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눅 23:33)

147거기 너 있었는가?’의 찬양과 비슷한 전개의 내용으로 주 십자가 지고 고난당하실 때에’, ‘죄인들 위하여 목숨 버리실 때’ ‘너는 거기 너 있었나?’(1), 만일 그 자리에 없이 세상 것을 위해 수고하며 뛰어다녀도 참된 만족과 생명 얻지 못하리니(2), 주님께서 널 부르실 때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순종하며 주님 따를 때 참 기쁨과 행복 그리고 영생 얻으리니(3) 십자가 지고 사랑의 주께로 나오라(후렴)는 내용의 부르심과 영접주제 찬양으로 미국 텍사스 플래노(Plano)에 있는 프레스톤우드 침례교회 음악목사인 리차드 D. 베이커(Richard D. Baker ;1927~2011.9)목사가 1927년에 작사·작곡하여 1978년 매킨니 목사님에게 판권을 넘겼으며 1959년부터 1987년까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했습니다.

리차드 D. 베이커(Richard D. Baker ;1927~2011.9)목사
리차드 D. 베이커(Richard D. Baker ;1927~2011.9)목사

 

1절 우리 주 십자가 고난당하실 때에 너는 거기 있었나

죄인들 위하여 목숨 버리실 때에 너는 거기 있었나

저기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죽으신 주님

너희는 무엇을 주저하고 있느냐 사랑의 주께로 오라

 

1절 십자가 고난 겪을 때, 죄인들 위하여 목숨 버릴 때 너 거기 있었나?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유월절을 하루 앞둔 그 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로부터 파견된 사람들과 로마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신 후 예수님은 곧바로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에게로 끌려갔습니다. 다음으로 대제사장인 가야바와 그를 중심으로 모인 산헤드린 공회에 의해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이 재판에서 예수님은 거짓 증인들의 고소를 당해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26:66)는 죄목을 받고, 현장에 있던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거기 있던 다른 무리와 대제사장의 하속들로부터 개 패듯이 몽둥이로 맞고 얼굴에 침 뱉음과 뺨 맞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때린 후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자가 누구냐?”(68) 하면서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엄청난 수치와 조롱과 더불어 고통을 당하고 계실 때 그렇게 열광적으로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더욱이 12명이나 되는 제자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입니다. 마태복음 265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될 당시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가장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고난의 자리에 계실 때 제자들은 각자 살기 위하여 도망을 친 상태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여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자리에 약 2명의 제자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은 됩니다.

첫째는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자리에 없는 것이 더 나을 뻔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바로 그가 보는 앞에 예수님께서 묶여 있는 가운데, 자신이 하는 말을 예수님이 다 들을 수 있는 가까운 자리에서 말이죠. 심지어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저주하면서 까지 맹세하여 모른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에 대해 욕설이나 저주를 퍼부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또 다른 한 제자인 요한! 그도 분명히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에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철저히 침묵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친척이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예수님에 대해 변호할 수 있었지만, 비겁하게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영광의 주님이 제사장 집의 종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고 그들이 예수님의 뺨을 때리는 것을 보면서도 침묵한 것이죠. 그리고 그 외 나머지 10명의 제자들은 성경 어디에도 언급이 없을 만큼 철저하게 숨었습니다.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말이죠.

재판을 받으시는 동안에도, 모욕을 당하는 동안에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는 동안에도, 넘어지는 동안에도,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순간에도, 숨을 거두는 그 순간에도 제자들 중 어느 사람 하나 예수님과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현장에는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만이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하여 그의 무덤에 장사지낼 때 그 일은 마땅히 제자들이 해야 했을 일이었지만, 제자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 여인들이 무덤에 달려갔을 때도 제자들이 앞장섰어야 할 일인데도 그들은 두려워 숨어 있기만 하였던 것입니다. 빈 무덤에서 끝까지 남아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고, 부활 후 가장 먼저 예수님을 만난 여인이 되었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그 현장에 있지 아니하고 모두 피하여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마땅히 함께 참여했어야 할 고난과 부활의 현장에 제자들은 없었던 것입니다. 3년이나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에게서 배우고 그가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보았으며, 그가 당하실 고난에 대하여 미리 알고 있었던 제자들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다 예수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제자들이라면 여러분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거기 너 있었는가?" 예수님이 고난 겪으시던 그 자리에,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자리에 있었을까요? 아니면 부끄러움과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에 잊지 못하고 도망가 숨어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을 통하여 영광만, 축복만, 성공만 구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습니까? 기회주의자적인 모습, 기복주의 신앙, 교파우월주의, 대교회주의, 합리주의, 맘모니즘의 경제 원리에 빠져있는 한국교회와 성도로서는 십자가 구원의 참사랑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교회 토질이 언제부터인가 성장과 성공주의 신화에 물들어 버렸습니다. 기독교 서점에서도 성공을 약속하는 책과 신비주의 성령론을 예찬하는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반기독교 운동이 일어나는 이유를 우리는 분명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개혁해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교회 지상주의를 타파하고 십자가 회개 운동에 동참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는 교회와 성도는 생명의 가치를 이미 상실한 것입니다. 21세기는 새로운 영적 전쟁의 시대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기독교 초기보다 더 위협적이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순교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한 번에 죽는 순교보다, 살아있는 순교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주님으로부터 "내 충성된 증인 ○○○!", "내 충성된 증인 ○○○○교회 교인들아~"라는 칭찬을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늘 묵상하며 십자가 섬김의 도를 실천하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절 세상의 모든 것 소유한다고 해도 네게 만족 없으며

오직 주 예수님 네게 생명을 주사 참된 만족 주시네

저기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죽으신 주님

너희는 무엇을 주저하고 있느냐 사랑의 주께로 오라

 

2절 세상 모든 것 소유한다 해도 참 만족함 얻지 못하리

어느 날부자들만 입는 값비싼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시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0:17)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은 감히 보지 못하는 이 청년의 깊은 속마음을 이미 다 들여다보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를 부요하고 유능한 사람으로만 보았으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영적 기갈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청년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었으나, 그 마음속 깊은 곳에는 참된 기쁨과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공허와 갈증을 해소할 뭔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을 보고 말씀하기를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는 선하신 분이 없느니라!”(18)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인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하고 선하신 분이십니다. 더불어 예수님은 완전히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청년에게 당신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오, 하나님만이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알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선한 분을 찾는 청년에게 예수님은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19)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자신만만하게 머리를 들고 ! 선생님이시어! 그것은 이미 다 지켰습니다.”(20)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기를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2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의 매인 삶의 중심 부분을 찔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둑놈도 아니요, 강도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죄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을 포기하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청년의 행동을 보십시오! 그는 오히려 슬픈 기색을 하고 왔던 길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죄를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함을 포기한 채 뒤 돌아가는 청년의 발걸음은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그의 고개는 땅을 향하고 있었고,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선함을 포기한 채 세상으로 돌아가는 청년의 발걸음은 영적인 자살행위를 하고 만 것입니다. 구원을 배척하고 지옥행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권력과 쾌락을 은혜보다 더 사모하며, 명예와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 더 사랑하여 세상 것을 얻고자 멸망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외면하면, 아무리 이 세상의 좋은 것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참된 기쁨과 만족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좋은 모든 것들이 다 내 것이라고 할지라도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이며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은 것임을 깨달아 알기를 원합니다.

이제라도 저와 여러분은 찬송가 2절 가사의 고백처럼 세상의 모든 것 소유한다고 해도 내게 참 만족함 없으며 오직 주 예수님 내게 생명을 주사 참된 만족주시네!” 찬양하며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3절 우리 주 조용히 너를 부르실 때에 주께 모두 나오라

오직 주 예수를 믿고 순종할 때에 주가 영생 주시리

저기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죽으신 주님

너희는 무엇을 주저하고 있느냐 사랑의 주께로 오라

 

3절 우리 주님 부르실 때 순종하여 주께 나와 영생 얻어라

마태복음 819절에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며 제자 되기를 자원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서기관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20)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은 나는 집도 절도 없다.”는 말로서 어떤 기대나 영광을 바라지 말고 좇을 테면 좇으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923절에서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모종의 결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결심이 있어야 할까요? 예수님을 따르려면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감내할 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큰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평생 이 세상에 의탁할 곳 하나 없이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이용해서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제자도이며, 그런 사람은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룟 유다는 부귀영화와 명예를 좇다가 은 30냥에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데마라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딤후 4:10).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 됨이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길이 아니라 십자가 고난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고난을 감내하기로 작정한 자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21절에는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주여 나로 먼저 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청했습니다. 주님은 그 제자에게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22)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를 장사하는 것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당면한 문제로 주님을 따르는 것을 유보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을 따르는데 장애가 되었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 후에 주님을 따르겠다는 제자의 요청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도 수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다가 어느 날부터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알아보면, 시어머니 몰래 교회를 다녔는데 시어머니가 알고 난 후에 교회를 못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교회를 쉬겠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지금 다니는 직장이나 사업이 너무 분주하여서 지금은 좀 신앙생활을 쉬었다가 나중에 시간이 나면 신앙생활을 다시 하겠다고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학생들이 고3 학생이 되면 대학 들어가기까지 1년 동안 교회를 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자기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것을 유보하고자 할 때, 주님의 대답은 매우 단호하게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 장사를 핑계 대는 제자에게 아버지 모시는 일은 형제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22)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7:14)고 말씀하시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13)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때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핍박과 환란이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4:16)는 결단을 하고 주님을 따르는 자만이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조용히 너를 부르실 때 오직 주 예수를 믿고 순종하며 주께 모두 나오면 주가 영생 주시리”(3절 가사)라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오직 푯대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고”(3:14) 달려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 무엇이든 장애가 된다면 과감하게 그것을 버리거나, 포기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들의 참모습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순종과 헌신을 통해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여러분 속에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관주

1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주 *26:2,15:15,20,25,고전 1:18

죄인들을 위하며 목숨 버림 *20:28,고후 5:15,1:4-5,벧전 3:18

거기 너 있었는가 *15:21,36,39-41,23:27,32,35,49

2

세상 소유 만족함 없네 *27:20,5:10,16:24,19:22-24,14:33

생명주신 예수님 *1:4,5:26-29,6:35,48,11:18,요일 5:12

참된 만족있네 *107:9,66:11,19:29,고후 3:5,1:23

3

조용히 부르시는 주 *55:1-3,1:12,14:3,6,3:20

순종할 때 영생 얻네 *4:13-14,6:35,51,7:37-38,8:11

<후렴>

사랑의 주께 나오라 *8:39,3:8,12,요일 4:8,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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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있었는가 147

주 달려 죽은 십자가 149

못 박혀 죽으신 385

예수 영광 버리사 451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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