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대한 말을 자주 듣는다. '때가 좋다 나쁘다, 때를 잘 타고 났다. 때가 알맞다.' 그래서 사람은 때를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런가? 때와 기회가 항상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때를 알고 그 때에 맞추어 일을 처리한다면 그 인생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옷을 잘 입는다는 말이 고가의 옷을 입는 말이라고 하기 보다는 때에 따라 절절하게 옷을 입는 것을 뜻한다. 

전도서 저자 솔로몬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 3:1~8)" 라고 가르쳤다. 

본문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전파하시는 여섯 번째 설교의 두 번째 메시지다. 메시지의  주제는 "지금이 곧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때"이다. 하나님의 최후통첩과 같은 성격의 메시지다. 이스라엘은 이 말씀에 즉각 반응해야 한다. 더는 하나님께서 기다리실 수 없기 때문이다.


1. 마지막 기회, 마지막 통첩


하나님은 북조 이스라엘을 향하여 마지막 경고(final notice)를 하셨다. 지금 당장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라고 경고하셨다(12절). 이 경고장을 받아든 이스라엘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당시 이스라엘의 상태가 어떻기에 최후통첩을 하신 것일까? 세 가지로 파악된다.   
*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 심히 부패한 시대이기 때문 
기브아 시대란 기브아 사건으로 야기된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뜻한다. 호세아 당시도 기브아 사건으로 야기된 혼란한 사회와 다름없이 타락한 사회였다는 것이다. 
* 호 9:9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기브아 사건이란 무엇인가? 그 사건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이는 사사기서 19~21장에 걸쳐 기록된 사건을 뜻한다. 첩을 둔 한 레위 인이 첩이 경제 사정으로 가출하여 친정에 가자 그 첩을 데리러 장인집에 갔다가 귀가 하는 길에 베냐민 지파의 한 집에 들어가 참상을 겪은 후 첩의 시신을 12토막을 내서 12지파에 보내자 11 지파가 베냐민 한 지파와 전쟁을 벌려 내전 상태에 돌입하게 된 사건을 말한다. 결과 동족상잔의 비극적 내전으로 베냐민 지파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된 지파들이 해결하는 방안으로 실로 축제 때 실로 처녀들이 춤을 출 때 봇짐 몰이하여 베냐민 지파를 유지하게 되는 혼란한 사회 상황을 뜻한다. 사사기 기자는 이 당시 사회상을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라고 기술했다. 

그런데 이후 여로보함 2 세 때까지도 북조 이스라엘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기브아 때와 같이 법도 질서도 없는 무정부사회였다. 백성은 양심과 윤리를 외면하고 법과 질서를 무시한 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했다. 정욕대로 음란과 폭력을 일삼으며 광란의 무질서하게 살았다. 호세아는 이 점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다.  

2) 두 가지 죄 때문
하나님은 당시 죄악 상황을 두 가지로 지적했다.   
* 호 10:10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하나님은 무질서한 광란의 사회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내가 정한 때, 내가 원하는 때에 징계하겠다!” 무서운 말씀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정한 때에 시행된다. 인간이 정한 것 같아도 전쟁, 자연 재해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일어난다고 밝힌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은 죄가 관영하고 무질서한 세상은 되면 좋지 않다고 말들 하면서도 자기만 괜찮으면 다행이며 큰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나와 상관이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들이고 아예 그 상황 속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 생각한다. 
 
얼마 전 매인(Main state) 통합교육국 소속 한 초등학교에서 여자아이가 남자 아이처럼 활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본 교사가 그 여아의 성을 모든 서류에 남성으로 바꾸어 기록하고 학교가 이를 인정하여 부모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놀란 부모가 학교에서 성정체성 교육 정지를 탄원하는 소식, 덴버의 어느 한 Chick filet 식당 앞에서 성소수자 몇 명이 LGBTQ를 부인하고 입장을 거부하는 음식점은 문을 닫게 해야 한다며 벌리는 피켓 시위, 세수 확보를 위하여 마리화나 재배와 판매를 허용(CO 최초),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해야 한다며 음란과 무질서를 허용하고 오히려 조장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총기사건, 인구 중 10%가 마약을 할 정도로 피폐한 사회가 현재의 미국이다. 인내하시며 되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지만, 때가 되면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자들의 만행을 반드시 물으실 것이다.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가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계속 악화된다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될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이 두 가지 죄(their two sins, double sin)에 빠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두 가지 죄는 하나님을 버린 죄와 다윗의 집을 배반한 것이다(Keil). 이 점은 호세아서 핵심 메시지다. 하나님을 버리고 벧아웬(벧엘) 금송아지를 세우고(호 10:5), 다윗의 예루살렘을 버리고 사마리아에서 왕권을 행사했다(호 10:7). 그러자 하나님은 사마리아의 왕은 물위에 떠있는 거품, 나뭇조각과 같은 부유물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라고 조롱하셨다. 

사실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삼상 13:14, 행 13:22) 하나님이 기뻐하여 주신 왕이 아니다. 그 왕은 하나님이 모르시고 인정하지 않은 왕이었다(호 8:4). 세운 왕이 우상 숭배를 하자 하나님은 진노로 왕을 폐하셨다. 
* 호 13:10~11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온 백성이 배교의 정치와 사회를 형성한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왕을 가진 것을 후회하고 왕을 조롱하고(호 10:3), 헛된 짓만 하는 왕은 물거품과 같이(호 10:7)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 호 10:15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이스라엘이 살 길은 참된 왕이신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참된 다윗의 왕을 구하는 것뿐이다. 그래야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며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 호 3: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3) 번영에 취해 있기 때문
북조 이스라엘의 상황은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호 10:11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북조 이스라엘은 남조 유다보다 더 부요했다. 넓은 영토, 풍족한 경제를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은 “길들인 암소와 같다”고 묘사했다. 여기서 “길들인” 은 좋은 스승을 두고, 고급 교육을 받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유대인은 율법, 제사, 제사장과 선지자와 같은 교육자들이 있는 복을 받은 백성이었다. 바울은 유대인의 특혜에 대하여, “그들에겐 율법이 있고, 할례가 있고, 하나님의 양자됨, 영광, 언약들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훌륭한 조상들(롬 3:1~2, 9:4~5a)"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많은 복을 받은 이스라엘이 분단되었다. 북조 이스라엘은 타락하여 배교하고 우상 숭배로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를 빗대어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살찐 암소와 같다고 조롱하셨다. 그들은 풍요와 번영을 구가하면서 마음껏 누렸다. 하나님은 뒤룩 뒤룩 살찐 암소가 목을 아름다운 털로 장식하는 화려한 암소가 되었다고 놀리셨다. 꼴불견이다. 하나님은 그 암소 목에 멍에를 씌우고 사람까지 타게 해서 곤고한 날을 겪게 하시겠다고 저주하시고 이 암소로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트리게 하시겠다고 경고하셨다. 이 말씀은 곤고한 날이 북조 뿐 아니라 남조에 까지 미쳐서 두 나라가 망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앗시리아(722 BC), 유다는 바벨론에 망했다(586 BC).
이렇게 개인이든 국가든 번영에 취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의 길로 가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 로마, 독일, 과거 소련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2. 하나님의 대책과 교훈 그리고 예언


북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과 경고는 무엇이며 무슨 예언을 하셨나? 
*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며 제시한 세 대책은 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고, 묵을 땅을 기경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 대책들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점이다. 왜 일까?

1) 나를 위한 대책(for my benefits)
왜 하나님은 이런 대책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것일까?  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사람을 위한 것인가? 우리가 의를 행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도움이 될까? 전혀 아니다. 이는 엘리바스가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욥 22:2~5).” 라고 욥에게 말한 바와 같다.  

세 가지 대책이 왜 비책인가? 바로 이런 삶이 여호와를 찾는 구체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흔히 하나님을 찾는다 하면 교회에 나가고, 예배를 잘 드리고, 많은 헌금을 하는 등 어떤 종교적 행위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며 회개할 것을 촉구하신다. 이미 하나님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참고, 사 1:11~17; 미 6;8).” 라고 말씀하셨다. 성도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예쁘심과 긍휼하심을 받을 수 있어서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다.  

2) 의를 심으라(Sow righteousness) 
첫쩨 하나님은 “의를 심으라”라고 말씀하셨다. 의를 심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은 의를 보시고 예뻐하시며 인애를 허락하신다. 이것이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인애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이다. 

3) 인애를 거두라(Reap the fruit of unfailing love). 
둘째, 하나님은 '인애를 거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뜻일까? 인애는 “확실한 사랑(unfailing love)“을 의미한다. 70인 경(LXX)에서 ‘인애를’ “생명이 넘치는 열매(karpon joes, the fruitful of life)”로 했다.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 때, 하나님은 확실한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넘치는 열매를 맛보며 살게 하신다.  

기억하는가? 예수께서는 어린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면 하나님 아버지는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라(마 10:41~42)고 하시며 이웃에게 후하게 주라고 가르치셨다.  
*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또 예수께서는 그 유명한 황금률을 교훈하셨다. 이 말은 금과 같이 귀한 가르침이란 말이다.   
*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사도 바울도 예수의 가르치심 따라 로마 성도에게도 가르치셨다.  
* 롬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오해 없기 바란다. 주변에 몹시 아끼며 알뜰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귀한 일이다. 이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인색한 자들이 적지 않다. 그저 절약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아끼는데 집중한다. 힘들게 사신 분들이 그런 경향이 있다. 물론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성도는 베풀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기증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손 대접도 잘하시기 바란다. 인색하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인색하게 대하실 것이다. 

말씀이 이것을 가르친다. 예수를 믿는 자가 이 원리를 모르면 평생 예수를 믿어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풍성함을 맛보지 못하고 항상 돈! 돈! 돈!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들은 항상 쪼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애와 정직으로 살아가면서 배우는 하나님! 이것이 여호와들 찾는 길이며 하나님을 깊이 아는 길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예수께서 양과 염소로 나누시듯이  심판하실 것이다. 그때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심판하실 것이다. 
*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4) 묵은 땅을 기경하라(break up your unplowed ground)
셋째, 묵을 땅을 기경하라 하셨다. 화전민들은 덤불을 태우고 돌을 골라내며 땅을 개간한 후에 씨를 뿌린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호세아 선지자와 같이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렘 4:3)”라고 설교했다. 

이제까지 기가 막히게 세상에 잘 적응해 왔다. 매일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말씀을 실제 생활하면서 순종하는데 정직하지 못한다. 주님은 마 13장의 씨뿌리는 비유에서 네 종류의 마음이 있다고 하시며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겠는가? 뿌린 씨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밭을 갈아엎는 일이다. 이 작업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작업이다. 이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항상 구원의 복음은 현재성이다.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이다. 지금 당장 마음을 바꾸어 하나님에게로 향하여 가는 것이다. 말씀은 항상 지금에 어떤 결단을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고후 6:2b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흥미로운 점은 “묵은 땅을 기경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회개하라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70인 경(LXX)에서 “너 자신을 위하여 지식의 빛을 켜라(Light you for yourself the light of knowledge)"라고 번역했다. 매우 의미 있는 번역이다. 무슨 뜻일까. 무식한 자리에서 벗어나 밝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라는 것이다. 그것은 말씀으로만 가능하다(딤후 3:16). 

본문에서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12b)”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그리하면 장차 결정적인 전환점(turning point)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는 것(12c)”으로 원문은 “마침내 그가 올 것이다(at last he will come).”이다. 

묵을 땅을 기경하면 장차 즉시 오실 여호와 즉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여 지식의 빛 즉 천국 복음의 빛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언하고 있다. 예수께서 오셔서 하신 사역이 무엇인가? 예루살렘 성경은 ”너희에게 구원을 비같이 내리실 것“을 “너희에게 의를 가르치시리라(he will teach you the righteousness)" 라고 번역했다(Syriac Bible, Targum, Vulgate) 이 구절은 장차 예수께서 참 구원의 도를 가르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3. 고집불통 백성


그러나 그들은 호세아 선지자의 간곡한 설교를 듣지 않았다. 반대로 갔다. 
* 호 10: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놀라운 점은 호세아가 전하는 하나님의 간곡한 최후의 대책을 받고서도 이스라엘은 정반대의 길을 갔다는 사실이다. 결과 그들은 거짓 열매를 먹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패망을 의미한다. 패망의 원인은 그들이 악을 뿌리고 죄를 추수하여 거짓 열매를 먹은 것이다. 

거짓 열매(the fruit of deception)는 실망의 열매(the fruit of disappointment)이며, 배신의 열매(the fruit of treachery)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외쳤건만, 그들은 하나님의 호소를 외면하고 정반대로 외교 정책을 바꾸지 않고 자기 길을 계속 갔고 군사의 힘을 과신하였다. 그런 시책은 결과는 그들을 삼키고야 말았다. 
* 사 59:4~5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총체적인 부패와 타락으로 죄악의 사생아를 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호세아의 자녀의 이름과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흩으심을 받아(이스르엘),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했고(로루하마)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했다(로암미). 거짓의 문화, 윤리와 도덕의 붕괴, 하나님과의 언약 파기, 공갈과 같은 거친 말, 거짓 재판 등 정의와 공정이 무너진 사회가 되어 멸망했던 것이다.


결론 


모든 것에 때가 있다. 때에 따라 선을 심으면 더 큰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때는 바로 지금이다. 말씀이 무엇을 교훈하던 지 즉시 마음을 기경하여 순종하려 힘써야 한다. 자기 몸과 가족만 생각하고 자기 돈 아까운 줄 알면서 남의 처지와 남의 돈도 아깝고 귀한 줄 알아야 한다. 내게 귀하고 소중하면 당연히 남의 것도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 역시 소중한 것을 말씀에 순종하여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고 섬긴 것이다. 이것이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통하여 얻는 은혜이며 축복이다. 

귀한 일에 참여하는 선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잊지 않고 보상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기쁘게 받으신다. 단지 예배만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이미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 전했다.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사도 바울의 권면을 깊이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힘쓰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귀하게 보실 것이다. 
* 갈 6:6~9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하나님을 즉각 찾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주께서 원하시는 의를 심고 인애를 거둘 수 있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고 마음의 변화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을 살아 주께서 드려지는 예배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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