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를 파악하라는 말을 듣곤 한다. 자기 주제를 알고 행동하지 못하면 주책이 없다고 핀잔을 듣기 일수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일찍이 일갈했다. 그런데 어느 누구나 살면서 착각한다. 가장 큰 착각은 자기의 능력과 한계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인간의 초월적인 능력을 과신하고 주장하다가 정신착란으로 죽었다. 칼빈 선생은 기독교강요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 때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이 시간 다루고자 하는 말씀은 호세아 선지자의 8번째 설교다. 이 말씀엔 이스라엘이 죄에 빠진 원인과 받을 심판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담겨 있다. 
 
1. 하나님의 진단


본문 1절과 2절에서 하나님은 에브라임이 부강하고 강성하자 하나님을 떠난 사실과 함께 그것이 죄라고 말했으나 회개하지 않자 심판받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 호 13:1~2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1) 교만한 에브라임
에브라임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의 차남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낄 수 없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지파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제사장 지파로 레위 지파가 빠지고 그 자리에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12 지파로 인정받게 되었다(창 28:14). 야곱의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에브라임을 가나안 정착 후에 더욱 번성케 하셔서 열두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가장 강력한 지파가 되게 하셨다. 이후 왕정 시대를 거치며 에브라임은 북조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가 되었다. 그 지파에서 여호수아, 여로 보함 2세와 같은 특출한 인물이 배출되었다.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타 지파들은 벌벌 떨 정도가 되었다(1절). 그 정도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은 지도자 위치에 이르렀다. 에브라임이 북조 이스라엘의 대표이며 지배적인 지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인간은 과거 비참했던 지난날을 망각하곤 한다.  잊어버리고 싶은 거다. 일부러 잊어버리려 한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할 때 더욱 성장하여 사람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진정 현재의 나란 존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를 인정하고 기억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러나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수준과 형편에 이르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교만해 질 수 있다.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2) 타락한 에브라임
에브라임의 번영과 막강함은 다른 부족에 비해 많은 숫자에 따른 넓은 땅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결국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풍요의 신 바알을 하나님으로 삼고 바알을 섬겼다. 지금까지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외면한 것이다. 교만해진 에브라임은 삶이 부요해져 등 따습고 배가 부르자 하나님을 떠났다. 

그들은 온갖 지혜와 재주를 동원하여 화려하고 정교한 은 신상,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국토 곳곳에 세웠다. 그리고 백성에게 그 신상이 애급에서 인도한 하나님이라고 호도하며 그 앞에 제물을 바치고 송아지 신상에 입을 맞추라고 강요했다. 바알신상을 존경과 경외와 사랑 그리고 충성을 맹세하라는 것이다. 이로 에브라임은 여호와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3) 헛된 에브라임 
본문 3절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런 에브라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와 진단을 전한다. 
* 호 13:3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아침 구름, 이슬, 타작마당의 쭉정이, 굴뚝의 연기’ 이 모든 비유는 헛된 것을 상징한다.  에브라임은 구원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마음과 말이 달랐다. 결과 순식간에 구름과 이슬 같이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타작마당에 날리는 쭉정이, 굴뚝에서 나는 연기와 같이 헛되다고 조롱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헛된 것으로 택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를 통하여 온 세상에 가장 고귀한 신분, 가장 영향력 있는 신분으로 만드시려 했다. “내가 너로 인하여 온 민족이 구원을 얻게 하시겠다는 것(창 12:1~3)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할 때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은 구원자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배교하였다. 하나님은 이 점을 지적하시며 그들은 아침 구름, 새벽 이슬, 쭉정이 그리고 연기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을 경고하셨다. 실제로 북조 이스라엘의 부귀와 영화 그리고 화려한 이교도 바알 우상 문화는 구름, 이슬, 쭉정이, 연기 같이 사라졌다(주전 722년).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난 자는 종국에 가선 심판받을 수 밖에 없음을 교훈한다. 

이같은 교훈은 신약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을 보자. 
* 히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주변에 현재 누리고 있는 세상적인 것에 집착하여 옛적 신앙을 버리고 교만하게 행동하는 자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우리 역시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지난 날 하나님께 매달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여 은혜로 살아난 후, 이제 어느 정도 살만하니까 교만하여 형식적인 신앙만 겨우 붙잡고 있는 상황은 아닌가? 가당치도 않게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성경과 교회를 비판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한껏 내세워 교만하게 행동하지는 않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예리한 지적을 잘 살피기 바란다. 현재 누리는 모든 부귀와 영화 그리고 자랑과 자존심은 구름, 이슬, 쭉정이, 연기와 같이 헛된 것일 뿐이다. 어느 날 모두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전혀 믿을 것이 못된다. 명심해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설득


배교하는 에브라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설득하시는 권면이다. 이것이 호세아의 설교였다. 

1) 구원자이심을 환기시키심
* 호 13:4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 살 때로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아오면서 노예 생활을 했다. 혹독한 고통 속에서 조상의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은 이들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 출 3:9~10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셨고 탄원을 들으셨고 그들을 구원하셨다. 조상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준수하시는 변함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부르신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백성을 구원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호세아는 북조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은 하나님께 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임을 확실히 한다. 이스라엘의 패망은 그들이 책임져야할 문제였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출애굽 당시의 조상과 같이 여호와를 찾았다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멸망당하지 않도록 조처하셨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북조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선택하고 섬겼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선포했다.
* 사 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세상의 그 무엇을 섬기든 그 우상에게 당신의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신다. 그것들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을 절대 용남하시지 않으신다. 거듭난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이 찬송과 찬양의 대상임을 고백해야 하고 오직 그 하나님께만 영광과 경배를 드려야 한다. 이유는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요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유일한 신이시기 때문이다. 
* 사 45:21~22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2) 배은망덕을 지적하심
* 호 13:5~6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척박한 마른 땅 즉 삶의 혹독함 속에서 이미 아셨고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단련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문제는 자신들을 다루어 가시는 여호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 식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재단하여 여호와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계시대로 살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이 점이 이스라엘의 결정적인 문제였다. 호세아는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촉구했던 것이다(호 6:3). 

하나님께서 “알았다”는 권고하셨다는 의미다. 이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목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70인 경(LXX)에서는 이를 “내가 너를 양쳤다(I shepherded thee)”고 번역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목동이 양을 돌보듯 하셨다는 의미이다. 

생각해 보자. 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착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그들의 목자가 되어 신실하게 완벽하게 인도하셨다. 지금도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께서 인도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에서 돌보심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요 10).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시 23장)에서 노래하며 고백했다. 

신약 성도들은 죄 가운데 죽었던 것을 예수와 함께 죽으시고 살리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 엡 2:2~7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이스라엘의 문제는 구원의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기억하지 않았고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6절).” 번영과 교만과 배교 때문이다. 어려울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복을 듬뿍 받았다. 삶의 여유가 생겼고 부유해졌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겼다. 스스로 자신이 부유함을 믿고 배가 불러 교만해졌고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정말 지난날 받은 은혜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와 사랑으로 주께서 나를 향하신 뜻을 찾아 더욱 주를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부분 배가 부르면 교만해져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떠난다. 지난 날 우리 민족 역시 어려울 때 하나님께 매달렸다. 이제 살만하니까 하나님을 떠난다. 신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믿음이 생명이요 구원임을 잊은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지난날 드린 간청을 들으시고 배부르게 하셨듯이 얼마든지 우리를 다시 배고프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 하나님의 진노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진노하셨다. 
* 호 13:7~8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하나님은 교만하여 배교한 이스라엘에게 마치 무서운 사자처럼, 길목에 숨어 기다리다가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표범처럼, 새끼 빼앗긴 암 곰처럼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을 것을 경고하셨다. 사자나 표범이나 곰이나 먹이를 공격하여 먹이를 사냥하면 사정없이 찢는다. 여호와 하나님도 표범, 곰, 새끼 잃은 암사자 같이 앗수르를 보내서 그들을 찢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심판하셨다. 결과 배교한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철저하게 패망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매은 망덕을 응징하시고 심판하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죄를 지었는데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는 않는다. 과연 하나님이 계시기나 한가?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를 거스르며 살아가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더욱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 과연 하나님이 모르시겠는가? 아니다. 다 아신다. 하나님이 그렇게 모른 체 하는 것은 돌아올 기회를 기다리며 참고 계시는 것이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롬 3:25~2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 롬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호세아는 하나님을 잊고 배교한 이스라엘의 패망 이유를  지적하여 설교를 매듭짓는다. 
* 호 13:9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을 돕는 여호와를 버렸다. 인내하시던 하나님은 마침내 심판하셨다. 결과 그들은 망했다. 

 

결 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단순히 나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의 요구와 만족을 채우기 위한 신앙이어서는 곤란하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목적이겠는가? 그것 이상이다!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 엡 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를 믿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널리 드러내며 영광을 돌려드려는 것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단지 사랑과 긍휼을 한없이 나의 요구를 들어주고 베풀기만 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생각하고 느끼고 다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지금은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문제가 없이 보이지만 교만과 거짓으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때 어느 순간 하나님은 다루실 것이다. 사자 같이, 표범 같이 그리고 곰같이!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잊고 형식적인 신앙만을 붙잡고 살아가는 저희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의 본분을 확인하게 하시고 자격과 능력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하옵소서.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지 말게 하시옵소서. 전심을 다하여 주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드리는 복된 주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