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선택의 중요성을 알아서 잘 선택하며 사는가? 우리나라가 1945년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한은 소련을 택했고 남한은 미국을 택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를 택했고 북한은 공산민주주의를 택했다. 분단 78년이 지난 현재 그 결과 어떠한가? 이렇게 판단은 결정적이다. 결혼 정년기에 든 청춘 남녀가 상대를 누굴 택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인생 운명이 결정된다. 

이와 같이 우리네 인생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서 판단을 잘해야 한다. 아때 판단의 기준이 무엇이며 원칙과 원리가 무엇인가? 어떻게 판단해야 옳은 것인가? 어떤 판단이 유익할 것인가? 쉽지 않다. 여러분의 판단 능력은 어떠한가? 요즘 젊은이들은 가정에서 지나친 보호 가운데 성장하여 결정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들 중 일부는 선택하기를 매우 힘들어 한다고 한다. 심지어 결혼 생활을 하는 것까지 부모께 물어 본다는 우스개까지 들린다.  

본문은 호세아 선지자의 여섯 번째 설교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북조 이스라엘의 오판에 대하여 비판하시며 심판을 경고하셨다. 


1. 오판의 원인 


* 호 10:1~3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이스라엘이 저지른 오판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셨다. 포도나무로 비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설명하는 전형이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포도나무 이외에도 무화과나무 혹은 감람나무에 비유하기도 한다. 농부는 당연히 많은 포도를 거둘 것을 기대하고 심는다. 맛있는 포도주를 얻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최고급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엉뚱한 들 포도가 맺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 점을 지적하셨다. 
* 사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여기서 말하는 ‘들 포도’는 ‘머루’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극상품 포도를 기대하고 심은 이스라엘이란 포도나무가 머루와 같은 들 포도를 맺히자,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사 5:4),” 라고 탄식하셨다.   

호세아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기대와 달리 엉뚱한 열매 즉 우상 제단을 쌓고 우상을 만들어 절하는 열매를 맺혔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들이 오판했다고 지적하셨다. 이스라엘의 오판 원인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셨다. 두 마음(halaq, heart)” 이란 '갈라진 마음(divided heart)'을 뜻한다. 이는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바알을 섬길 것인가 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마음이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한 경고는 이미 신명기에서 주어졌다. 
* 신 6:13~15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여호와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신이기에 다른 우상을 섬기면 반드시 멸절시킬 것이다. 이스라엘은 두 마음으로 나눠져서 갈팡질팡하면서 하나님을 속이는 마음(deceitful heart)으로 살았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였다. 닭이 독사의 알을 품고 있다고 해서 병아리가 나올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성도가 말로는 믿는다면서 마음으로는 세상을 추구하며 산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알 수 있지 않는가! 

이스라엘의 두 마음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 호 10:3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면서 걱정과 염려가 있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세겜과 벧엘 그리고 단에 세운 신전에서 우상을 섬겨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자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경외심 상실) 그들이 세운 여로보함 왕도 뭐 별로 해주는 것도 없으니 굳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왕에 대한 기대 상실). 그들은 여호와를 바르게 섬기지 못함에 대한 죄의식은 있으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참된 회개는 없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섬긴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세워 여호와를 상징하는 우상으로 그것이 여호와라고 믿었다. 그들은 바알로 하나님을 섬겼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다. 왕은 백성이 유대 예루살렘으로 백성들이 내려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것을 우려해서 금송아지 우상을 곳곳에 세워 백성들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 문화에 취하도록 정책을 펼쳤다. 이 이교 문화는 쾌락과 음란의 문화였다. 이 정책은 생활 습관을 여호와 하나님 중심에서 음란과 쾌락을 추구하는 세속문화의 전환으로 백성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정책이었다. 

아합 시대에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 참신내기에서 백성에게 한 말을 기억해 보자. 당시 엘리야 선지자는 그들의 양다리 걸치기 식의 종교의식을 강력하게 지적하며 그들을 도전했다.
* 왕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마 6:24).
사도는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과 벗이 될 수 없고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며(약 4:4; 요일 2:15). 이렇게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바다에 떠 있는 배와 같이 정함이 없어서 그 마음을 정결하게 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했다(약 1:8, 4:8).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린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이 섬기는 헛된 신들을 파괴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기들이 의지하는 왕이 구원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탄식과 한탄만 할 뿐 실제의 신앙과 삶은 회개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은 하나님으로 오판했다. 이는 그들의 마음이 갈라져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왕과 지도자들을 요구하여 하나님은 그들이 요구대로 왕도 주시고 지도자들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의 타락한 정책은 백성의 마음을 헤이하게 만들어 욕망 채우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하나님은 이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지적하시며 심하게 책망하셨다. 
* 호 13:9~11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2.  오판의 내용 


이스라엘의 왕과 지도자들은 백성에게 아부했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공약과 정책을 남발했다. 
* 호 10:4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두 마음을 품고 실행하는 거짓 정책, 허망한 약속 그리고 무책임한 외교조약들을 지적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헛된 말(many promises)”은 지킬 수 없는 무책임한 아부성 공약을 의미하며, “헛된 맹세(false oaths)"는 지킬 수 없는 공약이며, "언약 체결(make agreements)"은 상황에 따라 아시리아와 애급과 맺은 외교 체결을 의미한다. 

이 모든 거짓 정책과 헛된 약속은 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것들로 하나님의 심판 빌미가 되었다.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된 정책들은 백성에게 쓰디쓴 쑥과 같은 독초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에 처하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2022년 말 현재, 미국과 한국의 나라 경제를 생각해 보자. 미국의 정부 빚은 약 21조 달러(27조 3천억원)로 이는 국민 총생산액(GDP) 대비 125%에 해당하며 3초에 10만 달러씩 증가한다고 한다. 이는 세금 납부자 한 사람당 $ 20만씩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 한다. 한국은 어떠한가? 국민 총생산(GDP) 대비 49.6%로 2197조원이 넘어서 국민 한 사람당 1900 만원의 빚이 있다 한다. 두 나라 모두 선심 정책으로 국가 재정을 남발한 결과다 

당시 이스라엘이 그랬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공의와 정의가 하수같이 흘려 내리게 하여 건전하고 규모있는 나라를 운영하지 못하고 지도자나 백성이나 이교 문화에 빠져 배교의 길을 갔던 것이다. 그들은 침공하는 앗시리아에 굴복하여 거금 은 1만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며 간신히 멸망은 면했으나(왕하 16:8), 감당이 하기 힘들자, 도리어 애굽에 가서 조공을 바치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왕하 17:1~6). 

그런 정책이 국민에게는 독초가 되어 돌아오게 된 것이다. 여호와를 버리고 금송아지를 섬기며 외교술을 통하여 나라의 안정을 꾀했던 정책은 앗시리아 살만에셀 왕에게 주전 722년 침공을 당하여 완전히 멸망하게 되고 말았다(호 5:13, 7:11, 10:6).
* 왕하 17:6 호세아 제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3. 오판의 결과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강력하게 경고하셨다. 
* 호 10:5~8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이가봇)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왕들과 제사장과 같은 지도자들의 하나님을 떠나 실행한 우상 숭배 정책은 그들의 눈앞에서 나라가 침몰해 가는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마치 물위에 떠가는 거품과 같이 허무한 나라의 종말이다. “물위에 떠다니는 거품”의 원문 의미는 ‘물위에 흘러가는 나뭇조각’이다. 마치 나뭇조각들이 물 위에 떠서 이리저리 흩어지듯이, 이스라엘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장차 온 나라에 허망한 상황을 겪게 될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원인은 “아웬”에 있었다. 야웬은 벧아웬의 줄임말로 벧엘을 가리킨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하나님의 전(the house of God)"이다(창 28:17). 그 하나님의 전이 우상의 전으로 변질된 것이다. 하나님은 타락하여 하나님의 집을 이방 산당으로 만든 이스라엘은 마치 버려진 숲처럼 가시와 찔레로 덮여 완전히 파괴될 것을 경고하셨다. 이 표현은 죄를 범한 아담에게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저주하신(창 3:18) 이후 처음으로 구약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그 때가 되면 백성은 “산들아 우리를 가리라(cover us), 작은 언덕아 우리 위에 무너지라(fall on us)" 라고 외칠 것이다(호 10:8)”라는 것이다. 이는 허망한 멸망의 때에 벌어질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을 표현한 것이다. 곧 자포자기 하며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외치며 방종하였다.

이 지경이 된 원인이 무엇인가? 당시 상황이 마치 이스라엘이 기브아의 때와 같았기 때문이다. “기브아의 때”란 이미 9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사사시대에 발생한 끔찍한 “12 토막살인 사건”을 의미한다. 첩을 둔 레위인 한 사람이 베냐민 지파의 한 집에서 숙박하다가 당한 음행사건으로 죽은 첩의 시신을 12 토막으로 내어 온 이스라엘 지파에 보내 일어난 내란 사건이다(호 9:9; 참고 삿 19:1~20:48). 결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즉 베냐민 지파는 남자가 25000명이 죽고 겨우 600명 정도 밖에 남지 않았었다. 이는 북조 이스라엘이 마치 기브아 때와 같이 온 나라가가 죄에 빠져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될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오판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게 될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결 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두 가지 죄를 지적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과 다윗의 집을 버린 것이다. 이는 사실 하나의 죄다. 즉 왕이신 하나님을 버린 죄를 지은 것이다. 나님의 집인 벧엘을 금송아지 산당으로 삼아 배교하고(5절), 하나님이 왕이심을 고백한 다윗의 집을 버리고 바알을 섬긴 이스라엘이 다른 곳에서 왕을 구했던 죄다(7절). 

본문은 이렇게 신앙의 변절과 왜곡된 믿음의 행위에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을 떠나 믿지 않는 행위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의 통치권을 버리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마 6:33)” 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도를 가르치셨다. 
* 마 6:9~1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실 때는 그에 대한 기대가 있고 그에게 거는 바람이 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점을 기억하고 성도는 마땅히 바르게 기도할 것을 가르쳤다. 기도가 여전히 세상적인 염려와 바람을 위하며 그들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부리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안될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교한 오판을 심하게 다루실 것이다. 항복하고 주 앞에 돌아올 때까지! 

우리의 관심이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둘 것이 아니라, 주께서 가르치신 대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구해야 하며(마 6:33), 바울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 엡 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연약함, 위선과 거짓됨을 고백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과 경고를 깊이 인식하게 하옵소서. 삶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로 세상을 의지하여 타협하지 말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힘쓰며 주님만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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