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명언이 있다. 영국의 문호 섹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어머니의 강인함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출산은 자기 생명과 바꾸며 신생아를 얻는 일이다. 임신 과정은 물론이요 해산의 고통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으로 수반한다. 죄를 지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저주 때문이다. 그런데 해산의 고통은 새 생명을 얻기 위한 이례 과정으로 출산을 한 이후 감격과 환호로 모든 고통을 다 잊어버리게 된다. 자기의 분신 아이를 얻얻기 때문이다. 남자가 느끼는 감정 보다 몇 백배 더 할 것이다. 

본문의 호세아 설교는 8번째 설교로 북조 이스라엘을 심판을 선언하시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메시지 속에는 단호한 심판만 있지 않고 확실한 구원의 전망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 시간에 살펴 본대로, 심판을 선언하셨다면 이 시간엔 피활 수 없는 심판과 구원의 전망을 동시에 선언하시는 말씀을 볼 수 있다. 

 

1. 너희 구원자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은 패망에 이른 이스라엘을 질책하셨다. 이유는 구원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다(9절).  이어서 본문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조롱하셨다.  
* 호 13:10~11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이미 여호와 하나님은 벌써부터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셨다. 모세에게 이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시고 어떻게 처리할 것을 명하셨다. 백성이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왕을 요구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세우라고 명하셨다. 왕은 첫째,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 둘째 애굽으로 되돌아가지 말 것 셋째, 많은 아내를 두지 말 것, 넷째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 등을 명하셨다.(신 17:14~17)

실제로 사무엘 시대가 되면 백성들은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라며 왕을 요구했다(상상 8:5b). 그때 사사 사무엘은 그 요구를 선지자, 제사장으로서의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못마땅해 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할 것을 명하셨다. 
* 삼상 8:6~8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 도다.

이 모든 과정이 백성이 그들의 구원자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지를 실제 역사 속에서 증명해 내시는 과정이라 하겠다. 백성이 그들의 왕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버린 것으로 간주하고 분노하시며 그들의 요구에 응하셔서 왕을 세우는 일을 묵과하셨다. 

이는 북조 이스라엘 백성이 요구한 왕들이 어떤 역사가 진행되었는지 살피면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북조 이스라엘은 시조 여로보암 1세로부터 마지막 왕 호세아왕까지 9 가문에서 19명의 왕이 나와 모두 209년간(BC 931~BC 722) 나라로 유지됐다. 그동안 8차례의 정변이 발생하며 극한 내홍을 겪었다. 5대왕 시므리는 7일 천하, 15대 살룸은 한 달 만에 죽임을 당했다. 이 모두가 정권욕에 눈이 먼 자들의 잔인한 정변을 일으킨 결과이며 이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이 중심 주제는 구약의 핵심 주제 중에 하나이며, 우리가 살피는 호세아서의 중심 주제다. 선지자 호세아는 설교 중심 주제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결과가 얼마나 혹독한 지를 역사 속에서 증명하며 전하고 있다(호 2:5~8; 4:17; 13:3) 특히 4장에서 선지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문화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패역함을 지적했다.
* 호 4:17~18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왕을 요구했고 지도자들은 복지와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임무를 망각하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기에 바빴다. 하나님은 왕들과 지도자 즉 재판장들이 어디에 있는가! 라고 냉소적으로 조롱하셨던 것이다. 
  
그동안 그들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평안을 누려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고 세속적인 번영과 화려한 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왕과 지도자들을 세웠던 것이다. 이제껏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한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호 13:11).” 라고 정변이 잦은 북조 이스라엘을 지적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북한을 보라. 실제로 김일성이 북한을 세울 때 얼마나 온갖 감언이설로 백성들을 회유했는가? 지주와 자본가의 재산을 빼앗아 백성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완벽한 복지 제도로 누구나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어떠한가? 완전한 거짓말임이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을 떠난 그 어떤 정치 제도도 안전과 평안과 번영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개인이든 사가정이든 그리고 사회와 국가든 동일하게 적용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라 하겠다. 형식적인 종교 형태만을 유지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나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떠나면 반드시 실패하고 패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2. 심판을 피할 수 있겠나


왕도 재판장도 제 구실을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북조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은 도전적 질문을 하셨다. 
* 호 13:12~13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1) 쌓여가는 죄
“불의”
란 계명을 어기는 불법을 행하는 것,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부정한 행위(iniquity)를 의미한다. 그리고 “봉함”되었다는 말은 쌓였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생활을 계속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음을 말한다. 그들이 저지른 죄의 기록들이 쌓이고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들이 하나님의 진노 창고에 쌓여 때가 되면 반드시 그 기록 창고가 열리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죄를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욥은 알았다. 다음 두 구절이 이를 증명한다.  
* 용 14:17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 욥 21:19~20 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할 것이니라.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즉시 처벌하지 않고 기록하여 쌓아두신다. 때가 되면 처리하실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이 유예 기간이 회개할 기회가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바울도 이를 강조하며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 롬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계시며 생명의 책에 기록하고 계신다. 
* 신 32:34~35 이것이 내게 쌓여 있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일이 속히 오리로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죄를 처리하는 방식은  최후 심판에도 동일하게 적용 될 것이다. 
* 요계 20:12~14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어느 누가 이 심판대 앞에서 자신이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진노의 책에 기록되어 쌓여 있는 생명책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을 것인가? 어느 인간도 불가할 것이다. 단 한 가지 망법이 있다. 예수께서 이루신 대속의 진리,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방법뿐이다. 주께서는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 14:6)”라고 말씀하셨다. 

2) 무능력한 죄인
호세아는 북조 이스라엘을 해산할 여인과 태어날 자식에 비유했다. 
* 호 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산모는 진통이 시작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을 기중된다. 엄청난 산고(Travail)를 겪게 된다. 고통이 계속하여 쌓이는 상태를 겪다가 출산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생명을 얻는 것이다. 가녀리고 약한 여자에서 강하고 위대한 어머니가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심한 진통이 계속되고 있는데 배속에 있는 아기는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식을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식"이라고 지적하셨다. 아기가 때가 되면 나와 주어 엄마의 산고를 풀어주어야 하는 데 아기가 도와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산모나 아기나 모두 나와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 순간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큰 문제가 발생하여 산모나 아기의 생명이 위태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를 놓치면 산고는 산고대로 하고 기대한 아기는 얻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교훈하는 것은 죄를 지은 자들이 하나님의 진노가 즉각 시행되지 않는다고 하여 만용을 부리고 계속 죄를 지으면, 영적 감각이 떨어지고 양심이 무뎌져서 말씀의 경고와 지적을 무시하고 외면하여 정작 새 생명을 얻어야 할 때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겐 새 생명의 역사 즉 중생도 못한 채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생명의 싸개 속에 우리를 싸서  보호하시며 죄를 멀리하도록 인도하고 계신다. 신실한 성도는 바로 이 점을 굳게 믿고 살아가야 한다. 다윗을 만난 아비가일이 가졌던 믿음이 바로 그런 신앙이었다.   
* 삼상 25:29b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바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가운데 살사는 자다. 이 점을 확신하고 타락하여 혼란스러운 죄악이 관영한 한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믿고 확신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분명히 했다. 
*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3. 구원의 전망과 성취


하나님은 놀라운 구원을 전망하시며 복음을 전하신다.
* 호 13: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1) 사망과 음부
“음부의 권세”
란 말을 히브리어 원문에선 “음부의 손에서(from the hand of Sheol)"로 되어있다. 여기서 말하는 “음부(Sheol)"란 어떤 곳인가? 사망과 동의어로 사용되어 사후 셰게를 뜻한다. 성경에서 주로 ”음부의 입“ 즉 죄인들이 심판을 받아 가는 곳으로 입을 벌려 받아드린다고 표현되나 호세아는 ”음부의 손“으로 표현되는 것은 무엇일까? 지배력을 의미한다. 즉 음부는 ”지하세계(시 22:29)를 지배하는 세력으로 시편 가자는 “흑암(시 143:3), 고요(시 115:17), 망각(시 88:12), 하나님과의 단절(시 6:5), 내려가는 곳(창 37:35, 시 115:17)"등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곳은 무덤과 동의어로 쓰였다. 무던이 육신을 묻는 곳이라면 음부를 영혼을 받아드리는 입과 같은 곳이다. 

"속량한다(redeem)."는 말은 값을 주고 산다는 의미이고 구속(ransom)은 중보자 혹은 연고자에 의하여 해방과 자유를 준다는 의미다. 즉 하나님께서 죄의 수렁에 빠져 조의 노예로 살던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죄의 값을 치르시고 구속하여 자유를 주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이다. 놀라운 복음을 전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구원의 전망을 하시고 전하신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원문은 “사망아 나는 네 세균이 될 것이다. 음부야 나는 네 멸망이 될 것이다.”이다. 그런데 칼빈을 비롯한 많은 성경이 한글 성경과 같이 번역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씀이 아닌가. 바로 사도 바울이 부활의 진리를 선포한 고린도 전서 15장 마지막 부분에서 인용한 말씀이다. 
*고전 15:44~46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이는 사망의 지배력이 결코 성공할 수 없고, 사망이 목적한 바가 결코 성사될 수 없음을 선언하며 사망 즉 죄의 결과가 무위로 돌아갈 것을 선언한 말씀이다. 그렇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하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명백하게 규정한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절대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율법의 요구를 춫옥시키고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셔서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받으시고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로 얻게 되는 것이다. 아멘!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인 복음을 믿으면 영생이라는 새언약으로 이루시는 구원의 소망을 선언한 말씀이다. 마치 에스겔 선지자가 본 마른 뼈 환상(겔 37장)과 같이 하나님의 생기 즉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질 중생의 역사이며 중생한 자만이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선언한 말씀이다. 

흥미로운 점은 “재앙(plaques)" 이란 말은 "말(dabar)"과 어근이 같다. 즉 말, 말씀은 생명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재앙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참고 약 3:5~8).   

2) 하나님의 취소됨이 없는 부르심
“네 뉘우침이 네 목전에 숨으리라(14절)“는 어떤 의미일까? 원문은 ”I will have no compassion! 즉 나는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 는 선언인 셈이다.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께서 사탄의 강력한 최후의 무기인 사망의 승리는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말씀이다. 그것은 십자가 사건으로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 방식으로 이러한 하나님이 취하신 부르심과 은사는 결코 후회하거나 취소되지 않는다. 
*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예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시는 구속은 사탄의 계략과 세력에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고 단호하게 처리하셔서 마침내 구원을 완성하시겠다는 단호하심을 선언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자에 대하여 심판하셔서 사망과 멸망케 하시지만,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은 당신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죽으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배교하여 주전 722년 멸망했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구원의 도리를 완성하시고 믿도록 선포하신다.

 

결  론


살아계신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성도는 바로 이 점을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고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의 의미와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알아서 죄와 싸워 이겨야 할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충만한 성령의 지배를 믿고 의지하고 사모해야 할 것이다. 
* 엡 5:15~18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여전히 세상과 짝하기를 좋아합니다. 세상 방식이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말씀은 멀리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일깨워 주옵소서.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정욕에 따라 자유롭게 살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 진리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믿게 하셔서 사망의 권세가 더 이상 나를 지배할 수 없음을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생명이요 부활이신 거룩하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