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개혁] 지금 우리의 교회예배당은 성경적 방식인가?

  • 입력 2022.10.24 12:32
  • 수정 2022.10.2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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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목사 “건물성전이 아니라 사람성전”

이대희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 "크리스천 가이드"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되새김 120일 쉬운 통독"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이대희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 "크리스천 가이드"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되새김 120일 쉬운 통독"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한국교회, 이제 방법을 개혁할 때다

다윗이 왕이 되면서 가장 먼저 행한 일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하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를 새 수례에 싣고 소들이 끌어 오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가 뛰므로 수례를 몰고 가던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는데 하나님이 진노하여 그가 죽었다. 그것을 보던 다윗이 두려워하며 다윗성으로 오는 것을 멈추고 오벧에돔의 집에 머무르게 된 사건이 사무엘하에 소개된다. 왜 웃사가 죽었는가? 그것은 다윗의 책임이 크다. 하나님의 궤는 짐승이 몰고 갈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메고 가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거룩한 궤를 짐승이 실고 간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언약궤는 물건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었다. 왜 이런 방법을 사용했을까? 그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게 사용한 것이었다. 성경에 제시된 방법을 사용해야 했는데 그것을 잊어버렸다. 하나님을 함부로 대한 무지와 불신앙이 웃사를 죽게 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치 시켜야 한다. 실제적인 방법은 하나님이 자세하게 매뉴얼로 알려주셨다. 그 명령대로 따라서 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이 아닌 인간이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되면 내용과 형식이 불일치가 일어나면서 본질이 약화된다. 원리왑 방법은 같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방법을 세상적으로 적용하면 나중에는 본질이 의미해진다. 방법을 보면 그가 얼마나 본질을 이해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것은 믿음과 행함과 관계로도 이해가 된다.

믿음과 방법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면 그것은 죽은 신앙이다. 방법은 원리에서 나온다. 방법이 생각나지 않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원리에 집중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방법을 많이 제시했다. 구약에 제시된 율법은 하나님의 방법을 제시한 메뉴얼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을 명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어기고 자기 방식과 가나안의 방법을 따라 살아갔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패망했다. 현재 우리 속에도 세상적인 방법이 은연중에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많다. 그것을 바꾸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기 힘들다. 오늘도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의 방식이 교회 안에 들어와 복음을 가로막고 있지 않은지 점검이 필요하다. 이제는 방법의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다윗처럼. 웃사처럼 법궤를 사랑하면서도 인간의 방법으로 사용한 잘못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의 개혁을 하나씩 결단하고 성경적 방법으로 전환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개혁이 어렵다.

그동안 우리는 말로는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수없이 외쳤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방법의 개혁에 무관심해서다. 방법을 개혁하지 않으면 진정한 복음으로 돌아설 수 없다. 잘못된 방법을 찾아 성경적으로 방법을 새롭게 할 때 진정한 개혁과 변화가 일어난다. 방법은 행함에 해당된다. 우리는 그동안 원리에서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반절의 개혁에 머문다. 하나 더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행함의 개혁이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리와 함께

방법도 개혁하자

지금 우리의 교회예배당은 성경적 방식인가?

중세 로마교회를 타락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은 무엇인가? 천년만년 누릴 것 같았던 거대한 로마교회는 힘이 없어 보이는 작은 저항자들을 통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교황권의 위기를 맞이하자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베드로 성당건축을 시작했다. 그리고 건축을 위한 재정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면죄부 제도는 교회가 넘어서는 안 되는 지점까지 도달한 불행의 역사였다.

로마 콘스탄틴 황제의 예배당 건축 열심으로 시작된 로마교회는 성경적인 출발이 아닌 정치적인 욕망과 잘못된 이교적인 문화와 연결된 작품이 많았다. 물론 세계의 기독교 전파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부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예배당 건축으로 시작된 로마교회는 베드로 성당이라는 예배당건축 욕망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건물로 세워진 교회의 마지막이 어떠한지를 그대로 보여 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개혁은 과거의 역사를 깊이 묵상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역사는 반복이다. 과거의 역사를 묵상하면 오늘의 개혁의 방향이 보인다. 타락한 사람들의 특징은 역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도 과거에 행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하나님의 교훈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오늘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순서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모토였던 근원으로 돌아가는 아드 폰테스(ad fontes)” 정신이다. 왜 이런 잘못된 일이 그렇게 오랫동안 자행되었을까? 그것은 성경에서 경고한 반복된 교훈을 상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뢰아 교인처럼 날마다 말씀이 그런가 하여 깊게 상고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늘 발생할 수 있다. 로마교회가 행한 범죄는 새로운 일이 아닌 이미 오래전 이스라엘의 남 유다의 멸망에서 그대로 나타난 반복된 죄였다. 지금의 죄는 과거의 역사교훈을 무시하고 상고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배당건축 욕망에

무너진 교회 역사

cathedrals-Sagrada-Familia-Barcelona
cathedrals-Sagrada-Familia-Barcelona

 

성경이 말하는 예배당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성전이 부패한 간략한 역사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것에 대한 문제점을 더 잘 알 수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거짓성전에 관한 성전설교 메시지(7, 26)는 당시 보이는 잘못된 성전신학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강력하게 책망하고 있다. 이것이 당시에 얼마나 중요했으면 성경에 두 번 반복해서 기록했을까? 생각이 든다. 이것은 후에 예수님이 예레미야의 성전설교의 내용을 다시 인용한 것을 보면 예수님 시대에도 역시 같은 맥락 속에서 이스라엘이 타락의 길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신앙의 타락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그대로 보여준다.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유대지도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 성전을 헐라고 말했던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타락한 유대지도자 들에게는 가장 걸림돌이 되는 메시지였다. 요한복음은 가나혼인잔치 이후인 처음 부분에(2) 이 성전 청결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이 성전 청결 사건이 유월절과 연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3번의 반복적인 내용은 결국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전청결사건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성전모독죄의 단서가 된다.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는 사건은 이제 성전의 의미가 건물에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연결됨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조직 중 하나였다. 로마 전체 제국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매년마다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성전에 올라왔다. 그들에게 성전세를 거둬들였고, 하루에도 수 천 명씩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희생제물과 헌물과 십일조를 통한 이윤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이른바 성전은 겉으로는 예배장소이면서 내부적으로는 중앙은행과 같은 부를 창출하는 곳이었다.

하나님과 맘몬을 같이 섬기는 곳이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특히 성전세는 20세 이상 유대인 남자라면 누구나 성전유지를 위해 1년마다 반 세겔(2데나리온)씩 내는 세금이었다. 특히 유월절 같은 명절에는 희생제물의 가격이 엄청난 가격으로 뛰어 올랐다.

<미쉬나>에 의하면 비둘기 한 쌍의 가격이 무려 25데나리온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비둘기 가격이 1데나리온인 것에 비하면 25배의 폭리를 취한 셈이다. 이런 배경을 감안 한다면 당시 성전을 통하여 얻는 이익은 대단했을 것이다. 이런 정황을 잘 알고 있었던 예수님이 성전에서 버젓이 상행위를 하는 비둘기 장사들을 쫒아낸 행동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심기를 건들인 예수님의 행동은 십자가에 죽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볼수 있다. 이것은 후에 스데반의 설교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7) 성전에 대한 내용은 스데반을 순교하게 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다시 이것은 바울에게서 더 명확하게 선포되고 있다.

 

성전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

 

서신서에서 말하는 교회란 무엇인가?

특히 바울의 교회론이라 불려진 에베소서를 읽어 보면 교회는 보이는 건물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가 곧 성령이 거하는 성전임을 강조한다. 바울은 당시 에베소의 보이는 거대한 건물인 아데미 신전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성령의 전인 사람성전을 말한다. 이것은 이방에서 추구하는 건물 성전이 아닌 성령의 전으로서 사람성전 건축을 의미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20-22)

바울이 1-4차 선교를 하면서 그가 세우고자 했던 성전의 모습이었다. 바울이 소아시자 지역을 선교 여행때 어떤 교회를 세웠는지 살펴보면 지금 우리 교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바울은 1-4차 선교여행을 통하여 그렇게 건축하고 싶었던 성전은 우리가 그렇게 소망한 건물 성전이 아니었다.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이미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이 지어준 것으로 무너져야 할 성전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것을 예언했고 결국 그것으로 인해 죽으셨다.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건물성전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성경을 읽을수록 분명하다.

 

건물성전이 아니라 사람성전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신 이유는?

건물 성전을 위해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사람성전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은 건물이 아닌 말씀을 사모하는 각 사람에게 임하셨다.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이제 성전이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아주 오래전에 이미 예레미야가 전한 메시지는 (7) 지금도 적용 된다. "지금 이 건물성전을 성전이라 말하는 그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것을 예수님도 그대로 전하다 죽음을 당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님을 건물을 위해서 일하게 해 달라고 얼마나 많이 부르짖었는가?

지난 1000여 년 동안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이 수고했는지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성령은 건물에 갇힌 분이 아니다. 온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위해 오셨다. 예레미야처럼 건물은 성전이 아니라고 외쳐도 그것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전히 그 건물성전 속에서 피난처를 삼고 있다. 이것은 우리 속에 건물성전 신앙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이라도 교회가 사람성전을 세워 온 땅에 가서 제자를 삼는 교회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한 교회를 세우는 방식은 중세 로마교회가 이방방식을 차용하여 뾰쪽탑 성당이미지로 교회를 셋팅한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경 어디에서도 없는 교회이미지가 만들어 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큰 교회. 작은 교회라는 이름도 모두 건물패러다임 속에서 붙여진 것이다. 큰 사람. 작은사람이 없다. 그가 가진 소유 보다 그가 누구인가에 크기가 결정된다. 사람의 크기를 가진 소유물에 의해 정해진 것은 세상방식이다. 교회를 존재보다는 소유로 본다면 그것은 세상 방식이다. 교회의 본질은 모인 사람들에 있다. 어떤 마음으로 모이는가가 교회의 정체성이다. 작은 수라 할지라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는 위대한 교회다. 세상 속에서 예수를 머리로 한 한몸된 공동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교회가 꿈꾸는 모습이다. 이것을 어떻게 역동적으로 구현하고 드러내느냐에 교회의 존재이유가 있다. 이렇게 할때 음부의 권세가 무너뜨리지 않고 성령의 전으로서 영원한 교회가 된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세상 나라의 건설이 아닌 하나님나라 건설을 목표로 한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닌 평강와 희락을 누리는데 있다. 이런 모습 보다 보이는 외형으로 교회가 규정할 때 교회는 힘을 잃게 된다. 그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방식이다.

 

교회를 외형적 크기로 구분할 때

교회는 힘을 잃어

 

예배당 교회개혁,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 다.

교회가 개혁해야 하는 일중에 첫 번째 일은 교회란 무엇인가?”를 즉 보이지 않는 본질을 보이는 방식으로 어떻게 드러내는가에 달려 있다. 이것은 예배당 건물을 포함한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사용하는 것을 전제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속된 것이 없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깊게 묵상하면서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을 찾아 사용하면 된다. 결국 원리와 방식이 하나 되는 것에 핵심이 있다. 하나님은 원리와 방식을 같이 보신다. 믿음과 행위가 하나 되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의 점검이 필요하고 그것을 개혁해야 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 세상방식이라면 그것을 제거하고 성경이 말하는 방식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구호요 외침이고 삶과는 관계가 없는 죽은 신앙이 된다.

예배의 장소가 얼마나 크냐?

모인 사람의 숫자가 얼마인가는 교회예배에서는 본질이 아니다.

성령으로,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얼마나 있으냐에

교회가 교회되고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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