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 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이 일어난지라, 형 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 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 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 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케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노라! '(사도행전 15:1-11)

<안디옥 교회>의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제 1차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 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 13:1-3)

두 사람은 배편으로 <소아시아>로 갔습니다. <소아시아>는 <지금의 터키>지역으로 사도바울이 태어나 자란 지역이기에 언어와 문화와 풍습, 모든 면에서 사도바울에게 매우 익숙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 도행전 13:48)

<소아시아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안디옥 교회>에 그들의 전도사역의 경과를 보고한 후 얼마 동안 안디옥에 머물러 있다가 <제 2차 전도여행>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바나바와 바울 간의 의견 불일치로 두 팀으로 나누어 출발했습니다.

<바나바>는 그의 생질(외 조카) <마가>와 함께 출발했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그의 출생지인 <구브로(키프러스)>로 향했고,  <바울>과 <실라>는 <소아시아>로 향했는데, 성령께서는 그들이 진로를 변경하여 <마게도니아>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권 자>였는데, 특히 실라는 <헬라어>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에 의해서 최초의 <유럽선교>가 시작되었고, 그 후 <마게도니아> 는 <유럽선교>의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 두 전도자의 멧새지는 간명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은 사도바울 일행이 <마게도니아>의 첫 번째 전도지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들려 매맞고 감옥에 갇히던 그날 밤, 죄수들을 지키던 <간수(看守)>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 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니라! (사도행전 16:29-32)

간수는 그날 밤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가족친지들을 불러모은 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 하니라! (사도행전 16:33-34)

그러나 바울 사도 일행의 <이방전도사역>은 <심각한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율법주의자들>의 <훼방>과 <무 율법주의자들>의 <교란>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기쁨과 감격> 속에 자발적으로 <성결된 삶>,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하는 <복음 적 신앙관>을 무너뜨렸습니다.

<바리세파 유대교인>이었다가 예수를 믿게 된 <율법주의자>들은 비록 이방인이라도 예수를 믿게 되었으면 유대인처럼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사도행전 15:5).

이에 대한 사도바울의 대응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신 득의(以信 得義)의 신앙관>이 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7)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 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 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 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3:19-24)"

반대로 <무 율법주의자>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더 이상 유대인의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주장 때문에 <성령의 은혜>가 <충만>했던 <고린도 교회>안에 난잡하고 방종한 생활을 하는 교인들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너희 중에 음행이 잇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 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오히려 너희가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 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은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거 기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린도전서 5:1-3)

이에 대한 사도바울의 대응은 <신율주의적 율법관(神律主意的 律法觀-theonomy)>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가 감사>하여 <율법을 삶의 규범으로> 삼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롭고 경건한 삶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방탕하고 방종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비록 신자라 해도 결단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며, <무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방종한 교인>들을 쫓아내라고 명했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 하 는 자나, 우상숭배 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探色)하는 자나, 남색(男色)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貪婪)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討索)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 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 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린도전서 6:9-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 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 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외 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 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외 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고린도전서 5:11-13)

그러면 <신율주의적 율법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전도자 <바울 사도>의 율법에 대한 정의(定義)이기도 합니다.

바울사도는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율법주의자>들과  그 반대로 이신득의(以信得義) 로 함축되는 <복음적 신앙관>을 잘못 해석하여  방종한 생활에 빠져든 <무율법주의자>들을 가리켜 교회를 어지럽히는 개들이요 행악자들이라고 신랄히 비판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빌립보서 3:2)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 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6-8)

1. 바울 사도는 <율법>은 본질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규범>이라고 정의합니다.

경건한 삶, 세상과 구별되는 성결된 삶을 위한 규범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으나 신자의 <삶의 규범은 율법>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 니라! (로마서 3:31)

2. <율법>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삶>을 위한 것이나 바울 사도는 그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고 정의합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 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 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신명기 4:39-40)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3. 바울 사도는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 이니라! (로마서 3:2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 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로마서 7:7)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4)

4. 바울 사도는 <율법>은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게 하는 <몽학선생(蒙學先生)>이라고 정의 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몽학선생(蒙學先生)>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 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24)

<몽학선생>은 지도교사 또는 인도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1-2)

5. 바울 사도는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참사랑의 완성>이라고 정의합니다.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 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디모데전서 1:9-11)

오래 전 어느 촌락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부락에서는 단 한 가정의 남자만이 가정과 아내에 충실했을 뿐 다른 가정의 젊은 남자들은 모두 가 정에 불충실했고, 그 행실이 부도덕했으며 예사로 그들의 아내를 학대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의 촌장과 노인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위원회를 결성하여 법과 규칙을 정했습니다.

"아내를 학대하거나, 가정에 불충실하거나, 외도를 하는 자는 마을의 법과 규칙에 따라서 그 죄를 엄한 벌로 다스릴 것이다!"

그 법이 제정된 뒤로 남자들의 불성실한 생활이 어느 정도 고쳐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서 가 정을 소중히 여기며,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그런 바람직한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젊은 남자들은 이전처럼 외도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대신 퇴폐적인 향락과 오락에 빠져들었습니다.

오직 한 가정의 남자만이 한결같이 가정에 충실하고 가족구성원들에게 헌신적이었으며,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아껴줬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가정에는 항상 웃음이 넘쳤고, 가족구성원들은 마냥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마을의 촌장과 노인들은 어떻게 하면 마을의 모든 젊은 남자들이 이 모범적인 젊은 가장처럼 가정에 충실하며, 아내와 가족구성원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가정을 이루게 할 수 있을 가를 궁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문제해결을 위해 다시 새로운 법과 규칙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법과 규칙을 만들어내도 이들 젊은 남자들이 마음을 잡고 가정에 충실하게 하며, 아내를 사랑하게 하며, 가족구성원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효용성이 없는 법과 규칙들을 모두 폐지하고, 그대신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포괄 적 의미를 지닌 단 한 문장만으로 된 법을 새로 정했습니다.

그러자 마을의 젊은 남자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까?"

이에 마을 촌장과 노인들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한 젊은 가장을 본보기로 해서 우선 몇 가지 간단한 행동수칙을 정해줬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설거지 해줄 것! 사랑한다고 수시로 말해줄 것! 용돈의 십 분의 일은 필히 아내를 위 해 쓸 것! 정기적으로 집안 청소 해줄 것! 주기적으로 아내에게 꽃을 선물해줄 것!"

그런데 이 같은 행동수칙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족 구성원들을 기쁘고 행 복 하게 하는 집은 여전히 그 한 집뿐이었습니다.

결국 마을의 촌장과 노인들은 사랑은 결코 법과 규칙으로 강제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오직 마음에 새겨져야 하는 것 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가정에 충실하고,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며, 가족구성원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그 젊은 모범적인 가장에게는 번번히 새롭게 강요되는 법과 규칙들이 거추장스럽고 불 편하기만 했습니다.

항상 자발적으로 해왔던 것들인데 강제성을 띠게 되니까, 오히려 아내와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어 색 해지고 불편해진 것입니다.

그러던 중 그 마을에 한 전도자가 들어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예수를 믿기 시작 하면서 마을에 각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지난날의 부도덕하고 불성실한 삶을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변화를 받은 그들은 지난 날의 그릇된 삶을 청산했습니다. 젊은 남자들도 이제는 모두 가정에 충실한 사람들이 되었고, 성경말씀의 가르침대로 아내를 소중이 여기며,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을 주민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가족구성원들에 대한 남자들의 책임과 의무를 강제하는 법과 규칙들은 유명무실 해졌습니다.

<마음>에 <사랑의 법>이 새겨진 각 가정의 젊은 남자들이 그 이상으로 아내를 사랑했고, 가족구성원 들에게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어지게 하는 것이 <기독교문화>요, 이러한 삶이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피차 사랑의 빛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 을 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8-10)

<아멘! >

김정효 목사
김정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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