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개혁】 예배의 관객이 된 성도

  • 입력 2022.11.0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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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목적과 도구화 된 예배에서 오직 하나님이 즐거워하는 예배로

이대희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 "크리스천 가이드"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되새김 120일 쉬운 통독"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이대희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 "크리스천 가이드"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되새김 120일 쉬운 통독"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헬레니즘 방법에 물든 예배 방식

우리가 드리는 지금 예배는 성경의 예배 모습과는 거리가 있고 대부분 헬라철학 방식을 닮았다. 예배는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사건이다. 예수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는 신비의 체험이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나님과 사람, 하늘과 땅. 천국과 이 세상, 사람과 사람, 세상과 인간이 서로 화목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예배로 세대가 통합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편의에 의해 예배를 나눔으로 공동체성이 사라지고 개인적인 예배가 되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예배 모습을 그려보자. 1인 중심의 설교. 사람보다 강단 중심의 불통구조, 성경자체 보다는 입맛에 맞게 인본주의로 재구성된 말씀, 일방적 전달. 성도의 교제의 결핍. 너무 짧은 설교시간, 나눔과 성경읽기의 부재, 예배를 마치면 밀물처럼 빠져나가는 교인들의 모습은 성경과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예배의 모습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지금 우리의 예배당과 예배 의식은 대부분 헬라철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술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내용은 복음이고 예수인데 방식은 인본주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대부분 예배를 1.2, 각 세대별로 분리하여 드리고 있다. 우리의 예배와 교회공동체가 힘을 잃게 된 것은 1부와 2부로 세대별로 예배가 분리 되면서 부터였다. 예배가 분리되면서 부터 신앙과 삶의 분리가 가속화 되었고 한국교회 부패가 일어나게 한 요인이라 본다. 왜냐하면 1.2부 예배는 몸 된 교회 공동체를 균열시켰고 예배의 본질을 훼손했다. 이것은 중대형교회를 중심으로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일어났고 그렇게 한 가장 큰 목적은 예배보다 교회성장의 목적에 있었다. 이때부터 예배의 순수성이 상실되고 인간의 목적에 예배가 도구화 되면서 신령한 예배가 힘을 잃게 되었다. 많은 교회가 이런 예배를 꿈꾸며 무리하게 예배당건축에 집중한 것이 1990- 2010년까지 한국교회의 모습이었다.

이쯤 되면 예배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비성경적인 헬레니즘 방법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보여준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교회가 헬레니즘 방식을 도입하게 되었는가? 이런 모습들은 기독교와 유대교가 단절된 이후 2세기부터 교회를 형성한 헬레니즘 산물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성경적 검토가 없이 그대로 도입하여 마치 카톨릭 전통을 성경적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방식과 틀의 개혁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깊은 영향력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이라도 다시 우리의 예배를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교회가 유럽처럼 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개혁을 이루지 않으면 어느 날 한순간에 건물만 남는 유령교회가 될 수 있다.

 

예배의 개혁 없이는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아

 

 

나는 어떤 예배를 드리는가?

우리는 매주 마다 드리는 예배당의 예배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예배에서 나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인가? 혹시 최상의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입장은 아닌지? 그래서 보다 더 나은 감동과 은혜를 주는 예배 시스템을 갖춘 교회를 순례하는 사람은 없는지? 실제 지금 우리의 예배는 우리가 관객석에서 예배를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마치 예배를 드릴 때 공연을 보는 것처럼 관객처럼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배를 나의 만족을 얻어야 되는 것처럼 도구로 생각하기 쉽다. 예배는 오직 주님께 드려지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이 역할을 바꾸지 않으면 진정한 예배가 되기 어렵다.

무엇이 예배를 새롭게 하는 것일까? 그동안 대부분 교회와 성도들은 아무 생각 없이 전통적인 예배를 당연히 드려왔다. 예배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원형을 찾기 보다는 지금 사람의 관심에 맞춘 예배 방식을 적용했다. 한때에 한국교회가 전통적인 예배가 지루하게 느껴져 젊은이 중심으로 열린 예배와 찬양을 중심한 예배를 드렸다. 마치 극장 무대에서 콘서트처럼 예배 전에 찬양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청중의 참여보다 찬양팀에 의해 성패가 좌우되는 예배모습이다. 찬양을 함께 부르지만 청중이 수동적인 점은 같다. 미국의 실용주의 예배방식을 따른 것이지만 사실은 오래전 인본주의 헬레니즘 뿌리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 속에 은연중에 자리 잡은 헬레니즘화 된 예배방식이 없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치 헬라 로마 시대에 원형극장에서 공연을 보면서 즐기던 방식을 우리 예배당에 들여온 부분은 없는지, 예배를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면서 예배당과 예배를 기획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배와 설교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식보다는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인본주의 요소가 지배하는 부분을 경계해야한다.

 

하나님 음성 듣기 보다는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알고 있는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사람의 만족도를 채우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권위와 말씀의 절대성과 존엄성이 사라질 때다. 예배는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거룩함을 선포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드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예배를 교회성장과 전도 중심으로 갈 때 예배의 정신은 사라진다. 이것은 예배를 도구화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예배의 거룩성은 사라지고 혼합화가 시작된다, 예배는 주님을 영접한 자녀들이 영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최고의 순간이다. 구원 받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도구화된 예배를 조심하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번에 나오는 질문은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인가?“ 이다. 이것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일이다이다. 이것은 십계명 1-3계명의 내용을 그대로 풀어낸 것이다. “하나님 이외는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심지어 하나님을 위하여 새긴 우상조차도 만들지 말고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나님 자신 이외의 것이 목적이 되면 안된다. 그런데 대부분 신앙은 이 기본기에서 무너진다.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예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예배하면서 가장 위험한 것은 예배를 도구화 하는 일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헬레니즘방식이다. 예배를 전도와 교회성장의 도구라든지.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몸을 치료하는 것이라든지, 사람을 만나고 교제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순간 예배자체의 힘은 사라진다. 그런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 이런 예배는 신령하지 못하고 진실성에서 문제가 있다. 예배를 나의 필요를 얻기 위한 도구가 되는 순간 하나님은 예배를 받지 않고 얼굴을 외면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을 인간의 도구로 삼는 것으로 우상숭배에 해당된다. 혹시 우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나의 만족을 채워 주는 우상으로 생각하며 예배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배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나를 구원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예배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다(100) 이런 예배는 삶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 수가성 여인이 우물가 예배에서 예수님을 만나자 전도자로 변화된 것처럼...

오직 하나님 한분을 높이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으면 그것은 가인의 예배가 된다. 예배는 오늘 나의 신앙을 점검하는 바로미터다. 예배하는 것만큼이나 더 중요한 것는 어떤 마음으로 예배하느냐이다. 우리 모두 예배 중에 정신 차려 조심해야 할 점은 예배의 목적이 하나님에서 나로 바뀌는 것이다. 예배가 하나님 자체가 아닌 수단으로서 프로그램과 전도행사가 되거나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축하하는 것으로 변질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 속에 이것을 과감히 제거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배를 자기의 목적을 이루는 집회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죄를 쌓는 악한 행위가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예배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거부하신다. 어쩌면 하나님에 대한 많은 설명과 달변의 설교는 오히려 믿음에 방해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기에 많은 설명이 더해지는 순간 오히려 본질에서 떠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의 설교를 보면 성경 내용을 단순하게 전했다.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목적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

우리에게 있는 위험한 현상은 신앙을 도구화 하는 것이다. 구원과 영생조차도 하나님 보다 우선될 수 없다. 영생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니다.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예수 이름을 부른다면 그것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성경은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나님이 임재하는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바알숭배나 아데미 신전 예배는 신의 이름을 수백 번 하나된 목소리로 반복하여 부른다. 그러다 보면 거기에 신비로운 힘을 느낀다. 웅장한 건물과 신비롭게 치장한 성당에서, 또 많은 사람들이 모일수록 거기서 느끼는 감동과 은혜가 크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은 이 함정에 거의 빠진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초점이 있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세상의 것들로 느끼게 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들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작은 지하실 교회에서 느끼는 것과 수천 명 모이는 큰 장소에서 느끼는 시설과 사람들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면 내가 믿는 그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 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 누구도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가장 큰 증거다. 주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적인 하나님을 우리는 세상의 도구로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거나 증명하려고 시도한다. 과학적으로. 유명인이, 최고 재벌이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이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잘못된 믿음이 될 수 있다.

예배도 이처럼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을 만들고 연출하여 기획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동과 은혜를 받으려고 감성과 보이는 것에 너무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최고의 예배는 하나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 하박국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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