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집사_아야세 그리스도교회 성도
전영희집사_아야세 그리스도교회 성도

50세 이전_IMF로 인한 사업 실패

일본 도쿄에 위치한 아야세 그리스도교회의 기둥 집사 전영희 성도는 코로나 전에 교회 등록해서 만 3년이 되었다. 전영희 집사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50세 이전과 이후, 그리고 인생 후반전 70대로 그의 생애를 구분해 본다.

50세 이전에는 한국에서 가정주부이며 3명의 자녀들의 엄마로서 삶이었다. 인생에 IMF로 인한 환난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인생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사업 실패로 인한 고통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50세 이후_ 생존을 위한 선택 일본 땅

50세 이후부터 전영희 집사의 삶의 터전은 한국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선택한 일본 땅이었다. 전 집사는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의 학업과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그에게 일본은 희망의 땅이며 동시에 슬픔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긴 이별의 시간이었다. 전집사는 식당에서 일하고 싶어도 식당 주인들이 몸이 너무 말랐고, 약하다는 이유로 써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선택한 일자리는 집 관리와 가정교사였다. 그녀에게 주어진 봉급은 20만엔이었다. 한국에 있는 자녀들이 눈에 밟혀서 100엔짜리 붕어빵 하나 사먹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커서 수많은 세월 홀로 밤을 지새우며 울었다고 한다.

전집사에게 일본 생활은 피눈물 나는 생존투쟁의 장이었다. 일본어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일본어를 맛깔스럽게 한다.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눈물로 보낸 결과였다. 오직 자녀 교육을 위해 자신의 삶은 없었다. 오직 자녀만 잘된다면 나의 인생은 없어져도, 달아져도, 사그라들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타국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을 달려오다 보니 어느듯 70대 되었다.

​​​​​​​전경희집사와 함께 동석했던 목회자
전경희집사와 함께 동석했던 목회자

 


60대 후반 _ 신앙생활 시작

60대 후반 전집사의 인생에 중요한 분기점이 생겼다. 바로 코로나 이후 그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2019년 아야세 그리스도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교회를 다닌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그것도 70대가 다가오는 나이에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교회는 평안과 안식과 자신의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행복한 교회생활을 보내던 중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하던가? 교회에 다닌지 얼마 안되어 폐암 수술을 했다. 전집사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과 두려움과 불안의 시간이었다.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영적인 힘이 있었다. 바로 목사님의 위로와 기도였고, 예배였고, 성경쓰기였다. 전집사는 코로나 기간 신약성경 필사를 마무리했다. 세례받은지 1년 만에 자그마치 노트 13권 분량의 필사를 마쳤다. 그녀는 살기 위해, 굳센 믿음을 위해, 성경을 알고 싶어서필사를 했다. 또한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성경필사를 하며 자녀들에게 남겨줄 유산을 생각했다. 남겨줄 물질적인 유산이 별로 없었다. 그녀는 영적유산을 남겨주기 위해 자녀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한자한자 힘을 다해 썼다고 한다.


나의 첫번째 꿈 _나는 공부하고 싶다

전집사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어떤 꿈이 있느냐고 물었다. 전집사는 망설임이 없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다. 꿈을 말할 때 그녀의 눈동자가 빛났고, 언어에 힘이 들어갔다. 전집사는 일본대학에 입학해서 신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70세 나이에 어렵다는 일본어 3급 시험에 합격했을 정도로 배움에 대한 목마름과 열정이 있다. 젊은 시절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남은 생애 배움에 자신을 던져보고 싶어했다. 자신의 인생에 한 번 미쳐보고 싶다고 한다. 가족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보석처럼 가꾸는데 축적의 시간을 드리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학창시절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 꿈은 현실의 각박한 삶으로 인해 포기했지만 일본 노인대학을 다니면서 유채화를 공부하면서 전시회도 했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어 가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고 한다.

오필재 담임목사
오필재 담임목사

나의 두번째 꿈_ 일본 사람 10명 전도

또 하나의 단기 꿈이 있다고 한다. “일본 사람 10명을 전도하여 교회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일본 선교사들은 한국사람이 일본사람 1명 전도하기 너무 어렵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 일본사람 10명을 전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숫자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다. 오필재 담임목사의 말에 의하면 전집사는지금까지 10명을 전도했고, 현재 3명이 고정적으로 교회 출석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담임목사의 말에 의하면 전집사는 헌금위원으로 봉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예의를 다해 봉헌을 하고 있으며, 일본사람들이 헌금을 안하기에 대신 자신의 돈으로 정성스럽게 헌금을 드린다고 한다. 또한 일본 성도를 주일예배 참석시키기 위해 아침 일찍 일정한 장소에서 모여 먼저 차를 대접하고 모시고 교회에 오는 수고를 기쁨으로 드리고 있다고 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편집자 후기_최원영목사

그녀는 의지의 한국인임이 분명하다. 자신의 인생에 그리워진 어둠앞에 쓰러지지 않고 어둠과 싸우며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인생 후반전에 새로운 믿음의 도전을 말하고 있다. 모든 믿음의 이야기는 언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녀의 모습에서 노인의 그림자가 전혀 없었다. 인생을 마무리하는 한 여인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롭게 인생 후반전을 막 시작하는 위대한 여성의 첫 출발을 보는듯했다.

이땅에 사는 어머니들중에 환난당하지 않은 분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특히 낯선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한세월을 보냈던 분들의 사연들은 가슴 저미는 이야기들이다. 그 사연의 보따리들이 겹겹히 쌓여 있다. 보따리를 풀어도 풀어도 계속 누에 꼬치처럼 이어져가는 한많은 이야기들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아픔과 희망의 이야기들이다.

그 한을 천국에 대한 믿음과 사명으로 바꾸어 놓는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는 곳이 바로 디아스포라 이민교회들이다. 디아스포라 이민교회를 섬기는 모든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과 함께 삶의 이야기들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육신의 것으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진 감정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사랑만이 답이다. 그 사랑을 주는 곳, 바로 교회이다. 이것이 이민교회가 필요한 이유인듯하다.

 위 글은, 편집자 최원영목사가 2023.6.19부터 23일까지 일본 도쿄 한인교회를 돌아보며 만났던 성도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척박한 선교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메마른 나무에 움이 돋고 있다. 교회는 한몸공동체이다. 한일 두 민족이 십자가 아랴 한 형재와 자매로서 예배하며 위대한 주의 나라를 거룩하게 세워갈 것을 기대한다. 또한 곧 선교의 꽃을 활짝 피울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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