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가 많은 인간이 작성한 설교와 오류가 없는 AI가 작성한 설교, 어느 것이 나을까?

편집자 주 : 이 글은 미 기독언론 <크로스워크>에 지난 928일 실린 테리 브리즈번과 러스티 러프(Terry Brisbane and Rusty Rueff)의 글을 번역하여 올린 것임을 밝힙니다.

AI가 작성한 설교의 가능성과 문제점

ChatGPT-4가 최근 출시되면서 인공지능(AI), 거대언어모델(LLM) 및 이들이 콘텐츠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우리의 신앙과 우리 주변의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함께 책을 집필한 목사와 기술 임원으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거친 질문을 떠올렸다. 목회자들이 ChatGPT-4에 설교를 작성하도록 촉구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공지능 설교의 잠재력

성경의 본문에만 근거한 인공지능 설교는 오류가 없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많은 인간의 설교보다 나을까? 또한 인공지능은 편견이 없기 때문에,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말씀이 그 어떤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보다 예수님의 원래 말씀에 더 가까울까?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글을 볼 때, 이 질문은 약간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포괄적인 감각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만들어 낸 글들에 대처할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언젠가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인간이 만들어낸 글보다 좋을 것이고, 이미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것들의 대부분의 글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성도돌은 자신 있게 주일과 수요일 밤 설교를 인공지능 목사에게 넘길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연약함이라는 여과물을 제거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나을까?

 

도덕적, 기능적 의미

겉으로 보기에는 바보 같은 질문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말로 생각한다면 누군가 이 방법을 시도할 가능성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일부 목사들이 이미 매주 주일마다 들려주는 설교 내용 일부에 ChatGPT를 활용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놀랍지 않다. 결국 우리는 이미 주일학교와 청소년 단체를 위한 기성 교육과정을 제작하는 서비스나 그와 관련한 설교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러한 자료의 제작을 완전히 인공지능으로 바꾸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 말씀의 정수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시기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6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 그 자체에 영과 생명이 있다면,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중요한가? 누가 그것들을 조각하여 영감을 주는 작품으로 만드는지가 중요한가? 그것이 사람인지 기계인지가 중요한가? 그것이 삶을 위한 '소스 코드'로서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말씀으로써, 인간의 편견 없이 이루어진다면 더 좋을까? 그러면 목회적 비용을 아끼고, 그 돈으로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거나, 의사가 없는 곳에 병원을 짓는 것과 같은 더 나은 일을 할 수 없게 될까?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예수님을 따르는 존재의 본질

회중마다 이에 대한 답이 다르겠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더 나은 답을 줄 수 있는 직접적인 질문들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존재론적인 것보다 기능적인 면이 덜할 수도 있다. 결국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주로 옳은 말을 하고 믿는 것에 관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되는 것의 본질에 더 깊고 본질적인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 자체가 영과 생명이지만, 그 영과 생명의 역사는 오직 인간의 영혼과 상호작용할 때에만 변화의 힘을 갖는다. 결국 죄에 대해 용서와 은혜를 받는 확장된 경험이 더욱 인간적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이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22:40)라고 말씀하신 사랑의 필터를 통해 해석되지 않는다면, 성경을 원하는 목적으로 "무기화"하는 것은 꽤 가능할 수 있다.

 

불완전성과 잠재력을 지닌 설교

성경은 전체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점에서는 거대언어모델(LLM)이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불완전성과 잠재성에 대한 이해로 설교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415절에서 대제사장 예수님은 "우리의 약점을 공감할 수 없는 분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처럼 유혹을 받았지만 죄가 없는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단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다 풍요로운 삶으로 인도할 때, 인간의 부족함에 대한 이해는 공감과 충고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일 수도 있다. 바위 위에 지어진 집과 모래 위에 지어진 집에 대한 비유에서, 두 집의 차이점은 한 집은 예수님의 말씀과 상호작용하지만 다른 집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결론

AI 목회자를 두는 것이 가능한 시점은 아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어딘가의 일부 교회들이 이를 시도할 것이라는 가능성은 믿기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영혼이 있는 목사를 두는 것이 더 나은지, (예수가 이 세상에 와서 시범을 보인 것과 같이, *편집자 주: 공생애 전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것처럼) 인간은 유혹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이해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목사들을 피하는 것을 조언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지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인간으로서 우리가 열망하는 다른 모든 속성들이 인류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더 중요한 질문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그런 것에 관심을 갖고 싶다면, 그리고 지금 그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은 그들의 더 유창한 표현이 아니라, 매일의 행함, 즉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테리 브리즈번과 러스티 러프는 2023912일에 출간된 "신앙 코드: 의미 있고 영향력 있는 삶을 위한 미래 보장 프레임"(The Faith Code: A Future-Proof Framework for a Life of Sumning and Impact)의 공동 저자이다. 이 두 사람은 지난 10년 동안 다른 친구와 정기적으로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그들의 삶, 야망, 그리고 임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의 마음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함께 기도해왔다. 이러한 만남에 대한 노력으로 세 명의 친구들은 신앙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의 다양한 면에서 우정을 낳았다. 그들은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에서 일하며, 21세기에 소금과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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