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순례길_유근희목사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17:26-30)


말씀 묵상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17:20-37)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이는 바리새인들만의 질문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묻고픈 대단히 중요하고 심각한 질문이다. 그런데 언제라는 를 묻기 전에, 어떤 하나님의 나라를 뜻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 질문을 하는 바리새인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뜻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정통유대교 골수분자들은 메시아가 나타나서 수립할 하나님의 나라는 압제자 로마군을 무찌르고 다윗 왕국과 같은 강성대국을 수립하여 태평성대를 이루는 그 나라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자칭하는 나사렛 예수가 나타나 줄기차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메시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기적들, 가령 문둥병자들을 고치고, 심지어 죽은자까지 살려내는 일까지 실행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같기도 한데, 안식일을 범하는등 유대교 전통 법을 위반하고, 더욱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1:46) 하는 한탄과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 아닌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예수는 무력을 규합하여 거사를 일으킬 기세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를 지게된다고 말하니 이건 아닌데! ’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된 것이다. 결국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다그쳐 묻는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20-21, 개정)

 

이게 또 무슨 소리야? 아리송한 대답으로 점점 더 미궁으로 내몰리는 것 같다. 볼 수 있게라는 말은 원어 파라테레시스로서 자세히 관찰하다는 뜻이지만, 성경에서는 주로 악의를 가지고 지켜보다(기회를)엿보다(3:2. 6:7, 14:1, 20:20)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래야 한다는 선입관의 잣대를 가지고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한 증거를 찾으려고 악의적으로, 검증하려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밝히신다. 어제(33) 묵상에서 언급한 대로, 열 명의 나병환자가 모두 나음을 받았는데 그중 단 한 명, 사마리아인 문둥병자만 하나님의 치유 은혜를 보고예수께 돌아와 감사찬양 함으로 구원을 이루었다. 악의에 찬 눈에는 안 보이는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있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이 말씀within you만 떼어놓고 보면, 바리새인들의 마음(심령) 안에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악의를 품고 항상 물고 늘어지는 그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실리가 만무하다. 너희 안에의 원어 엔토스가운데among, in the midst of(NRSV)로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황)상 적절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새번역, 표준, 공동).

하나님의 나라는 흔히 생각하는 영토(지리·물리)적 개념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다스림rule·reign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다. 그러므로 그들, 거기 모인 무리 가운데 서서 말씀하시는 그 분,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있다는 선언이다. (유대인들의 토론장을 보면, 질문자들이 대답·교훈하는 사람·선생을 둘러서 있기 때문에, 질문하는 바리새인들 가운데서 계신 예수 자신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말씀은 이미 누차 주셨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9일 묵상, 11:20, 개정).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구세주)로 고백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입적入籍한 신자에게는 성령이 임하시고(2:38), 그때부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신앙이요 신학의 요지이다. 그러나 그릇된 종말론eschatology의 영향으로 예수 신앙이란 죽어서 천당에가려는 저 세상적other worldly신념으로 변질한 것이 사실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표어·구호가 그 상태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 구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표어가 진실이지만, 이승에서의 삶을 무시하고 너무 저 세상지향적인데 문제가 있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는 특권privilege을 누리지 못하고,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지 못하니, 사회적으로 각종 비리에 휘말리고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지금, 여기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로 표현한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5:22-23, 표준).

사도 바울은 다시 간단명료하게 권려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already now이루어짐과 동시에 아직not yet미완성인 이중적 신비로 싸여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이승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삶이란 미완성으로 있다가, 육신을 벗고 영혼으로 저세상에 들어갈 때 완성된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성도는 (육신적) 죽음의 관문을 통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주移住하여 영생을 누리게 된다. 그러기에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 필연적이다.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으로 성취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말씀(17: 20-37)에는 하나님 나라의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미 여기에 실현된realized 하나님의 나라(20-21) 그리고 미래에 완성될 그 나라, 메시아 왕국(22-37)으로 구분된다. 어쨌거나, 사후에 저 천국에 들어가거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세워질 메시아 왕국으로 입성하기 전까지는, 성도는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길순례길생명길이 되는 것이다. “저 나라만을 사모하며 현실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경고하신다. 제자들 역시 하나님의 나라메시아 왕국을 혼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19. 39일 묵상에서) 다시 다루게 될 말씀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19:11b).

사도들을 위시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당장에아니면, 자기들 생전에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질 줄로 믿고 기다렸지만, 그 일이 무한정 지연되자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누가는 예수님의 교훈을 다시 새롭게 해석하고, 성도들의 동요를 진정시키게 된 것 같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22)

 

거기 모인 사람들, 특히 제자들 생전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예고하셨다. “그 날을 추측하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단의 무리가 무성할 것도 예고하셨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23)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3:3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기독교 역사에 수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나왔고, 지금도 특히, 한국 땅에 자칭 재림주들이 심심치 않게 출현하고 있다.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초림 때와는 달리, 온 천지가 다 알게 전 세계(우주)적인 사건으로 전개될 것이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24)

 

그러나 그 일 전에, ‘십자가를 지는고난의 때가 먼저 올 것이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25)

 

이 말씀은 첫째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뜻하지만, 둘째로는 초대교회에 닥칠 모진 박해를 대비시키기 위한 경고로 받아야 한다. ‘그 날은사람들이 전혀 예측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들이 닥치게 될 것이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26-30)

 

먹고 마시고, 시집 장가가고, 사고 팔고, 농사하고, 집 짓고 하는 등 일상생활에 무슨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영적인)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무관심이고, 육신적 쾌락快樂만을 추구하는 등, 개인·민족·인류의 종말을 자초하는 방자한 삶의 태도가 문제다. 가령, 하나님의 창조 질서(생태계)를 파괴하는 온갖 오염행위로 지구 온난화를 일으켜 자멸의 길로 치닫는 우리 인류가 아닌가! 세상 재물의 탐닉과 집착을 버릴 것을 촉구한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것이니라(31)

 

이스라엘 집 구조는 평지붕으로, 요즘의 옥상과 같다. ‘지붕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시간을 많이 보냈다. 시급한 일이 생기면, 집 안으로 들어가 세간을 들고나오려고 지체할 수 없듯, “그 날이 오면 모든 세간(맘몬·재물, 16:13)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불치병에 걸리거나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면, 그 전에 그렇게도 좋았던 것들 모두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듯 말이다. 재차 경고 한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32, 표준)

 

피상적, 위선적 신앙인의 모습이 롯의 아내이다(19;26). 장망성 소돔을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탈출하고 생명길에 들어섰지만, 유황불못이 된 고향(소돔) 땅을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예수님을 따라)순례길에 오른 신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 자세에 대한 경종이다. ‘내려놓고’ ‘버리는자만이 인생 순례길을 올바로 걸어갈 수 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3)

 

그 날, 심판의 그 날에는 양과 염소”(25:32), “곡식과 가라지”(13:30)를 분별하여 각각 영생영벌에 처하게 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34-35, 개정)

 

사람끼리의 관계 보다,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가에 따라 판결이 난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온 순례자들은 다음 세상, 하늘 나라이든 메시아 왕국이든, 그리로 옮겨질 것이다. 아직도, 제자들(사도들?)역시 하나님 나라메시아 왕국을 혼동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배격하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임하느냐 물었는데, 제자들은 어디에임하겠느냐 묻는다.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여드는 법이다’”(37, 표준)

 

죽은 고기(시체)를 주로 먹고 떼 지어 모여드는 조류는 독수리eagle 보다는 콘도르vulture이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당시의 격언(속담)이었다는 해석이 주석 학자들 다수의 견해다. 마지막 심판은 어떤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온 세계적(우주적)으로 단행될 것이다. 어디든 죄가 있는 곳에 심판이 있고, 심판이 있는 곳에 주검(시체)이 있고,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콘도르)떼가 모여든다. 때와 장소에 관해 신경 쓰지 말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며 맡겨진 사명에 충실하면 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하셨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6-8, 개정).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1. ‘하나님의 나라(재림 주) 메시아 왕국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2. 지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이미아직의 이중성을 다시 음미해보자. 그리고 저 세상적인신앙 태도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

3. “롯의 아내사건이 오늘 순례길을 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기도

 

지금,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야 하는데, 내가 그 특권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지, 하나님 존전에서 솔직히 답하고,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소서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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