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쉬르 아이바조올루 저자(글) · 조주섭 , 권인선 번역 · 이현주 디자인
출판사_제임스컨설팅


“커피 한 잔은 40년의 우정을 약속한다”

『튀르키예 커피 문화Turkish Coffee Culture』는 튀르키예 커피에 관한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튀르키예 커피의 기원과 전통적인 제조 방법부터 현대적인 음용 문화까지 모든 면에서 깊이 알아보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커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료이며, 이 책은 이 음료의 본질적인 면과 함께 튀르키예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다룹니다. 튀르키예 커피는 그 자체로 예술이며, 이 책은 이러한 예술적인 요소와 그 뒤에 있는 철학적인 가치를 탐구합니다.
『튀르키예 커피 문화 Turkish Coffee Culture』는 맛있는 커피에 대한 가이드 역할도 하며, 튀르키예 커피를 직접 만들어보고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레시피와 조언을 제공합니다. 또한, 튀르키예 커피에 대한 호기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 책은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튀르키예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선택입니다. 튀르키예 커피의 향기와 맛에 흠뻑 빠져보고 이 음료의 독특한 세계로 여행하면서 커피 문화의 지평을 넓혀보는 것도 좋은 듯합니다.


Book Title: 『튀르키예 커피 문화 Turkish Coffee Culture』
Author: [베쉬르 아이바조올루(Beşir Ayvazoğlu)]
Book Introduction: 『Turkish Coffee Culture』 is a book that explores the rich history and culture of Turkish coffee. This book delves deep into every aspect of Turkish coffee, from its origins and traditional brewing methods to its modern consumption culture.
Turkish coffee is a globally renowned beverage, and this book covers its impact on Turkish society and culture as well as its essence. Turkish coffee is an art in itself, and this book explores the artistic elements and the philosophical values behind it.
『Turkish Coffee Culture』 also serves as a guide to delicious coffee, providing various recipes and advice to enable readers to make and experience Turkish coffee firsthand. Additionally, it offers intriguing stories and useful information for curious readers interested in Turkish coffee.
This book is a great choice not only for coffee lovers but also for those interested in Turkish culture and history. Immerse yourself in the aroma and taste of Turkish coffee and embark on a journey into the unique world of this beverage!

베쉬르 아이바조올루
베쉬르 아이바조올루

 


저자 : 베쉬르 아이바조올루(Beşir Ayvazoğlu, 1953~)

작가, 시인. 그는 시바스의 자라에서 태어났다. 부르사 교육 연구소 문학과를 졸업하고(1975), 여러 고등학교에서 튀르키예어와 문학을 가르쳤다. TRT 전문가로 일했다.

군 복무 후 아마추어 시절 저널리즘으로 돌아와 1985년부터 1991년까지 Tercüman 신문의 “Culture-Art” 페이지를 감독했다. 튀르키예 신문의 문화 예술 감독 및 칼럼니스트를 거쳐, 예니 우푹 신문의 총감독이 되었고, 이스탄불 시립극장 아이바조올루의 레퍼토리 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그의 문화분석은 주목을 받았다.

Love Aesthetics의 시, 에세이, 전기, 분석, 인터뷰 및 연극 분야에서 작품을 썼다. Kitapyurdu.com에는 77개의 작품이 등록되어 있다. 베스트 셀러 작품으로는 "사랑의 미학", "성지 순례길의 개미", "Mehmet Genç", "1924 사진의 긴 이야기"


작가의 말

취하게 하는 냄새, 감미로운 맛, 그리고 흥분 및 탈진 방지 같은 보완적인 특성이 이 성공의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커피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다. (p. 21)
당시 오스만 정부 당국을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커피하우스와 같은 커피가 소비될 수 있는 장소에서 일어난 논의였다. (p. 21)
커피를 폐지하라는 법령을 내린 사람들도 어쩌면 큰 컵에 쓴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금지 사항을 준수하고 커피를 전면 금지하는 데 성공하기란 불가능했다. 커피는 이미 궁전에 들어왔고, 말하자면 내부에서 안전한 은신처를 정복하면서 의전에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p. 21)
커피를 음료로 금지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때쯤에는 피 대신 커피가 사람들의 혈관 속을 돌고 있었다. (p. 21)
보통 튀르키예인들은 아침 식사를 뜻하는 튀르키예어 "Kahvaltı(카흐발트)"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즉 "커피를 마시기 전(Kahve-altı, before coffee)”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튀르키예인들은 아침 식사를 한다고 하기보다는 단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아침에 간단히 음식을 먹었다. (p. 21)
Gün yetmedi taştıkça taşan neşvemize
imrendi o gün kahvede kim varsa bize
‘Dostlarla’ dedim, ‘sohbetimiz bal gibidir
ey kahveci gel katma şeker kahvemize!’
우리의 넘치는 기쁨에는 하루가 부족해
그날 커피하우스에 있던 우리를 부러워해
“친구들과 대화는 꿀 같아
오 커피메이커여, 이리 와서 우리 커피에 설탕을 넣어라”!
베쉬르 아이바조올루(Beşir Ayvazoğlu)


 

목차

I. 예멘에서 이스탄불까지 24
II. 커피와 신비주의 33
III. 커피는 핑계일뿐 43
IV. 타흐미샤네 55
V. 생명의 물 61
VI. 절구에서 컵까지 66
VII. 커피 컵 81
VIII. 궁전의 커피 세리머니 89
IX. 오스만 저택의 커피 서비스 100
X. 가정 생활의 커피 106
XI. 커피 중독 114
XII. 화로와 애쉬 커피 128
XIII. 커피 부족 136
XIV. 커피 컵에 담긴 운세 147
XV. 옛 이스탄불의 커피하우스 광경 161
XVI. 지역 커피하우스 173
XVII. 크라아트하네 184
XVIII. 커피하우스에서의 엔터테인먼트 194


이스탄블 카페
이스탄블 카페

 


책 속으로

●예멘에서 이스탄불까지
하프즈 휘세이인 아이반사라이(Hafız Hüseyin Ayvansarayî)의 저서 『메즈무아-이 테바리흐(Mecmua-i Tevârih)』에서 언급된 ‘커피하우스 엔터테인먼트(Kahvehane mahall-i eğlence)’(959) 구절은 1551-1552년을 이스탄불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날짜로 지정하는 것에 반해, 에스마뤼트-테바리흐(Esmarü't-Tevarih)에 인용된 ‘주후르-으 카흐베 베 디야르-으 룸(Zuhûr-ı kahve be diyâr-ı Rûm)’ (962)이라는 구절은 1554년을 가리킨다. (p. 25)
커피가 아비시니아(현재의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한 식물로서, 커피를 음료로 마시는 것이 신비주의자들 사이에서 대중화되었지만, 커피는 예멘에서 이슬람 세계로 퍼졌다는 것이다. 일부 애호가(시인들)에게 ‘예멘의 어두운 아름다움’으로 간주되는 커피는 우아한 수수께끼에서 ‘예멘의 신사’로 등장한다:
Ben ne idim ne idim / 난 뭐였지, 난 뭐였지?
Yemenli bir beğ idim / 예멘의 신사
Felek beni şaşırttı / 운명이 날 혼란스럽게 했고
Fağfuriye düşürttü / 도자기에 나를 빠뜨렸다 (p. 31)

●커피와 신비주의
커피라는 단어가 포도주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것이 마치 포도주처럼 같은 컵으로 돌려 마신다는 사실은 에부수우드 에펜디와 다른 종교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p. 34)


●커피는 핑계일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을 당시 13-14세의 소년이었던, 갈리폴리에서 온 무스타파 알리(1541-1600)는 59년의 생애 동안 커피와 커피하우스에 관한 논고를 면밀히 따랐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저서 『메바이뒨-네파이스 피 카바이딜-메자리스(Mevâidü'n-nefâis fî kavâidi'l-mecalis)』에서 ‘커피하우스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장은 이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최초의 커피하우스에 H.960년(1552년)이라는 날짜를 제시하면서, 알리(Âli)는 커피나 커피하우스에 반대하지 않은 것 같다. (p. 44)
그는 ‘선한 사람들이 마시는 다양한 음료 중 묘약’이라고 묘사한 커피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예멘 커피는 신이 사랑한 사람인 셰이크 하센 에스-샤질리(Sheikh Hasen eş-Şâzilî)의 시선에 행운이 깃든 덕분에 곧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처음으로 언급했다. 알리(Âli)에 따르면, 커피하우스는 데르비쉬와 현인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가난한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는 장소였기 때문에 유용했다. (p. 44)
커피하우스와 커피 애호가들의 걷잡을 수 없는 증가는 종교계와 정치권에 불편을 초래했다. 페체비(Peçevî)에 따르면, 종교 광신자들은 곧 “대중들이 커피하우스를 좋아하게 된 이후, 더 이상 모스크(mosque, 회교 사원)나 마스지드(masjid, 회교 성원)를 방문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설교자들은 모스크에서 커피와 커피하우스에 반대하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커피가 종교에 의해 금지되는 무프티(mufti, 회교 법전 전문가)의 파트와를 간청했고, 심지어 일부는 “주점에 자주 가는 것이 커피하우스에 가는 것보다 낫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p. 45)
“우린 커피나 커피하우스 때문에 죽겠다”라는 사실은 진실을 반영한다. 사회생활의 단조로움과 지루함에 좌절한 대중은 커피나 커피하우스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비록 무라드 3세(Murad III)의 통치 기간 동안 증가하는 압력으로 인해 큰 커피하우스들이 문을 닫았지만, 분리된 출입구가 있는 지하 커피하우스들은 외딴 지역과 상점들 뒤쪽에 문을 열었다; 이들은 경찰관들과 경찰서장에게 보상을 주는 한 편안하게 운영되었다. 언제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상 모든 오래된 커피하우스에 걸려 있는 패널에 있는 유명한 커플렛을 포함하는 스탠자(stanza, 4행 이상의 각운이 있는 시구)는 이러한 장소들이 사회 생활에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Mademki gelmişiz köhne cihâne
Derdimizi çeksin şu vîranhâne
Gönül ne kahve ister ne kahvehane
Gönül ahbâb ister kahve bahane
(이 낡은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허름한 집은 우리의 슬픔을 덜어내리라.
마음은 커피도 커피하우스도 원하지 않아.
마음은 오직 친구를 원하고, 커피는 그저 핑계일 뿐) (p. 45 - p. 46)

 

●타흐미샤네
전설에 따르면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커피 씨앗이나 커피 묘목을 가져간 최초의 사람은 부단(Budan)이라고 불리는 인도인 하지(hajji, 메카 순례를 마친 남자 이슬람교도)였다고 한다. 1661년 암스테르담으로 가져온 커피 식물은 곧 네덜란드 식민지로 옮겨졌고, 1658년과 1699년에 각각 스리랑카와 자바에서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수마트라, 발리, 티모르, 술라웨시, 그리고 1718년 현재 남미의 네덜란드령 기아나(수리남)이다. 프랑스는 1714년에야 커피 묘목을 얻을 수 있었고, 몇 년 안에 그들은 마다가스카르 동쪽에 있는 부르봉 섬에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포르투갈이 네덜란드로부터 사들인 브라질의 기후와 토양이 커피 농업에 이상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브라질은 18세기 후반에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19세기에는 브라질 커피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p. 58)

●생명의 물
커피가 이스탄불에 소개되었을 때, 벨리이(Belîğî,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 출신 디반 시인)가 쓴 가젤에서 모든 커플렛(couplet, 2행 연구로 쓰인 시)의 끝에 ‘커피’라는 단어를 반복하면서 커피에 대한 정당성을 외쳤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 알레포, 다마스쿠스를 거쳐 아나톨리아에 도착하기 전에 이 장난스러운 열혈 미인이 와인잔을 차지한 것에 화가 났다; 그는 커피를 그녀(커피)의 고객들을 자극하는 데 능숙한 매춘부에 비유했다. (p. 61)
다른 시인들 역시 커피를 생명의 물(âb-ı hayat)에 비유했다; 이 비유를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한 증거로서, 그런 시인 중 한 사람은 커피의 어둠(검은 색깔)을 지적했다. 커피를 사랑하는 시인 레비브(Lebib)는 커피의 고향 예멘을 위해 다음과 같은 구절을 썼다:
Hâkiin biten kahveye fincan oluversem
(내가 하킨에서 재배한 커피 한 잔이라면) (p. 63)
커피와 커피하우스 둘 다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 되었다. 시인 네비(Nev’i, D. 1599)는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폐지된 시기에 대해 그가 썼을 가능성이 있는 한 절에서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교수들도 커피를 두 잔 마시지 않고는 밤에 책을 읽거나 아침에 강의를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흐테시브(muhtesib, 감독관)는 왜 무슬림이 커피를 마시면 이단자가 되는 것처럼 커피 판매자들을 적대적으로 대했을까?
Muhtesib kahve-fürûşa ne ta’addî eyler
Yoksa kâfir mi olur içse Müselman kahve
İrte derse çıkamaz gice kitâba bakamaz
Eğer içmezse müderris iki fincan kahve
(왜 감독관은 커피 판매자들을 억압하는가?
무슬림이 커피를 마시면 이단자가 되는가?
교수는 낮에 수업을 하거나 밤에 책을 볼 수 없다.
그가 커피 두 잔을 마시지 않는 한) (p. 64)

 

●커피 컵
튀르키예의 커피 문화를 반영하는 모든 단어들은 화려하게 아름답다: 카흐베(kahve), 디베크(dibek), 제즈베(cezve), 텔베(Telvé, 커피 찌꺼기), 핀잔(fincan),... 아랍어에서 가져와 변형되지 않고 사용되는 핀잔(fincan, 컵)이라는 단어는 튀르키예어에서 외국어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소리와 함축적 의미를 통해서 섬세한 감성과 풍부한 문화를 반영한다. 이 단어의 두 번째 음절인 ‘잔(can, 정신, 영혼을 의미)’은 커피의 화학적 성질에 있는 묘약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묘약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건강을 선사한다. ‘핀잔(fincan)’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여러분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손잡이가 있건 없건 간에 김이 나고 거품이 많은 튀르키예식 커피로 가득 찬 컵이다. (p. 81)
궁전의 커피 세리머니
커피 반대자들은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커피하우스를 폐쇄하도록 정치 권력에 촉구했다. 그러나 커피를 음료로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는데, 이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은 이미 커피 애호가가 되어 하루를 커피로 시작했고,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아침에 먹는 음식을 ‘카흐베 알트(kahve altı, under coffee, 커피 아래)’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어를 줄여서 튀르키예어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단어 중 하나가 된 카흐발트(kahvaltı, breakfast, dejeuner)라는 단어는 커피가 어떻게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부분이 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p. 89)
언어, 종교, 또는 사회 계급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없이, 이 커피하우스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커피하우스를 선호한다. 일부 커피하우스 외부에는 짚 매트가 깔린 벤치가 있다. 야외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하는 고객들은 이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음악가들은 수많은 커피숍에서 연주하고 노래한다. 예의바른 손님들 중 일부는 커피숍에 도착하면 지인들에게 커피를 권한다.
“만약 당신이 커피숍에 앉아 있고 누군가가 당신 옆에 앉아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커피를 주문해 줘야 한다; 이것이 오스만주의의 본질이다!” (p. 91)

 

●가정 생활의 커피
예비신부에게 청혼하는 것에서부터 결혼식에 이르기까지, 커피는 한때 결혼 의식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p. 106)
금욕적인 겸손의 표현으로 “우리의 쓴 커피 한 잔 드십시오.” 또는 “우리의 쓴 커피 한 잔 드시겠습니까?”라는 말이 초대 수단으로 종종 사용되었다. (p. 109)
“커피 한 잔은 40년의 우정을 약속한다”는 유명한 속담은 과장된 감사의 표현이며, 손님을 맞이할 때 커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 110)

 

●커피 중독
커피를 “에흘-으이르판 셰르베티(ehl-i irfan şerbeti, 지혜의 사람들의 셔벗)”라고 부르면서, 대부분의 커피 애호가들은 담배, 물담뱃대 또는 코담배에 중독되어 있으며, 숙련된 대화 전문가들이다. 그들의 즐거움은 일단 ‘커피와 담배’가 합쳐지면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것이다. (p. 115)

●화로와 애쉬 커피
Üşüyorsan eşiver mangalı, eş, eş de ısın
(추우면 화로를 쿡 찌르세요;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쿡 찌르세요)
집게로 화로의 재를 찌르는 것은 옛 이스탄불에서 겨울 동안 일상 생활의 일상적인 취미 중 하나였다. (p. 130)

●커피 부족
Kahve kuvvet kalbe, dermandır dize
Kahve ruha neşvedir, ferdir göze
Şairim ben isterim bir caize
Kahve lütfet varsa imkânın eğer
(커피는 심장에 힘을 주고, 무릎에 활력을 준다.
커피는 영혼에는 기쁨을 주고, 눈에는 빛을 준다.
나는 시인이다. 찬미의 시를 위한 선물을 원한다.
만약 당신에게 방법이 있다면 우리에게 커피를 주세요) (p. 144)

●커피 컵에 담긴 운세
어떤 사람들은 진정으로 커피 운세를 믿고 커피를 마실 때마다 좋은 소식을 듣기 위해 운세를 읽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운세를 듣는 것에 상당히 당황해했다. (p. 153)

●옛 이스탄불의 커피 광경
모든 길과 거리에서 커피하우스를 만날 수 있었는데, 사실 대부분의 커피하우스는 파빌리온(pavilion, 공원이나 큰 정원에 높게 장식된 건물)으로 지어졌으며 경치가 좋은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반면에 시골의 커피숍은 거대한 나무와 포도 덩굴 밑에 세워졌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이 장소에 모여 체커나 체스를 두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수다를 떨곤 했다. 겨울 몇 달 동안 대중의 이야기꾼(meddah, 메다)과 마술사들은 커피하우스에서 그들의 재능을 발휘했는데, 일부는 커피 한 잔과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만 자주 방문했다. (p. 161)

 

●지역 커피하우스
커피하우스가 당국의 통제 밖에서 형성된 자연스러운 사회 구조를 반영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네 커피하우스,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커피하우스, 부두의 뱃사공과 짐꾼들이 가는 커피하우스, 각지의 요리사와 마부들이 가는 커피하우스, 커피 애호가들이 가는 커피하우스, 대중 이야기꾼이나 세마이(Semai music은 6/8 박자로 구성된 오토만 터키 음악의 한 유형이다. 이것은 또한 Sama’i 또는 usul semai로 알려져 있다. 이 형태와 박자는 완전히 다른 Saz Semaisi와 혼동되기 쉽다. 이것은 10/8 박자로 구성된 세 개에서 네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 악기 형태이며, usul aksak semai(터키어로는 broken semai)이다) 가수들이 가는 커피하우스, 그리고 동네 마을 사람들과 은퇴한 사람들을 위한 커피하우스 등이 다양한 사회 집단과 직업군이 서로 교류하고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p. 180)
지역 커피하우스로 불리는 장소는 과학 아카데미 (Encümen-i Dâniş) 형태였으며, 그들은 과학과 교육 기관 또는 사회 복지 단체로 활동했다. 그들은 대중 간의 유대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를 강화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p. 183)
크라아트하네(고객이 읽을 수 있는 신문과 잡지가 있는 넓고 깨끗하며 잘 꾸며진 커피 하우스)
커피하우스는 생활이나 집을 정리하는 방법,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안식처이다. 한마디로 현실을 도피하는 이들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일상의 고민과 위로할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분위기, 기회가 주는 지인들을 만난다. (p. 185)
창가에 모자를 놓거나, 다리를 아래로 당기고, 디반 위에 눕거나,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며 “커피 한 잔 가져와!”라고 소리치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등의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은 볼 수 없었다. (p. 190)

●커피하우스에서의 엔터테인먼트
음악이 커피하우스에 들어온 시기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니체리 커피하우스는 처음부터 음악 공연을 펼쳤고, 예니체리 군단이 해체된 후(1826), 이 커피하우스는 세마이 카흐베레리(semai kahveleri)뿐만 아니라 소방관이 운영하는 "찰그르 카흐베레르(çalgılı kahveler, 뮤직 카페. 음악이 있는 커피하우스)로도 알려진 아슈크 카흐베레리(âşık kahveleri)로 변모되었다. 아나톨리아(Anatolia)와 로우멜리아(Roumelia)에서 이스탄불에 도착한 튀르키예 음악의 민속 시인 가수(âşık, 아슈크)는 쳄베르리타쉬(Çemberlitaş) 근처의 타부크파자르(Tavukpazarı) 커피하우스에서 현지 음악가들과 함께 모여 "시 대결(atışma, 아트쉬마)로 알려진 노래 경연 대회를 개최하여 테스트를 통과했다. (p. 197)

 

●문예 커피하우스
튀르키예 문학에서 현대 시의 공동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야히아 케말은 휴전 기간 동안 다륄퓌눈(Darülfünun)에서 학생들과 함께 누루오스마니예에 있는 이크발 크라아트하네시(İkbal Kıraathanesi)에 정착했다. 커피하우스는 그의 지도 아래 출판된 데르가흐(Dergâh) 잡지의 본부로 사용되었다. 젊은 시절 파리에서 보낸 10년 동안, 그는 수플레(Soufflet)와 바셰트(Vachette) 같은 커피하우스에 자주 들렀고, 이들 커피하우스에서 즐겼던 문예 한담의 마지막 날들의 즐거움을 이스탄불로 가져갔다. (p. 209)
그의 소설 『참르자다키 에니쉬테미즈(Çamlıca’daki Eniştemiz, 참르자에 있는 우리 삼촌)』에서 압뒬하크 쉬나시 히사르(Abdülhak Şinasi Hisar)는 음식에 대한 오래된 관습과 습관을 유지하는 데 미친 미식가 삼촌과 그의 가족들이 잠옷을 벗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아침 커피를 마신다고 썼다.

 


번역: 조주섭·권인선

●번역_조주섭(James Cho)
(1958- ) 작가, 컨설턴트, 코치, 멘토. 경북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였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대자동차에서 경력을 시작하여 쌍용자동차와 제너럴 모터스 코리아에서 엔지니어링 및 기획 이사로 대정부 업무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1999년부터 덴마크의 DecideAct(전략 실행 관리 및 ESG경영 컨설팅 전문) 및 미국 파트너와 협력하여 컨설팅 사업을 운영하면서 컨설턴트, 코치, 멘토, 퍼실리테이터, 대한민국 명강사이자 기조연설자로 활동해 왔다.

여러 출판물과 책의 저자이자 번역가 그리고 다양한 매체 기고자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취미로 몇 곡의 노래를 작사·작곡하였으며 목소리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보이스 클리닉 코칭도 해오고 있다.

저서 및 번역서: 술탄이 된 해적-지브롤터의 상인(바르바로사 형제의 사가,번역), 성공적 삶의 베이스캠프 밥상머리(공저), 굿 코칭(Good Coaching: Leader as Coach,번역), 성공 라이프 스킬(번역), 스피리츄얼 리더십(번역), GieDership, 골프에서 배우는 가치기준리더십(공저), 가치기준리더십(Dare to Kiss the Frog, 버번역), 자동차 공학의 수학과 공식(편저) 등

●번역_권인선(Kwon, Inseon)
(1962- ) 중등 영어교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외국어교육(독일어 전공/영어 부전공)과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 석사 학위를, 숙명여자대학교 원격대학원에서 교육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Mondial Orient Limited Korea Branch Office에 근무하였고, 1989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33년간 교직에 근무했으며, 현재 인천의 백석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디자인_이현주

주)디자인 ON그룹 대표, 사)공공브랜드진흥원 이사장 역임, K패턴연구소-브랜드 ‘민화양장점’ 운영, 한양대학교 시각정보학과 겸임교수 역임, KEIT심사위원, 여성벤처협회-자랑스런 여성벤처인 표창수상

 


출판사 서평

“커피 한 잔은 40년의 우정을 약속한다”(A CUP OF COFFEE COMMITS ONE TO FORTY YEARS OF FRIENDSHIP)라는 튀르키예 속담이 있습니다. 역자는 페이스북에서 에르투룰 외날프(ERTUĞRUL ÖNALP)박사를 만나 '커피 한 잔'으로 40년 지기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목구멍을 마음이 통하는 문이라 여깁니다. 이는 튀르키예 커피가 맛도 맛이거니와 사회적 기능을 함께 지녔다는 뜻입니다.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에 대한 튀르키예 속담입니다. “영혼이 찾는 것은 커피도 커피하우스도 아닌 돈독한 우정이다. 커피는 구실에 불과하다”라는 튀르키예 속담에서처럼 커피는 본래의 사회적 관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도구임을 말해줍니다.
커피 한 잔으로 맺어진 우정으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소설 번역이란 엄청난 대가(우정)를 치르고 다시 『튀르키예 커피 문화Turkish Coffee Culture』란 책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 튀르키예공화국 문화관광부 출판국이 출판한 『튀르키예 커피 문화Turkish Coffee Culture』를 번역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개인적으로 2010년부터 커피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에르투룰 외날프 박사(Dr. ERTUĞRUL ÖNALP)는 튀르키예식 커피하우스를 한국에서 열어보라고까지 권유하였으나 때는 바야흐로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콜드브루 커피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역자가 『튀르키예 커피 문화Turkish Coffee Culture』를 번역하기로 마음먹게 된 동기는 한국에는 커피하우스가 십만 개 정도가 있고, 커피 가격이 밥 한끼 가격과 비슷하지만 커피 없이는 생활이 안되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022년 11월 4일 오후 11시경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에서 매몰 사고로 고립된 지 무려 열흘만(221시간)에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가 커피믹스를 밥처럼 먹으며 버텼다는 인터뷰 내용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100원 커피믹스의 기적’, ‘아재 커피? 봉화 기적’, ‘봉화광산의 기적 커피믹스’, ‘기적을 마시는 느낌’,… 등의 헤드라인이 SNS를 며칠째 달구고 있습니다. 이제 커피는 미군들이 야전과 시가전에서 사용하는 전투식량일 뿐만 아니라 ‘봉화의 기적’ 이후 ‘비상식량’이 되었습니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그 어떤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아예 기적까지 만들어냈습니다.
튀르키예에 관해 말하자면 역자는 개인적으로 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스만제국의 수도에도 가본 적이 없고 한국전쟁 시 파병을 하였다는 사실과 2002년 한일 월드컵 준결승에서 만난 형제국이라는 정도의 상식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터키행진곡으로 잘 알려진 튀르키예(Türkiye)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전에서 만나 형제의 나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으로 참전하였으며, 한국의 형제의 나라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국명은 튀르크에서 왔으며 문헌에서 나타나는 돌궐을 민족국가로 여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튀르키예를 "형제의 국가"라고 칭하는 것은 이 돌궐의 오르혼 비석에 고구려를 형제라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튀르키예는 본디 튀르키예였습니다. ‘터키(Turkey)’는 국제사회에서 쓰여온 영어식 표기입니다. 튀르키예는 이를 못마땅해했습니다. 영어로 ‘칠면조’(turkey)와 표기와 발음이 같은데다, 부정적인 속어로도 쓰이기 때문입니다. 튀르키예는 오래전부터 나라이름을 튀르키예로 불러달라고 요구해왔으나, 이를 본격화한 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 이후입니다.
역자는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드라마 수출국답게 이야기를 오스만 제국의 역사만큼이나 맛깔스럽게 전개하는 튀르키예라는 나라와 『튀르키예 커피 문화』에 더욱 가깝게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와 인종, 지리 및 출신 성분으로 인한 갈등이 끝이지 않고 있지만, 『튀르키예 커피 문화』와 역자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번역한 소설 『술탄이 된 해적: 지브롤터의 상인 이야기-바르바로사의 사가』를 통해 독자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희망의 빛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불어 역자 또한 편협한 지식과 가치관으로 인해 편견과 오해를 가졌던 서로 다른 신앙과 문화와 언어와 풍습을 가진 사람들과 국가와 집단들을 깊이 이해하고 관대해질 수 있게 됨에 스스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2022년이 한국-튀르키예 수교 65주년이었습니다. 이제까지 한국은 튀르키예를 비롯해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와 교류가 부족하였습니다. 『튀르키예 커피 문화』를 번역하면서 특히 튀르키예와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이를 계기로 지역과 인종과 종교와 나라에 관계없이 공통으로 즐기는 커피를 통해서 양국이 한층 더 상호이해와 교류를 한층 더 활발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이 수교 65주년을 맞이하여 국가간 및 민간차원의 외교와 문화를 넘어 경제적인 교류의 폭을 넓혀 현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한국과 튀르키예는 문화와 생활에서 공통점이 많습니다. 한국인과 튀르키예인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시와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입니다. 한국에서 재 화로(ash brazier)를 음식을 조리하고 데우는데 사용한 것은 마치 재 화로(ash brazier)에 커피를 끓이는 튀르키예의 전통과 흡사합니다.
또다른 흥미로운 예는, 불과 50여 년 전까지 한국에서의 혼인문화입니다. 청혼을 하는 예비신랑 측에 신부후보자가 식사를 대접하는데 신부후보자가 예비신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그릇에 밥을 엄청나게 많이 담아 밥을 다 먹지 못하게 하여 거부 의사를 표현했고, 반대로 신부후보자가 예비신랑이 마음에 들면 밥을 적게 담아 마음에 든다는 것을 표현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튀르키예에서 청혼을 하는 예비신랑 측에게 신부후보자가 커피를 대접할 때 신부후보자가 예비신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커피잔에 소금을 넣어 대접하여 커피를 다 마시지 못하게 하여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반대로 신부후보자가 예비신랑이 마음에 들면 커피에 설탕을 넣어 제공하여 마음에 든다는 것을 표현하였던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튀르키예에서 커피의 역사는 우리의 인생처럼 굴곡이 많았습니다. 커피가 이스탄불에 도착하자마자 비록 상당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결국 그 도시에서 커피가 군림하고, 반대자 대다수의 마음을 가까스로 돌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취하게 하는 냄새, 감미로운 맛, 그리고 흥분 및 탈진 방지 같은 보완적인 특성이 이 성공의 유일한 요인은 아닙니다. 커피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오스만 정부 당국을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커피하우스와 같은, 커피가 소비될 수 있는 장소에서 일어난 논의였습니다. 커피를 폐지하라는 법령을 내린 사람들도 어쩌면 큰 컵에 쓴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금지 사항을 준수하고 커피를 전면 금지하는 데 성공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커피는 이미 궁전에 들어왔고, 말하자면 내부에서 안전한 은신처를 정복하면서 의전에서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술탄 무라드 4세의 통치 기간 동안 마지막 심각한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주 정부는 커피하우스를 폐쇄하기보다는 스파이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면밀히 감시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커피를 음료로 금지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때쯤에는 피 대신 커피가 사람들의 혈관 속을 돌고 있었습니다. 외국 여행자들은 놀랍게도 어떻게 커피가 튀르키예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 되었는지 관찰했습니다.
보통 튀르키예인들은 아침 식사를 뜻하는 튀르키예어 ‘Kahvaltı(카흐발트)’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즉 ‘커피를 마시기 전(Kahve-altı, before coffee)’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즉, 튀르키예인들은 아침 식사를 한다기보다는 단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아침에 간단히 음식을 먹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자가 어릴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통상적인 인사로 “식사하셨습니까?” 혹은 “아침 드셨습니까?” 또는 “점심 드셨습니까?” 등 끼니를 해결하였는가를 묻곤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세대에 걸쳐 ‘커피’는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되었으며, 피 대신 커피가 사람들의 혈관 속을 돌고 커피는 커피의 속성 중의 하나인 ‘사회적 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흥미롭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There is a Türkiye proverb: “A cup of coffee commits 40 years of friendship”. The translator met Dr. ERTUĞRUL ÖNALP on Facebook and has become friends with 'a cup of coffee' for 40 years. Türkiye people consider the throat to be the door to the heart. This means that Türkiye coffee has a social function as well as a taste. 'Black as hell, strong as death, sweet as love' is a Türkiye proverb about coffee. “What the soul is looking for is not coffee or a coffee house, but a strong friendship. As in the Türkiye proverb, “coffee is just an excuse”, coffee is a tool to take a step further from the original social relationship.
With a friendship formed over a cup of coffee, I had to pay a huge price (friendship) translating of a novel that I had never even dreamed of, and then I came across a book called『Türkiye Coffee Culture』.
When I was offered to translate『Türkiye Coffee Culture』published by the Publishing Bureau of the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of the Republic of Turkey in 2016, I had been interested in coffee and had been studying since 2010. When Dr. ERTUĞRUL ÖNALP even recommended opening a Türkiye style coffee house in Korea, cold brew coffee was starting to boom in the United States and around the world.
The motivation behind the translator's decision to translate 『Türkiye Coffee Culture』was the fact that there are about 100,000 coffee houses in Korea, and a cup of coffee can cost as much as a meal, but there is a social and cultural background where people cannot live without coffee.
On November 4, 2022, at around 11:00 PM, a miner who was dramatically rescued after 10 days (221 hours) of being isolated in a burial accident at a zinc mining mine in Bonghwa-gun, Gyeongsangbuk-do, is being talked about as he has endured by eating coffee mix like rice. ‘Miracle of 100 Won Coffee Mix’, ‘Old Man Coffee? Bonghwa Miracle’, ‘Bonghwa Mine’s Miracle, Coffee Mix’, ‘feeling of drinking a miracle’,… Back headlines have been heating up social media for days. Coffee is now not only a combat ration used by US soldiers in field battles and street battles, but has also become an “emergency ration” after the “Bonghwa Mine’s Miracle.” Koreans' love for coffee is unparalleled in any culture and has even created a miracle.
Personally, when it comes to Türkiye, I have never been to the capital of the Ottoman Empire, which has a 600-year history, and I only have common sense that it was a brother country that we met in the semifinals of the 2002 Korea-Japan World Cup.
Türkiye, which is well known to us as the Turkish March, is better known as a brother country after meeting in the semifinals of the 2002 Korea-Japan World Cup. Türkiye participated in the Korean War as a UN forces, and claims to be a brother country of Korea. The name of the country of Türkiye comes from Turk, and the Turks appearing in the literature are regarded as a nation-state. The reason why Korea and Türkiye are called "brotherly countries" is because Goguryeo was recorded as a brother on the Orhon stele of Turk. Türkiye was originally Türkiye. ‘Turkey’ is an English term used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ürkiye was displeased. This is because it has the same transcription and pronunciation as 'turkey' in English, and is also used as negative slang. It has long been requested that the country be called Türkiye, but it was only after President Recep Tayyip Erdogan instructed in December 2021 that it began in earnest.
As the world's second-largest drama exporter after the United States, the translator was able to get closer to the country of Türkiye and its coffee culture, which unfolds the story as deliciously as the history of the Ottoman Empire. Although conflicts over religion, race, geography, and origin are still not over in many parts of the world, I hope people would see the light of hope for human dignity and humanity's future through the『Türkiye Coffee Culture』and the novel『Pirate Became the Sultan: The Merchant of Gibraltar-Epic of Barbarossa Brothers』 translated by the translator during the COVID-19. In addition, the translator is also grateful for being able to deeply understand and be tolerant of people, countries, and groups with different beliefs, cultures, languages, and customs that have been prejudiced and misunderstood due to narrow knowledge and values.
This year marks the 65th anniversary of diplomatic ties between Korea and Türkiye. Until now, there has been a lack of understanding and interaction with Islamic culture, including Türkiye. By translating『Türkiye Coffee Culture』, the translator gained a broader understanding of both Türkiye and Islamic cultures, and I hope that two countries will have more mutual understanding and exchange through their shared love of coffee, regardless of region, race or region. I thought it would be nice to have active exchanges. In celebration of the 65th anniversary of diplomatic ties, it is hoped that this book can contribute even a little to not only the current generation but also the next generation by broadening the scope of economic exchange beyond diplomacy and culture both at the private level and between countries.
Korea and Türkiye have a lot in common in culture and life. Koreans and Turks are people who love literature and art, and enjoy poetry, song, and dance. Using an ash brazier in Korea to cook and heat food in Korea is similar to the tradition of brewing coffee over an ash brazier in Türkiye.
Another interesting example is the marriage culture in Korea until only 50 years ago. When a bride-to-be was serving a meal to her prospective groom who was proposing to her, if she didn’t like him, she expressed her refusal by putting a huge amount of rice in a bowl and preventing him from eating all the rice. If the bride-to-be liked the prospective groom, she expressed her liking with less rice. It’s very similar to the way a bride-to-be would serve coffee to a prospective groom who was proposing to her in Türkiye: if she didn’t like him, she’d add salt to show her disapproval, and if she liked him, she’d add sugar to show her approval. There are many things in common in culture and life.
The history of coffee in Türkiye, like ours, has many ups and downs. Although coffee met with considerable opposition upon its arrival in Istanbul, it eventually reigned in the city and managed to win back the hearts of the majority of its opponents. Complementary characteristics such as intoxicating smell, sweet taste, and prevention of excitement and exhaustion are not the only factors contributing to this success. Coffee has an amazing art of bringing people together. What puzzled Ottoman authorities at the time was the discussion took place where coffee was being consumed, such as coffeehouses. Even the people who decreed the abolition of coffee were probably drinking bitter coffee from big cups. Therefore, it was impossible to succeed in complying with the ban and banning coffee altogether. Coffee had already entered the palace and, so to speak, had taken its place in the protocol, conquering safe havens within. The last serious ban came during the reign of Sultan Murad IV. In the years that followed, rather than shutting down coffeehouses, the state government preferred to keep a close eye on them with the help of spies. Banning coffee as a drink was unthinkable, but by then coffee was circulating in people's veins instead of blood. Foreign travelers have remarkably observed how coffee has become an indispensable part of Türkiye life.
Usually, the Turks started their day with the Turkic word "Kahvalt," which means breakfast, which is derived from the word "Kahve-altı, before coffee." In other words, the Turks simply ate breakfast in the morning to drink coffee rather than breakfast.
In Korea, not only when the translator was young, but also today, people often ask if they have solved their back meal problem, such as "Did you eat?" or "Did you eat breakfast?" or "Did you eat lunch?" with ordinary greetings. But today, not only for the young generation but also for almost all generations, 'coffee' has become an indispensable necessity in daily life, and instead of blood, coffee circulates in people's blood vessels, and is playing the role of 'social blood', one of the properties of coffee.
I hope this book will be loved and enjoyed by readers.


추천사

●커피시인 윤보영

며칠 전 『튀르키예 커피 문화』 번역본을 출간 준비 중인 권인선 선생님으로부터 추천서 요청을 받았습니다. 평소 커피를 내용으로 시를 적어 ‘커피시인’이란 애칭이 붙은 저로서는 ‘튀르키예’ 커피 문화를 만날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수락했습니다.
사실 저는 보통 사람들처럼 일상에서 커피를 마시지만 커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 커피와 시가 새롭게 만나 저로하여금 커피시를 이어 적게 만들었고, 커피를 내용으로 하는 시가 1,500 여편으로 늘어나면서 SNS상 커피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흔히 커피라 하면 마시는 커피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눈으로 마시는 커피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커피가 시인을 만나 느낌으로 마시는 커피가 탄생했습니다. 즉, 커피를 마시지 않더라도 커피를 내용으로 쓴 시를 읽고 나면 최고의 커피를 마신 것처럼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느낌으로 마시는 커피를 통해 독자들은 커피시를 좋아하는 열성 독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더러는 커피를 끊었다가 다시 마시는 사람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의 첫 커피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커피/윤보영

커피에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네요
아!
그대 생각을 빠뜨렸군요.

이렇게 시를 통해 커피를 좋아하는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그 소통 속의 커피는 제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였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사람들이 커피를 직접 타서 마시거나 자동판매기를 통해 마시기도 했지만, 커피 맛을 즐기면서 마시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커피의 시작이 고종황제 때 처음 마신 ‘가배(咖啡)’라는 사실만 기억할 뿐 올바른 커피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튀르키예’는 이미 16세기 예멘으로부터 이스탄불에 커피가 들어오고, 역사 속에서 탄압까지 극복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 왔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처럼 깊이 있는 역사적 의미를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필자가 자판기 커피를 주로 마셨던 1995년경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정부청사 뒤편에 커피 전문점 하나가 운영되었고 높은 가격 때문에 이 카페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려는 우려일 뿐 커피전문점과 커피 마시는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나 이제 커피는 우리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 일상이 된 커피 문화에 ‘튀르키예’ 커피 문화를 접목해 우리 커피 문화의 뿌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커피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서적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특정 국가에 대한 커피 역사와 문화를 맛깔스럽게 번역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해주신 조주섭님과 권인선님, 번역본 발간을 허락해 주신 튀르키예 문화관관광부와 원저자 ‘베쉬르 아이바조올루’ 박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박규은
연전에 TV를 보는데, 사형수로 복역 중에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된 사람이 감형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당시의 심정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 이제 내게도 언젠가는 출소하여 아침에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제가 별생각 없이 매일 습관적으로 즐겨 마시는 커피가 누군가에게는 자유를 얻은 상태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페라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은 야구의 규칙을 모르고 야구 경기를 구경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커피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입니다만, 커피에 대하여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면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이 배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커피와 커피잔, 커피하우스를 비롯한 튀르키예의 커피 문화를 알게 됨으로써 향후 커피를 대하는 자세를 포함한 커피와의 관계가 좀 더 돈독해질 수 있을 것이며,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대제국이었으나 그에 비하여 역사책에서는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튀르키예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더욱 깊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코오롱글로벌(주) 이기원 상무
뭔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여전히 흥미롭다.
수십 년 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즐겨왔던 커피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어디서 주워들은 몇 가지 정보(종류나 원산지 같은 것)가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한 권의 책을 접하게 됨으로써 앞으로의 커피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과 향기로 다가올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언제가는 이 책을 들고서(오래 전 출장길의 기억을 더듬어) 이스탄불 어느 골목길 조용한 카페를 한 번 찾아보리라. 제즈베에서 은근하게 끓고 있는 튀르키예식 커피의 진한 향기가 느껴진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저자 정상천
“커피 한 잔은 40년의 우정을 약속한다”는 카피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신 것만큼 강력한 풍미로 가슴을 타고 내린다. 외교관으로서 튀르키예에 세 번 정도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마셔본 현지의 커피 맛이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조금은 걸쭉하고 거품이 나는 튀르키예 커피는 서구식 커피 맛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경할 수도 있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남아 있는 커피 찌꺼기로 그 커피를 마신 사람의 운세를 점치는 풍습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튀르키예에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사회관계망을 만들어가는 묘약이다.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것을 독자 여러분에게 강추합니다.

●진접중학교 교장 이혜경
수년 전 튀르키예 여행을 했을 때는 튀르키예라는 나라가 생소함과 이질감에 신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아침 식사의 어원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먹는 간단한 음식’이라는 내용을 보고 급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어요. 바로 제가 아침밥을 챙겨먹는 이유거든요. 커피를 통해 튀르키예의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의 책입니다.

 

●㈜ 키인터내셔널홀딩스(아르기니케어) 대표 황기만
인구 1인당 커피 소비량 세계 2위. 인구 100만명 당 커피점 1위,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커피를 좋아하고 즐겨 마시는 나라가 또 어디 있으랴! 이는 앞으로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간하는『튀르키예 커피 문화』라는 번역서를 통해 한국전쟁 참전 및 양국 수교 65주년을 맞는 튀르키예의 커피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나아가 다른 언어와 신앙을 가졌어도 커피라는 촉매를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에 대한 튀르키예 속담 속으로 우리 모두 빠져 들어가 봅시다~

 

●간재울중학교장 배 세 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안다는 것만큼 즐겁고 설렘을 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튀르키예 커피 문화』는 우리들에게 터키로 많이 알려진 튀르키예 사람들의 커피 문화를 통해 그 속에 녹아있는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새로움을 선사한다.

 

●인천광역시 서부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박말선
커피를 마시고 싶으나 잠 못 들까 두려운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커피를 마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잠 못 자는 것이 뭐가 대수랴? 이 책은 당신이 잠을 자기보다 커피 향에 더 취하고 싶게 만들어 줄 것이다. 잠 못 드는 밤, 한잔의 커피와 함께 이 책을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사단법인전통문화원 원장 문정희
권인선 선생님께서 『튀르키예 커피 문화』란 책을 옮기셨다 해서 처음에 깜짝 놀랐다. 선생님은 (사)전통문화원과 연계한, 청소년 전통문화의 전승과 보급을 위한 「다(茶)사랑청소년봉사단」지도교사로서 그리고 인천지역 운영 총괄을 담당하면서 학생들에게 차 생활교육과 우리 문화에 대한 교육에 꾸준히 열정을 보이신 분이다. 선생님이 우리 차 문화에 관심이 많으신데 그 바쁜 중에도 「튀르키예 커피 문화」를 번역하신 것을 보고 역시 권인선 선생님이야! 생각하였다. 우리 차 문화를 잘 아시는 선생님께서 커피 문화에 대한 이해를 접목하시면 동서양을 아우르는 TEA & COFFEE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여기며 책 출간에 축하와 성원을 보냅니다.

●백석고등학교 교장 송경희
인생을 살면서 나에게 커피가 주는 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일과 중에도 몇 번씩 커피가 생각난다.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도 어김없이 커피를 찾게 된다.
나에게 있어 커피는, 삶을 살아가는 데 힐링이 되는 동료이자 친구, 그리움 같은 존재다. 이 책의 번역자 권인선 선생님은 나에게 있어 커피가 생각나게 하는 멋진 사람이다. 서로 젊을 때 만나서 지금의 학교에서 다시 만나 인연을 맺고, 나에게는 무척 귀한 분이다. 젊을 때의 열정적인 모습 그대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마시는 커피는 참 좋다! 커피는 좋은 사람을 더 자주 만나게 한다!

●신한대학교 교수 김순남

커피는 삶이고 행복이다
커피는 도전과 인내와 함께 했고
사랑과 우정과 함께 했다.
튀르키예 커피와 삶과 사랑을 노래한다.
튀르키예 커피로부터 활력이 샘솟는다.
튀르키예 커피 주인의 새 인생을 응원한다.

 

●(주) 동원개발 고문 조평규
철학자 최진석(서강대 명예교수)선생은 “철학을 한다는 것은 철학적 높이에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커피와 철학은 잘 어울리는 관계입니다. 이 책은 튀르키예 커피에 대한 깊은 지식은 물론 세계를 호령했던 제국의 단면 하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독한 튀르키예식 커피 한잔은 「철학적 사유의 높이」를 더하게 될 것입니다.
 

●형도관세사 조기철
그리 멀지 않은 110년 전까지 오백년 간 유럽의 맹주였던 오스만튀르키예 제국에 스며든 커피 스토리는 그 시대 제국의 문화와 삶이 온전히 녹아있는 한잔의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두 분의 번역가와 한 분의 디자이너가 인연과 소통으로 책을 완성한 과정이 커피향처럼 삶을 여유롭게 합니다.

 

●서울금융포럼 대표 이길영
커피는 시작이다. 나는 매일 아침 물 한잔과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 같은 루틴은 10년 이상 지키고 있으며, 인생 나이를 고려해 볼 때 앞으로도 20년 이상 지켜질 것이다. 이처럼 커피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풍경이 아름다운 우리 아파트 구름카페에 간다. 메뉴는 사계절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가지로 정해져 있다. 단골이다 보니 카페 매니저는 말하지 않아도 늘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커피머신에서 내린다. 이제 살짝 궁금증이 생긴다. 오랜 커피 역사를 가지고 있는 튀르키예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는 과연 어떤 맛일까? 아마도 내가 즐겨 마시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커피는 시작이요, 삶의 동반자란 사실만은 같을 것이다.

●갤러리 북과바디 대표 이돈수(미술사가)
최근, 책을 조주섭 선배님과 권인선 선배님이 의기투합해 번역한 베쉬르 아이바조올루의 『튀르키예 커피 문화 - 커피 한 잔은 40년의 우정을 약속한다』의 추천사를 부탁받았다. 오랜 기간 동안 정성스레 준비한 책의 추천사를 쓴다는 것은 몹시 부담스러운 일인데, 워낙 커피를 좋아해 수락했다. 하지만 커피는 핑계이고, 사실 두 선배님의 후배를 향한 믿음에 감복 받아 결정했다.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은 큰 부담으로 작용해 글을 앞에 놓고 몇 잔의 커피를 마셨는지 셀 수 없다. 두 선배님과의 만남 사이에도 커피가 있었고, 글쓰기 하는 과정에도 커피가 있었다. 이제 커피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고향을 떠나 먼 타국 땅에 머물게 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음식은 중독성이 강한 고향의 발효음식이다. 인이 박힌 음식에 대한 결핍은 동서양인을 불문하고 심한 향수와 금단 증상을 낳는다. 세계 어느 곳에 있든 금단 증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중독성이 강한 음식이 있는데,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한 커피다. 커피는 오히려 외국 여행할 때 새로운 커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커피는 15세기 중반에는 예멘 사원의 성직자가 마시기 시작했다. 사회적 허브이며 예술과 지적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한 커피하우스 문화는 16세기 튀르키예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에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정치 및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고, 예술가, 작가, 사교계 명사들의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였다. 이 당시 영국 커피하우스는 한 푼만 있으면 들어가서 철학과 예술을 논하며 배울 수 있는 곳, 페니 대학(penny universities)으로 불렸다. 종교인이, 지식인이, 예술가가 마시던 커피는 이제는 일상화되어 누구나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
일상화된 커피는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기억을 남긴다. 내 기억 속에는 어린 시절 미제 분말커피와 농축 우유로 의식을 치르듯 커피를 만들던 외할아버지의 근엄한 모습, 삼촌과 함께 갔던 담배 냄새 나는 커피하우스에서 맛보았던 한 모금의 커피 맛이 각인되어 있다. 고등학생 시절 등교하면서, 분말커피 한 숟가락 입에 털어 넣고 집에서 나올 때 입안에 도는 커피 향, 유학 시절 남유럽에 머물면서 즐겼던 에스프레소 커피 맛도 생생히 기억난다. 많은 커피숍의 커피 맛을 잡아 주기도 했고, 커피를 함께 나누었던 사람과 의미 있는 순간의 축적된 기억은 내게는 소중한 보물이다. 커피에는 내 기억뿐만 아니라 역사, 사회적 기억이 녹아 있다. 현재 한국 커피에는 자본주의가 낳은 취향이 녹아 있고, 피로 사회, 경쟁 사회, 허영 사회 등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표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세기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나 외교관을 통해서 처음 커피가 유입되었고, 고종 황제 역시 커피 애호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원두커피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었으나, 해방 이후 전쟁을 치르면서 군수물자로 들여온 인스턴트 커피가 유행하게 되면서 원두커피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1976년 동서식품은 세계 최초 커피 믹스를 개발했고, 자판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커피 믹스가 한국 커피를 대표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의 발명품인 커피 믹스의 매력에 빠지는 세계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 후 88 올림픽 개최를 전후하여 커피 원두 수입 규제가 완화되고, 1999년 7월 스타벅스가 문을 열면서 프랜차이즈 커피 시대를 엶과 동시에 원두커피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원두커피의 본격적 소비는 20여 년 밖에 되지 않지만, 한국의 커피 문화와 소비자의 취향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세련미와 독창성을 가지게 됐다. 한국의 커피는 현재 K-coffee로 진화하는 과정 중에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빨리빨리’라는 우리 정서와 문화를 담은 커피믹스는 이제 간편함과 맛으로 세계인을 유혹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병 제품을 수출하는 스타벅스 비지니스는 K-coffee 산업의 진화 과정과 위상을 확인시켜 준다. 한국은 커피에서도 수 세기에 달하는 여러 나라의 커피문화와 비교하면 단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튀르키예 커피 문화』는 튀르키예와 관련한 커피의 역사, 사회적 기억, 개인의 기억 등을 종합하여 커피 문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제시한다. 한국에서 비약적으로 커피 문화가 발전하면서, 커피와 관련된 전문가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이런 빠른 성장에는 결핍된 부분도 있다. 오랜 전통을 가진 타국의 커피 문화에 대한 이해의 부분이 그렇다. 『튀르키예 커피 문화』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커피 문화사에 있어 매우 소중한 지점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이 점에서 매우 유익하고, 독자의 사랑을 충분히 받을 만한 책이다. 바람이 있다면 가까운 미래에 한국의 커피 역사와 문화를 기행할 수 있는 책을 집필해 주신다면, 그 책에 추천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기회와 영광이 곧 오기를 기원하면서, 책을 준비한 두 선배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옮긴이 후기(1)_서울에서, 2023년 7월 17일 조주섭

조두섭
조주섭

“커피 한 잔은 40년의 우정을 약속한다”(A CUP OF COFFEE COMMITS ONE TO FORTY YEARS OF FRIENDSHIP)라는 튀르키예 속담이 있다. 역자는 페이스북에서 에르투룰 외날프(ERTUĞRUL ÖNALP) 박사를 만나 ‘커피 한 잔’으로 40년 지기의 친구가 되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목구멍을 마음이 통하는 문이라 여긴다. 이는 튀르키예 커피가 맛도 맛이거니와 사회적 기능을 함께 지녔다는 뜻이다.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에 대한 튀르키예 속담이다. “영혼이 찾는 것은 커피도 커피하우스도 아닌 돈독한 우정이다. 커피는 구실에 불과하다”라는 튀르키예 속담에서처럼 커피는 본래의 사회적 관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도구임을 말해준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그는 매년 한국을 방문하여 몇 달을 보내고 작품 활동을 하고 다시 앙카라로 건너갔고, 그가 매년 어김없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우리는 커피 한잔을 하면서 회포를 풀곤 했다. 나는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로 내린 콜드브루 커피를, 외날프 박사는 튀르키예 커피를 서로 선물로 주고받았다. 그는 아예 『튀르키예 커피 문화』라는 책자를 번역하라고 자료를 보내주기도 했다. 이렇게 만남이 계속되고 약 2년 반쯤 전, 그는 스페인 소설가 이스라엘 산토스 라라(ISRAEL SANTOS LARA)가 쓴 『상인 이야기(El mercader de historias)』라는 소설을 튀르키예어로 각색한 『술탄이 된 해적(Korsanlıktan Sultanlığa)』의 영어 버전을 한국어로 번역해 달라며 메신저로 연락해 왔다. 전문 서적은 20여 년간 번역을 해왔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지만 소설 번역은 처음이었으므로 처음엔 솔직히 좀 망설였다. 스페인어 원본과 영어 번역본을 받아 들고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한 후 번역을 한 번 해보겠다고 응답을 했다. 거의 2년만에 초벌 번역을 마치고 교정을 수차례 보았을 때, 그는 다시 영어 전문가가 수정한 영어 번역본을 보내왔다. 나는 1년이란 기간 동안 완전히 새롭게 번역하는 기분으로 밤낮으로 매달렸다. 내용도 무려 520여 페이지나 되는 분량이라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커피 한 잔으로 맺어진 우정으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소설 번역이란 엄청난 대가(우정)를 치르고 다시 『튀르키예 커피 문화』란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2016년 튀르키예공화국 문화관광부 출판국이 출판한 『튀르키예 커피 문화』를 번역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개인적으로 2010년부터 커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에르투룰 외날프 박사(Dr. ERTUĞRUL ÖNALP)는 튀르키예식 커피하우스를 한국에서 열어보라고까지 권유하였으나 그 때는 바야흐로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콜드브루 커피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역자가 『튀르키예 커피 문화』를 번역하기로 마음먹게 된 동기는 한국에는 커피하우스가 십만 개 정도 있고, 커피 가격이 밥 한끼 가격과 비슷하지만 커피 없이는 생활이 안되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2022년 11월 4일 오후 11시경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에서 매몰 사고로 고립된 지 무려 열흘만(221시간)에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가 커피믹스를 밥처럼 먹으며 버텼다는 인터뷰 내용이 세간에 회자되었다. ‘100원 커피믹스의 기적’, ‘아재 커피? 봉화 기적’, ‘봉화광산의 기적 커피믹스’, ‘기적을 마시는 느낌’… 등의 헤드라인이 며칠째 SNS를 달구었다. 이제 커피는 미군들이 야전과 시가전에서 사용하는 전투식량일 뿐만 아니라 ‘봉화의 기적’ 이후 ‘비상식량’이 되었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그 어떤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아예 기적까지 만들어냈다.
튀르키예에 관해 말하자면 역자는 개인적으로, 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스만제국의 수도에도 가본 적이 없고 한국전쟁 시 파병을 하였다는 사실과 2002년 한일 월드컵 준결승에서 만난 형제국이라는 정도의 상식만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터키행진곡으로 잘 알려진 튀르키예(Türkiye)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전에서 만나 형제의 나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으로 참전하였으며, 한국의 형제의 나라임을 자처하고 있다. 튀르키예의 국명은 튀르크에서 왔으며 문헌에서 나타나는 돌궐을 민족국가로 여기고 있다. 대한민국과 튀르키예를 “형제의 국가”라고 칭하는 것은 이 돌궐의 오르혼 비석에 고구려를 형제라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본디 튀르키예였다. ‘터키(Turkey)’는 국제사회에서 쓰여온 영어식 표기다. 튀르키예는 이를 못마땅해했다. 영어로 ‘칠면조’(turkey)와 표기와 발음이 같은데다, 부정적인 속어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나라이름을 튀르키예로 불러달라고 요구해왔으나, 이를 본격화한 건 지난해 12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 이후다.
역자는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드라마 수출국답게 이야기를 오스만 제국의 역사만큼이나 맛깔스럽게 전개하는 튀르키예라는 나라와 『튀르키예 커피 문화』에 더욱 가깝게 다가설 수 있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와 인종, 지리 및 출신 성분으로 인한 갈등이 끝나지 않고 있지만, 역자는『튀르키예 커피 문화』와 역자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번역한 소설 『술탄이 된 해적(Korsanlıktan Sultanlığa): 지브롤터의 상인 이야기-바르바로사의 사가』를 통해 독자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역자 또한 편협한 지식과 가치관으로 인해 편견과 오해를 가졌던 서로 다른 신앙과 문화와 언어와 풍습을 가진 사람들과 국가와 집단들을 깊이 이해하고 관대해질 수 있게 됨에 스스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2022년이 한국-튀르키예 수교 65주년이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는 튀르키예를 비롯해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와 교류가 부족하였다. 『튀르키예 커피 문화』를 번역하면서 특히 튀르키예와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이를 계기로 지역과 인종과 종교와 나라에 관계없이 공통으로 즐기는 커피를 통해서 양국이 한층 더 상호이해와 교류를 활발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수교 65주년을 맞이하여 국가간 및 민간차원의 외교와 문화를 넘어 경제적인 교류의 폭을 넓혀 현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한국과 튀르키예는 문화와 생활에서 공통점이 많다. 한국인과 튀르키예인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시와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이다. 한국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데우는데 재 화로(ash brazier)를 사용한 것은 마치 재 화로(ash brazier)에 커피를 끓이는 튀르키예의 전통과 흡사하다.
또다른 흥미로운 예는, 불과 50여 년 전까지 한국에서의 혼인문화다. 청혼을 하는 예비신랑 측에 신부후보자가 식사를 대접하는데 신부후보자가 예비신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그릇에 밥을 엄청나게 많이 담아 밥을 다 먹지 못하게 하여 거부 의사를 표현했고, 반대로 신부후보자가 예비신랑이 마음에 들면 밥을 적게 담아 마음에 든다는 것을 표현하였던 적이 있다. 이것은 마치 튀르키예에서 청혼을 하는 예비신랑 측에 신부후보자가 커피를 대접할 때 신부후보자가 예비신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커피잔에 소금을 넣어 대접하여 커피를 다 마시지 못하게 하여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반대로 신부후보자가 예비신랑이 마음에 들면 커피에 설탕을 넣어 제공하여 마음에 든다는 것을 표현하였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보통 튀르키예인들은 아침 식사를 뜻하는 튀르키예어 “Kahvaltı(카흐발트)”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즉 “커피를 마시기 전(Kahve-altı, before coffee)”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튀르키예인들은 아침 식사를 한다기보다는 단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아침에 간단히 음식을 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자가 어릴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통상적인 인사로 “식사하셨습니까?” 혹은 “아침 드셨습니까?” 또는 “점심 드셨습니까?” 등 끼니를 해결하였는가를 묻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세대에 걸쳐 ‘커피’는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되었으며, 피 대신 커피가 사람들의 혈관 속을 돌고 커피는 커피의 속성 중의 하나인 ‘사회적 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과 튀르키예는 문화와 생활에서 공통점이 많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흥미롭게 읽혔으면 좋겠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역자는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이 번역은 커피를 마시면서 시작하여 커피 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면서 마무리지었다. 역자는 그들 지식으로 내 번역 작업을 안내해준 많은 친구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먼저 이 책의 번역과 출판을 허락해 준 튀르키예 문화관광부와 이를 도와주신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 문화관광부 참사관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처음부터 공동번역을 수락하고 교정과 윤문을 맡아 수고해준 권인선 선생님,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표지 디자인을 해 주신 (사)한국공공브랜드진흥원 이사장이자 ㈜디자인ON그룹 이현주 대표님 그리고 책이 출판되어 나올 수 있도록 멋진 편집을 해 준 네오다큐 관계자 여러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서울에서, 2023년 7월 17일 조주섭


옮긴이(2)_권인선

번역_권인선
번역_권인선

학 선배인 조주섭(James Cho)님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이 책을 공동으로 번역하게 되었다. 이전에 역자는 조주섭님과 함께 소설 『술탄이 된 해적(원작: Merchants of Barbarosa)』을 공동으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책은 오스만 제국 번성기인 16세기에 지중해 일대에서 사략 활동을 하며, 박해받던 안달루시아 무슬림을 구제하는 일을 했던 튀르키예 영웅 전사 Barbarosa 형제의 모험과 사랑의 삶을 다룬 소설로서, 전체가 52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소설이었다. 이 소설 원고를 번역하면서 이슬람 문화와 튀르키예 역사에 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소설 『술탄이 된 해적(원작: Merchants of Barbarosa)』의 번역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 선배로부터 『튀르키예 커피 문화』에 대한 영문 원고를 받게 되었다. 예멘으로부터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처음으로 커피가 들어올 때의 상황으로부터 시작하는 원고를 읽자마자 단숨에 흥미진진한 내용에 빠져 공동번역하자는 선배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역자는 평소 한국의 전통문화와 외국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수 년간 인천 중고등학생 대상 청소년단체인 다(茶)사랑청소년봉사단의 지도교사 겸 운영을 총괄하기도 하였다. 다사랑청소년봉사단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예절, 다례 교육을 기반으로하는 중고등학생 대상 청소년단체 봉사단이다. 주된 활동으로 박물관 탐방과 유적지와 고궁 탐방, 한국 전통 음식 만들기 체험, 다례 교육 등을 실시한 바 있다.
책에서 당시의 튀르키예의 커피 문화 중, 커피 끓이기와 대접할 때의 장면에서 우리의 전통 문화, 특히 다례 문화와 많은 점에서 닮은 모습을 보게 되었고, 요즘 우리가 즐기는 카페 문화가 당시의 커피하우스의 풍경과 많은 점에서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며 스스로 놀랍고 흥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인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공동번역자 조주섭님과의 조우, 수 년간 청소년단체 운영을 통한 전통문화와 다례교육을 실시한 것, 영어교사로서 외국 문화에 대해 꾸준히 관심이 있었던 것, 튀르키예 전사 형제에 대한 서사『술탄이 된 해적』번역 작업으로 튀르키예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이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튀르키예 커피 문화』란 책의 번역 작업에 동참하게 된 것 등, 이 모든 일이 저는 우연보다는 마치 자연스러운 끌림에 의한 것처럼 여겨져, 작업 내내 설렘을 갖고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였다.
역자는 이 번역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커피하우스의 원조 격인 튀르키예 커피와 커피 문화를 이해하고 커피를 더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 자리를 빌려 번역 작업 내내 커피를 건네며, 내가 하는 일에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남편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30여 년간 교직에만 있었던 제게 번역서 출간을 함께 하자고 제의하여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준 조주섭 선배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서울에서, 2023년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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