1의 종교개혁은 복음의 본질의 개혁이었다. 제 2의 종교개혁은 본질을 이루는 방법의 개혁이다. 물론 본질과 방법은 같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방법개혁은 처음 종교개혁을 다시 개혁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의미가 있다. 믿음과 행함이 동일하듯이 본질과 방법은 서로 같은 것이다. 방법개혁의 대상은 헬레니즘이다. 로마교회를 타락하게 한 숨은 뿌리는 헬레니즘이다. 종교개혁자들조차도 로마교황과 로마교회를 타락하게 한 원류인 헬레니즘까지 인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루터와 칼빈 조차도 이미 헬레니즘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것을 문제제기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 우리 속에 중심이 된 인본주의를 위장한 헬레니즘화 된 신앙과 교회의 삶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성경방식으로 바꾸는 작업이 각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것을 위해 모여 말씀을 상고하고 우리가 돌아갈 그 원형교회를 사모하는 일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