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예배당 건물, 누가 처음 만들었는가?
우리는 교회 하면 뾰족탑 건물을 연상한다. 어릴 때부터 본 교회 이미지가 지금까지 각인 되었다. 한번 패턴화 된 이미지는 평생 벗기기 어렵다. 너무나 당연시 하고 있던 교회당 건물을 아무리 교회가 아니라고 말해도 고정된 개념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예배당을 중심으로 교회를 생각한다. 이것이 한번 정해진 이미지의 힘이다. 이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수천 년 각인된 교회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성령이 역사하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진실탐구는 필요하다.
지금 같은 예배당을 정착하는데 기여한 사람은 313년에 로마를 기독교로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의 역할이 컸다. 그것은 어느 정도 초대교부들도 같이 동의한 일이다. 당시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보이는 건물이었다. 건물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예배당 모델을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리스 신전을 모방하여 만들었는데 그것이 로마교회의 성당이었다. 성당을 지을 때 그리스 신전처럼 크고 위엄을 주며 하늘을 향해 치솟는 뾰족탑을 만들고 내부는 높은 원형과 아치형으로 예배당을 세웠다. 당대 최고의 미술가를 동원해 그림을 그리고 최고의 인테리어를 했다. 성당 안에만 들어와도 신성한 것을 느끼도록 고안했다. 최고이신 하나님을 위해 최상의 것을 들여서 최고의 건물을 만들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모습은 지금도 로마에 가면 있는 유럽의 곳곳에 번져 있는 성당의 모습들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의 성전과는 아주 판이하게 다른 이방 신전을 닮은 예배당을 세워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건물교회로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보통 교회의 그림을 그리라면 높은 성당예배당을 그리면서 교회 모습을 왜곡되게 형성했다. 우리의 교회 주보 앞장에 대부분 교회 예배당 건물을 교회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모두가 그 영향을 받았다는 한 증거다.
이방 신전을 닮은
교회 예배당
지금 우리 교회의 예배당 건물과 회중석과 예배당의 구조와 교회 조직을 보면 종교개혁자들의 모토였던 성경의 만인제사장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같은 교회 구조는 교회의 몸 된 성도의 소통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불통을 이룬다, 이런 교회의 건물은 이방 신전의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음을 인지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필자도 오랫동안 그것을 당연시 여겼던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교회의 모습들은 어디서 온 것인지 출처도 잘 모르는 헬레니즘적인 모양들이 너무나 많다. 성경과 거리가 있는 세상의 모양들이 교회 속에 버젓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그것들은 은연중에 가만히 스며들어 우리의 가치관과 신앙과 문화에 뼛속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바알의 문화를 받아들인 것처럼 우리 교회에 들어온 세속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 교회가 모형으로 삼고 있는 출애굽기의 광야 성막은 외형으로 보면 아주 단순하고 소박했다. 지금 우리 교회 예배당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 지금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직접 고안한 이동형 성막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 아니다. 실제 성막은 외적인 모습보다는 내적인 거룩성에 치중하며 지성소의 하나님과 만남에 초점을 두었다. 지금이라도 말씀을 통해 교회 속에 들어온 잘못된 모양을 개혁해 나가는 것이 한국교회가 실천해야 할 과제다. 성경은 크기로 성공하는 교회가 아닌 작지만 세상 속에서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요구한다.
잘못된 예배당 이미지의 힘
바울이 전도한 로마는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했다. 놀라운 기적이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렇게 예수를 믿고 로마국교가 되는 축복을 주었는데 왜 로마교회는 세계 복음화에 힘쓰지 못하고 부패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할 것이다. 중세 로마교회가 천년동안 영화를 누린 핵심 키워드는 화려한 성당 건물이었다. 로마교회는 그것으로 성도들을 미혹했다. 그것이 신앙의 핵심이 아님에도 마치 그것이 신앙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하게 했다. 크고 화려한 예배당을 통해 신앙의 만족을 누리고 그것을 통해 세력은 자리를 굳게 세워 나갔다. 그 중에서 콘스탄틴 황제는 교회를 건물로서 교회로 각인하게 한 장본인이다. 주일을 공휴일로 정하는 일과 성당을 전국 곳곳에 세우는 일은 성경과 거리가 있었다. 정치적인 힘과 부를 가지고 교회예배당 건물을 화려하게 세웠다. 그 잔재들은 지금도 로마에 가면 예배당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얼마나 화려하고 크고 위엄이 있었는지 눈으로 보는 순간 압도를 당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당대의 유명한 미술가들을 동원하여 성전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까지 예술적으로는 최고의 작품이다. 특히 하늘을 향해 높게 솟아오른 뾰족탑은 보는 이로 감탄하게 했다.
이런 방식으로 교회를 건물로서 이미지를 각인시켜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만드는 데 힘썼다. 그렇게 1000년을 반복하여 성당으로 교회이미지를 심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니었다. 건물로서 화려한 교회를 만든 것은 모두 헬라신전의 모양을 본받은 것이다.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른 뾰족탑과 타원형 돔 건축과 둥근 기둥을 크게 세우는 방식등 대부분은 헬라신전과 흡사하다. 거기다가 입구에 마리아 상과 예수상을 세운 것은 헬라 신전에 남신상과 여신상을 세운 것과 같다. 지금 성당은 전형적인 헬레니즘 신전을 본받은 것이다. 교회 역시 대부분 그대로 이어 받아 그 결과 우리에게 교회는 철저히 건물로서 교회라는 등식을 갖게 했다. 이제는 개신교회 역시 좀처럼 그것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성경을 깊게 묵상하면 이런 방식으로 교회를 세우지 않았을 텐데 그것을 거부하고 이방 종교 신전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그 결과 교회는 건물로 인하여 교회부패는 가속화되어 역사적으로 많은 타락을 가져왔다. 그것은 건물로서 교회가 큰 역할을 했다. 이것은 성경과 멀어진 당시의 교회 모습을 거부하고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동인이 되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도 여전히 건물교회의 외적인 방식은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따랐다. 그것이 지금 한국교회까지 이어져 1500년 동안 세계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를 제기하지만 한번 패턴화 된 건물로서 교회상은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이다.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건물로서 교회가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안식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여전히 그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물로 인해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가속화되어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과 홍해를 통하여 구원을 체험했지만 여전히 애굽에서 몸에 밴 400년의 이방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은 힘들었다.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예배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지만 한번 몸에 밴 방식을 벗어 던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예배당의 문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1500년 동안 기독교의 상징물로 정착된 크고 화려한 맘모스 예배당에 사람들이 여전히 몰려드는 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 아닐까. 성경 어디에서도 예배드리는 장소로서 사용되는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지 않는데도 우리는 건물에 성전이라는 말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왜 그럴까? 성경에서 말하는 성전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성전인데 우리는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을 보면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아는 것을 행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