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쓸쓸한 언어가 있다. 폐교, 폐업, 폐쇄이다. 이것은 인구감소로 찾아오는 도미노현상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다.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합계출산율이 0.78명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중에서도 꼴치이다. 2031년 되면 우리나라 7대 산업 분야에서 부족한 노동자가 150만명 이상 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내부에서 부족한 인력을 보충할 다른 방안이 있는가? 정부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은 이주민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라고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 이주민노동자를 포함 외국인 240만명이 넘는다. 몇 년 안에 약500만명 정도가 한국 사회 구성원이 된다.

이미 한국사회는 다문화, 다인종, 다종교 사회로 진입했다. 사람이 모이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결혼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다양한 사랑의 조합이 등장한다. 사랑에는 나이, 국경, 언어, 종교, 직업을 초월한 다양한 형태의 커플들이 이미 등장했다. 나와 다름의 문화현상을 보면서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흐름이었지만 이제는 점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앞으로 외국인 사위, 며느리가 우리들의 가십거리가 되지 않을 듯하다. 어쩌면 혼혈아는 우생학적 차원에서도 더 우수한 자손을 번식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다. 우수한 외모와 학력이  뒷받침된다면 어떤 조합도 가능하다는 것이 생각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이 기준에 못미치면 열등하다고 보고, 이 기준을 충족하면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런 풍토가  서서히 우리사회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우성학은 나치의 대학살로 인해 세계 2차 대전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쇠퇴하였다. 우성학적 담론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시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 도시 국가는 우수한 자손 번식을 통한 이상 도시국가 실현을 꾀했다.

미래사회에서 어쩌면 편견의 단어인 혼혈아는 우성학적 입장에서 우수한 자손 번식이란 긍정적 개념으로 뒤바뀔 수 있다.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나와 다름의 현상을 보고 포용할 것인가? 배제할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갈등의 소재가 아니라 포용으로 수용한다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만, 나와 다름이 배제로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큰 갈등이 된다.

우리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또 하나의 현상은 연상연하 커플이다. 연상연하 커플은 우리사회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대세 인듯하다.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결혼 통념을 깬 연상연하 커플은 이상하다는 낯 뜨거운 시선이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인 커플보다 연상연하 커플이 지속적인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사이에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첫째, 누나가 되지 말고 여자(연인)이 되라.

둘째, 연하 남편이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가장으로서 존중하라

셋째,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연상연하 커플 중 이혼하는 남자들의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 결혼했는데 누나와 엄마가 한 더 생겼다는 자소적인 말이다. 결국에는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으로 직행한다.

강대강으로 가면 두 사람의 관계는  깨진다. 특히 자존심을 건드시고 마음에 상처를 주면 그 앙금이 더 오래간다. 자존심을 건 강대강 싸움은 둘 다 부러진다. 강하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결국 부러진다. 문제없는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문제를 풀면된다. 그런데 강한 언어는 효과가 없다, 부드럽게 살살 녹이라.

넷째, 주변 친구나 시댁보다 둘 사이가 먼저이다.

다섯째, 연상이라 무조건 잘해주어서는 안된다. 두 사람 사이를  서로 이해하며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이 있어야 한다. 규칙은 부부 사이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주는 울타리가 된다.

목회자 연상연하 커플이 있다. 연상인 아내 목사님이 기독교인으로 건강한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부딪히면서 깨달은 지혜가 있다고 한다. “먼저 자신이 녹아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먼저 녹아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부드러운 사람"이 되겠다고 결단했다. 이것이 크리스챤의 삶이라고 한다. "자기의 분노을 못 이길 때가 있다. 화를낼 때 그 순간에 자신의 깊은 내면을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를 버렸다고 한다.”

연상연하 커플이나 갈등관계에 있는 부부들에게 권면하기를 "화를 낼때 네 안에 하나님이 있느냐?": 먼저 물어보라고 한다.

진짜 찐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이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던져주는 사랑이다.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조건이 붙으면 더 이상 사랑의 순기능은 약화된다. 주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다. 또한 용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짜 사랑은 칼처럼 잘라 낸다.'  칼은 자신도 상대방도 상처를 준다. 백해 무익하다. 문제는 항상 도사리고 있다. 특히 연상연하 커플이나 국제커플일 경우에는 문화적 차이, 언어적 표현의 한계 등 고려해야할 문제들이 더 많다. 그러나 중요한 팁이 있다. ' 나쁜 것을 좋게 해석하면 내가 더 상처를 받지 않는다.' 어떤 화살이 와도 내 몸속에 박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에게 쏜 화살이 내 몸과 정신과 영혼에 상처를 그대로 받고서는 버틸 수 가없다. 생의 의지를 꺾어 버린다. 관계 단절로 이어진다. 항상 해석이 중요하다. 나쁜 쪽으로 해석하지 말고 항상 좋은 쪽으로 해석하라.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했다. 해석을 긍정적으로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건강한 가정을 지속하는 힘이다. 인생에 항상 밝은 태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둠이나 그늘이나 구름이나 비와 폭풍우가 있다. 돌풍이나 비바람은 곧 사라진다. 잠사 불어오는 돌풍이나 비바람에 사랑의 선물을 찢어버리지 말라. 사랑은 위대하다. 그러나 사랑은 한 순간에 깨져버린다. 아름다운 유리잔처럼 사랑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인류의 생존을 이어온 본능이다. 사랑의 본능 속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라. 그러면 부부의 참 기쁨과 깊이가 흐른다. 그것처럼 아름다운 생이 어디있겠는가?

톨스토이는 '현재의 사랑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오유진 시인의 <화수분>이란 시다.

 

주어도 주어도

주고만 싶어

분수처럼 솟구치는 마음

그대를 향한 멈추지 않는 

내 마음

그래도 그랫도 부족한 

나의 마음

 

사랑은 주어도 주어도 부족한 마음이다. 사랑은 인류공동체가 하나되는 길이다. 사랑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린다. 

우생학적 이론이 인류역사에서 뚜렷하게 검증된 것은 없지만 연상연하커플이나 국제결혼을 한 분들이 안좋은 쪽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름은 곧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인류생존에 절대적인 요소이다. 다름이 곧 배제가 아니라 포용으로 받아들이면 그 만큼 갈등은 줄고 관계는 더 깊이 여물어간다.

최원여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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