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따라 걷는 인생길 순례길_유근희목사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18:7-8)


 

●말씀 묵상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18:1-8)


 

오늘 묵상할 말씀은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로 잘 알려진 예화다. 널리 알려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주님의 뜻이 왜곡되어 사용되는 점이 안타깝고 아쉽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1-5, 개정)

 

얼핏 들으면 그야말로 강청强請하는 기도의 본을 보여주는 것 같다(11:5-13, 8일 묵상 참조).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주문呪文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나님께 해야 할 일의 목록a to-do-list을 올려드리는 식이다.

물론 기도는 간절하게, 열성적으로, 끈기 있게 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생떼 쓰고, 고함 지르고, 억지 부리며, 귀찮게 졸라대는 것을 기도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이 비유에서 보면, 어떤 한 과부가 재판장에게 자기 원한을 풀어 달라고 매일 찾아가서 귀찮고 번거롭고” “괴롭게하여 소원을 성취한 것처럼 보인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이는 너무 문자적이고 피상적 성경 해석이 낳은 오류이다. 전후 문맥conext과 당시의 상황life situation을 꼼꼼히 고려해야만 그러한 오류를 피하고 본문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두 주인공이 소개된다. 과부widow와 재판장(판사judge)이다. 고대 이스라엘 땅의 과부는 약자弱者, 빈민貧民, 억눌린 자의 대명사요, 재판장(판사)은 강자强者, 부자富者, 권력층의 대명사였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2)

 

원래 재판장의 자격은 엄격했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18:21-22a.개정).

유다 왕 여호사밧이 재판장들을 세우고 내린 훈시가 있다.

재판관에게 이르되 너희는 행하는 바를 삼가하라 너희의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위함이니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대하19:6-7).

재판장의 명심 사항 세 가지를 말한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

2. 진실하고 공정할 것

3. 불의한 이득 곧 뇌물을 멀리할 것

그러나 이 비유의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법관이니 그야말로 불의한 재판관이었다(6). 그때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속국이었으므로, 재판장은 헤롯왕이나 로마 총독의 임명을 받은 법관이었다. 현존 권력 구도의 유지를 위한 앞잡이 노릇으로 충성했다. 대부분 매관매직賣官賣職으로 재판관 자리를 얻었고, 사회정의 구현보다는 뇌물을 받고 판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판사 강도robber judges라는 오명이 붙을 정도였다. 재판관이 이 정도면 그 사회가 얼마나 부패하고 암울했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과부는 구제의 대상일 뿐, 뇌물을 줄 재력은 없었다. 그러니 억울한 일을 당하곤 했다.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들, 특히 고아, 과부, 나그네를 배려하고, 그들을 해롭게 하지 말 것을 엄히 경고 하신다.

너희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22:21-24. cf.10:18, 27:19, 1:23, 22:3).

이 비유에서 그 과부가 어떤 억울한 일로 원한을 품게 되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이 짧은 예화에서 원한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크고 깊은 원한인 듯하다. 이 과부가 가진 것이란 집요함 곧 끈덕짐persistence뿐이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3)

 

아마 그 재판장의 대문 앞에 밤낮없이 나타나서 끈질기게 억울함을 호소한 것 같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그 불의한 재판관이 결단을 내린다.

 

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4-5)

 

그 과부가 집요하게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괴롭게 하다(원어: 휘포피아조), 진지하면서 다소 익살스러운 표현이며 주로 권투拳鬪 경기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눈 밑을 때려 멍들게 한다give a black eye”, “계속 괴롭혀 진을 뺀다wear out는 뜻이다. 실제로 그 과부가 재판장에게 신체적 상해를 입힐 수도 있었겠지만, 늘 뒤쫓아 다니며 큰 소리로 하소연하니그것은 과부에게 얻어맞아 눈탱이 밤탱이가 된 것처럼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 수도 없이 수치스럽고 체면 구기는 일이라는 뜻이다.

또한, (힘없는)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뇌물을 먹고)부당하게 판결을 했고, 그녀의 하소연을 무시하고 외면해 온 자신에 대해 한 가닥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어떻든, 이 재판장은 정의正義 회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안전과 체면(명예) 유지를 위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기로 작정한 것이다. 마지못해 이긴 하지만, 그 과부의 정당성正當性을 인정하고, 짓밟힌 권리(표준역)를 회복시키게 되었다.

이 비유의 요점을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6-8a, 개정)

 

여기서 얼핏 하나님과 불의한 재판장을 평행선상에 두고 대등하게 비교하는 것처럼 생각할 우려가 있다. 그 과부가 매일 같이 재판장을 찾아가 귀찮게 하고, 번거롭고 괴롭게 하는 등 눈탱이를 밤탱이로만들 위협으로 소원성취를 이룬것처럼, 하나님께도 그렇게 강청하면 기도 응답을 받게 된다는 오해를 일으키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에서 그토록 억지부리고 생떼쓰는 강청기도를 부추기고 장려하여 흥행하고 있다. 그것은 전에 음미한 것처럼 (8일 묵상, 11:5-13)바알신앙과 무교巫敎의 영향을 받은 기도법이지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기도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기도는 맺힌 한과 억압감정을 품어내고 씻어내는 정화catharsis작용으로 정신적 치유(힐링)에 효과적이긴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 비유에서 불의한 재판장과 하나님은 비교comparison 개념이 아니고 상반적相反的이고 대조적contrast 관계임을 알아야 한다. “하물며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대조적 상태를 확실하게 표현한다.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6b-7).

하물며앞의 사실이 그러하다면 뒤의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는 뜻을 가진 접속부사이다. 영어로는 how much more(더욱더, 얼마나 많이)라는 표현을 쓴다. ‘불의한 재판장은 집요하고 끈덕지게 졸라대고, 귀찮고 성가시게 호소하고, ‘눈탱이 밤탱이의 위협을 받아야, 마지못해, 그것도 자기 체면과 불명예를 면하기 위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지만, 하나님은 우리(성도)의 사랑하는 아버지시니, 얼마나 더 당신의 자비와 명예를 걸고, “택하신자녀들의 원한을 잘 풀어 주시겠느냐를 강조하신다. 여기서 택하신 자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아들과 딸로 입양된 성도들을 뜻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그럼 왜 밤낮 부르짖어야하는가?

이 비유를 주신 목적을 누가에게 다시 들어보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18:1). 기도는 쉬지 않고(살전5:17) 항상해야 한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과 같고, ‘아버지되신 하나님과의 대화對話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뜸해지면 관계가 어그러진 증거이다. 기도하다가 내 뜻대로, 내 시간대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낙심하기 일쑤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별명이 빨리빨리가 아니던가! 기도 역시 속전속결로 응답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 해야 할 점이 또 있다. 기도를 내 욕심껏 요청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야고보께서 권고한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4:2b-3).

그럼 왜 기도는 항상, 쉬지 않고, 꾸준히, 반복해서 해야 하는가? 반복하면서 내 기도(내용)가 정화淨化되고 다듬어진다. 반드시 있어야할 필수적인 것needs과 더 갖기 원하는 것wants으로 구별되고 걸러져야 한다. 기도는 사실 내 뜻이 관철되기를 애원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

그 과부의 원한(기도)정당성justice이 있었다. ‘정당성있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7b-8a)

 

이 비유는 또한 기도는 말과 혀로만(cf.1. 3:18) 해서는 안되고, 직접 행동으로 옮겨야함을 암시한다. 정의, 공의, 인권(정당한 권리)을 위해 (하나님께)간구함과 동시에 그 구현을 위해 (약자를 대신하여) 헌신적으로 불의한 재판장곧 기득권자들에게 꾸준히 호소하고 외치고 대결하여 쟁취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일상의 기도라기보다는 종말론적eschatological 기도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b)

 

당시 초대교회의 상황이 급박했다.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은 하염없이 지연되고, 당장 몰아닥치는 모진 박해를 대비시켜야 할 누가의 절박감이 이 비유에서 묻어난다. “말과 혀로만기도하는 사람들은 핍박과 환난이 닥치면 낙망하고 믿음을 포기하기 때문에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 비유의 목적을 다시 음미하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저희·우리에게 비유로말씀하셨다(1).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1. 이 비유의 재판장은 어찌하여 불의한 재판장으로 불렸는가?

2. 불의한 재판장과 하나님을 대조할 때, “하물며라는 접속부사를 사용한 점을 다시 음미해 보자.

3.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 귀에는 어떻게 들리는가? 일상적 기도와 종말론적 기도가 어떻게 다른가?

 

●기도

 

기도란 신자의 호흡이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나는 지금 그 호흡이 원활히 되고, 그 대화가 잘 이루어 지고 있는지 검토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하자.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