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에 온유한 모세와 영적 세대교체

모세의 인생에도 밤낮이 있었다. 모세의 삶의 여정에도 굴곡이 많이 있었다. 그에게도 업적도 있었고 실수도 있었다. 그에게도 고독의 순간도 있었고 영광의 때도 있었다. 모세에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삶의 아름다운 추억의 때도 있었고 기억조차 하기 싫은 아픔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모세의 인생을 결산하여 평가해 볼 때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한마디로 축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세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120년 인생 여정 속에 그는 수많은 거절과 선택의 순간을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결같이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선택하였다. 그는 항상 자신이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일까염두에 두고 결정을 하였다. 그는 언제나 세상의 지혜에 따라 판단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모든 것에 판단을 내렸다.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 서서 믿음으로 살았던 모세는 구약의 최고봉에 우뚝 서서 믿음의 후진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

신명기 3410절에 성경이 모세의 전 인생을 함축있게 표현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평하였다.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사용하신 선지자, 하나님이 그처럼 귀하게 여기셨던 모세였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즉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교제하던 사람,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전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시던 사람이 바로 모세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신명기 348절 말씀에 한 나라의 지도자요 하나님 그처럼 아름답게 사용하셨던 사람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맞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 하니라.” 38년 동안 광야 길을 이끌어준 자신들의 지도자를 잃어버린 백성들, 광야 교회 영적 지도자를 잃은 백성들에게 너무나 큰 영적 손실이었고 너무나 마음 아픈 현실이었기에 그들은 삼십일 동안 애곡하였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 편에서 철저하게 살았다. 또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존경과 신망의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인간 모세는 또한 한 인간으로서 인간 세상에 빛과 진리와 비전을 던져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1. 여호와의 종 모세는 자신의 죽음까지 하나님께 맡겼다.

신명기 3248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에 대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여리고 맞은 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 느보산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을 맛보며 살듯이 모세에게 놀라운 역사를 베푸셔서 가나안 땅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52절에 그 약속의 땅을 바라볼 수 있지만 그 땅에 모세 자신은 들어갈 수 없고 곧 모세 자신이 죽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40년 동안 광야 생활에서 그처럼 온갖 역경을 다 겪은 모세, 그처럼 하나님께서 종처럼 부리시다가 이제 가나안 땅을 문 앞에 둔 채 그리고 그것도 가나안을 축복의 땅을 눈으로 보기까지 하시고는 모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게 되었다.

344절에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그러나 성경에 모세가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모세는 하나님이 안 된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거절을 그대로 수용하는 모세의 아름다운 마음을 볼 수 있다. 모세는 자신의 생명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섭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 시간까지도 하나님 앞에 항거하지 않고 수용하였다. 그처럼 염원하고 학수고대하던 가나안 땅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안돼!” 라고 하실 때 모세는 , 잘 알겠습니다. 주님의 심정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느보산의 모세 (이미지 출처 :https://www.gospelimages.com)
느보산의 모세 (이미지 출처 :https://www.gospelimages.com)

5절에 보면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9절에 하나님은 모세 대신 여호수아를 통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 모세이지만 가나안 정복의 마지막 사역은 여호수아에게 맡기셨다. 이것은 천국을 의미하는 가나안 땅을 결국 구원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여호수아에 의하여 인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 되심을 보여 준다. 율법의 대표인 모세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은혜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모세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지라고 역시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사환에 불과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집의 주인 아들되심을 보여 준다.

또한 6절 말씀처럼 모세가 장사되어 모압 땅의 어느 골짜기에 장사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무덤을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않으셨다.

인간 모세가 큰 인물이지만 모세를 크게 우상화할 수 없다는 진리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인간 모세가 영광을 받지 않고 인간 모세를 사용하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섭리이다. 아무리 인간이 위대한 업적을 남겨도 결국 그 인간을 사용하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뿐이다.

중요한 사실은 모세는 하나님이 거절하신 것을 참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당면한 모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거절하시는 하나님의 뜻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종

그래서 성경은 모세의 인생을 평가하기를 여호와의 종으로 그의 생애를 마쳤음을 밝히고 있다. 세상적으로 보아서는 세계 최고의 강대국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 모세라는 명칭이 더 화려했을지 모른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웅 모세라는 비석 문구가 인기가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의 종 모세라고 밝히고 있다. 종 그 자체는 별로 인기가 없다. 그러나 누구의 종이냐에 따라 대단하다. 동장 비서는 동장의 종이다. 대통령의 비서는 대통령의 종이다. 대통령의 종은 장관급이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그처럼 사용하셨던 종 모세는 참으로 영예로운 삶을 살다가 영광스러운 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한 번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 참으로 여호와의 종으로 살다가 죽는 영광스런 생애에 대한 비전을 갖길 바란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한결같이 여호와의 종의 생애를 살기를 바란다. 돈 많이 벌었던 집사, 좋은 사윗감을 얻은 권사, 땅 많이 가졌던 장로, 큰 교회 목회하여 총회장 된 목사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종 아무개 집사, 하나님 사람 아무개 장로, 하나님의 사역자 아무개 목사라는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붙여주시는 여호와의 종들이 되시길 바란다. 여호와의 종으로서 모세의 생애를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자.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여호와의 종으로서 삶을 사는 것일까?

 

2. 여호와의 종 모세는 꾸준한 충성심과 인내심을 가진 삶을 살았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그의 생애가 끝나는 날까지 하나님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신 인물이다. 그는 한평생 주인이 귀하게 사용하는 소처럼 하나님 서라는 자리에 서고 하나님이 하는 일만 하였던 자였다. 그는 한 평생 주인이 귀하게 사용하는 질그릇처럼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하나님 나라와 몸된 교회를 보면 세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첫째, 있으나 마나 한 사람, 둘째, 있어서 유익이 되지 못하는 사람, 셋째, 매우 덕과 아름다움을 끼치는 사람 등이다. 여호와의 종은 자신이 속한 가정, 자신이 속한 기관, 자신이 속한 모임에서 참으로 여호와께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는 인물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이 유용하게 사용하시는 귀한 종이 되기 위한 특성 중 빠질 수 없는 것은 충성심과 인내심이다. 충성심과 인내심은 변함이 없는 한결같은 마음이란 뜻이다. 자신의 기분과 환경과 상태에 따라 변화무쌍한 자세와 태도는 결코 여호와의 종이 될 수 없다.

모세는 그의 한평생 동안 변함없는 마음 한결같은 마음으로 여호와의 종으로서 충성하고 인내하였다. 교회의 일꾼과 직분자로 세움을 받고 또한 임직을 받을 때, 우리는 항상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 1-2)는 성경 말씀을 복창하고 또한 그렇게 되길 기도한다.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고 몇 개월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면 타성에 젖는다. 나태해진다. 게을러진다. 뒷전에 앉는다. 말만 무성한 자가 된다. 불평자가 된다. 대접받는 자리만 찾는다. 그것은 결코 여호와의 종이 될 수 없다.

히브리서 35절에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서 충성하였고모세는 여호와의 종으로 참으로 우직스럽지만 충성한 종이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변함없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은 두 가지 착각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첫째 착각은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이 아무런 존재가 아니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모세의 경우에도 애굽 땅에 있을 때에는 나는 대단한 존재다”(I am somebody) 라는 착각을 했다. 그는 거짓된 자만심, 허영에 찬 지성을 가지고 오만과 교만에 빠졌다. 그러나 그가 살인자가 되어버리고 실패한 인생이 되자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I am nobody)라는 자기 허탈과 자기혐오와 자기 비관 늪 속에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40년간 광야 학교에 훈련을 받고 난 후 나는 주님의 종이야”(I am a servant for Lord)라는 새로운 자아관이 정립되고 새로운 사명으로 일평생을 살게 되었다.

 

타성에 젖어 종됨을 잊지 말아야

 

3. 여호와의 종 모세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일관한 삶을 살았다.

여호와의 종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는 삶을 살았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모세는 하나님과 더불어 친밀한 교제를 끊임없이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이어간다. 호렙산에서 하나님과의 대면, 광야 40년간의 하나님과의 대면, 마지막 죽음의 순간 느보산에서 하나님과의 대면 이 모든 것에서 모세의 기도의 삶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세의 하나님과 교제 시간은 손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모세는 그 인생의 수많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속에서 몸소 체험한 영적 원리였고 자세였다. 모세는 어떤 때 기도했는가? 모세는 무엇을 위하여 기도했는가? 모세의 기도는 어떻게 되었는가? 모세는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기도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기도했다. 모세는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모세는 자손들의 장래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특별히 모세는 아말렉과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기 위하여 산에 올라간다. 모세가 손을 들고 아론과 훌이 양손을 받쳐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손을 드는 행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기도의 의미이다. 시편 282절에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기자는 주님이 임재를 뜻하는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부르짖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말렉과의 전투 (이미지 출처 :https://www.gospelimages.com)
아말렉과의 전투 (이미지 출처 :https://www.gospelimages.com)

기도는 자신의 연약과 부족과 무력을 하나님께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도우심을 겸손히 바라는 의미로 손을 드는 것이다. 모세는 인생의 한계를 안 사람이다. 모세는 자신과 백성들이 험한 광야 길과 죽음의 위협 속에 처함을 알았다. 그는 주님의 도우심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꼈고 또한 하나님이 승리자가 되심을 믿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도움의 손을 높이 들었다.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이겼으므로 계속 들고 있어야 하는데 피곤하여 더 이상 들 수가 없다. 우리의 기도 삶에도 피곤이 닥쳐 올 수 있다.

기도 생활이 침체되고 힘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모세도 나약한 인간인지라 피곤한 팔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론과 훌이란 동역자들이 그의 팔을 붙잡아 주었다. 우리 신앙적으로 어려운 이웃의 팔을 붙잡아 줄 수 있는 동역자들이 되길 바란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의 섬김의 팔을 붙잡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여호와의 종들은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 한다. 십자가를 보고 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 한다.

신명기 331절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하는 말씀이 있다.” 모세는 앞 절에 하나님으로 자신의 죽음 통보 받고 원망도 투정도 안 부린다. 오히려 자신의 때가 다 된 줄 알고 자신이 마지막 할 수 있는 기도의 사명을 감당할 뿐이었다. 자신의 임종 앞에 얼마나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온 심혈을 다하여 자손들을 축복하지 않았겠는가? 모세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간절히 열망하는 기도를 드렸다. 르우벤 지파에게 생명의 축복을, 유다 지파에게 능력의 축복을, 레위 지파에게 예언의 축복을, 베냐민 지파에게 성전의 축복을, 요셉에게는 풍요의 축복을, 스블론과 잇사길 지파에 복음의 축복을, 단 지파에게 용맹의 축복을, 납달리 지파에게 족한 은혜의 축복을 간구하였다. 기도는 하나님 축복의 통로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자손, 우리의 교회, 우리의 국가를 축복할 수 있는 엄청한 특권과 권한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이 고귀한 기도의 축복을 나눌 수 있는 여호와의 종이 되길 바란다.

 

4. 여호와의 종 모세는 온유한 영적 품성을 가진 삶을 살았다.

여호와의 종 모세는 많은 백성으로부터 수많은 비난이 있었다. 동료 지도자들에게 질시와 원망을 받았다. 더욱이 참기 어려운 것은 그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격려하고 도와줄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이다.

모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형 아론과 자신의 누리 미리암에게 당하는 고통이었다. 모세가 자신의 아내를 취한 것에 대하여 비난을 받았고 하나님으로 특별한 직임을 받는 것에 대하여 영적 시샘도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모든 억울한 상황에서 변명, 대꾸, 따지는 것으로 맞서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인격 성숙의 기회로 삼았다. 자신을 묘목이 아닌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나님은 모세가 당면한 인생의 풍랑 속에서 그를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나님의 종답게 성숙시키는 훈련장으로 사용하셨다.

모세가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여유있고 성숙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 민수기 123절에 말씀하시길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라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여야 하고 온유한 품성을 가져야 한다.

온유함은 자신을 내세우고자는 충동이 전혀 없는 성품이다. 온유함은 연약함과 다르다. 온유함은 성령의 지배 아래 자신을 두는 성품이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잘 다스려진 은혜의 품성이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가 받는 비난에 재빨리 방어하지도 않고 스스로 옹호하지 않는 성품이다. 모든 상황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판단해 주실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절로 솟구쳐 오르는 성령이 지배하는 심성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성품

온유함

5. 여호와의 종 모세는 생명 구령에 열정을 가진 삶을 살았다.

모세는 이웃의 영혼, 범죄한 백성들을 위한 생명 구령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마땅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다. 그 때 백성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나님이 애굽인으로부터 취하게 하신 금을 가지고 금송아지 신을 만들고 있었다. 그 때 이 완악한 백성을 하나님께서 죽이려고 하자, 모세는 출32장 이하에 하나님께 나아가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 범죄한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고 백성들의 생명과 자신의 생명과 바꾸는 간청의 기도를 드린다. 모세의 기도는 위대한 기도이다. 여호와의 종은 범죄한 민족의 죄를 기도의 십자가에 지고 골고다의 길을 걷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병든 영혼, 범죄한 영혼을 위하여 중보 기도의 골방, 눈물의 자리에 거할 때 그 때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가?

 

6. 여호와의 종 모세는 여호와의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았다.

신명기 3411-12절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역사, 홍해를 가르는 역사,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리게 하는 역사, 반석을 쳐 생수를 내는 역사를 일으키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적 능력이 소멸된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가 세상에 던져야 할 진리의 빛, 거룩의 빛, 능력의 빛을 상실해 버린 시대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거룩한 삶을 추구하여야 한다. 빛 가운데 살아야 한다.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는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엎드려 권능과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성을 되찾기 위하여 하나님과 만남을 가져야 한다. 우리 또한 모세처럼 느보산에 올라가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

 

7. 여호와의 종 모세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삶을 살았다.

349절에 모세가 자신의 때가 다 된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여호수아에게 안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모세가 섭섭한 모습으로 자신의 후계자에 바통을 넘기는 것이 아니다. 모세가 진정한 축복된 마음으로 자신의 후계자가 참으로 그 직임을 잘 감당하도록 격려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임무를 넘겨준 것임을 알 수 있다.

모세 여호수아 안수(Artist : Sefira Lightstone)
모세 여호수아 안수(Artist : Sefira Lightstone)

한국교회가 세대 간 갈등이 많다. 원로목사와 후임 목사와 갈등이 많다. 선임장로와 후배 장로 간의 충돌이 많다. 기성 교인과 새 교인 간의 불협화음이 많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와 부조화가 많다. 그것은 모두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자신의 것이다.

자신 중심을 벗어나지 못한 좁은 안목의 탓이다.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 오히려 자신이 못다한 것을 기쁨으로 열망을 가지고 그 사역을 계속 믿음의 후진과 후세에게 넘겨 줄 수 있을 것이다.

모세는 자신의 인생 120년의 때가 다 되었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비전이 계속 이루어져야 함을 알았다. 모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한계를 직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후계자에 사명의 차세대 인물에게 하나님의 비전 역사를 인수인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은 종국이 있지만 결코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복음 역사와 교회 역사는 계속되어야 함을 알았다.

한국 교회의 미성숙의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 3가지가 있다. 자기 세대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다음 세대에 대한 비전을 알아야 한다. 자신 할 수 없는 것을 후임자가 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즉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고 하나님의 비전을 성숙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 시대의 모세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과 지도자들에게 모세의 영성에 충전되실 원하신다.

인구 절벽 시대, 가나안 성도가 폭증하는 시대, 탈교회화 현상이 심각한 시대, 이단들이 노골적으로 포교작전을 벌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의 외적 공격보다 심각한 것은 교회의 내적 안일한 태도와 방관의 자세이다. 눈을 들어 한국교회를 바라보자. 엎드려 시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을 찢자. 지도자가 결핍된 시대이다. 자신의 세대보다 다음 세대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자신의 지난날 수고와 헌신도 이 땅에서 고집하지 않고 넓은 관용과 아량으로 아낌없이 후배에게 바통을 내줄 수 있는 교회 지도자가 요청된다. 그 지도자는 바로 모세, 모세와 같은 영성을 가진 지도자이다. 어느 날 나의 생애가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신명기 32장 속에 나의 이름을 넣고 투영해 보며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3. 4. 21 로키산 아래서 한국 교회를 바라보며-

* 정준모목사〈콜로도 말씀제일 교회, Ph.D(교리교육), D.Miss(선교정책), 총신대, 대신대, 백석대, 계명대 실천신학(설교, 기독교교육, 교회 행정, 이단, 성경 강해 교수 역임〉
* 정준모목사〈콜로도 말씀제일 교회, Ph.D(교리교육), D.Miss(선교정책), 총신대, 대신대, 백석대, 계명대 실천신학(설교, 기독교교육, 교회 행정, 이단, 성경 강해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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