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성박사(청주신학교 학장 .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스4:6)


18세기 종교개혁의 완성자 성령신학의 창시자 성결복음의 주창자 존 웨슬리의 위대한 생애는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을까요 ?

 

첫째는 사무엘목사 아버지와 수잔나 어머니를 통해서 그리고 옥스퍼드대학교 교육을 통한 종교적 회심(宗敎的 回心)으로 그가 위대한 생애를 시작했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1720년부터 옥스퍼드대학교에 다니며 신성클럽(Holy Club)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99%의 종교인이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종교적인 회심을 통해서는 천국에 대한 확신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도 갖지 못했고 항상 불안과 공포심으로 두려워하였다. 이는 훗날 웨슬리가 올더스케잇 체험 후에 자기 일기에 설교집에 나타난 사실이었다.

그러나 웨슬리의 위대한 생애는 부모를 통해서 신학 교육을 통한 종교적인 체험은 위대한 생애를 위한 관문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웨슬리의 위대한 생애의 핵심은 올더스게잇에서의 회심이다.  바울사도가 스테반 집사의 순교의 현장에서 종교적인 회심 이후에 두 번째로 다머스커스에서의 영적인 회심을 통해서 위대한 전도자가 된 것처럼 웨슬리도 1735년 조지아주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실패한 후 귀국하던 중 풍랑을 만나서 두려워하던 중 모라비안 교도들의 활기찬 모습과 평온한 신앙에 충격을 받고 1738524일저녁 845분경 올더스케이트 거리모임에 참여하여 로마서 816절의 주석을 풀이할 때 불타는 뜨거운 성령을 가슴으로 체험하였다. 이 때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을 깨닫고 성령적 회심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다. 성령 체험으로 웨슬리는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동안 웨슬리는 종교적 열심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을 가졌으나 올더스케잇 성령체험을 통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에는 종의 믿음에서 자녀의 믿음으로 당당하게 자신있게 구원을 학신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루터의 성자신학과 칼빈의 성부신학에서 웨슬리의 성령신학이 완성됨으로 개신교의 3대스승이 독일의 마틴루터 프랑스의 존칼빈 영국의 존웨슬리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웨슬리는 일평생 성령운동 성결복음 곧 영적 대각성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성령충만을 통한 권능의 사람으로서의 회심이다.

이는 곧 페터레인(Fetter Lane) 성령체험의 놀라운 회심의 체험이다. 그가 신앙적 회심을 경험한 173911일 새벽 런던 페터레인 집회소에서 몇몇 기도 동지들과 심야기도를 하던 중 위로부터의 능력을 입히우는 놀라운 경험을 한 것을 말한다.

웨슬리는 올더스게잇 체험과 다르게 페터레인 체험을 그의 일기에서 짧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올더스게잇 체험이 거듭남의 사건이라면, 페터레인 성령체험은 성령충만의 능력을 얻는 체험의 사건이다. 올더스게잇 체험이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면, 페터레인 체험은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올더스게잇 체험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라면, 페터레인 체험은 성령으로 충만하여지는 사건이었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거듭남”(New Birth)에서 물세례를 육적 세례으로 보았고, 거듭남을 성령세례(spiritual baptism)로 보았다. 그리고 성화는 성령충만으로 웨슬리는 해석한다. 성령세례는 영적 탄생을 일으키는 일회적 사건이지만, 성령충만은 우리의 영적 성숙을 위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이 성화의 출발이요 입구이기에 성화가 올더스게잇 사건 이후로 시작되었지만, 결정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성화를 체험하기 시작한 것은 페터레인 사건이라고 말해야할 것 같다.

그날 페터레인에서 일어났던 성령체험을 웨슬리의 일기에 나타난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173911() 미스터 홀(Mr. Hall), 킨친(Kinchin), 잉함(Ingham), 휫필드(Whitefield), 허친스(Hutchins), 그리고 나의 동생 찰스가 우리의 형제(모라비안) 60여 명과 함께 우리의 페터레인 애찬회에 참석하였다. 끊임없이 기도하기를 새벽 3시까지 계속하였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강하게 임하였다. 많은 사람이 놀라운 기쁨으로 소리쳤다. 많은 사람이 땅에 떨어졌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현존에 경외와 놀라움으로 사로잡힌 다음 우리는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주님이 되심을 깨달았습니다.”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선 1738년 여름에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임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영적 원리를 배운다. 계속해서 그는 같은 해 조지 휫필트를 통해 전해진,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1703-1758)가 쓴 노스햄튼 대부흥운동사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부흥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책을 통해 거듭나게 하신 성령의 역사는 거듭날 뿐 아니라 그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은혜를 갈구하게 된다.

이 놀라운 성령체험은 애찬회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특이하다. 후에 웨슬리는 성찬과 애찬회가 은총의 수단이기에 누구에게나, 세례 안 받은 사람들에게도 성찬을 주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그의 어머니 수잔나도 성찬을 받다가 거듭남을 체험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함께 성령을 체험하였던 잉함(Ingham)은 후에 루터주의적 경건운동주의자 곧 모라비안교도가 되었다. 휫필드(Whitefield)는 후에 칼빈주의자 감리교도(Calvinistic Methodists)의 지도자가 되었다. 후에는 서로 신학적 차이 때문에 갈라섰으나, 이날 함께 성령의 놀라운 체험을 가졌다는 것이 특이한 사건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같은 해 1231일 밤 페터레인 집회소에서 기도하다가, 다음날인 11일 새벽 3시경에 웨슬리는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로 바닥에 쓰러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위로부터의 능력의 입히움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아들의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 수 있는 실력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중생했다 할지라도 웨슬리의 페터레인 체험 같은 회심이 없이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절대로 살 수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회심은 거의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바다.

네 번째 웨슬리가 웨슬리 되게 한 또 하나의 회심이 있었으니 그 회심이 세계는 나의교구 세계는 나의 교구다 라고 외친 것이다.

I LOOK UPON ALL THE WORLD AS MY PARISH ! 이는 곧 사명적 회심(使命的 回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성도와 목회자는 종교적인 열심에 의한 노력의 회심을 통해서 물세례를 받고 직분을 받고 신앙생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는 웨슬리처럼 올더스케잇 체험 곧 불 같은 성령의 체험을 한 자들이 목회자가 되기도 한다.

존 웨슬리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기쁨 가운데서 교구목회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교회에 의해 설교 금지를 당하였다.

복음주의 신앙으로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신유은사를 행하는 웨슬리의 유별난 전도 활동을 국교회에서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존웨슬리는 옥스퍼드대학을 통해서 지성과 올더스케잇 체험을 통한 영성을 가지므로 복음을 전할 충분한 자질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강도권 곧 설교권을 박탈 당하게 됨으로 설교할 교회와 설교할 장소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당시 최고의 설교가였던 장로교 목사 조지 휫필드는 먼저 217일부터 브리스톨에서 옥외설교를 시작하였다. 웨슬리에게도 옥외설교를 권하였다. 웨슬리는 채플 밖에서의 설교가 하나님의 방법인지 고민하였다. 그러던 중 산상수훈 말씀을 읽다가 예수님도 옥외설교를 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173941일에 지기인 조지 휫필드(George Whitfield)의 강권으로 처음으로 옥외설교를 하게 되는데 웨슬리는 여기서 그의 신앙에 또 한 번의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바로 불타는 웨슬리의 뜨거운 전도자로서의 사명적 회심이라고 할 수 있다.

웨슬리는 광부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웨슬리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교회 밖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고, 그들은 구원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시기를 시급히 원하시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신앙구조에 대변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결론 / 로마는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다는 말이 있듯이 “Rome was not built in a day”  존 웨슬리의 위대한 생애 엮시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와 스승과 책으로부터 그리고 공교회의 교육과 훈련 그리고 훌륭한 지도자들의 가르침과 공동체를 통한 훈련을 통해서 그리고 조지아에서 쓰라린 선교의 실패와 연애의 실패를 통해서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받을수 없다는 사실과 성령의 체험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권능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온셰계를 교구삼고 땅끝까지 이르고 예수의 증인이 될수있음을 웨슬리의 생애를 통해서 알게되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의 간증과 신앙고백을 들으면서 오늘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을 살수 있을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존웨슬리는 171932일 출생 하여 1738년 5월 24일 성령체험의 회심부터 1791년 6월 2일 소천하기까지 53년 동안을 오직 성경의 사람” “오직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하게 몸부림쳤으며, 바울 사도처럼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위대하고도 거룩한 삶을 살았다.

오늘 우리들도 존 웨슬리처럼 있는 곳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자. 그러나 그보다 더욱 성령의 도우심을 사모하자. 그리고 초대교회처럼 하늘로부터의 능력을 덧입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고 살자.

예수를 본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매일 매일 규칙적인 내적인 경건생활로, 외적 성결 곧 이웃사랑으로 아낌없이 헌신하다가 외투 한 벌 과 6파운드를 남기고, 죽기 5일 전까지 전도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웨슬리의 생애를 본받는 우리가 되기를 원한다.


---웨슬리가 남긴 위대한 명언들---

하나님의 일꾼은 여기에 장사되나 하나님의 일은 계속 되도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은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

"한 책의 사람 여기에 잠들다"

"내가 죽고난 다음에 내가 내 재산을 1파운드라도 남겼다면 나를 강도라고 불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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