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만남으로 시작된다. 부모를 만나면서 시작되고 친구와 선생님을 만남으로 인간관계를 비롯한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된다. 그리고 배우자를 만남으로 한평생의 여행을 함께 하게 된다. 이때 꼭 필요한 세 사람 있다. 교사, 의사, 변호사다. 간과하는 한 사람이 더 있다. 목사(성직자)다. 다른 직업은 모두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직업이지만, 목사는 영적인 문제를 다루어 주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런 바른 선생을 알고 계시는가?

앞 시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선지자는 “하나님 입 역할을 하는 자”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전령이다. 이때, 특이한 점은 그가 단순하게 기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달 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 속에서 직접 겪는 삶의 현장 속에서 주시는 말씀을 살면서 전했다는 사실이다. 그 좋은 예가 호세아 선지자의 경우이다. 
* 호 1: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에게 음란한 부인과 가정을 이루라고 명하신다. 이럴 때 과연 호세아가 바른 선지자라는 평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의 가정에 많은 문제가 있기에 그렇다. 

그러면 우리가 참 선지자, 거짓 선지자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문제는 이 구별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시간 이에 관하여 생각하려 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른 교역자를 만나야 좋은 성도 바른 성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지금도 유효하다. 

1. 두 부류의 선지자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 마 7:15~21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구약에는 선지자를 둘로 구분한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바르게 활동한 선지자이며, 거짓 선지자는 말 그대로 거짓으로 선지자인 척하며 활동하는 자다. 과연 누가 참 선지자며 누가 거짓 선지자일까?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성경은 그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모세에게 하신 말씀과 선지자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자. 
* 신 13:1~3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 사 8:19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당시 선지자는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직업적 선지자‘라 할 것이다. 이는 오늘날 목사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직을 어떻게 수행했는가이다. 소명의 정당성이 중요하다. 선지자는 시대의 필요 때문에 활동했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백성의 요구 혹은 정책입안자의 요구에 따라 활동했다. 

예를 들면 백성의 필요에 따라 종교의식을 행하고, 그들의 복을 위하여 점을 치고 굿을 한다. 또, 위정자가 국사를 수행할 때 그가 요청하면 종교적인 행사를 집전하는 자이다. 이때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해석하고 상황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백성을 다독이고 국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들의 활약은 국민과 국가 지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들은 백성을 속이고 참 선지자를 핍박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과 사역에 강한 자부심과 확신으로 반대 세력인 참 선지자를 무시하고 비난하며 저주까지 했다. 

2.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구별법

과연, 이스라엘 백성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누가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에 의하여 보내심을 받은 자인지 알 수 있을까?

 

첫째, 메시지의 진위 
참 선지자는 위기 상황에 더욱 빛을 발한다. 그들은 위기 상황에 적절한 메시지를 하나님에게서 받아 전한다. 그 말씀은 아주 선명하고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문제는 이렇게 전하는 참 선지자의 사역이 대체로 당시 사회 분위기 즉 여론과 일치 하다는 점이다. 참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번번이 당시 사람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의 메시지는 백성의 호응을 받았다. 그들은 백성의 요구에 맞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들은 백성의 마음을 빼앗기 위하여 귀를 즐겁게 하고 과도한 정책을 발표하며 활동으로 인기를 얻었다.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 사이에 벌어지는 첨예한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예레미야와 하나냐 선지자와의 예언 사건이다(렘 28장). 당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바빌론을 대적하지 말고 항복할 것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로 전달했다. 당연히 백성들은 적의 첩자라고 예레미야를 비난했다. 반면에 하나냐 선지자는 유다의 멸망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잘될 것이라며 백성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바빌론의 침공 위기를 정치적 해결하여 애굽의 협력을 구하자고 했다. 유다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생존 방법만을 모색했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간첩으로 몰아 제거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이 당시 예레미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 렘 28:9~17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받게 되리라.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 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기를,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말씀 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이런 사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잡혀가서도 있었다. 예레미야 예언대로 바벨론에게 패하여 포로로 잡혀 왔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했다. 역사를 통하여 배우지 못했다. 에스겔 선지자는 여전히 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좋은 말만 하며 지도자와 백성에게 아부하는 자들을 향하여 ’회칠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하나님은 그때도 이 거짓 선지자를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다(겔 13:10~16). 

이러한 경향은 초대교회 당시도 같아서 바울도 타락한 영적 지도자를 경계할 것을 명했다. 
* 딛 1:10~14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둘째,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이해 정도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식했다. 거짓 선지자는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백성에게 아부하며 잘될 것이라고 평안만을 전했다. 그들은 자신의 활동에 대한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적어서 그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않았다.

비록 이들은 자신이 전하는 평안의 메시지가 옛 계시 즉 모세의 계시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각 시대에 따라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전했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식으로 구원 역사의 흐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유대인은 멸망할 수 없다고 맹신했다. 다윗 왕조의 합법적 상속자이기에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유다가 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상상하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대한 깊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알리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고 또 자신을 생각지 않고 담대하게 알렸다. 그러나 백성을 그 선지자를 배척했다.
* 렘 26:5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오늘날도 이러한 사역자가 얼마나 많은가? 말씀을 성실하게 연구하지 않고 구복신앙만을 전하며 축복을 일삼는 무당과 같은 짓을 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이들은 무당 목사라 할 것이다. 그 결과 성도와 교회가 영적 권위를 상실한 채 세상으로부터 놀림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교회가 예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성도는 그저 재미있고 부담 없는 시원한 말씀을 원하고 이에 부응하여 사역자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말만을 재미있게 짧게 전하려 한다. 결과 성도나 성직자 모두 세상의 안녕과 복지만을 추구한 나머지 성경에 따른 구원 섭리에 대하여 무지하여 바른 말씀을 전하지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심각한 영적 질병으로 죽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자. 그는 로마교회 성도에게 강하게 권면했다.
* 롬 16:17~18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3. 선지자를 구분하는 기준

첫째, 소명 문제
성직자 대부분은 소명 의식으로 사역한다. 문제는 그 소명을 사역 내내 유지하는가이다. 얼마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말씀을 타협 없이 전하며 불쌍한 영혼들을 성실하게 목양하는를 봐야한다. 초심을 잊지 않고 세상과 타협없이 성실하게 사역해야한다.  

 

둘째, 혼합주의 문제 
항상 거짓 선지자의 혼합 주의적인 입장은 대중적인 인기를 받았다. 그 결과 교회의 영적 권위를 상실하게 하여 선민으로써 갖는 신앙적 특권을 모두 빼앗겨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참 선지자는 오로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율법)의 수호자로서의 사명에 충실했다.

 

둘째, 사역 중심 문제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계시에서 백성에게 위안을 주는 주제만을 택하여 전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들 즉 이스라엘의 선택, 언약, 성전의 불가침성, 다윗과 관련된 약속들, 시온성 등에 대해 가르침을 등한히 하고 하나님의 죄에 대한 경고와 심판과 같은 주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부족이 원인이다. 이들은 백성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 있음에 대하여 침묵했고 심지어는 그런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고 까지 호도했다. 

 

셋째, 세속적 성직자 문제 
거짓 선지자는 현실적이며 세속적인 정책을 옹호하여 참된 진리의 가치를 혼란스럽게 했다. 거짓 선지자의 관심은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당면한 문제 해결에 있었다. 반면에 참 선지자는 유행에 민감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사회적 추세와는 조금 동떨어진 방식으로 살곤 했다. 결과 그들은 조롱과 증오 그리고 음모의 표적이 되었고 차별과 고독을 겪으며 살아갔다. 그러나 참 선지자의 길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과 핍박과 순교의 길이었음을 주께서 말씀하셨다.
* 마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넷째, 사역 자세 문제
거짓 선지자는 이상이나 꿈, 비전, 안녕과 평안을 위해 일했다. 그들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기술을 개발하고 증진했으며 현재를 누리기 위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데 힘썼다. 그들은 참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들을 조롱하며 핍박하고 심지어 살해까지 시도했다. 

그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탄원했다.
* 렘 18:18~20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와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유익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거짓 선지자는 이렇게 자기 주도적 사역을 하지만, 참 선지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중개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하는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당연히 이런 사역이 백성에게 인기가 있을 지 없다.  

 

다섯째, 사역 목적 문제
거짓 선지자는 다윗 왕조와 성전 그리고 예루살렘의 보존과 유지에만 신경을 썼지, 이 왕국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 나라 즉 구속의 진리가 계속하여 전파되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 온 세상에 펼쳐지는 사실을 무시하고 거부했다. 그들은 오직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위치와 특권과 유익을 유지하고 얻기 위한 목적에 몰두한다.


여섯째, 실천적 사역 문제
거짓 선지자는 인간 중심의 윤리를 가르쳤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방식으로 모세의 계시는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와 이를 실천하는 예법과 경건한 종교적 행위 예를 들면 기도 금식 희생적 삶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그들은 현실주의적인 입장에서 경건한 삶을 실천하게 하는 데 주력한 것이다. 

반면에 참 선지자들은 신 중심적인 윤리를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할 것인지를 가르칠 뿐 아니라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가르치는 일에 주력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넓은 시각으로 구속의 진리를 보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의 의미를 찾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에 주력했다. 그들은 참된 정의와 사랑 그리고 신실함과 끈기로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여 살아갈 것을 가르쳤다. 

 

일곱째, 종말에 대한 자세 
거짓 선지자들은 낙관론적인 견해를 가지고 기득권 세력의 유지와 번영을 꾀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들은 인기에 야합하여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노력했다. 반면에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며 어떠한 핍박과 능욕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고난을 겪으며 주어진 예언의 말씀 사역에 주력했다. 이들은 고난 중에서도 신실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며 반드시 하나님 말씀은 성취된다는 믿음 속에서 사역했다. 이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위인이었다(히 11:33~38).

 

결론 

참 선지자는 하나님 왕국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신뢰하며 사역에 몰두했다.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말씀으로 주신 것이며 계시로 보여주신 것이다. 이들은 장차 임할 이 나라를 예고하며 그 나라의 왕께서 도래하실 것을 전파했다. 문제는 이 나라는 인간의 능력이나 제도 그리고 군사력으로 이루어질 나라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질 나라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선지자에게 환상으로 그 나라를 보여주시고 그 나라를 전파하게 하셨다. 

이 점에서 참 선지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고 보여주고 확신하게 하는 중보자다. 이 점에서 참 선지자는 “긴장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들의 형편 사이에서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몸소 체험하고 전했으며 백성의 고통을 살피며 함께 고난에 동참하며 사역했다. 
* 사 22:4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참 선지자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받은 소명에 충실하여 항상 말씀에 충실하게 사명을 감당했다.  
* 사 50:4~5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그들은 시류에 야합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과감하게 전달하므로 숱한 무시와 멸시, 조롱과 비난, 그리고 핍박과 고난을 감수하며 사역했다.
* 사 50:5~6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고 성실하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신실한 자들과 교제하며 받은 사명을 완수하려 헌신했다. 
* 사 50:9~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이렇게 참된 선지자들은 신의 회의에 참석한 자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되는 환상 속에서 주어진 말씀을 신뢰하고 전하는 사역에 주력했다. 이들은 바로 이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며 경건하고 고단한 삶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예언의 삶을 살았다. 

오늘도 어려운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받은 사명에 충성하는 신실한 사역자들이 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말씀 사역자들을 보면 얼마나 세상 적이고 타협적이고 이기적인지 모른다. 이제 호세아 선지자의 메시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구원의 도리를 선지자는 어떻게 감당하며 교훈하는지를 살피며 예수를 믿는 신실한 성도가 되길 소원한다. 

 

<기도>

살아계셔서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 시간 말씀을 받아 전달하는 하나님의 입, 선지자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 땅에 주님의 소명따라 충성스럽게 말씀 사역에 힘쓰는 종들이 많아지게 하옵시고 거짓된 선지자들을 없애 주소서. 신실한 말씀의 종들에게 은혜 주셔서 타협없이 주신 말씀 만을 전하여 충성스럽게 말씀의 대언자로 사역케 하옵소서.  또한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의  귀를 열어주셔서 듣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말씀으로 알아듣게 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좌_박병은목사, 우_정준모목사
좌_박병은목사, 우_정준모목사

박 병은목사(덴버 둘로스 장로교회 담임)

●학력: 총신대학교 기독교 철학과 (BA)
      합동신학대학 대학원(M. Div)
      Talbot Theological Seminary (M. TH)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CA (D. Min 수료)
 
 ●경력: 남서울 교회(서울, 교육전도사)  
            성림 교회(안양, 개척)
           오렌지카운티 한미교회(Garden Grove, CA)
          그랜드래피츠 한인교회(Grand Rapids, MI)
          둘로스 장로교회(Denver,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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